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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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온서준은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주건우를 한 번 흘끗 바라본 뒤 그대로 몸을 돌렸다.그런데 몇 걸음 옮기던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잠시 미묘하게 망설이던 그는 결국 다시 몸을 돌려 뒤를 돌아봤다.“아까 그 청소부, 이름이 뭐예요?”온서준이 주건우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먹물처럼 깊고 어두웠다.주건우의 가슴이 철렁했다.소하연이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었는데 온서준이 그래도 뭔가를 눈치챈 것이었다.‘뭐, 그럴 만도 하지. 온서준과 소하연은 3년을 함께 산 부부였으니까.’그 생각을 하자 주건우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웃음으로 덮었다.“온 대표님도 참, 그건 좀 어렵네요. 청소부가 한둘이 아닌데 제가 어떻게 이름을 다 외우겠어요. 이렇게 하죠, 알아본 다음에 연락드릴게요.”온서준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가 번쩍였다.만약 주건우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름을 말했다면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플로우 같은 곳의 대표가 밑바닥 직원 한 명의 이름까지 줄줄 외우고 있을 리 없었으니까.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녀는 정말 평범한 청소부인 것 같았다.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이 그의 마음을 스쳤다. 온서준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실망감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온서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흐려지는 순간 주건우는 가늘게 눈을 좁혔다. 눈빛에는 흥미로운 기색이 짙게 번져갔고 속으로는 은근한 기대감까지 차오르고 있었다.역시 자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주건우는 천천히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의미심장하게 눈을 깜빡였다.“왜요, 온 대표님이 아는 분이에요? 아니면 그쪽 스타일이세요? 원하시면 청소부들 다 불러드릴게요. 직접 고르시게. 아, 뭐 제 말뜻은... 저희 플로우 청소부도 예쁜 여자만 뽑거든요. 그분보다 예쁜 분들도 많으니까... 어, 온 대표님, 가시면 안 되는데! 온 대표님...”자신이 이렇게 말할수록 온서준이 더 빨리 나가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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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소하연은 그 순간 주건우의 속내도, 자신이 나간 뒤 주건우와 온서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도 전혀 몰랐다.그날 이후로 한동안 소하연은 온서준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온서준이 해성 신도시 문화관광 테마파크 프로젝트를 직접 총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유흥 클럽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테마파크는 놀이 시설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었지만 일부 부지에는 한옥 양식의 건축물과 전통 정원을 접목한 공간도 함께 들어설 예정이었다. 오늘 온서준의 일정은 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협력 업체의 설계 보고를 받는 것이었다.안전모를 쓰고 있었지만 온서준은 군중 속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다. 키가 크고 반듯한 몸에 그 기운 자체가 달랐다.“온 대표님, 이쪽 프로젝트 회의실로 이동해 주시겠습니까?”협력 업체 담당자가 굽실거리며 안내했다.온서준은 다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회의실은 공사 현장 한쪽에 임시로 세워둔 공간이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설계를 맡은 여성은 젊고 아름다웠다. 머리에는 흰 안전모를 쓰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피부가 더욱 희고 깨끗하게 돋보였다. 전문적이면서도 능숙한 분위기 속에 묘하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매력까지 있었다.왜 협력 업체에서 굳이 그녀를 이번 발표 담당으로 내세웠는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온서준은 그녀를 한번 무심하게 훑어본 뒤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그는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자료들을 집어 들었다.“시작하세요.”담담하게 한마디 뱉었다.설계사는 발표를 하는 내내 시선을 거의 온서준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단순히 협력 업체 측이 갑에게 보이는 형식적인 예의라고 보기에는 묘하게 다른 감정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자리에 있던 사람들 역시 그 분위기를 모두 눈치채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정작 온서준은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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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소하연이라니.’노영준의 말을 듣는 순간 온서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그러고 보니 소하연 역시 해성대학 학생이었다. 전공도 아마 조경 예술 디자인 계열이었던 것 같았다.하지만 그의 기억 속 소하연은 늘 자신만 따라다니는 여자였다. 하루 종일 연애 생각뿐인 사람처럼 졸졸 뒤를 쫓아다녔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적도 형편없어서 그저 집안의 힘으로 해성대학에 들어온 줄만 알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눈앞의 설계사는 그런 소하연의 진짜 신분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상류층 자녀들은 입학할 때 보안상의 이유로 신분을 숨기는 경우가 많지. 대학 4년 동안 동기들이 소하연의 정체를 몰랐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야.’그런데 지금 프로젝터 화면 속 설계 도면을 바라보는 순간, 온서준의 심장이 몇 초간 멎는 것 같았다.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온 대표님, 이 작품 좀 보세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건 아니지만 스타일이며 창의성이며 세부적인 처리 방식까지 너무 좋지 않습니까? 