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은빛 눈의 아이를 낳았다: Chapter 141 - Chapter 150

154 Chapters

141화. 진실을 마주한 두 남자

그들은 카일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눈치챈 듯.감추고 있던 사악한 기운을 드러냈다.그들 눈동자.성직자의 자비 대신.치부를 들킨 자의 비열한 살의가 번들거리고 있었다.“총사령관, 그 일지는 당신이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리안 사제의 신성을 모독하는 이단적인 기록일 뿐이니.”입에서 나온 사제와 신성이라는 단어가 조롱처럼 서고를 울렸다.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카일은 천천히 일지를 품에 넣고 검을 뽑았다.그의 검은 서늘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검신을 따라 흐르는 신성.거기에 천계의 아라가 그의 분노와 결코 멈출 수 없는 심판의 서슬을 담고 있었다.“이단? 아니, 이것은 너희들이 숨겨온 진실이다.”카일 목소리에 아라의 그것이 함께 담겼다.“당장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나, 아라 대천사가 신을 대신해 너희를 참수할 것이다.”아라...?왜 갑자기 형의 이름이 내 입술을 타고 흘렀을까…?“아라 대천사님, 이러시면 카일이 놀라잖습니까? 조용히 계세요.”“아…. 알았다. 하지만, 널 위해 그런 것 아니더냐.”“아무리 날 위해서라도 내가 사랑하는 분이 놀라는 건 원치 않습니다.”“허…. 참! 얼간이 녀석이 참으로 분명한 성격의 인간을 좋아하니 다행이긴 하구나.”“네…?”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이게 얼마만의 웃음인가?생각해 보니….루마레스를 떠난 후.난 웃은 적이 없었다.이제야 깨달은 한 가지.내게 가장 행복한 시절은 루마레스 숲에서였다.화려한 섭정 시절이 아닌….평범한 어미로.카일의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루마레스.난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카일의 눈빛은 인간계 신전의 높은 천장을 뚫고 나갈 만큼 단호하고 서늘했다.카일과 아라의 신성이 서린 성검 아라의 새벽 일격에 신전 바닥이 갈라졌다.나를 향한 그리움과 분노로 사제들을 압도하는 카일.그들을 쓰러뜨리는 내 남자의 모습은 과거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정의로웠다.10년 전, 그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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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신의 심판대

지하 서고에서 발견된 일지는 제국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수백 년간 이어져 온 신전의 신화적 권위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파괴적 진실이었다.내가 신전의 타락을 막기 위해 스스로 악녀의 가면을 썼다는 진실이 밝혀지자.신전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백성의 신전에 대한 믿음은 배신감으로 변했고.거룩하다 칭송받던 신전은 추악한 욕망덩어리로 전락했다.천계 관측 천사들은 분노했다.인간계는 자신들 기록대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었다.기록을 뒤엎으려는 움직임의 감지.정해진 각본에서 벗어나려는 인간계 의지를 반역이라 규정지었다.자신들 섭리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도전이자, 즉각적인 숙청의 사유였다.그들에게 신의 의지는 삭제된 고전에 불과했고.오직 자신들 계획과 기록만이 신앙이 된 지 오래였다.신의 대변자라는 이름으로.그들 스스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아라 대천사님, 왜 신께서 침묵하시는 걸까요? 이곳은 그분이 거하시는 천계인데요.”“...”대답 없는 아라.스치는 눈가에 떨림을 보았다.분명 그 속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아라 대천사 또한 카일과 동일한 인간 감정과 성정을 닮아 있었다.이들이 천사라는 증거는 날개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빛밖에 없었다.아니지….인간보다 큰 능력….이 또한 구별 점이긴 했다.콰아앙!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제국 전체를 흔들었고.소리 진원지로부터 시작된 시공간 균열이 끔찍한 파열음을 냈다.제국 수도 하늘을 향해 천계의 문이 열렸다.루미엘과 카일이 서 있는 황궁 정원.그 위로 천계 관측 천사들이 나타났다.욕망덩어리인 그들 등 뒤 날개는 푸른 빛이었다.금욕의 상징인 푸른 빛….이해할 수 없었다.인간의 눈으로는 똑바로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위압감마저 뿜어냈다.“신의 아들, 아니…. 인간계 황제 루미엘, 그리고 인간이 된 카일 천사장. 너희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신성한 기록을 훼손했다.”그들 목소리.언어가 아닌 심장을 쥐어짜는 천둥이 되어 제국 전체를 뒤흔들었다.공포에 질려 거리로 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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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신의 임재

