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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뒤틀린 재회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30.04.2026 22:29:07

이현의 집무실은 한낮에도 그림자가 짙었다.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채광조차 그의 서늘한 분위기에 눌려 맥을 못 추는 듯했다. 비서가 두고 간 ‘서가 문화재단 장학생 선발 명단’을 넘기던 이현의 손길이 일순간 멎었다.

정작 그 '조각'이 된 하유주는, 대학교 도서관 한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전공 서적에 파묻혀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현의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주는 그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유주는 가방을 챙겨 재빨리 건물 뒷문으로 향했다. 인파가 몰리는 정문 대신, 후진 지하 통로를 통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유주는 건물 뒤편의 좁은 골목길에 몸을 숨긴 채,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의 얼굴이 파리하게 물들어 있었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등을 돌린 대가는 선명했다. 그날, 강가에서 소년에게 사탕을 건네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온 이후, 유주의 세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해하고 평온한 색채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한 번 성인의 삶을 살았던 유주에게 주어진 두 번째 어린 시절은 축복과도 같았다. 유주는 더 이상 서이현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따뜻한 품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저녁마다 식탁 가득 피어오르는 된장찌개 냄새는 이현의 저택에서 느꼈던 차가운 대리석의 냉기를 씻어내 주었다.

"우리 유주는 어쩜 이렇게 기특할까? 가르쳐주지도 않은 걸 혼자 다 알고."

어머니의 칭찬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의 생을 경험한 유주는 또래 아이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유주는 알고 있었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단단함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를.

하지만 그 모든 노력도 소용없었던 것일까. 15년 동안 정성껏 쌓아 올린 평화의 성벽이, 단 한 번의 '내방 공고'와 '검은 세단'의 등장으로 모래성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그녀는 본능적으로 서가 그룹과 관련된 모든 것을 피해 왔다. 하지만 오늘, 교내 게시판에 붙은 ‘서가 그룹 후계자 내방’ 공고를 본 순간 심장이 발등에 내려앉는 줄 알았다.

‘설마, 아닐 거야. 이번 생에서 우린 접점이 전혀 없었어.’

그 시각, 이현의 검은색 세단이 대학 본관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이현이 내리자,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이현은 학교 관계자들의 환대를 건성으로 넘기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훑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 광장, 학교 주변 카페까지. 수행원들이 당황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학교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사진 속의 그 얼굴, 하유주만을 쫓고 있었다.

이현의 구둣발 소리가 복도를 울릴 때마다 유주는 벽 뒤로 숨겼고, 그가 광장을 가로지를 때 유주는 인파 틈으로 얼굴을 묻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의 냄새를 쫓듯 집요한 추적이었으나, 유주 역시 이번 생만큼은 결코 잡히지 않겠다는 듯 본능적으로 그 궤적을 비껴갔다. 손바닥에 밴 식은땀이 차갑게 식어갔다.

결국 이현은 유주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채 차에 올라타야 했다. 다음 스케줄인 정계 인사와의 오찬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닫히는 차 문 너머로 이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놓쳤어.”

곁에 선 비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누군가 찾으시는 분이라도...?”

“하유주.”

이현은 가죽 시트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지 못했기에 오히려 갈증은 더해졌다. 분명히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피해 숨었다는 것을. 그것이 우연이든, 본능이든 상관없었다. 쥐새끼처럼 숨어버린 그녀를 끌어낼 방법은 이 세상에 차고 넘쳤다.

“서가 재단 장학생 명단에서 하유주를 제외해. 오늘부로 모든 후원을 중단한다.”

“네? 하유주 학생은 성적도 우수하고 결격 사유가 전혀 없는데요?”

“내 말이 결격 사유야.”

이현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학교 풍경을 차갑게 응시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직접 전달해. 후원을 계속 받고 싶으면, 구차하게 서류 따위 보내지 말고 본인이 직접 서가 본사로 찾아오라고. 나를 설득할 기회는 직접 와서 잡으라고 말이야.”

며칠 뒤, 유주는 학과 사무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장학금 지급이 중단되었다는 통보였다. 부모님의 공장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는 있었지만, 고액의 등록금을 감당하기엔 여전히 무리였다.

