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 Chapter 11 - Chapter 20

32 Chapters

10화

저택 안. 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 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로이즈." "네, 어머니." "괜찮니." "...괜찮아요." "많이 놀랐을 텐데. 들어가서 쉬렴." "...네." 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엘로이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앞만 보고 걸었다. 그 뒤에서 부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조용히 그림 하일드를 향했다. 고개를 숙인 채, 완벽하게 거리를 맞춰 걷는 아이. 말이 없고, 흔들림도 없고, 이미 이 집의 일부처럼 움직이는 존재. 부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맞추면... 우리 애처럼 보일 수 있어.' 그 결론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부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고,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아래에서, 이미 각자의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후, 엘로이즈의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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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그림 하일드의 손끝이 진주에 거의 닿을 듯한 순간, "그림 하일드." 엘로이즈의 목소리. 부드러웠다. 하지만 너무 가까웠다. 그림 하일드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심장이 쿵.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네, 아가씨." "잠깐... 이 장갑 좀 받아줄래?" 엘로이즈가 뒤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그림 하일드는 짧게 대답하며 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장갑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살짝 떨렸다. 하지만 곧 멈췄다.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다시 자신의 준비를 이어갔다. 방 안에는 다시 조용함이 내려앉았다. 하지만그림 하일드의 시선은 더 이상 화장대로 가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장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못 했다.' 그 짧은 말이 안쪽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화장대 위 진주 목걸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살롱시간. 넓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있었다. 얇은 커튼이 바람에 아주 느리게 흔들렸고,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찻잔과 다과가 차분하게 빛을 받았다. 엘로이즈는 중앙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자세는 곧았고, 표정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몇몇 귀족 가문의 영애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재무대신 가문의 딸, '이네스 드 몽브랑'도 앉아 있었다. 오늘도 단정하고 절제된 차림으로.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엘로이즈의 뒤, 조금 떨어진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가지런히 모여 있었지만 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 이네스 드 몽브랑이 찻잔을 들었다. 차를 한모금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잔을 입술에서 떼며,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 로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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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 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 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 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 또 시작이구나.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렇게까지는..." "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네스가 천천히 이어갔다. "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 "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 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 그런데 전.. 드 몽브랑 영애께서도 상대에게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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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앗..!" 그림 하일드의 몸이 순간 흔들렸다. 균형을 잡으려 손이 급하게 움직였지만 이미 늦었다. 들고 있던 유리 쟁반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림 하일드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 무릎이 먼저 바닥에 부딪혔다. 쨍그라앙!! 쟁반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살롱 안의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손을 짚은 채 숨을 삼켰다. 놀람보다 먼저 실수했다는 감각이 얼굴 위로 올라왔다. 그 순간. 엘로이즈가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에서 작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곧바로 그림 하일드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림 하일드.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미안하구나." 이네스는 자리에서 몸을 아주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내 드레스가 조금 엉켜서... 정리하려다가 그만." "혹시 다친 건 아니니?" 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방금 전, 그 발끝이 너무 정확했다는 건 오직 이네스 자신만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오히려 반응을 보고 있었다. 엘로이즈가 어떻게 움직일지.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숨을 고른 뒤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네." 그림 하일드는 곧바로 일어나 무릎을 꿇고 깨진 쟁반 조각들을 손으로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동작은 서둘렀다. 실수한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원래 상태로 돌려놔야 하는 사람처럼. 엘로이즈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짤칵. 아주 작은 소리. 그리고, "읏..." 그림 하일드의 숨이 짧게 떨렸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 끝이 손가락을 스친 것이었다. 순간, 붉은 선 하나가 얇게 올라왔다. 곧이어 피가 천천히 맺혔다. 엘로이즈가 바로 몸을 움직였다. "...피." 처음으로 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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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살롱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 엘로이즈는 그림 하일드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아주 낮게 울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우아하고, 흐트러짐없는 미소. 