《신부의 카운트다운》全部章節:第 11 章 - 第 20 章

20 章節

제11화

그 순간, 주경안은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예감하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던 일이 이제 눈앞에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다.박세연이 정말로 떠난 것이었다.‘하지만 왜?’오늘이 결혼식 날이었다.‘20년 동안 바라왔던 일인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 거야?’어지러운 생각들 속에서 어젯밤 집을 나서기 전 박세연의 지나치리만큼 담담했던 얼굴이 떠올랐다.그때 분명 무슨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자신은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마음에 서둘러 문을 닫아버렸고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다만 문을 닫기 직전, 소파에 앉은 박세연의 옆모습이 눈 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혼을 앞둔 설렘도 없었고 자신이 조민애에게 간다는 것에 대한 화도 없었다. 그저 잔잔하고 깊은 고요함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이었다.‘어제저녁 세연이가 하려던 말이 바로 헤어지자는 것이었구나.’주경안은 힘 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어서 아무런 생각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 왔지만 받을 기력조차 없었다.왜 헤어지자고 한 건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박세연은 보름 전에 이미 결혼식을 취소해 두었다고 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보름 전…’주경안이 불현듯 떠올렸다. 보름 전은 바로 조민애의 인공수정 성공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그날 원래는 다시 한번 인공수정 이야기를 꺼내 박세연을 설득하려 했었다. 그런데 조민애에게서 임신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기쁨에 머리가 하얘져서 하던 말을 중단하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었다.보름 동안의 기억이 서서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웨딩사진 취소, 그리고 조민애와의 여행까지 그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박세연은 마치 남의 일을 바라보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그때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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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한편, 두 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드디어 하성에 도착했다. 탑승 전에 선배가 길을 못 찾을까 봐 마중 나갈 사람을 따로 보내겠다고 했었다.공항 안은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 이름이 쓰인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을 찾아 몇 번이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선배에게 전화해서 마중 나온 사람이 도착했는지 물어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선배님!”돌아보니 환한 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죄송한데 누구세요?”어딘가 눈에 익은 얼굴인데 도무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앞에 선 남자가 일부러 괴로운 척 한숨을 내쉬더니 목소리에는 감추지 않은 반가움을 담았다.“선배님, 고작 5년 만에 이 후배를 잊은 거예요? 너무 서운한데요.”5년 전, 실험실에서 24시간을 꼬박 밤새우던 초췌한 얼굴이 지금 눈앞의 모습과 겹치기 시작했다.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한세훈 씨구나!”5년 전,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교수님이 새로 받은 학생이 한세훈이었다.그때 나는 졸업 준비로 바빠서 이 후배와 깊이 교류할 시간이 없었다.남은 기억이라고는 실험 데이터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디서 오류가 났는지 찾지 못해 실험실에서 꼬박 하루를 버티던 모습뿐이었다.마침 내가 실험실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실험대를 지나치면서 한세훈의 충혈된 눈을 발견했다.그래서 먼저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문제를 들은 뒤 한 단계씩 꼼꼼하게 살펴 결국 오류가 어디서 났는지 찾아냈었다.5년이 지나 실험에 골머리를 앓던 그 후배가 이렇게 달라져 있을 줄은 몰랐다. 순간 못 알아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한세훈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걸어왔다.“그래도 기억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저는 선배님이 저를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나는 코끝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이 몇 년간 주경안처럼 차가운 사람과 지내다 보니 이렇게 붙임성 좋은 한세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웠다.한세훈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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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나는 얼른 마음을 다잡고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문을 밀었다.5년 만이었다. 교수님 머리에 흰머리가 몇 가닥 생긴 걸 금방 발견했다.몇 번이나 만류하셨는데도 주경안을 따라 떠난 것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죄스러웠다.교수님은 가장 아끼면서도 가장 아까워하는 학생을 바라보며 수많은 말들을 마음속에서 접어 결국 한마디 한숨으로 내뱉으셨다.“이번엔 제대로 따라와서 실험해야 한다.”나는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을 누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교수님은 더 말씀하지 않으시고 손을 흔들어 한세훈에게 나를 숙소로 안내해 주라고 하셨다.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편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비행기에서 두 시간 존 게 전부였으니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침대에 닿자마자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짐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얼마나 잤을까, 핸드폰 벨 소리가 단잠을 깨웠다. 반쯤 잠든 채로 더듬거려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아직 정신이 덜 돌아온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 너머로 분노가 담긴 주경안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박세연, 어디 있는 거야!”