“하유주 학생, 재단 쪽에서 직접 연락이 왔어. 꼭 본인이 직접 찾아와서 소명해야 한다고 하네.”

조교가 건넨 메모지에는 서가 그룹 전략기획실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유주는 그 종이를 받아든 손을 잘게 떨었다. 회귀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그 소년에게 사탕을 주지 않았으니, 그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았으니 자신은 평온한 햇살 아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현은 악마 같은 직관으로 다시금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있었다.

‘너였구나. 결국 네가 날 부르는구나.’

유주는 선택해야 했다. 등록금을 포기하고 다시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이현이 쳐놓은 거미줄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대학 교정을 비추자, 유주의 눈앞에 예전 생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다시금 돌기 시작했음을,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유주는 주먹을 꽉 쥐고 메모지를 구겨 넣었다. 이번에는 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그녀는 천천히 서가 그룹 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내려앉은 서가 그룹 본사 최고층, 이현은 홀로 와인 잔을 기울이며 입구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와, 유주야. 기다리고 있었어.”

그의 낮은 속삭임이 텅 빈 집무실을 서늘하게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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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13화. 덫에 걸린 숨소리

    유주와 이진의 귓가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목소리.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유주의 엄마, 박윤희 여사였다."엄, 엄마........?""그래, 유주야. 뭘 그렇게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유주의 시선이 이진과 엄마 사이를 좌우로 오가며 세차가 흔들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유주가 입술을 짓씹으며 변명거리를 찾던 바로 그 찰나.이진의 매끄러운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비틀려 올라갔다. 그는 언제 굳어 있었냐는 듯, 박윤희 여사를 향해 세상 무해하고 살갑게 웃어 보였다."안녕하세요, 어머님.""그래, 유주 친구니?""네, 유주 친구 서이진이라고 합니다."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능숙했다. 이진은 특유의 다정한 눈빛을 흘리며 능글맞은 멘트를 툭 던졌다. "유주가 누굴 닮아 이렇게 미인인가 했더니, 어머님을 쏙 빼닮아서였네요."그 말 한마디에 박윤희 여사의 눈빛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단 번에 흘러가는 공기의 흐름을 읽어낸 유주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 싶은 직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유주는 다급하게 엄마의 팔짱을 꽉 끼어안으며 강제로 몸을 돌려세웠다."엄마! 빨리 집에 가자, 응?""얘, 유주야! 뭐가 그렇게 급해?"박윤희 여사는 제 팔이 끌려가는 와중에도 슬쩍 고개를 돌려 이진을 힐끔거렸다. "잘생긴 친구가 싹싹하게 인사까지 하는데, 제대로 받아주지 않고 가는 게 어디 있어?"대놓고 날아오는 칭찬에 이진의 눈매가 유연하게 휘었다. 엄마에게 붙들려 안절부절못하는 유주의 모습이 제법 우스웠던, 이진은 피식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쐐기를 박듯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다정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어머님. 다음에 제대로 인사드리러 올게요. 그때 제게 맛있는 밥 한 끼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어머, 그래요. 이진 학생. 언제든지 놀러 와요.""네! 어머님, 조심히 들어가세요."이진이 싹싹하게 목소리를 높이자, 박윤희 여사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12화. 선명한 낙인