더욱 또렷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벗어나려 한 순간.날 보호하고 있는 아라 대천사의 의지라는 걸 알 수 있었다.내 영혼을 감싸던 그림자 장막이 걷히며, 아라 대천사가 품고 있던 격정적인 신성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마리안, 루미엘님은 신의 아들이시다. 감히 저 따위들에게 능멸당할 위치가 아니시란 말이다.”“네…. 네…!”나의 대답은 떨렸지만.담긴 의지만큼은 아라의 푸른 불꽃을 닮아 있었다.아라 대천사 눈에 분노가 감돌았다.곧 누군가를 얼려 버릴듯한….쌍둥이 천사.아라와 카일의 다른 점을 발견했다.카일이 따스함이라면.아라는 차가움이란 걸….극과 극의 힘이 조화를 이루었을 태초의 모습을 상상했다.둘의 상반된 힘의 원천.하지만.끝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사랑하는 대상을 지키려는 숭고한 집착.근원적인 감정이 두 천사의 영혼을 하나로 엮어내고 있었다.갑자기 관측 천사 손이 루미엘 눈동자로 향했다.존재를 소멸시키기 위한 행위였다.천계의 그림자 영역에서 내 영혼과 아라 대천사가 격렬하게 분노했다.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시공간을 초월한 에너지가 루미엘 전신을 감쌌고, 어미의 마음이 방어막을 형성했다.“안 돼, 루미엘! 물러서!”하지만 루미엘은 물러서지 않았다.두 손을 모으고 타락 천사들의 교만을 꾸짖으며 오직 살아계신 신을 향해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천계의 언어였다.기도는 천계 보좌를 흔드는 거룩한 메아리가 되어….천계와 인간계를 울렸다.“만군의 신이시여, 당신의 공의로 이 교만한 자들의 권세를 꺾으소서!”“드디어 신께서 움직이시겠구나. 자기 아들의 깊은 기도를 들으셨을 테니….”아라의 혼잣말이었다.그때였다.차원을 가득 채운 신의 강림.오직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거룩한 임재 앞에 모든 차원이 숨죽이며 고요해졌다.피조물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거룩함 그 자체였다.아라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대천사님, 괜찮습니까?”“안 괜찮다. 저분의 외면으로 난 긴 시간을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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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천계의 균열

관측 천사들이 내밀었던 심판의 저울도 함께 불태워졌다.신성한 불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다.오만으로 뒤덮였던 심판 도구가 사라지며….악에 물든 천계의 문지기 시대가 막을 내렸다.“오만한 자들, 심판의 권한은 오직 아버지께만 있다.”황제의 서늘한 선언은 인간계를 뒤흔들었고.신으로부터 인정받은 절대적 권위가 루미엘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루미엘 목소리는 인간계 전체에 신의 섭리를 선포하는 법령처럼 울려 퍼졌다.루미엘 등 뒤로 영롱한 빛을 발하는 일곱 날개.은빛 신성이 날개깃마다 일렁였다.인간의 피와 신의 권능이 완벽하게 융합된 결과였으며, 어둠을 걷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불러오는 눈부신 현신이었다.깃털 하나하나 별빛을 머금은 듯 찬란하게 빛났고.광채는 그동안 제국을 억눌러왔던 관측 천사의 음습한 그늘을 순식간에 정화했다.루미엘이 손을 뻗자, 다시 진동하는 인간계 대지.예전부터 지금까지.천계 관측 천사들이 심어둔 감시의 눈들을 하나하나 거두어들였다.거미줄을 걷어내듯, 손길이 닿을 때마다 인간 자유의지를 억압하던 족쇄들이 힘없이 부서져 나갔다.겹겹이 쌓여 있던 감시의 기운들.루미엘 손안에서 빛의 가루로 분해되었고.인간계 역사를 돌려받는 의식이 치러졌다.수천 년 지속된 관측 천사의 간섭.질긴 악연을 단번에 절단하는 인간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립 선언이었다.운명의 굴레라 불리던 실들이 하나둘 끊어질 때마다.인간계는 스스로 숨 쉬는 생명체로 거듭나고 있었다.다시 평온한 푸른빛을 되찾은 제국의 하늘.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시….루미엘은 공중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환희는 무거운 대지의 중력과 함께 무자비하게 아들을 덮쳐왔다.추락하는 루미엘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신성을 한꺼번에 써버리며 힘을 비축할 시간이 필요했다.어릴 때부터 인간을 위해서라면.신성을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자신을 위해 남기지 못하는 루미엘.이날의 쓰러짐도 그런 이유로 모든 신성을 소진한 까닭이었다.“폐하!”충격적인 낙하를 목격한 카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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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그리운 오라버니

