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 후, 날 감옥에 보낸 남편을 차버렸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 - チャプター 10

30 チャプター

제1화

소하연이 교도소 문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누렇게 바랜 낙엽들이 우수수 발 아래로 흩날렸다.한겨울이었지만 그녀는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3년 전 판사의 법봉이 무겁게 내리꽂히던 순간부터 그녀는 ‘살인 혐의’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제 마침내 만기 출소했다.멀리서 소하연의 눈에 익숙한 검은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그 차를 알아본 소하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온서준이었다.동시에 눈앞으로 3년 전 법정의 풍경이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법정에서 온서준은 소하연이 자신의 첫사랑 고민서를 살해했다는 증거를 직접 제출했고 이미 3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였음에도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단 한 점의 망설임도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살인을 했으면 목숨으로 갚아야지.”결국 법원은 증거만으로 그녀를 주범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단해 3년 형을 선고했다.소하연은 원고석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서준 오빠. 나 사람 안 죽였어. 민서 죽은 거랑 나 아무 상관 없어.”“오빠 제발 나 좀 살려줘. 나 감옥 가기 싫어.”그러나 소하연이 아무리 애원해도 온서준의 표정은 끝내 싸늘하기만 했다.여형사가 그녀를 억지로 떼어낼 때까지 그는 손수건을 꺼내 소하연이 붙잡았던 손을 천천히 닦아냈다.명품 수트를 입은 채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금테 안경을 지그시 고쳐 쓰며 깊고 그윽한 눈빛 속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청석 위에 빗방울이 튀듯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고 온기가 없었다.“소하연. 네가 죽인 게 아니라면 왜 민서가 죽었겠어. 차라리 네가 죽었어야 했어.”이 몰인정한 말을 들은 소하연은 울음이 뚝 끊겼다. 그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낙엽 한 장이 바람에 실려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아 기억 속에 잠겨 있던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매서운 바람이 몰아치자 소하연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며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3년 동안 빛 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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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출소 후 소하연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오래된 대중목욕탕이었다.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지난 3년 동안 몸과 마음에 켜켜이 들러붙은 묵은 때와 불운까지 모두 씻겨 내려가기를 바랐다.욕조 안에 천천히 몸을 담그자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에 굳어 있던 근육이 서서히 풀어졌다.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이었다.소하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젖은 머리를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는 순간 팽팽하게 조여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편안하고 나른한 감각이 온몸을 잠식해오자 흐릿해진 의식은 어느새 깊숙한 기억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6년 전 온빛 그룹은 예상치 못한 위기에 휘말리며 한순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온서준은 직접 소하연을 찾아왔고 소망 그룹이 온빛 그룹을 돕는 조건으로 그녀에게 청혼했다.소하연의 아버지는 끝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온서준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뜻을 묻자 소하연은 망설임 없이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나중에서야 소하연은 깨달았다. 세계 최고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손수 만든 드레스를 입고 온서준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던 그 순간 자신은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그녀가 걸어 들어간 곳은 끝없는 고난의 지옥이었다.교도소 문을 나설 때만 해도 마음 한켠이 아직 아련했다. 하지만 따뜻한 물속에서 몸이 풀려가자 머릿속도 점차 맑아졌고 마음속에는 단단한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온서준이 데리러 나온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이 좋은 뜻일 리 없었다.그러니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를 멀리하고 다시는 그에게 상처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지금 소하연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온서준과 이혼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를 피해 다니면서 동시에 이혼까지 해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막막하기만 했다.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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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20분 후, 노성철이 액셀을 세차게 밟아 온서준을 온씨 본가로 데려다주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온빛 그룹 후계자라는 사람이 최경화한테 또 한바탕 혼이 났다.온서준은 반박도 못 한 채 서 있었지만 머릿속은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온씨 가문 어르신과 소하연의 외할아버지, 즉 소망 그룹 창업주는 성은 다르지만 의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소하연은 어릴 때부터 온씨 본가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최경화에게는 아들 셋에 딸 하나, 손자 손녀만 해도 대여섯 명이 넘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최경화가 가장 아끼는 건 언제나 소하연이었다.온씨 가문 손자 손녀들은 모두 그게 부러우면서도 이해가 안 됐고 온서준도 마찬가지였다.