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 Bab 11 - Bab 20

25 Bab

10화

저택 안. 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 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엘로이즈." "네, 어머니." "괜찮니." "...괜찮아요." "많이 놀랐을 텐데. 들어가서 쉬렴." "...네." 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엘로이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림 하일드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앞만 보고 걸었다. 그 뒤에서 부인의 시선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조용히 그림 하일드를 향했다. 고개를 숙인 채, 완벽하게 거리를 맞춰 걷는 아이. 말이 없고, 흔들림도 없고, 이미 이 집의 일부처럼 움직이는 존재. 부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맞추면... 우리 애처럼 보일 수 있어.' 그 결론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부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고,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아래에서, 이미 각자의 생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후, 엘로이즈의 방 안. 바깥의 기척은 이미 완전히 차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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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그림 하일드의 손끝이 진주에 거의 닿을 듯한 순간, "그림 하일드." 엘로이즈의 목소리. 부드러웠다. 하지만 너무 가까웠다. 그림 하일드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심장이 쿵. 한 번 크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네, 아가씨." "잠깐... 이 장갑 좀 받아줄래?" 엘로이즈가 뒤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그림 하일드는 짧게 대답하며 급히 앞으로 다가갔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장갑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살짝 떨렸다. 하지만 곧 멈췄다. 엘로이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다시 자신의 준비를 이어갔다. 방 안에는 다시 조용함이 내려앉았다. 하지만그림 하일드의 시선은 더 이상 화장대로 가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장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못 했다.' 그 짧은 말이 안쪽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화장대 위 진주 목걸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살롱시간. 넓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채우고 있었다. 얇은 커튼이 바람에 아주 느리게 흔들렸고,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찻잔과 다과가 차분하게 빛을 받았다. 엘로이즈는 중앙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자세는 곧았고, 표정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몇몇 귀족 가문의 영애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재무대신 가문의 딸, '이네스 드 몽브랑'도 앉아 있었다. 오늘도 단정하고 절제된 차림으로.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엘로이즈의 뒤, 조금 떨어진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가지런히 모여 있었지만 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때, 이네스 드 몽브랑이 찻잔을 들었다. 차를 한모금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잔을 입술에서 떼며,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 로베르 영애, 오늘은... 영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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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 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 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 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 또 시작이구나.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그렇게까지는..." "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네스가 천천히 이어갔다. "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 이네스의 눈이 조금 휘어졌다. "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 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 그런데 전.. 드 몽브랑 영애께서도 상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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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앗..!" 그림 하일드의 몸이 순간 흔들렸다. 균형을 잡으려 손이 급하게 움직였지만 이미 늦었다. 들고 있던 유리 쟁반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림 하일드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쏠렸다. 무릎이 먼저 바닥에 부딪혔다. 쨍그랑—!! 쟁반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깨졌다. 살롱 안의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손을 짚은 채 숨을 삼켰다. 놀람보다 먼저 실수했다는 감각이 얼굴 위로 올라왔다. 그 순간. 엘로이즈가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에서 작게 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림 하일드." 조금 놀란 목소리. 엘로이즈가 곧바로 그녀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미안하구나." 이네스는 자리에서 몸을 아주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내 드레스가 조금 엉켜서... 정리하려다가 그만." "혹시 다친 건 아니니?" 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방금 전, 그 발끝이 너무 정확했다는 건 오직 이네스 자신만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오히려 반응을 보고 있었다. 엘로이즈가 어떻게 움직일지. 그림 하일드는 급하게 숨을 고른 뒤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네." 작은 대답. 목소리에는 여전히 긴장이 묻어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곧바로 일어나 무릎을 꿇고 깨진 쟁반 조각들을 손으로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동작은 서둘렀다. 실수한 사람처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원래 상태로 돌려놔야 하는 사람처럼. 엘로이즈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 그녀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짤칵. 아주 작은 소리. 그리고, "읏..." 그림 하일드의 숨이 짧게 떨렸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 끝이 손가락을 스친 것이었다. 순간, 붉은 선 하나가 얇게 올라왔다. 곧이어 피가 천천히 맺혔다. 