    이진은 자신과 키스하던 도중 유주가 이현의 이름을 부르며 잠꼬대 하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으음......." 유주가 몸을 뒤척이며 감겼던 눈을 뜨자, 눈앞의 인영이 이현이 아닌 이진이라는 사실이 선명히 들어왔다. 꿈속에서 이현과 나누었던 키스가 설마 서이진과 했던 것이었을까. 잠에서 막 깬 유주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이진은 유주가 앉아 있는 조수석 시트를 뒤로 젖히고는 그대로 그녀의 위를 덮쳐 눌렀다. "헉, 뭐 하시는 거예요?" 갑작스럽게 몰아붙이는 이진의 기세에 놀란 유주가 두 팔을 뻗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지만, 가녀린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아 돌려 제 시선에 억지로 맞추었다. "하유주, 똑바로 봐." "네 눈앞에 있는 건 나야. 나, 서이진이라고!" 그의 서늘한 음성이 좁은 차 안을 울렸다. 순간, 이대로 서이진에게 휘말려 페이스를 잃으면 안 된다는 직감이 유주의 온몸을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도리어 이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쏘아붙였다. "근데요? 제가 보기엔 서이현이나 서이진이나 다를 거 하나 없어요." 그녀의 서늘한 냉소가 입술 끝에 매달렸다. "이제 '서가' 사람이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고요!" 이어 유주는 제 몸을 짓누르는 이진의 어깨를 힘껏 밀쳐내며 외쳤다. "그러니까 당장 비켜요!" 매몰차게 대답하는 유주를 내려다보는 이진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도 입술 끝에는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툭 치면 부러질 듯 가녀린 여자가 내뱉는 독설이 이토록 자극적이었던가. 가벼웠던 마음의 무게추가 걷잡을 수 없이 무겁게 기울며, 그녀를 제 발아래 굴복시키고 싶다는 뒤틀린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하-!" "씨발, 하유주 존나 가지고 싶다. 진짜-" 그의 눈동자 속에서 번들거리는 욕망이 노골적으로 형태를 드러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치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11화. 탐나는 그녀

    "유주야, 명심해. 이현이는 널 부수어서라도 가지려 하겠지만, 난 아니야. 난 네가 스스로 나한테 오길 기다릴 거거든." 이진의 눈동자에 기이한 승부욕이 어렸다. 그것은 이현의 노골적은 폭력성보다 더 기괴한 집착이었다. "............." 유주는 대답 대신 차문에 몸을 기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밤거리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유주는 떨리는 손을 들어 목덜미에 얹었다. 이현이 입 맞추었던 목덜미가 마치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같은 시각, 이현은 자신의 차 안에서 운전대를 부술 듯 움켜쥐고 있었다. 차 앞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처참했다. 유주를 겁줬다는 자책감보다, 이진의 뒤에 숨어 자신을 보던 유주의 공포 어린 눈빛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유주...." 그녀의 이름을 뇌까리는 이현의 목소리에 처절한 갈증이 묻어났다. 그는 알고 있었다. 오늘 자신의 행동이 유주를 더 멀리 밀어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가 다른 누구의 손을 잡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제 손으로 무너뜨리는 게 나았다. 이현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채 두 번을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받았다. -네, 전무님. "하유주 동선 24시간 감시해. 서이진과 접촉하는 순간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이현이 시트를 깊에 파고들며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유주의 향기가 감도는 것만 같았다. "나한테서 못 벗어나. 죽어도 내 옆어서 죽어." 그것은 연정이자 저주였고, 동시에 하유주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서이현 자신의 비명이기도 했다. 한편, 이진의 차 안에는 유주는 차갑게 식은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이 싸움의 끝에 무엇이 남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길은 영영 끊어졌다는 사실뿐이었다. 서이현의 뜨거운 광기와 서이진의 차가운 계락 사이에서, 유주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끼며 눈을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10화. 형제의 집착

    질문이라기 보다 확인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그의 차가운 집착 뒤에 숨겨져 있던 본능적인 공포와 갈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유주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듯, 이현의 시선이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었다. 그의 음성에는 뒤틀린 소유욕이 짙게 배어 있었다. "............" 순간, 이현의 입술이 유주의 서늘해진 목덜미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내 어깨를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이 유주의 손목을 거머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이 실린 상태로 그녀를 몰아부치고 있었다. "흣..잠깐." 그녀의 신음 섞인 언어에도 이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유주의 목덜미 위로 자신의 입술을 지분거렸다. 서이진의 도발에 터져버릴 것 같던 이성이 간신히 발목을 잡았지만, 그 대가로 그의 눈동자는 더욱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든 이현의 시선이 유주의 눈동자를 옭아매듯 파고 있었다. "하유주, 똑똑히 들어." 무겁게 깔리는 목소리가 유주의 귓가를 서늘하게 긁었다. "도망쳐 봐. 네가 발버둥 칠수록 내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직접 확인시켜 줄 테니까." 이현은 붉게 달아오른 유주의 목덜미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옆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을 관조하는 이진을 쏘아보았다. 순간, 이현의 눈빛을 확인한 이진은 이현과 유주 사이를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유주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 쥐있던 이현의 손을 강제로 떼어내며 두 사람을 갈라세웠다. "워워, 서이현. 그만하지?" 능처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였지만, 이진의 눈빛만큼은 이현 못지않게 서늘한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현의 압박에서 벗어난 유주는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늠할 새도 없이, 덩치 큰 이진의 등 뒤로 몸을 숨긴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하아..." 이진은 제 뒤에서 떨리는 숨을 고르는 유주의 기척을 확인했다. 이내 그는 피식, 자조적인 실소를 흘리더니 이현에게 한 걸음 다가가 낮게 속삭였다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9화. 비뚤어진 주마등