주경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터지자 순식간에 정신이 들었다.시간을 보니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잠을 깨운 짜증과 여정의 피로가 겹쳐서 나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달력에 분명히 써놨잖아. 우리 헤어졌어.”언급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텐데 꺼내자마자 주경안의 불길이 더 거세졌다.아직도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것이었다.“안 돼, 나는 동의 안 했어!”“헤어지더라도 이유는 말해줘야 하잖아!”“결혼 당일에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서 달랑 헤어지자 한마디만 남기면 어떻게 해!”자세히 들으니 주경안의 목소리에는 분노 속에 감지하기 어려운 억울함이 함께 섞여 있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버림받으리라고는, 20년을 함께한 사람이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라지리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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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전화가 끊어진 순간, 주경안은 잠시 멍해졌다. 박세연이 먼저 전화를 끊은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는 아무것도 제대로 말하지 않은 채였다. 어디에 있는지도, 왜 떠난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주경안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화기에서는 차가운 안내 음성만 흘러나왔다. 차단당했다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 그제야 현실이 실감으로 밀려들었다.“지금 거신 전화는 고객님의 사정으로...”문자를 보내려고 했다.그런데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다음 순간, 빨간 느낌표가 떴다.[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차단한 사용자입니다.]주경안의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박세연이 자신을 차단한 것이었다. 그녀가 화를 낸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차단까지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동시에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치밀어 올랐다.‘정말 그 아이 때문이었나!’‘그렇게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조민애는 나의 은인이고 암 환자라서 그 애 소원을 들어줬을 뿐이라고. 왜 이해하고 지지해 주지 않는 거야?’하지만 분노 뒤에, 주경안의 마음을 지배하는 건 두려움이었다.박세연과 헤어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그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연락 방법도 없어졌다.‘어떻게 찾아야 하지?’다급한 마음에 박세연의 단짝 임지아가 떠올랐다. 한번은 친구 모임에서 박세연이 그를 데려갔던 적이 있었고 기억을 더듬어 임지아의 집을 찾아갔다.임지아가 문을 여니 먼지를 뒤집어쓰다시피 하고 달려온 주경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임지아는 평소에도 박세연이 그를 쫓아다니며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두 사람이 이미 연인 사이인 이상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박세연에게 결혼 취소 이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은 이후로는 주경안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켜켜이 쌓인 상태였다. 세상에 이런 진국 쓰레기가 다 있나 싶었다.지금 그 주경안이 자기 집 문 앞에 버젓이 나타나자 그동안 쌓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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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임지아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잊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더더욱 경멸스러워졌다.“진짜 귀한 몸은 건망증도 다르네요. 6년 전 새해 전날 밤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잊어버리다니.”“그때 세연한테 감사 인사도 없었던 건 그렇다 쳐도 지금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요?”임지아는 말할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20년 동안 박세연이 주경안 뒤에서 묵묵히 해온 것들, 그리고 6년 전 그 아찔했던 밤에 대해 전부 쏟아냈다. 그날 박세연이 입원했을 때의 사진까지 핸드폰에서 꺼내 들이밀었다.주경안은 임지아의 집을 어떻게 나왔는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텅 빈 채로 멍한 상태였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그 자리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채워졌다. 기억 속에서 6년 전 그날 밤은 분명 조민애가 자신을 구했다.‘그런데 박세연이라니...’임지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오랫동안 잘못된 사람을 은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민애 뱃속의 그 아이는 처음부터 있어선 안 됐던 존재였다.주경안은 곧장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날 밤이 정말 조민애가 자신을 구한 것인지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차 안에 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되짚기 시작했다.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미행하다가 갑자기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으며 골목 안으로 끌어당겼고 허리에 칼끝이 닿는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키는 대로 돈을 전부 내어줬다. 그런데 그자는 돈을 받아 쥐고도 망설임 하나 없이 복부를 깊이 찔러버렸다.이제 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겠다 싶었다. 그 순간, 어떤 그림자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 남자를 덮쳤다. 주경안은 피로 물든 손으로 겨우 신고를 마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얼굴이 조민애였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을 구한 사람이 조민애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임지아의 말에 따르면 그날 밤 자신에게 달려든 것은 다름 아닌 박세연이었다. 다만 그날 박세연도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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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주경안이 눈을 감았다. 이 순간 그의 심장은 이 소식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조민애, 6년 전에 나를 구한 사람은 네가 아니지.”