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0

11 فصول

[프롤로그]소유의 시작

“하유주, 찾았다.” 그건 마치 신의 장난 같은 조우였다. 비린내 나는 돈 냄새와 숨 막히는 권위가 가득한 저택을 뛰쳐나왔을 때, 일곱 살의 이현이 마주한 세상은 생경할 정도로 눈부셨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잎사귀마다 부서지는 화창한 햇살, 그리고 그 아래 맑게 흐르는 강물. 세상은 온통 활기로 가득한데, 서이현은 그 풍경 속에서 홀로 떨어진 섬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이현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늘어졌다. 그때, 그 그림자 위로 불쑥 따스한 온기가 내려앉았다. “너, 왜 여기서 혼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햇살을 등지고 나타난 아이, 하유주였다. 이현은 멍하니 유주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느껴보는 다정한 손길. 유주는 이현의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털어주며 제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 하나를 쥐여주었다. 사실 유주가 이 낯선 소년에게 말을 건 건, 단순히 친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이, 이제껏 본 적 없을 만큼 지나치게 잘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하지만 이현에게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정상적인 존재’로 대접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비현실적인 햇살의 향기. ‘따뜻해.’ 그 지옥 같은 집안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온기였다. 이현은 결심했다. 이 온기를, 이 빛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유주가 건넨 손을 맞잡은 순간, 소년의 눈동자 속에는 순수한 애정보다 더 깊고 어두운 ‘갈망’이 피어올랐다. *** -20년 후. “이현아, 이제 그만해. 나 무서워….”유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뒷걸음질 쳤지만, 이현은 느릿하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일곱 살의 그 소년은 이제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대기업의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사탕 하나에 만족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무섭다고 하지 마, 유주야. 네가 가르쳐준 거잖아.”이현의 입술이 유주의 귓가에 닿을 듯 가깝게 내려앉았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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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보이지 않는 감옥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평창동의 고요한 저택. 유주는 통유리창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은 마치 누군가 쏟아버린 와인처럼 불길하고도 선명했다. “유주 아가씨, 식사 준비됐습니다.”등 뒤에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유주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집의 고용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그들은 유주를 ‘손님’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감시 대상이라는 것을 유주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유주는 마지못해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길게 뻗은 대리석 테이블 끝에는 이미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서이현. 20년 전, 사탕 하나를 쥐여주며 웃어주었던 그 가여운 소년은 이제 존재만으로도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수트 차림의 그는 서류를 훑던 시선을 들어 유주를 응시했다. “늦었네.”단조로운 어조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 유주는 그의 맞은편에 앉는 대신,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이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가까이 와서 앉아. 내 목소리가 거기까지 닿는 건 싫으니까.” “...여기서도 충분히 들려.”유주의 대답에 이현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툭, 하고 종이가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정막한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는 우아한 몸짓으로 일어나 유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의자 등받이를 짚고 몸을 숙여 유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훅 끼쳐오는 서늘한 향수 냄새에 유주는 숨을 들이켰다. “유주야,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그게 서로에게 편해.”그의 손가락이 유주의 뺨을 타고 내려와 턱 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고개가 강제로 들어 올려지자, 이현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유주를 집어삼킬 듯 마주해왔다. 그 눈 속에는 20년 전 그날, 강가에서 보았던 소년의 눈빛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애틋함은 사라지고, 오직 소유욕으로 점철된 집착만이 번뜩였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네 인형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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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신이 응답한 단 하나의 기도

이현의 집착은 해가 저물수록 더욱 노골적이고 집요해졌다. 그에게 밤은 유주를 온전히 자신의 방안에 가두어 두는 시간이었다. 넓고 차가운 침실, 은은한 조명만이 감도는 그 공간에서 유주는 매일 밤 질식할 것 같은 공포를 견뎌야 했다. 이현은 항상 유주보다 늦게 잠들었다. 최근 들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유주가 방에서 몰래 나와 거실 창문을 열어보았다는 보고를 받은 날부터, 그는 집 안의 모든 보안 시스템을 직접 재점검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CCTV 영상을 밤새 돌려보느라 며칠째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한 상태였다. 유주를 완벽한 수족관 속에 가두어 두기 위해, 정작 자신의 신경은 날카롭게 타들어가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잠든 유주의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그녀의 숨소리를 하나하나 세어보는 기괴한 습관이 있었다. 유주는 그 시선이 느껴져 눈을 감고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가 잠드는 순간은 유주에게 유일한 안식이었으나, 대개 그가 잠들 때는 이미 새벽이 푸릿하게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무언가 달랐다. “유주야, 내가 오늘은 몸이 좀 무겁네.” 서이현이 이례적으로 낮은 신음과 함께 유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평소라면 강철처럼 단단하게 유주를 조여 오던 그의 팔에 힘이 평소보다 약했다. 며칠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던 육체가 유주의 살결이 닿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항복을 선언한 모양이었다. 그는 유주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침대에 눕더니,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규칙적이고 깊은 숨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오로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소진했던 에너지가 바닥나자, 역설적이게도 그를 잠재운 것은 그토록 감시하던 유주의 온기였다. 그렇게 결국, 서이현이 먼저 잠들었다. 유주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굳어버린 채 눈을 깜빡였다.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자신을 관찰하던 그 섬뜩한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이현의 얼굴을 살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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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엇갈린 계절의 온도