    마치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유주의 몸이 뒤쪽으로 거칠게 끌려갔다. 갑작스러운 견인력에 유주가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일 듯한 살기를 띤 서이현이 서 있었다. 서이현의 시선은 이진의 손이 닿았던 유주의 뺨, 그리고 붉게 짓물린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 그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다 못해 서릿발이 돋아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진은 이현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비아냥거렸다. "어라, 우리 동생 왔어?"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이현은 이진의 도발을 무시한 채, 유주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며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서이진." 세 사람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며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유주는 타오르는 이현의 손 온도와 차가운 그의 눈빛 사이에서 숨을 죽인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현, 그의 말에 이진은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그의 눈동자 속에서는 정체 모를 갈증과 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소유욕일까, 아니면 평생을 눈엣가시처럼 여겨온 동생, 서이현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싶다는 파괴욕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깊고 질척한,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한 어떠한 마음일까. 이진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복잡한 상념을 단칼에 끊어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현의 살기 어린 눈빛을 정면으로 받이치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게 왜 네 거야? 하유주는 물건이 아닌데." 이진의 시선이 이현의 어깨 너머, 잔뜩 굳어 있는 유주에게 향했다. 그는 마치 연인을 보듯 다정한 척, 그러나 잔인함이 섞인 조소를 띠며 속삭였다. "그치, 유주야? 넌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잖아." 찰나의 순간, 유주와 이진의 시선이 공중에서 묘하게 얽혔다. 이진의 입가에 걸린 매끄러운 미소는 유주의 가슴 한구석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그 미소를 마주할 때마다 속이 시커멓게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유주는 본능적으로

  • 그 시절 나를 찾아 회귀하였습니다   제8화. 숨 막히는 간극

    이진의 시선이 유주의 얼굴 구석구석을 훑었다. 끈적하고도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그는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매단 채,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포식자처럼 그녀와의 간극을 좁혀왔다. 유주가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이미 등 뒤에는 차가운 벽이 닿아 있었다. 이진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즐겁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게 읉조렸다. "도망갈 곳도 없는데, 그렇게 겁먹은 표정 하면 더 괴롭히고 싶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유주의 입술 위로 겹쳐졌다. 갑작스러운 침범이었다. 바다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들어온 그의 온기 속에는 방금 전까지 피웠던 짙은 담배 향이 배어 있었다. 알싸하고도 쌈싸름한 연기의 잔향이 유주의 콧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며 몸 안쪽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감각에 유주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 정신을 차린 유주가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내 보았다. 하지만 이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입매에 비틀어 흘리더니, 더욱 집요하게 거리를 좁혔다. 유주가 저항하느라 살짝 벌어진 잇새를 놓치지 않고 그의 혀가 속절없이 안을 파고 들었다.독한 담배 향과 역설적으로 달콤한 그의 움직임이 뒤섞여 유주의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서이현. 얼음처럼 차갑고 서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이현의 얼굴이었다. 그 서늘한 눈빛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자, 유주는 소름이 돋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유주가 다시 거칠게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이진의 팔은 이미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결박한 상태였다. 가녀린 유주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의 완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유주는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힘으로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유주는 온 신경을 집중해 자신의 오른 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이진의 정강이를 향해 세차게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악!...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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