조금만 손을 보면 저희 프로젝트에 완벽하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노영준이 흥분해서 말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온서준이 여전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으면서도 1초도 눈을 안 떼시고 마음에 드시는 것 같으면서도 얼굴은 천둥 구름처럼 잔뜩 어두워지고... 마음에 드시는 건지 아닌 건지.’온서준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쑥 몸을 돌리며 차갑게 내뱉었다.“가죠.”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사람들을 이끌고 성큼성큼 회의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런 설계가 소하연의 작품일 리 없었다.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온서준의 손끝이 천천히 주먹 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원래도 차갑던 얼굴은 한층 더 굳어졌고 분위기마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소하연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온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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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진재현이 나간 뒤에도 온서준은 고개를 숙인 채 일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의 글자들은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은 자꾸만 어수선하게 흔들렸다.결국 그는 손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굳어 있는 얼굴에는 차가운 기색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온서준은 이내 진재현이 두고 간 도면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도면을 들여다볼수록 그의 미간은 점점 더 깊게 파였고 눈빛 역시 서서히 어두워졌다.‘3년을 함께 살았는데 이런 디자인 재능이 있다는 걸 몰랐군.’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몇 번인가 그녀가 책상 앞에 엎드려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걸 봤었다. 언제나 그녀에게 냉담했던 터라 시간이나 때우려고 낙서를 하는 줄 알았다. 그냥 그림 그리며 노는 줄로만 알았지 이런 줄은 몰랐다.‘소하연은 꼴찌, 고민서는 수재...’수년 동안 온서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소하연은 연애밖에 모르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확신이 처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충격과 혼란이 동시에 일어났고 그는 스스로도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최경화였다.내일 본가에 한번 들르라는 짧은 말에 온서준의 미간이 더욱 깊게 좁혀졌다.그리고 다음 날 오후.온서준은 본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얼굴이 굳어 있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그 모습을 본 노성철이 의아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어르신이랑 저녁 안 드세요? 아직 세 시밖에 안 됐는데요.”뒤에서 백미러로 차가운 눈길이 날아왔다.노성철은 흠칫 놀라 입을 다물고 얼른 차를 몰았다.온서준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저녁은커녕 온서준은 본가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최경화에게 붙잡혀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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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온서준은 멍하니 핸드폰을 쥔 채 서 있었다. 마음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묘하게 공허하고 무거웠다.‘혼자 밖에서 먹자.’온서준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마음을 바꿔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으려던 순간 그의 시선이 구석 자리 쪽에서 멈춰 섰다.한 여자가 혼자 앉아 등을 보인 채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흰옷 위로 길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온서준의 심장이 세게 흔들렸다.술기운에 흐릿하게 어른거리던 시야 속에서 그는 순간 그녀를 봤다.고민서였다.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면 늘 먼저 와 있던 고민서는 저런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곤 했다. 조용히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다가 그가 가까이 다가가면 천천히 돌아보며 웃어주던 그 뒷모습이 지금 눈앞의 여자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바로 그때 식당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조용하고 차분하던 여자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남자친구 품으로 파고들었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온서준의 심장도 또 한 번 세게 흔들렸다.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여자의 모습이 고민서와 소하연 사이에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예전의 소하연도 늘 저랬다. 하루 종일 할 말이 끝도 없는 사람처럼 그의 곁을 따라다니며 재잘거렸고 언제나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다.그 시절의 온서준에게 그런 모습은 그저 시끄럽고 피곤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전혀 짜증스럽지 않았다.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마음속 어디선가 봄바람이 얼어붙은 수면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하게 얼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며 그 자리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그제야 온서준은 깨달았다. 소하연은 시끄러운 사람이었던 게 아니었다.그녀는 그저 귀여웠다.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모습도 사소한 일에 금세 토라지던 표정도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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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플로우 클럽.