소년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원래의 기억대로라면, 유주는 지금쯤 주머니 속 사탕을 만지작거리며 저 소년에게 다가가 “왜 혼자 울고 있어?”라고 다정하게 물어야 했다. 그 친절이 씨앗이 되어 20년 뒤의 괴물을 키워낼 것이었다. 소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유주가 있는 방향을 두리번거렸다. 유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공포와 전율이 전신을 감쌌다. '만나면 안 돼. 말을 걸어서도, 눈을 마주쳐서도 안 돼!’ 유주는 주머니 속에 든 알사탕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엄마가 왜 그러냐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소년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가는, 그 깊고 외로운 눈동자에 다시 발목이 잡힐 것만 같았다. ‘미안해, 이현아. 하지만 이번 생에서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말자.’ 햇살이 부서지는 강변을 가로질러 달리는 유주의 작은 그림자가 멀어져 갔다. 나무 아래 홀로 남겨진 소년, 이현은 아무도 오지 않는 빈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유주가 건네지 않은 사탕은 주머니 속에서 녹아내렸고, 비극으로 치닫던 두 사람의 운명은 그렇게 소리 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 “도련님, 일어나십시오. 회장님이 노하셨습니다.” 강가에서 끝내 유주에게 구원을 만나지 못한 이현의 세계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침잠했다. 그날, 아무리 기다려도 다가와 주는 이는 없었다. 소년은 해가 질 때까지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홀로 울음을 삼켰고, 결국 그를 찾아온 것은 다정한 손길이 아닌 무뚝뚝한 경호원들의 거친 손길이었다 저택으로 돌아온 이현을 기다리는 것은 비린내 나는 돈 냄새와 숨 막히는 권위뿐이었다. 어머니는 이현을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도구로 여겼고, 아버지는 오직 강한 후계자만을 원했다. 이현의 방에는 따뜻한 온기 대신 엄격한 가정교사와 차가운 서적들만이 가득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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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뒤틀린 재회

이현의 집무실은 한낮에도 그림자가 짙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채광조차 그의 서늘한 분위기에 눌려 맥을 못 추는 듯했다. 비서가 두고 간 ‘서가 문화재단 장학생 선발 명단’을 넘기던 이현의 손길이 일순간 멎었다.정작 그 '조각'이 된 하유주는, 대학교 도서관 한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전공 서적에 파묻혀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현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주는 그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유주는 가방을 챙겨 재빨리 건물 뒷문으로 향했다. 인파가 몰리는 정문 대신, 후진 지하 통로를 통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유주는 건물 뒤편의 좁은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의 얼굴이 파리하게 물들어 있었다.운명의 갈림길에서 등을 돌린 대가는 선명했다. 그날, 강가에서 소년에게 사탕을 건네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온 이후, 유주의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해하고 평온한 색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한 번 성인의 삶을 살았던 유주에게 주어진 두 번째 어린 시절은 축복과도 같았다. 유주는 더 이상 서이현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저녁마다 식탁 가득 피어오르는 된장찌개 냄새는 이현의 저택에서 느꼈던 차가운 대리석의 냉기를 씻어내 주었다. "우리 유주는 어쩜 이렇게 기특할까? 가르쳐주지도 않은 걸 혼자 다 알고." 어머니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의 생을 경험한 유주는 또래 아이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유주는 알고 있었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단단함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를. 하지만 그 모든 노력도 소용없었던 것일까. 15년 동안 정성껏 쌓아 올린 평화의 성벽이, 단 한 번의 '내방 공고'와 '검은 세단'의 등장으로 모래성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그녀는 본능적으로 서가 그룹과 관련된 모든 것을 피해 왔다. 하지만 오늘, 교내 게시판에 붙은 ‘서가 그룹 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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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거미줄의 입구