“안된다. 그 감옥은 아무나 못 들어간다.”“그럼, 무엇을 잘못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까.”“넌 이미 금 면류관을 받을 자인데…. 거긴 들어갈 수가 없지.”한참을 생각하던 아라 대천사.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지금 생각하니 네가 내 그림자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됐구나. 장난질하던 그 녀석들도 소멸됐으니 당당하게 신께서 계신 자리에 입성해도 된단다.”또 한참을 생각한 아라.고개를 저었다.“아니다. 넌 내가 약속한 대로 다시 인간계로 내려보낼 것이다. 어쩐 희생을 치러서라도 대천사의 말은 바뀌지 않는다. 저 멍청한 카일 녀석과 루미엘님을 위해서라도 다시 내려보내 주겠다.”“정말입니까? 제가 다시 인간계로 내 소중한 이들 곁으로 갈 수 있을까요?”“당연하지. 내가 누군지 알지 않느냐? 난 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후임자도 아직 세우지 않으셨으니 내가 대천사임은 틀림없다.”아련한 기억들이 생생해지며 그리움이 목까지 차올랐다.“아…. 그리고 네가 카일과 함께 천계에 다시 입성하면 네 오라비와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때는 오라비도 정식으로 천계 백성이 돼 있을 테니 말이다.”“네! 그럼, 제 오라비는 그때 보겠습니다. 그동안 오라비를 잘 부탁드립니다.”“허허! 그러마. 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소멸이요? 대천사님도 소멸할 수 있습니까?”“아….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그때 난 아라의 슬픈 눈을 다시 보았다.그 또한 카일을 내가 오라비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리고.그는 끝내 신께 외면당할까 두려워하는 듯했다.“대천사님! 내가 아는 신께선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대천사인 당신은 더더욱 버리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그게 정말일까?”“네! 저와 내기하셔도 좋습니다.”“내기는 무슨….”희망을 품는 아라의 눈을 바라보며 카일을 생각했다.사랑하는 카일.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날 기다리고 있는 그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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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아라 대천사의 약속

눈을 감았다.내 존재가 점점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하지만 무섭지 않았다.카일의 따뜻한 손길이 닿았던 숲의 오두막이 눈앞에 환하게 그려졌다.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때.내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들로 돌아가는 회귀를 여러 번 경험한 나.오두막 창가로 쏟아지던 오후의 햇살과.카일의 다정한 목소리가 흩어지는 상상이 내 의식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난 그곳으로 회귀할 것이다.아라가 마지막 결단을 내린 듯한 표정이었다.“마리안, 이제 네 생의 회귀 기회를 다 써버렸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난 아라 대천사다. 약속은 꼭 지킨다.”그는 자신의 마지막 신성을 한곳으로 응집하며, 찢겨 나가는 내 영혼을 붙잡아 빚어내기 시작했다.대천사의 고결한 희생은 마지막 기적을 준비하고 있었고.그것은 나를 인간계로 돌려보내기 위한 최후의 의지였다.“널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주마.”그의 축복은 나의 소멸을 삶으로 바꾸는 기도가 되었다.선물은 생명이었고 아들과 카일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열쇠였다.아라 대천사는 내 희미해지는 입자들을 거두어 인간계 가장 깊은 곳.루마레스 숲 꽃밭 아래로 강제로 전송했다.영혼 소멸 직전.인간계로의 귀환이었다.나의 파편들은 찬란한 별이 되어 차원의 벽을 뚫고 추락했다.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기적.나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깃든 꽃밭 위에 씨앗처럼 흩뿌려졌다.차가운 공간을 찢고 내려오는 추락의 고통 속에서.나는 비로소 잃어버렸던 육체의 감각으로 대지의 온기를 느끼며.어둠에서 빛으로.소멸에서 삶으로 이끌리고 있었다.영혼이 완전히 분해되어 대기 속으로 흩어지기 직전.내 의식 속으로 카일의 절박한 목소리와 루미엘의 신성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아라 대천사의 마지막 눈물이 빛의 입자가 되어 날 안전하게 인간계로 안내하는 듯했다.처절하고도 눈부신 귀환은 모두의 기도가 응축되어 현실화했다.쿵!루마레스 숲의 정중앙.가장 찬란하게 피어난 꽃밭 한가운데로 유성이 내리꽂히듯 인간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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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다시 돌아온 루마레스 숲

