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평원의 은비가 그친 자리에는 기이할 정도로 맑은 공기만이 감돌았다.전쟁 냄새는 사라지고, 흙냄새와 꽃향기가 뒤섞인 평화가 찾아왔다.백성들은 승천한 나를 기리기 위해 몰려들었다.거창한 신전도.황금으로 치장된 석상도 없었다.루미엘은 아무런 장식 없는 매끄럽게 다듬은 대리석 비석.하나만을 세웠다.비석에는 화려한 수식어도 적히지 않았다.‘나의 어머니, 당신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십니다.’단 한 줄의 문구.루미엘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고백이었다.카일은 매일 새벽.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에 비석 앞에 섰다.천사장 날개를 접고 제국 총사령관 제복을 입은 채….그는 오랫동안 비석을 어루만졌다.루마레스 숲에도 똑같은 비석을 세워 놓은 카일.날 기리며 숲에 머물 때가 많았다.“오늘도 제국은 평안합니다, 마리안.”그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절대악을 지옥 불못에 가두고 인간계를 구한 영웅이었지만.내면은 여전히 차원의 회랑이 붕괴하던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천계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이미 닫혔음을 알고 있었다.아니, 스스로 그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인간계에 남아 내가 사랑했던 루미엘을 지키는 것.그것이 그가 승천을 거부하고 선택한 또 다른 속죄이자 사랑이었다.황궁의 일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황제 루미엘은 더 이상 신의 힘을 빌려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밤을 새웠고 백성들 소소한 청원을 하나하나 직접 읽었다.“폐하, 북부 개간 사업에 관한 보고서입니다.”카일이 서류를 내밀자, 루미엘은 잠시 펜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어느새 아들 또한 어미를 닮아 깊고 차분한 눈매를 갖게 되었다.“사부님, 어머니껜 다녀오셨어요?”카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루미엘은 카일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한 명은 천계의 별이 되었고 한 명은 그 별을 지키기 위해 인간계에 남았다.“예,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하얀 백합이 유난히 많이 피었습니다.”“어머니는 꽃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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