오후,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몸을 하늘하늘 흔들며 클럽 로비에 들어선 서민정은 소하연이 대문으로 급히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이어 또 한 사람이 바 뒤에 숨어 소하연의 뒷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서민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다가가 그 사람을 끌어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그 사람은 깜짝 놀라 말을 더듬거렸다.“저... 저...”서민정은 그녀가 바로 플로우 청소부 직원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곳은 최고급 럭셔리 클럽이라 채용된 청소직원들 또한 모두 젊고 예뻤다.눈앞의 이 젊은 여자는 바로 김미진, 소하연보다 훨씬 예뻤다. 꿍꿍이 속셈이 아주 많았으며 늘 주건우의 시선을 사로잡으려 했지만 주건우는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다.그런데 소하연이 온 이후로 주건우가 소하연을 유난히 챙겨주자 김미진을 비롯한 다른 여자 청소직원들이 모두 질투심을 느꼈다.나이가 많은 나숙희만 제외하고...김미진을 깊이 응시하던 서민정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그 사람 어디 갔어?”“그... 그...”죄책감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김미진은 당황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빨리 말해!”서민정의 말투가 갑자기 날카로워지자 김미진은 몸을 떨며 얼떨결에 내뱉었다.“그분... 윌스턴 호텔로 가셨어요...”서민정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했다. 어젯밤 소하연은 룸에서 시계 한 개를 주웠다. 오늘 시계 주인이 전화해 소하연더러 옆에 있는 윌스턴 호텔 객실로 가져다 달라고 한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 사람이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였고 가까운 곳이라 소하연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가져다주기로 한 것이었다.서민정은 안색이 확 변했다. 왜냐면 소하연이 속은 걸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이건 클럽 안 여성들이 흔히 쓰는 수작이었다. 누군가 사이가 나빠 애정 다툼이 생기면 이렇게 함정을 파서 해치려 하는...문밖으로 사라지는 소하연의 뒷모습을 본 서민정은 눈을 가늘게 떴다.지금 당장 소리치면 소하연을 불러 모든 일을 되돌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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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소하연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하... 우습네.’“왜, 내가 시비 걸러 온 걸까 봐요? 내가 귀한 따님 생일 파티 망칠까 봐 걱정돼요?”연회장 안에는 소하연의 이복 여동생 송은주가 공주처럼 꾸민 채 모든 손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소하연은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칼에 베인 듯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표정이 굳어진 송영수는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하연아, 언제 나온 거야? 왜 집에는 한 번도 안 왔어?”송영수가 소하연에게 관심을 보이며 말을 돌렸다.하지만 송영수가 관심을 보일수록 소하연은 마음이 더 싸늘해졌다.‘흥! 진짜 나를 걱정한다면 친아버지로서 딸이 몇 년 형을 살았는지, 언제 출소하는지 모를 수 있을까?’송영수의 이런 ‘관심’에 소하연은 마음이 오히려 더 춥고 시릴 뿐이었다.“집이요?”마음이 극도로 비참해진 소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 이 모든 것에 완전히 무감각해졌다.“거기가 아직 내 집이긴 해요? 세 가족이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어요?”“하연아!”송영수는 급히 한 걸음 다가가 해명했다.“유경 아줌마도 은주도 너 많이 걱정하고 있어. 다 착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들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소하연은 한 걸음 물러나며 끝까지 송영수와 거리를 두었다.“그분들이 그렇게 좋으시면 실컷 누리며 사세요. 나랑 상관없으니까.”소하연은 비꼬듯 말했다.그제야 소하연이 청소 작업복을 입고 있는 데다 옷가지까지 흐트러진 걸 알아챈 송영수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하연아,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이상한 옷 입고 있어?”“아무 일 없어요. 친구 집 청소해 주다 넘어져 다쳤을 뿐이에요.”소하연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한 뒤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할 일 있으니 먼저 갈게요.”소하연이 돌아서서 그냥 가려 하자 송영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고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하연아,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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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소하연은 엄마 성을 따라 소씨를 쓰고 있었다. 소망 그룹은 원래 소하연의 외할아버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밑바닥부터 키운 기업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소하연 엄마 외에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데릴사위를 들였다. 그 사람이 바로 소하연의 아빠 송영수였다.이후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잇달아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소하연은 아버지와 둘만 남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모 이유경이 딸 송은주를 데리고 소씨 가문에 들어왔다.그제야 소하연은 이유경이 바로 송영수의 첫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송영수는 가족들의 강요로 소하연 엄마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유경과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하지만 송영수는 소하연 엄마와 결혼한 후 몇 년 뒤, 다시 이유경과 만남을 이어갔고 심지어 사생아 송은주까지 낳았다.불쌍한 소하연의 엄마는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송영수가 이유경과 송은주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소하연은 온서준과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온서준 생각만 가득했기에 이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출소한 뒤 시댁에도, 친정에도 돌아가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유경과 송은주가 소씨 가문 별장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예전에 소하연의 엄마와 외할아버지의 흔적뿐이었건만 지금은 이유경 모녀가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소하연은 그들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길가에 쪼그려 앉은 소하연은 한참을 울었다.