조민애의 동공이 순간 수축하면서 마음이 서서히 조여들었다. 분명 그때 이미 자신이 은인으로 굳게 자리를 잡았는데 왜 주경안이 지금 와서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침착함을 유지한 채, 부드럽게 미소를 띠며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경안 오빠,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박세연이 사라진 후의 막막함과 진실을 알게 된 후의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주경안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결국 그는 폭발하고 말았다.조민애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눈을 붉히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나를 구한 사람은 20년 동안 내 곁에 있어 준 세연이라고!”“더 이상 변명하지 마. 이미 증거를 찾았어. 왜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주경안이 이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조민애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녀는 그날 우연히 병원에 친구를 문병 오다가 주경안의 병상을 지나쳤을 뿐이었다. 그 잘생긴 얼굴에 무심코 시선이 머물던 찰나 하필이면 그가 눈을 뜨더니 자신을 은인으로 착각했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조민애는 그 자리에서 부정하지 않았다. 그 신분을 빌려 그에게 접근하고 그와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가족들에게 이끌려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고 그로부터 반년 전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귀국해 주경안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조민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해명을 시작했다.“경안 오빠, 저는 그냥 오빠 곁에 있고 싶었던 것뿐이에요.”그러나 주경안은 이미 절망이라는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더 이상 조민애와 왜 속였는지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그녀와 선을 긋고 자신이 상처 입힌 사람에게 가서 사과하고 싶었다.“아이 지워.”조민애가 바로 반발했다.가족에게 남겨줄 마지막 소망인데 없앨 수 없었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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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주경안은 그날로 수술을 강행했다.조민애의 암 상태상 임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아이를 지웠다. 조민애 일을 마무리한 후, 그는 박세연의 소식을 이대로 잃고 싶지 않아 다시 임지아를 찾아가 어디로 갔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한 번에 말해주지 않자 주경안은 매일같이 그녀의 집 앞을 지켰다. 며칠을 버티다 결국 지쳐버린 임지아가 박세연이 실험실에 들어갔고 이미 이 도시를 떠났다는 말 한마디만 내뱉었다. 다만 어느 실험실인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주경안은 둘이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교수를 수소문하기로 했고 몇 차례 수소문한 끝에 박세연의 지도 교수가 하성에 새 실험실을 차렸다는 것을 알아냈다.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박세연은 하성에 있다고 직감이 말해줬다. 주경안은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끊고 하성으로 날아갔다.동문이 알려준 주소를 따라가 실험실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때마침 첫 번째 실험이 아직 시작되지 않아 실험실은 봉쇄 상태가 아니었고 그는 마침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붙잡아 박세연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선배에게서 누가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꽤 놀랐다.‘실험실 주소를 알려준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데 나를 이렇게 빨리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지?’의아한 마음을 안고 나갔더니 찾아온 사람이 주경안이었다.주경안은 내 모습을 보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내 높이 솟아 있던 심장이 순간 제자리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앞으로 옮겨졌고 그의 손이 내 손목을 꼭 쥐었다.“왜 나한테 헤어지자고 한 거야, 왜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린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주경안을 보고 놀란 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던 나는 쏟아지는 질문에 얼떨결에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주경안은 내가 자신의 손을 거부하지 않자 마음 한편에서 기쁨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어쩌면 아직 자기한테 화가 난 것뿐일 수 있었다. 차분하게 잘 설명하면 분명 용서해 줄 거라 믿었다.하지만 그 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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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2년 후, 공항.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저곳 달라진 것들을 눈에 담았다.첫 번째 실험 연구가 무려 2년이나 걸릴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결과는 완벽했고 교수님은 두 달을 통째로 휴가로 주셨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다시 이 도시의 땅을 밟았다.어느덧 2년이라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옆에서 혼자 들떠 있는 한세훈의 모습이었다. 그쪽으로 시선이 닿자 나도 모르게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2년 전에는 혼자 떠났는데 2년 후에는 둘이서 함께 돌아왔다.그리고 이번에 돌아온 데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한세훈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얼른 내 손목을 잡아채고는 뛰기 시작했다.“선배, 이러다 늦겠어!”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임지아는 환영 파티를 열자며, 2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니 제대로 모이자고 했다. 오래된 친구들이 보고 싶었던 나도 흔쾌히 수락했고 파티는 우리가 도착하는 날로 잡혔다.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간이 된 후였다. 한세훈이 내 손을 끌고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왠지 낯익은 뒷모습이 스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바쁘게 달려온 탓에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지금은 일단 룸을 찾는 게 먼저였다.