루마레스 숲.10년 동안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았던 곳.그날 밤은 유난히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바람의 속삭임만이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가운데….숲은 마치 기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 숨죽이고 있었다.시간마저 그곳에서 숨을 멈춘 듯했다.하늘에서 쏟아진 빛의 파편들은 숲의 가장 깊은 곳.카일이 매일 돌보던 백합 정원으로 부서져 내렸다.어둠을 가르고 내려온 은하수 조각.십 년이라는 긴 겨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봄의 전령 같은 찬란한 빛의 행렬이었다.오랜 슬픔을 씻어내려는 듯, 밤하늘은 유난히 시린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화려한 강림도.신의 현현도 아니었다.웅장한 찬가도, 천지를 뒤흔드는 징조도 동반되지 않은 침묵이었다.그저 새벽이슬이 내리듯.아주 조용하게 숲의 품으로 스며들었다.거친 대지조차 그 온기를 경외하듯 숨죽이고 있었다.요란한 천둥이나 눈부신 섬광 대신, 대지의 숨결 속에 녹아드는 부드러운 안착.숲은 품 안으로 돌아온 주인을 알아본 듯.모든 나뭇잎을 일제히 떨며 환희를 만들어 냈다.마치 오랜 고통을 끝낸 대지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는 듯했다.카일은 그 시간 숲을 지키고 있었다.매일 밤.이곳에서 내 비석을 닦으며 밤을 지새우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일과였다.그날따라 그는 유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차가운 밤기운조차 그의 끓어오르는 심장을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10년 전.내가 승천하던 날.느꼈던 슬픔과는 전혀 다른 뜨겁고도 벅찬 감각이었다.아픔을 딛고 찾아온 기적의 전조였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예감.억눌렀던 회한을 밀어내고 낯선 설렘과 기대감을 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멎어버렸던 시간이 다시 거칠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마리안?”나직하게 부른 이름.십 년 동안 삭여왔던 그리움이었다.혹시나 하는 간절한 희망과 얽혀 공기 중으로 흩어진 이름.차가운 바람마저 그 부름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숲속으로 스며들었다.카일이 멍하니 공중을 향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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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우리 처음 사랑했던

처음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아무런 가식없는 소박한 차림새는 나를 카일의 가장 순수한 기억 속 연인으로 돌려놓았다.시간은 우리 처음 사랑했던 그곳에 고스란히 멈춰 있었다.“마리안…. 정말 당신입니까?”그의 목소리는 형용할 수 없는 전율로 갈라졌고.십 년이라는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은 그 물음은 공허한 숲의 메아리가 되어 진심을 울렸다.메아리는 숲을 돌고 돌아 우리의 간절함을 대지 깊숙이 새겨넣었다.사내의 떨리는 손이 뺨에 닿는 순간.너무 따뜻했다.10년 동안 그토록 갈구했던 인간의 체온이었다.얼어붙었던 영혼을 바닥까지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열감이 전해져 왔다.천천히 눈을 떴다.부드럽고 따스한 살결.꿈이 아닌 현실이었다.시야로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찬란한 눈동자가 닿았다.1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 눈동자는 여전히 맑고 고요했다.세상의 풍파를 잊은 눈동자에는 오직 눈앞의 사내를 담아낼 여백만이 남아 있었고,그 맑음은 카일 가슴을 더욱 아릿하게 찌르고 있었다.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무색할 만큼 순수한 시선.빤히 바라보았다.낯선 사람이었다.하지만 내 손이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꽉 쥐었다.이름도.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이에게 영혼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기억의 창고는 닫혀 있었으나,영혼에 새겨진 감각은 지워지지 않은 본능으로 그를 향해 손을 뻗어 운명의 끈을 다시 움켜쥐었다.비록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심장은 이미 그를 알아보고 있었다.“...누구…. 세요?”낯선 이방인을 대하듯 조심스럽고도 호기심 어린 물음….우리의 서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천계를 다녀온 자가 겪는 기억 삭제.내게도 해당했다.가혹한 운명이 남긴 피할 수 없는 대가였다.천계의 신성한 불꽃이 육체를 거치는 동안 과거의 흔적은 타올라 사라졌지만.가장 소중했던 인연의 씨앗만은 살아남아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내 영혼 깊은 곳에 각인된 존재의 흔적.지워지지 않았다.세상의 어떤 섭리도 끊어내지 못한 강력한 인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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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화. 이름 없는 나