출소한 뒤 어떤 곤경에 처하든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거리를 떠돌며 굶어 죽을 뻔했을 때조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이 소하연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동안 간신히 쌓아 올린 마음의 방패도, 미래를 꿈꾸며 품었던 믿음과 희망도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눈물에 흐릿해진 시선으로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게 정말 내 팔자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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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소하연이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든 척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절대 잠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침대에 누워서 몰래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특히 김미진은 소하연이 왠지 침대 곁에 서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몸이 오싹해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깊이 잠든 척했지만 온몸이 너무 긴장한 탓에 이불 속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만약 소하연이 자신마저 해치려 한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그러나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미진이 몸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해하고 있을 때 소하연이 몸을 돌려 자기 침대로 갔다.김미진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어둠 속, 소하연은 천천히 자기 침대에 앉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퉁퉁 부었으며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먼저 선수를 치지 않았다.나숙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김미진과 한패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숙사에서 싸움을 걸어봤자 득 될 게 하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에게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자신이 대체 어디서 그들에게 밉보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이 원한을 꼭 갚으리라 다짐했다.물론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소하연도 남을 먼저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그들이 자신에게 저지른 모든 것들을 반드시 하나도 빠짐없이 되갚아 줄 것이다. 두 배, 아니 세 배로!이렇게 두 주먹을 꽉 쥐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늦은 밤, 소하연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이 순간 소하연 자신도 이 변화를 깨닫지 못했지만 지난 세월, 온갖 일을 겪으며 그녀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예전의 철없고 천진난만했던 소하연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다음 날 아침, 휴대폰 벨소리에 잠이 깬 소하연은 흐릿한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상대방의 말을 듣는 순간 잠이 확 깨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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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느낀 점은 바로 도현우가 묻는 말투였다. 도현우는 ‘피해자랑 친한가요’를 묻는 게 아니라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인지’를 물었다.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은 도현우는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그냥요. 심심해서 물어본 거예요. 도착했으니 내려요!”이상한 대화가 이렇게 갑자기 끊어졌다. 도현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차에서 내렸지만 소하연은 여전히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도착한 사건 현장은 사람과 차량 통행이 많은 사거리였다.사거리 한쪽에 정말 과일 가게가 있었지만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다.도현우는 옆에 있는 밀크티 가게로 가서 물어보았다.밀크티 가게 청년은 능숙하게 밀크티를 포장하며 대답했다.“네, 저 가게, 과일 가게 맞아요! 그런데 오늘 문 안 열었어요. 저희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 과일 가게 사장님이 워낙 부지런하셔서 1년 365일 내내 문을 여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안 나오셨네요.”의심이 생긴 도현우와 소하연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을까?’가게 사장이 경찰서에 전화한 지 하루 만에 가게 문을 닫다니!도현우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과일 가게 사장의 휴대폰 번호와 주소를 알아냈다.하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서둘러 알아낸 집 주소로 달려가 봤지만 현관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이웃의 말로는 아침에 가게 사장이 짐을 한가득 싸 들고 나갔다고 했다.도현우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이제야 사건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즉시 부하 직원들에게 과일 가게 사장의 행방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CCTV 조사 결과, 사장이 짐을 들고 고속철도 역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는 보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아주 기이하게 행방불명된 것이다.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차에 앉은 도현우는 어두운 표정으로 담배를 연이어 피웠다.“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했다면 그 사람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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