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아까와 달랐다. 엘로이즈는 천천히 이네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급하지도 않았고, 화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숨 막히는 걸음. 엘로이즈는 이네스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하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넘치시는 우리 영애께서... 왜 제 하녀에게 사과하라는 말에는 그렇게 당황하시는 걸까요?" 이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아, 아니에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녀는 손끝으로 자기 드레스 소매를 아주 가볍게 정리했다. "하인, 평민들을 향한 영애의 사랑은 이미 유명하니까요.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얘기는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 살롱 안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다른 영애들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이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엘로이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3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 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귀 끝이 먼저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위로 열이 번졌다. 살롱 안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다른 영애들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인을 들였다.' 귀족 사회에서는 때때로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말. 특히 젊은 남자 하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이네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완전히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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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잠시 후. 또각. 또각. 이네스의 굽 소리가 빈 복도에 날카롭게 울렸다. 이네스는 이를 꽉 물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은 아직 식지 않았고,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복도 끝 창문에 다다른 순간, 이네스가 걸음을 멈췄다. 참고 눌러왔던 감정이 그제야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낮게 새어 나왔다. "저 야비한 년이... 감히, 감히 내 얘기를 떠벌려?" 이네스의 손이 천천히 주먹으로 말려들어갔다.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가 했던 말. '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세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 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긁었다. 그건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한 말. 그녀는 창문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노려보듯 바라봤다.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리된 얼굴이 아니었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그걸 엘로이즈가 분명 봤다. 살롱의 영애들도 전부 봤다. 이네스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오늘 당한 모욕. 똑같이 갚아줄 거야." 그녀가 이를 갈듯 중얼거렸다. 복도 창문 밖으로 바람이 스쳤다. 커튼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이네스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녀, 그림 하일드. 엘로이즈가 유난히 신경 쓰는 아이. 동생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손에 힘을 주었던 순간. 이네스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그래. 그 하녀를 정말로 아낀다, 그거지." 낮게 중얼거린 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표정을 정리했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조금씩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다. 입꼬리는 아주 얇게 올라갔고, 눈빛도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수치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이네스는 장갑을 낀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천천히 정리했다. 구겨진 부분을 펴고, 흐트러진 주름을 손끝으로 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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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이 그녀의 얼굴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흔들리던 커튼 끝이 천천히 가라앉고, 방 안에는 아주 옅은 바람 소리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오래전의 햇빛이 다시 떠올랐다. 몇 년 전. 드 로베르 저택의 정원. 햇빛이 눈부시게 맑던 오후였다. 테라스 한쪽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식어가는 차와 펼쳐진 책 한 권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엘로이즈는 테라스 의자 위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세는 이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운 채,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조차 조용했다. 정원에는 바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때, "언니이이!!" 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로이즈의 눈썹이 움직였다. 곧이어 작은 발소리가 잔디를 가로질러 빠르게 가까워졌다. 타다닥. 그리고 다음 순간, "언니!! 이것 좀 봐!!" 클레르가 그대로 테라스까지 뛰어 올라왔다. 엘로이즈는 책에서 눈을 들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 "...클레르."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드레스. 연한 크림빛 드레스 자락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치맛단은 흙투성이였고, 소매 끝에도 풀잎이 엉겨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에도 작은 잎사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엘로이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클레르는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 후레지아 꺾어왔어!" 그녀가 양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노란 후레지아 꽃들.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클레르의 눈도 그 꽃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엄청 예쁘지?!" "...너 또 정원사 아저씨 몰래 꺾어온 거야?" "...아닌데?" 대답이 너무 빨랐다. 