서가 그룹 본사 로비는 인간의 오만을 형상화한 것 같은 공간이었다. 초고층 빌딩의 무게를 지탱하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은 마치 신전의 그것처럼 위압적이었고, 발소리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매끄러운 바닥은 침입자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반사해냈다. 하유주는 로비 한복판에 서서 가쁘게 몰아치는 숨을 억눌렀다. 손바닥에 쥔 메모지는 이미 땀으로 눅눅해져 글씨가 번져 있었다. 15년 전, 그 강가에서 등을 돌려 달아났을 때 유주는 믿었다. 사탕을 건네지 않았으니, 그 소년의 고독에 참견하지 않았으니, 이번 생의 궤적은 서이현이라는 거대한 중력권 밖으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착각이었다. 서이현은 존재 자체로 재앙이었고, 그가 뻗친 손길은 유주가 쌓아 올린 15년의 평화를 단숨에 허물어뜨렸다. "하유주 학생 되십니까? 집무실에 바로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쪽 전용 엘리베이터로 오시죠." 안내데스크 직원의 목소리는 기계적인 친절함을 담고 있었지만, 유주에게는 사형 집행관의 선고처럼 들렸다. 직원이 가리킨 곳은 일반 사원들은 이용할 수 없는 VIP전용 라인이었다. 유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리는 진동이 온몸으로 퍼졌다. '괜찮아, 유주야. 이번 생의 너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학생일 뿐이야. 당당하게 굴어야 해.' 같은 시각, 본사 집무실. 한낮의 태양광이 통유리를 통해 쏟아져 들어왔지만, 서이현이 서있는 창가는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그는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며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는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가녀린 인영이 포착 되었다. 로비 입구에 멈춘 택시에서 내려 한참을 망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하유주. 사진만으로만 보았던 그 이름의 실체가 드디어 자신의 영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현은 와인 잔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며칠 전 대학교에서 그녀를 놓쳤을 때 느꼈던 그 기묘한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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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뒤틀린 궤도

"어디 가려고, 하유주 학생? 정답지는 이쪽인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던 유주의 손목이 허공에서 붙잡혔다. 서이진의 손은 서이현처럼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쁠 정도로 따뜻한 온기가 유주의 피부를 타고 스며들었다. 유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떨며 팔을 빼내려 했지만, 이진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그녀를 자신의 품 쪽으로 가볍게 끌어당겼다. "저, 저는 위층으로 가야 해요. 약속이 있어서...." 피식,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가 가볍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알아. 내 동생 만나러 온 거잖아. 근데 그놈은 좀 기다리게 둬도 돼. 원래 성미가 급해서 먼저 기다리는 법을 좀 배워야 하거든." 이진은 유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를 로비 안쪽의 프라이빗 라운지로 이끌었다. 세련된 통유리 벽으로 분리된 그곳은 외부의 시선은 차단하면서도, 로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묘한 공간이었다. 이진은 유주를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히고는, 자신은 그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보,보통은 앞에 앉지 않나.....?' 유주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회귀 전, 서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1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다시금 '서가(徐家)’라는 거대한 짐승의 입 속에 던져져 있었다. 서이진의 눈빛은 서이현의 서늘한 집착과는 결이 달랐다. 그것은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잔혹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서이현 그놈이 여자 때문에 장학금 재단까지 주물럭거릴 줄은 몰랐네. 하유주, 너 대체 정체가 뭐야? 그 결벽증 환자 같은 놈을 어떻게 홀린거지?" 이진은 유주의 머리카락 한 줌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지만, 이진은 즐겁다는 듯 낄낄거리며 더욱 몸을 밀착해왔다. 같은 시각, 이현의 집무실의 공기는 진공 상태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집무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로비의 구석구석을 비추는 CCTV 화면 속에서, 그는 보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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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뒤틀린 구원