루마레스 숲의 오두막은 고요했다.카일은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그의 손길은 마치 갓 피어난 꽃잎을 다루듯 섬세하고 경건했으며.십 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연인을 다시 잃을까 숨죽이고 있었다.거친 숨결마저 조심스레 삼키는 그 침묵 속에서,잃어버린 세월의 무게가 아스라이 스쳐 갔다.“카일이라고 했지요?”“네!”“이곳은 너무 편해요. 그리고…. 당신도.”내 입술 끝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고백.긴 어둠의 시간을 통과해 온 영혼이 본능적으로 감지한.가장 평온한 안식처를 향한 응답이었다.깊은 이끌림이 메마른 가슴을 부드럽게 적셨다.카일의 미소를 본 나.피곤함에 밀려 잠이 들었다.내 곁을 떠나지 않고 밤새워 지킨 카일.창가로 스미는 달빛마저 조심스레 머문 밤.사내는 나의 숨소리를 들으며….십 년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함에 감사했다.창백한 달무리 아래서 그는 몇 번이고 나의 손을 조용히 쓸어내렸다.날이 밝자 천천히 눈을 뜬 나.낯선 천장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곁에 앉은 카일을 발견했다.아침 햇살보다 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카일.그의 존재는 낯섦이라는 불안을 걷어내고.그곳에 오래 머문 연인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마치 어제도 그제도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온기였다.“아….!”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작은 감탄사.어젯밤 꿈이 현실이었음을 확인하는 안도였다.그리고….마주한 사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잔잔한 수면에 일렁이는 물결처럼.이름 모를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몸을 일으키려 하자, 서둘러 나를 부축한 카일.내 손을 잡은 카일의 굳은살 박인 손을 내려다보았다.기억은 없었지만.손길에서 전해지는 다정함에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오랜 세월 품어온 결연함이 그 거친 손끝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사내의 거친 손이 닿는 곳마다 따스한 전율이 번져나갔다.“여기는 어디인가요? 저를 혹시 아시나요?”이제 막 세상을 품게 된 삶에 대한 가장 근원적이고 애틋한 탐색이었다.사라진 기억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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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의 낙원

“이제부터 내 이름은 마리안으로 할게요.”“네?”“당신이 날 처음 봤을 때, 부른 이름, 맞지요?”“아…. 네!”“난 그 이름이 맘에 들어요. 날 마리안이라고 불러도 좋아요.”“네. 그럼, 당신을 이제부터 마리안이라고 부르겠습니다.”“네. 특별히 허락하는 거예요. 난 당신이 마음에 드니까요.”“네…? 하하하!”“왜 그렇게 웃는 거죠? 내가 뭘 잘못했나요?”“아…. 아닙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카일 공!”“저…. 저도 이름만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뭐…. 어렵지 않죠. 카~일!”“하하!”“하하하!”그와 눈이 마주치자,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격렬히 반응했다.난 느꼈다.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였음을.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음을.그리고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갑자기 다가온 그의 입술.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날 어루만지는 사내의 몸짓이 낯설지 않았다.참는 건 불가능했다.아니….참고 싶지 않았다.오랜 시간 서로를 원하고 있었음을 내 몸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된 그와 나.따듯한 그의 속살이 내 것에 닿았다.깊은 신음이 터져 나오며 다시 헤어지지 말 것을 서로에게 몸짓으로 말하고 있었다.언약식.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예식을 치르고 있었다.“당신이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요. 꿈에서 당신을 매일 봤어요.”스치듯 내뱉은 한마디.가슴 깊은 곳이 아려왔다.기억의 창고는 닫혀 있었지만.영혼의 파동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십 년이라는 시간….서로의 꿈속에서 헤매던 마음이 이제야 실체로 닿아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기나긴 밤을 건너 마침내 서로를 알아본 영혼과 육체의 대화였다.벅차오르는 이 기분.기억은 지워졌어도 마음의 결은 그대로였다.거친 운명이 갈라놓았던 인연.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희열이 밀려들었다.우린 옷매무새를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텃밭은 카일이 정성껏 일구어 놓은 덕에 작은 채소들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오두막을 둘러싼 푸른 숲은 다시 생기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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