출소 후 소하연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별장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본가에 와서 최경화를 찾아간 것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최경화는 한바탕 쏘아붙이더니 이번엔 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온서준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아까 회의에서 논의하던 안건만 맴돌고 있었다.“지금 당장 별장으로 가서 내 손자며느리한테 제대로 사과해. 오늘 저녁은 아줌마한테 하연이가 좋아하는 것들로 차리라고 하고... 아니다, 그냥 밖에서 먹어. 레스토랑 예약해서 분위기 있는 데로...”최경화의 잔소리는 끝날 줄 몰랐고 온서준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결국 내키지 않는 ‘네’를 겨우 한 마디 뱉는 것으로 자리를 빠져나왔다.해연정으로 돌아오자 가정부가 달려 나왔다.“대표님, 사모님이 돌아오셨다가...”“그래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서준이 싸늘하게 응했다. 소하연이 또 질척거리며 달라붙을 생각을 하니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그런데 가정부가 뒤를 이었다.“그런데... 또 나가셨어요!”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던 온서준의 손이 멈췄다.‘나갔다고?’“그게...”가정부는 고개도 못 들고 잔뜩 움츠러들었다.“한 시간 전에 사모님이 오셔서 짐을 챙기시고는... 그냥 가셨어요.”온서준이 굳어버렸다. 그는 곧장 계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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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시댁에 갈 수도 없고 친정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정말로 갈 곳이 없었다.소하연은 목적지도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걸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코끝은 새빨갛게 얼어붙었다.문득 소하연의 머릿속으로 어린 시절 읽었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춥고 배고픈 채 거리를 떠돌던 그 소녀의 모습이 지금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멍하니 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춘 순간 24시간 영업 중인 패스트푸드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안에서는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자리를 차지한 채 몸을 녹이며 밤을 버티고 있었다.소하연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결국 이를 악문 채 문을 밀고 들어간 그녀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몸을 앉혔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얼어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그러나 소하연은 끝내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의자는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온몸을 욱신거리게 만들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는 끊임없이 귓가를 울렸다.문이 열릴 때마다 밀려드는 겨울바람까지 더해지자 그녀는 마치 바늘방석 위에 앉은 사람처럼 긴 밤 내내 뒤척이며 버텨야 했다.그래도 감옥 안에서 보내던 시간보다는 훨씬 나았다.소하연은 테이블 위에 팔을 괸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네. 어쨌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으니까.’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유가 있어야 미래도 있는 것이었다.그때 발에 뭔가가 툭 닿았다. 소하연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우렁차게 외쳤다.“628번 보고합니다!”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소하연은 몇 초가 지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고 당장이라도 바닥이 꺼진다면 그대로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수치심이 밀려왔다.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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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소하연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그런데...”말을 꺼내다 멈췄다. 아무래도 주건우와 온서준은 상계에서 적대 관계였으니까.주건우는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딴 뜻 없어요. 짐을 들고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갈 곳이 없는 사람뿐이잖아요. 그냥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래도 소하연은 쉽게 믿기 어려웠다.‘이 사람이 정말 그렇게 순수한 마음일까.’주건우는 그녀의 망설임을 눈치챈 듯 하하 웃었다.“제가 이용할 생각이었으면 지금 바로 전화하면 되죠. 굳이 여기 붙잡아둘 이유가 있겠어요?”“뭐, 드릴 말씀은 다 했으니까 있을지 말지는 본인이 결정하세요.”그 말을 끝으로 주건우는 돌아가 버렸다. 소하연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그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마음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한 시간 뒤 주건우는 클럽 사무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서민정에게 문자를 보냈다.[어떻게 됐어?][대표님, 남으셨어요.]서민정의 답장이 곧바로 돌아왔다.주건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눈빛 속 웃음도 한층 짙어졌다.‘소하연. 소망 그룹의 귀한 딸이자 온빛 그룹 대표의 아내. 그런데 그 모든 걸 뒤로하고 이곳에 청소 직원으로 들어오다니. 재미있다. 정말 너무 재미있어.’소하연을 붙잡아뒀을 때 앞으로 어떤 구경거리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됐다.소하연은 그렇게 정식으로 플로우의 청소 직원이 됐다.주건우와 온서준이 앙숙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든 살아남는 일이었다. 거리에서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는 없었다.소하연은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앞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늘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다가 온서준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그림자라도 보이는 순간 바로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온서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하연은 조금씩 안도하기 시작했다.‘주건우는 정말 나를 팔아넘길 생각이 없는 것 같아.’