서이진의 목소리는 유주의 귓가를 간지러비듯 낮고 흔밀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다정한 위로라기보다는,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건네는 위험한 유혹에 가까웠다. "겁먹지 말라니까?" 그가 피식. 자조적으로 웃으며 유연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유주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이현의 압도적은 위압감에서 벗어나자마자 마주한 이진의 품은 또 다른 형태의 족쇄처럼 느껴졌다. 이진은 유주의 어깨를 감싸 쥔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천장 구석에 박힌 CCTV 렌즈를 정확히 응시했다. 그는 이 화면 너머에서 이현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진의 입매가 짖궃게 휘었다. 이어 단단한 눈동자가 천천히 유주에게로 미끄러졌다. '봤어? 네가 그렇게 애중지하는 하유주. 내가 먼저 가져간다.' 무언의 선전포고를 던진 이진은 망설임 없이 유주를 이끌고 로비를 가로질렀다. 수행비서들이 당황해하며 뒤를 따르려 했지만, 이진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따라오지 마. 이건 내 개인적인 드라이브니까." 이진은 로비 앞에 대기 중이던 자신의 파란색 스포츠카 조수석에 유주를 거의 밀어 넣듯 태웠다. "앗, 잠깐만요!" 당황한 유주가 강하게 반항해 보지만 차문은 굳게 잠긴 채 스포츠카의 엔진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힘차게 내달렸다. 그렇게 이진의 차는 미끄러지듯 서가 본사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행선지도, 목적도 알 수 없는 무단이탈이었다. 이진은 핸들을 꺾으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바다, 좋아해? 난 답답할 때마다 거길 가거든. 서이현 그놈 냄새 안 나는 곳으로." ".........." 유주는 이진의 질문을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순간 벌어진 현실에 무기력함을 느낀 채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회귀 후 15년 동안 쌓아온 평온한 삶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옆좌석의 이진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같은 시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이현이 로비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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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숨 막히는 간극

이진의 시선이 유주의 얼굴 구석구석을 훑었다. 끈적하고도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그는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매단 채,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포식자처럼 그녀와의 간극을 좁혀왔다. 유주가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이미 등 뒤에는 차가운 벽이 닿아 있었다. 이진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즐겁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게 읉조렸다. "도망갈 곳도 없는데, 그렇게 겁먹은 표정 하면 더 괴롭히고 싶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유주의 입술 위로 겹쳐졌다. 갑작스러운 침범이었다. 바다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들어온 그의 온기 속에는 방금 전까지 피웠던 짙은 담배 향이 배어 있었다. 알싸하고도 쌈싸름한 연기의 잔향이 유주의 콧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며 몸 안쪽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감각에 유주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정신을 차린 유주가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내 보았다. 하지만 이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입매에 비틀어 흘리더니, 더욱 집요하게 거리를 좁혔다. 유주가 저항하느라 살짝 벌어진 잇새를 놓치지 않고 그의 혀가 속절없이 안을 파고 들었다.독한 담배 향과 역설적으로 달콤한 그의 움직임이 뒤섞여 유주의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서이현.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이현의 얼굴이었다. 그 서늘한 눈빛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자, 유주는 소름이 돋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유주가 다시 거칠게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이진의 팔은 이미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결박한 상태였다. 가녀린 유주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유주는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힘으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유주는 온 신경을 집중해 자신의 오른 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이진의 정강이를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악!...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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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비뚤어진 주마등

마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유주의 몸이 뒤쪽으로 거칠게 끌려갔다. 갑작스러운 견인력에 유주가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듯한 살기를 띤 서이현이 서 있었다. 서이현의 시선은 이진의 손이 닿았던 유주의 뺨, 그리고 붉게 짓물린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다 못해 서릿발이 돋아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진은 이현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비아냥거렸다. "어라, 우리 동생 왔어?""생각보다, 빨리 왔네." 이현은 이진의 도발을 무시한 채, 유주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며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서이진." 세 사람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며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유주는 타오르는 이현의 손 온도와 차가운 그의 눈빛 사이에서 숨을 죽인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현, 그의 말에 이진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그의 눈동자 속에서는 정체 모를 갈증과 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유욕일까, 아니면 평생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동생, 서이현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싶다는 파괴욕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깊고 질척한,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한 어떠한 마음일까. 이진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복잡한 상념을 단칼에 끊어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현의 살기 어린 눈빛을 정면으로 받이치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왜 네 거야? 하유주는 물건이 아닌데." 이진의 시선이 이현의 어깨 너머, 잔뜩 굳어 있는 유주에게 향했다. 그는 마치 연인을 보듯 다정한 척, 그러나 잔인함이 섞인 조소를 띠며 속삭였다. "그치, 유주야? 넌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잖아." 찰나의 순간, 유주와 이진의 시선이 공중에서 묘하게 얽혔다. 이진의 입가에 걸린 매끄러운 미소는 유주의 가슴 한구석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그 미소를 마주할 때마다 속이 시커멓게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유주는 본능적으로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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