한편 주경안은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눈빛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2년을 기다려온 이 순간, 온몸이 기쁨으로 충만했다.2년이었다. 꼬박 2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를 다시 보게 됐다. 그 2년을 텅 빈 집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아무도 몰랐다.처음에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눈을 붙여도 깨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박세연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텅 빈 적막뿐이었다. 아침밥을 차려줄 사람도 없었고 돌아올 집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집 안을 구석구석 뒤져봤지만 박세연과 관련된 물건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결국 그 달력만을 머리맡에 두었다. 헤어지자는 통보가 적혀 있는 달력이었지만 그것이 박세연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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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주경안은 룸 문 앞에 서기 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기까지 했다. 원래는 그냥 식사를 하러 온 것이었는데 박세연을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알게 된 이상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없었다.그는 서둘러 몸을 가다듬고 룸 문 앞에 섰다.문을 열기 전, 박세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여러 가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용서하지 않으려 할 수도 있고 이미 과거를 내려놓고 그냥 평범한 친구처럼 대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 그가 박세연에게 어떤 존재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세연을 다시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자신이 있었으니까.그런데 단 한 가지, 박세연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그것도 곧 결혼한다는 것만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약혼자'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거대한 손이 심장을 틀어쥐듯 숨이 막혔다. 제발 다음 순간 박세연이 웃으면서 그냥 농담이라고, 한세훈은 그냥 후배일 뿐이라고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말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룸 안에서 친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점점 커졌다. 들러리 경쟁에서 이제 아이의 대모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로 넘어갈 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말을 내뱉고 나서 주경안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시선이 곧장 박세연과 한세훈이 맞잡은 손에 꽂혔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다정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하지만 나는 주경안이 이 광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2년 전에 이미 헤어졌다. 나에게 주경안은 그저 낯익은 타인일 뿐이었다. 오늘처럼 웃음소리가 가득해야 할 환영 파티에 그가 나타나 분위기를 망쳐놓았고 내가 보기엔 뜬금없기 짝이 없는 말까지 내뱉었다.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목소리에 귀찮음이 배어 있었다.“여기 왜 온 거야? 우리 2년 전에 이미 헤어졌어.”손바닥이 간지러운 느낌에 고개를 돌리니 눈빛에 원망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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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그 말을 듣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가짜라니. 너를 약 올리려고 내가 굳이 이런 연극을 꾸밀 이유가 있나?’나는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이 없었다.동시에 솔직히 좀 의아하기도 했다. 5년을 사귀는 내내 그는 항상 뜨뜻미지근했고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그때 나는 주경안의 심장이 혹시 돌로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품어줘도 끝내 따뜻해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조민애가 나타나고 나서야 그에게도 다정한 면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단지 그 다정함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을 뿐이었다.2년 전, 나는 미련 없이 스스로 물러섰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에게 조용히 길을 터줬다.‘이제 와서 왜 이렇게 나에게 지극정성인 척하는 건지.’조민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도 나에 대한 그의 태도가 이래서는 안 됐다.“미안한데 세훈이는 내 정식 약혼자야.”“결혼식 날짜는 이번 달 18일이야. 10일 남았어.”내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벼락처럼 주경안의 귓가에 꽂혔다. 그의 두 눈이 순식간에 빨개지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이미 그와 엮일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아무 상관 없는 사람 때문에 이 환영 파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자리를 옮기자는 말에 모두가 일어서는 사이 주경안이 옆을 지나가던 내 옷자락을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옷자락을 빼내고 한세훈의 손을 잡은 채 그냥 걸어 나갔다. 주경안만 홀로 그 자리에 남아 우리가 떠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차에 오르자마자 한세훈이 나를 감싸고 있던 팔을 스르르 풀더니 창문 쪽으로 몸을 홱 돌린 채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코웃음 소리가 작게 새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그가 질투하는 거 다 보였으니까.사실 남자친구가 이렇게 질투하는 걸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예전에 주경안과 막 사귀기 시작했을 때, 그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남자 친구와 짜고 같이 출퇴근하고 밥을 먹으며 심지어 슬쩍 SNS에 올리기까지 했지만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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