청소 직원들 가운데 가장 어린 사람은 소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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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런데 아까 왜 그는 정식으로 맞아들인 아내라고 말한 걸까.’소하연은 이혼 협의서를 남겨두고 나왔다.이제 그가 서명만 하면 숙려 기간이 지난 뒤 자유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게 온서준이 그토록 바라던 일 아니었나.’그때 VIP룸 문이 안에서 벌컥 열렸다. 소하연은 흠칫 놀라 정신을 차린 채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 했다.“거기, 서.”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하필이면 온서준이었다.순간 소하연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등줄기는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고 온몸은 얼음물에라도 빠진 사람처럼 차갑게 식어갔다.‘설마 나를 알아본 건가.’‘이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이지? 고민서의 원수를 갚으려는 건가.’“이름이 뭐야?”등 뒤에서 들려온 온서준의 목소리에는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소하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꽝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돌아봐. 이름 말해.”온서준이 다시 낮게 말했다.소하연은 눈을 꼭 감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이제는 피할 수 없구나.’그녀는 뻣뻣하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대답 대신 두 손으로 수화를 했다.다행이었다. 감옥에서 청각 장애가 있는 수감자 동료와 지내며 평소 수화를 조금 배워둔 덕분이었다. 제법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자 온서준도 아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온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진짜 벙어리였네.”아까 순간적으로 그는 이 청소부 여자가 소하연인가 싶었다. 자리를 뜨는 뒷모습이 찰나 그녀와 너무 닮아 보여 충동적으로 따라 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마스크를 쓰긴 했어도 투박한 체형에 수화까지 자연스럽게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청소부였다. 일부러 꾸민 것 같지도 않았다.온서준은 피식 웃었다.소하연이 아무리 그래도 소씨 집안의 귀한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여자가 이런 곳에 청소부로 들어올 리 없었다.‘내가 잠시 미쳤었나 보군.’한 달 전 소하연은 출소하자마자 별장에 들렀다. 그리고 짐만 챙긴 채 이혼 협의서를 남겨두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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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네, 맞아요.”“그런데... 저희가 당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윤성은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사건 현장 근처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이었거든요...”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잠깐 생각하더니 도현우를 돌아봤다.“그럼 저희가 이제 김윤성을 다시 조사해야 하는 건가요?”도현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틀 안으로 해. 김윤성과 피해자의 관계를 확실히 파헤쳐봐.”“알겠습니다.”경찰서를 나서며 소하연은 숨을 크게 내뱉었다. 마음속을 짓누르던 먹구름이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도 팀장님이라면 반드시 시간과 공을 들여 사건을 다시 들여다볼 거야.’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희망이 생긴 셈이었다. 그 사실이 소하연에게는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느껴졌다.가슴속에서는 벅찬 기쁨이 끊임없이 차올랐고 그녀는 그 감정을 좀처럼 숨길 수가 없었다. 발걸음마저 한결 가벼워진 채 버스를 타고 클럽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해연정.밤이 깊어지자 온서준은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칠 전 플로우에서 소하연과 닮은 뒷모습을 본 이후로, 자꾸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맴돌았다.‘이 여자, 도대체 어디 간 걸까.’몸을 뒤척이던 순간 베개 밑에서 무언가가 툭 흘러내렸다.온서준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진 한 장이었다.사진 속 고민서는 흰 셔츠를 입은 채 새까맣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꾸밈없는 얼굴에는 조용하고 단정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한때 그녀는 해성대학에서 이름난 우등생이었다. 임업 분야를 연구하던 학생이었던 그녀는 지도 교수의 깊은 신임을 받았고 동기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보슬비 속에 흔들리는 하얀 배꽃처럼 맑고 깨끗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순수하고 착하고 다정했던 그녀의 젊은 삶이, 3년 전 그 오후에 완전히 멈춰버렸다.그런데 지금 이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속에 까닭 모를 짜증이 일었다.‘술이 마시고 싶네.’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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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하연이 고개를 저었다.나숙희가 안도한 듯 말했다.“그럼 그렇지. 나는 딱 보면 알아. 하연이는 공부한 사람이야. 여기서 청소하는 것도 잠깐일 뿐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떠날 사람이지...”소하연의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렸다. 맞았다. 사실 자신도 온서준도 고민서도 모두 해성대학 출신이었다.“뭔가 사정 있는 거 다 알아. 굳이 말 안 해도 되고 나도 더 안 물을게. 그냥 이것만 말해주고 싶었어. 하연이는 좋은 사람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잖아.”나숙희의 목소리는 단단하면서도 힘이 있었다.소하연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목 끝까지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며 말문이 막혔다.“고마워요, 이모...”소하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숙희에게서 엄마 같은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엄마가 홀로 남겨진 딸이 걱정돼 나숙희를 자신의 곁으로 보내준 건지도 몰랐다. 힘든 순간마다 곁에서 챙겨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라고.