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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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살롱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 엘로이즈는 그림 하일드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아주 낮게 울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우아하고, 흐트러짐없는 미소. 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아까와 달랐다. 엘로이즈는 천천히 이네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급하지도 않았고, 화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숨 막히는 걸음. 엘로이즈는 이네스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하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넘치시는 우리 영애께서... 왜 제 하녀에게 사과하라는 말에는 그렇게 당황하시는 걸까요?" 이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웃었다. "아, 아니에요." 그녀는 손끝으로 자기 드레스 소매를 아주 가볍게 정리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드러운 말투.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서늘했다. "하인, 평민들을 향한 영애의 사랑은 이미 유명하니까요.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얘기는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 살롱 안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다른 영애들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이네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엘로이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3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 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귀 끝이 먼저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위로 열이 번졌다. 살롱 안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다른 영애들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인을 들였다.' 귀족 사회에서는 때때로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말. 특히 젊은 남자 하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이네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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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이 그녀의 얼굴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흔들리던 커튼 끝이 천천히 가라앉고, 방 안에는 아주 옅은 바람 소리만 남았다. 엘로이즈는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오래전의 햇빛이 다시 떠올랐다. 몇 년 전. 드 로베르 저택의 정원. 햇빛이 눈부시게 맑던 오후였다. 테라스 한쪽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식어가는 차와 펼쳐진 책 한 권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엘로이즈는 테라스 의자 위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세는 이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운 채,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조차 조용했다. 정원에는 바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때, "언니이이!!" 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로이즈의 눈썹이 움직였다. 곧이어 작은 발소리가 잔디를 가로질러 빠르게 가까워졌다. 타다닥. 그리고 다음 순간, "언니!! 이것 좀 봐!!" 클레르가 그대로 테라스까지 뛰어 올라왔다. 엘로이즈는 책에서 눈을 들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 "...클레르."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드레스. 연한 크림빛 드레스 자락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치맛단은 흙투성이였고, 소매 끝에도 풀잎이 엉겨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에도 작은 잎사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엘로이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 "...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클레르는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나 후레지아 꺾어왔어!" 그녀가 양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노란 후레지아 꽃들.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클레르의 눈도 그 꽃만큼 반짝이고 있었다. "엄청 예쁘지?!" 엘로이즈는 꽃다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너 또 정원사 아저씨 몰래 꺾어온 거야?" "...아닌데?" 대답이 너무 빨랐다. 엘로이즈는 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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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엘로이즈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클레르를 반쯤 가리듯.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제가 잘 가르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현관 앞 공기가 잠시 조용해졌다. 부인은 말없이 엘로이즈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클레르를 천천히 바라봤다. 한 명은 지나치게 일찍 어른이 된 아이. 한 명은 아직도 너무 어린 아이. 부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안쓰러운 듯. 하지만 그 감정조차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결국 그녀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낮은 목소리. 부인은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본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드레스 자락이 계단 위를 조용히 스쳤다. 그리고 곧 마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멀리서 작게 들려왔다. 현관 앞에는 잠시 조용함만 남아 있었다. 멀어지는 마차 바퀴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클레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노란 후레지아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반짝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무룩하게 내려간 입꼬리. 축 처진 어깨로. 엘로이즈는 그런 클레르를 잠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숨을 내쉰 뒤 말했다. "...클레르." "...응." "...언니 방에 가서 놀래?" 순간, 클레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정말? 그래도 돼?!" "...그럼. 대신, 어머니, 아버지 돌아오실 때까지만. "응!!" 클레르의 얼굴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방금 전 혼났던 것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품에 안고 있던 후레지아 꽃다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럼 이거 언니 방에 장식해도 돼?!" "...응." "와!!" 클레르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그녀는 곧바로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엘로이즈의 방 안. 