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채희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은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도현을 자그마치 17년 동안이나 열렬히 사랑해 온 서은아가 제 발로 물러서겠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강채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은아 씨, 대체 무슨 수작이에요?” 서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그저 이런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고 싶어서 그래요. 주도현도, 아이들도 다 나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잖아요. 그럼 내가 비켜줘야지. 나는 빠질 테니까 둘이 잘해봐요.”강채희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서은아를 날카롭게 뜯어보았다. “정말 미련이 없다고요? 지금 사람들이 그 수석 연구원 사모님 자리를 못 가져서 얼마나 안달인데, 그걸 다 포기하겠다고요?” “알아요.” 서은아는 강채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강채희 씨, 나 그거 안 할 거니까 당신이 다 가져요.” 순간 강채희는 손에 쥐고 있던 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언제나 생글생글 웃던 부드러운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서은아 씨, 누가 양보해 달래요?” 잠시 팽팽한 침묵이 흐른 뒤, 강채희는 비웃음을 흘리며 테이블 위의 이혼 합의서를 낚아챘다. “뭐, 당신이 알아서 떨어져 주겠다면 저야 수고를 덜어서 좋죠. 서은아 씨, 제법 눈치는 있네요. 분명히 경고하는데, 제 손에 들어온 이상 다시 돌려받을 생각 마세요.” “걱정하지 말아요.” 서은아가 덤덤하게 웃었다. “주도현도, 내 자식들도 이제 나한텐 아무 쓸모 없으니까요.”정말 필요 없었다. 지독했던 전생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억지로 곁에 둔 대가는 비참하고 고독한 죽음뿐이었으니까. 이번 생만큼은 결코 그 지옥을 반복하지 않으리라.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은 강채희가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 화려한 웨이브 머리카락을 따라 움직였다. 강채희가 탄 택시가 멀어지는 것을 보던 서은아는, 홀린 듯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그 뒤를 쫓았다. 연구소 정문 앞. 서은아는 경비원의 극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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