그래서 소하연은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온서준과의 이혼을 끝내고 자신의 누명까지 벗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는 그날이 오면 그때야말로 비로소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아름다운 미래였다.소하연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상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하연 씨! 빨리 좀 치워요!”소하연은 서둘러 청소 도구를 챙겨 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한 여자가 뺨을 감싸 쥔 채 울고 있었고 그 앞에는 잔뜩 취한 남자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분노에 차 서 있었다. 주변 남자들까지 옆에서 낄낄거리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었다.바닥에는 깨진 술병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유리 파편들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위험해 보였다.소하연은 그 여자를 처음 봤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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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젠장, 네까짓 청소부 주제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오늘 내가 확실히 손봐줄게...”배윤호가 팔을 크게 치켜들었다.소하연의 등 뒤에는 차가운 벽뿐이었다. 이미 뒤로 물러설 곳은 없었고 그녀는 자신을 향해 거칠게 내려오는 손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배 대표님, 그냥 청소부잖아요.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어요?”바로 그때 룸 문이 열리며 주건우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배윤호는 주건우를 보자 막 치켜들었던 팔을 멈칫하더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천천히 내렸다.주건우는 그런 상황을 훑어본 뒤 소하연 쪽을 향해 가볍게 눈짓을 보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하연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얼른 그 여자의 손을 붙잡아 끌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그 순간 뒤쪽에서 배윤호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돈 충분히 벌었나 보지? 이참에 영업 정지 한번 맛볼래? 좋아. 보름이면 충분하겠어?”주건우의 안색이 굳어지는 걸 보며 소하연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배윤호의 배경과 힘이 주건우보다 훨씬 위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대놓고 위협할 수 있는 것이었다.역시나 주건우는 얼굴이 굳은 채 억지웃음을 지으며 물었다.“배 대표님, 그럼 어떻게 하면 봐주시겠어요?”배윤호의 눈빛에 싸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웃듯 말했다.“저것들 다 마시면 봐주지.”소하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더 하얗게 질렸다. 다리까지 힘없이 풀려버렸다.저 많은 술은 전부 독한 술이었다. 평소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자신에게 저걸 다 마시라는 건 사실상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저... 저는 술을 못 마셔요...”배윤호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번에는 그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럼 쟤가 대신 마시면 되잖아.”여자는 손을 마구 저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저는 못 마셔요! 저랑 상관없잖아요! 당신한테 잘못한 건 저 여자예요! 저 여자한테 마시라고 해요! 저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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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온서준이 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건우의 얼굴빛도 미묘하게 변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소하연 쪽을 한 번 흘끗 바라봤다.지난번 온서준이 플로우에 왔을 때도 두 사람은 이미 한차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소하연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덕분에 온서준은 끝내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 일은 서민정을 통해 이미 전해 들은 상태였다.그때부터 주건우는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온서준과 소하연 사이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 사실도 눈치챘다.‘소하연은 지금 의도적으로 온서준을 피하고 있어.’온서준은 원래도 키가 큰 남자였다. 흰 셔츠에 깔끔한 바지 차림을 하고 있으니 길고 곧은 다리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정장 재킷은 한쪽 팔에 가볍게 걸쳐져 있었고 소매 끝의 다이아몬드 커프스 단추에서는 서늘한 빛이 희미하게 번뜩였다.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빙산처럼 그의 몸 전체에서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차가운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그가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올 때마다 소하연의 심장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쿵쿵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갔고 마치 온몸의 혈액이 멈춰버린 사람처럼 몸까지 차갑게 굳어갔다.지금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온서준이었다.‘정말 아직도 나를 못 알아본 걸까.’소하연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때 온서준이 배윤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청소부잖아요. 게다가 벙어리고요. 약자를 괴롭히는 게 하경 그룹의 기업 문화입니까? 이번 하경 그룹과의 협력 건, 다시 한번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네요.”소하연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다. 아직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온서준이 벙어리라고 언급한 것에 배윤호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협력 건을 재검토하겠다는 말이 들어오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아, 아니에요! 온 대표님, 오해하신 거예요! 저는 그냥... 그냥 장난 좀 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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