창밖에서는 늦은 오후의 햇빛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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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다시 현재의 엘로이즈의 방 안. 방 안에는 저녁빛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바람에 커튼이 느리게 흔들렸다. 엘로이즈의 시선은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 저택 뒤편. 멀리 사과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몇 년 전, 클레르가 창문을 붙잡고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 나무. 하지만 지금의 나무는 달랐다. 가지마다 피어 있었던 연분홍빛 사과꽃들은 계절이 지나 이미 거의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시든 꽃잎 몇 장이 힘없이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그 나무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술이 움직였다. "...그 아이. 참... 개구쟁이였지." "...아가씨. 그림 하일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엘로이즈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기억은, 조용히 몇 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복도를 따라 작은 발걸음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타닥, 타닥. 그리고 곧, 벌컥. 문이 활짝 열렸다. "언니, 오늘..!!" 밝게 외치며 방 안으로 들어온 클레르가 그대로 멈췄다. 방 안은 조용했다. 햇빛만 창가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화장대 위에는 정리된 빗과 향수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있어야 할 사람은 없었다. 클레르의 큰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어? 언니 어디 간건가?" 그때, 뒤쪽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 아가씨..." 클레르의 하녀였다. 조금 지친 얼굴로 따라온 그녀는 조용히 문 쪽으로 다가왔다. "큰아가씨 방 문 마음대로 여시면 안 돼요." 하녀는 익숙하다는 듯 열린 문을 다시 조용히 닫았다. 덜컥. 클레르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언니는 어디 갔어?" "큰아가씨께서는... 살롱 일정이 있으셔서 조금 전에 막 아래 살롱실로 내려가셨어요." "살롱? 그게 뭐야?" "귀족 영애분들끼리 모여서 차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자리예요." "와." 클레르의 눈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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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이네스는 아주 천천히 입가를 움직였다. "...괜찮아요." 미소였다. 완벽하게 단정하고, 부드럽게 만들어낸 귀족 영애의 미소. 이네스는 구겨진 소매를 가볍게 정리한 뒤, 천천히 클레르 쪽으로 다가갔다. 클레르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이네스는 그런 반응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영애께서... 드 로베르 가문의 둘째 영애신가요...?" 이네스는 잠시 클레르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그녀 앞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손수건을 꺼냈다. 하얀 손수건 끝이 클레르의 드레스에 묻은 먼지와 흙자국을 아주 천천히 털어냈다. 툭, 툭. 동작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이네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치진 않았나요, 영애?" "...네." 클레르는 눈을 깜빡이며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작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 무서워 보였던 얼굴이, 갑자기 너무 다정해진 탓이었다. 이네스의 입가가 아주 부드럽게 올라갔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여전히 손수건으로 드레스 끝을 정리해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드 로베르 영애께... 동생분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어요." "언니가요?" "네." 이네스는 미소지었다. "동생분이 참 착하고..." 손수건이 천천히 멈췄다. "...순수한 아이라고 하셨거든요." 그녀의 눈이 아주 천천히 클레르를 향했다. "정말 그런 것 같네요." 말은 다정했다.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친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숨이 막혔다. 이네스는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조금 조심해서 다니셔야겠어요, 영애." 클레르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이네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으시려면요." 그 말에 클레르의 눈이 아주 살짝 커졌다. 이네스는 그런 반응을 가만히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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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덜컥. 살롱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다시 조용함이 내려 앉았다. 복도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만 길게 깔려 있었다. 클레르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방금 전 넘어졌던 자세 그대로. 작은 손에는 하얀 손수건이 쥐어져 있었다. 하녀가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눈은 멍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네스가 서 있던 자리. 부드럽게 웃던 얼굴. 다정했던 목소리. '언니분까지 영애를 창피해하시고, 싫어하게 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클레르의 손이 떨렸다. "...아가씨?" 하녀가 다시 조심스럽게 불렀다. 클레르는 그제야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손수건.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새하얀 천. 조금 전까지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천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꾸깃. 하얀 천이 손안에서 천천히 구겨졌다. 하녀의 얼굴이 더 굳었다. "...작은 아가씨, 어디 다치신 건 아니시죠?" "...진짜.." "...네?" "내가 진짜로... 언니를 창피하게 만들어?" "아가씨..." "내가 자꾸 뛰어다녀서... 말도 안 듣고... 그래서 언니도...나 싫어하게 되는 거야?"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작은 아가씨." 하녀가 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다급히 말했다. 하지만 클레르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손수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까지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복도 창문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에 클레르의 금빛 머리카락 끝이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손안에서, 하얀 손수건이 점점 더 작게 구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드 로베르 저택의 식당은 조용했다. 하인들이 벽 쪽에 조용히 서 있었고, 식당 안에는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히는 작은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엘로이즈는 평소처럼 단정한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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