엘로이즈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클레르가 괜히 시선을 피하며 꽃다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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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대신은 클레르의 드레스 차림을 위에서 아래까지 천천히 훑어봤다. "드 로베르 가문의 딸이... 저리 시끄럽고 지저분해서야 원." 클레르의 몸이 움찔했다. 대신은 더 가까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못마땅하다는 듯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남들이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소." 그 말만 남긴 채, 그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망설임 없는 걸음. 곧 마차 쪽으로 향하는 발소리가 멀어졌다. 현관 앞에는 잠시 정적이 남았다. 클레르는 엘로이즈 뒤에서 더 작게 숨었다. 손에 들고 있던 후레지아 꽃다발이 아주 조금 구겨졌다. 귀족 부인은 그런 둘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클레르. 아버지 말씀 들었지?" 클레르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부인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귀족 아가씨가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고...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어떻게 생각하겠니. 너 하나 때문에 우리 가문이..." "어머니!" 엘로이즈의 목소리가 순간 끼어들었다. 부인의 말이 멈췄다. 엘로이즈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클레르를 반쯤 가리듯. "...제가. 제가 잘 가르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현관 앞 공기가 잠시 조용해졌다. 부인은 말없이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클레르를 천천히 바라봤다. 한 명은 지나치게 일찍 어른이 된 아이. 한 명은 아직도 너무 어린 아이. 부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안쓰러운 듯. 하지만 그 감정조차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부인은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본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드레스 자락이 계단 위를 조용히 스쳤다. 그리고 곧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리서 작게 들려왔다. 현관 앞에는 잠시 조용함만 남아 있었다. 멀어지는 마차 바퀴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클레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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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엘로이즈는 마지막으로 리본 모양을 한 번 더 정리했다. 노란 리본 끝이 머리카락 사이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클레르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는 순간, "우와..."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하늘빛 드레스. 정리된 머리카락. 노란 리본. 아까 정원을 뛰어다니던 흙투성이 아이는 온데간데없었다. 클레르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진짜 예쁘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리본이 흔들릴 때마다 눈도 같이 반짝였다. "언니 진짜 잘 땋는다!" "...호들갑은." 하지만 클레르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홱 돌아앉아 엘로이즈를 올려다봤다. "맨날 언니가 머리 땋아주면 안돼?" "...맨날?" "응! 하녀들보다 언니가 땋아주는 게 훨씬 예뻐!" "...그럼 하녀들이 울겠다." "그래도 언니가 더 잘하는데." "...말은 참." 클레르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거울 속 자기 머리를 보며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진짜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면 됐어." 엘로이즈의 말은 작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다정했다. 그때, 거울을 보던 클레르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저택 뒤편이 보이는 창문 너머. 늦은 햇빛 아래, 커다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가지마다 붉은 사과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꼭 작은 등불 같았다. 클레르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 작은 감탄이 나왔다. "우와. 사과가 이번에도 주렁주렁 열렸다!" 엘로이즈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사과나무.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가에 피식, 작은 웃음이 번졌다. "...왜. 너 또 작년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서 사과 따려다 떨어지게?" "아니! 그건 아닌데..." 엘로이즈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바라봤다. 클레르는 괜히 시선을 피하다가 다시 창밖 사과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과 보니까 배고파졌어." 다음 순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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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어느 날. 복도를 따라 작은 발걸음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타닥, 타닥. 그리고 곧, 벌컥. 문이 활짝 열렸다. "언니, 오늘..!!" 밝게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온 클레르가 그대로 멈췄다. 방 안은 조용했다. 햇빛만 창가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화장대 위에는 정리된 빗과 향수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은 없었다. 클레르의 큰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어? 언니 어디 간건가?" 그때, 뒤쪽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아가씨..." 클레르의 하녀였다. 조금 지친 얼굴로 따라온 그녀는 조용히 문 쪽으로 다가왔다. "큰아가씨 방 문 마음대로 여시면 안 돼요." 하녀는 익숙하다는 듯 열린 문을 다시 조용히 닫았다. 덜컥. 클레르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언니는 어디 갔어?" "큰아가씨께서는 살롱 일정이 있으셔서 조금 전에 막 아래 살롱실로 내려가셨어요." "살롱? ...그게 뭐야?" "귀족 영애분들끼리 모여서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자리예요." "와." 클레르의 눈이 더 커졌다. "재밌겠다! 살롱이 그런거였어?" 곧바로 몸을 돌렸다. "나도 갈래!" 방금 전까지 텅 비어 있던 방이 순식간에 다시 시끄러워졌다. 클레르는 두 손을 꼭 쥔 채 신나게 말했다. "나도 가서 대화하고 싶어! 과자도 먹을래!!" "안 됩니다, 작은 아가씨." 하녀가 재빨리 클레르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에." "살롱은 어린 아가씨께서 가시는 자리가 아니에요." 하녀는 익숙하게 달래듯 말했다. "대신 저랑 같이 식당으로 가서 사과파이 먹어요." "...사과파이?" 그 말에 클레르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곧 다시 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살롱실에 가보고 싶은데! 살롱실 앞은 지나가보기만 했지..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단말이야!!" 그리고 다음 순간, 쏙. 클레르가 손을 뿌리쳤다. "작은 아가씨?!" 클레르는 이미 복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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