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살롱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 엘로이즈는 그림 하일드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아주 낮게 울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우아하고, 흐트러짐없는 미소. 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아까와 달랐다.
엘로이즈는 천천히 이네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급하지도 않았고, 화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숨 막히는 걸음. 엘로이즈는 이네스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하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넘치시는 우리 영애께서..." 말은 웃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끝음은 아주 얇게 차가웠다. "왜 제 하녀에게 사과하라는 말에는 그렇게 당황하시는 걸까요?" 이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웃었다. "아, 아니에요." 그녀는 손끝으로 자기 드레스 소매를 아주 가볍게 정리했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드러운 말투.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서늘했다. "하인, 평민들을 향한 영애의 사랑은 이미 유명하니까요." 엘로이즈는천천히 이어갔다.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얘기는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 살롱 안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다른 영애들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이네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엘로이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3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 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귀 끝이 먼저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위로 열이 번졌다. 살롱 안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다른 영애들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인을 들였다.' 귀족 사회에서는 때때로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말. 특히 젊은 남자 하인 이야기라면 더더욱. 이네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완전히 흔들렸다. 엘로이즈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아하게, 아주 조용하게. 상대의 칼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한쪽에 앉아 있던 다른 영애 하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끝내 참지 못한 듯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드 몽브랑 영애?" 말끝이 떨렸다. 웃음을 참느라. 다른 영애들 몇 명도 고개를 숙인 채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이네스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 전처럼 태연하게 받아치지도, 비웃지도 못했다. 손이 떨렸다. 엘로이즈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사람을 몰아붙였다. 이네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며 짧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급하게 움직인 탓이었다. 드레스 자락이 의자 다리에 스치며 발밑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녀는 그대로 자기 드레스를 밟았다. 휘청. 순간 균형이 무너졌다. "...앗...!" 다음 순간, 털썩. 이네스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찻잔이 덜컹 흔들렸고,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푸흡..." 누군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곧 다른 영애들도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숙였다. "후후..." "흡.. 흐읍..." 억지로 참으려 했지만,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이네스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올라온 얼굴. 엘로이즈는 천천히 그녀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완벽하게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어머." 짧은 숨. "다치진 않았나요, 드 몽브랑 영애?" 목소리는 너무나 다정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엘로이즈는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 "오늘따라... 드레스가 계속 걸리시나 봐요." 순간, 몇몇 영애들이 또다시 웃음을 삼켰다. 아까 그림 하일드를 넘어뜨릴 때 했던 이네스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으니까. 이네스의 입술이 떨렸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그림 하일드." 조용한 호출. 그림 하일드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네, 아가씨." "부축해 드려." "네..." 그림 하일드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넘어진 이네스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일어나실 수..." 하지만 그 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 손 치워!!" 날카로운 목소리가 살롱 안을 찢었다. 순간, 공기가 멎었다. 그림 하일드의 손이 그대로 허공에서 멈췄다. 다른 영애들도 놀란 눈으로 이네스를 바라보았다. 이네스는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에는 분노와 수치심이 뒤섞여 있었다. 엘로이즈가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너무나 부드럽게. "어머..." 낮고 고운 목소리. "...화내시는 모습은 처음 보네요, 드 몽브랑 영애. 많이 놀라셨나봐요."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그녀의 손끝이 천천히 떨렸다. 살롱 안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들. 입을 가린 채 웃음을 참는 영애들. 고개를 숙였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들. 그리고,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엘로이즈의 미소. 그 모든 것이 이네스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 결국 이네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변명도, 비웃음도, 받아치는 말도 없이. 그녀는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드레스 자락을 급하게 정리하는 손길이 평소보다 거칠었다. 엘로이즈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우아하게. 여전히 부드러운 얼굴로. 이네스의 입술이 잠깐 떨렸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움직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다다른 이네스는 손잡이를 거의 거칠게 붙잡더니.. 문을 쾅!! 열고 나가버렸다. 그 소리가 살롱 안에 짧게 울리고 사라졌다. 잠시 정적. 그리고 누군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른 영애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 몽브랑 영애께서 정말 많이 화나셨나 봐요." 하지만 그 말 끝에도 웃음이 섞여 있었다. 잠시 후. 또각. 또각. 이네스의 굽 소리가 빈 복도에 날카롭게 울렸다. 이네스는 이를 꽉 물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은 아직 식지 않았고,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복도 끝 창문에 다다른 순간, 이네스가 걸음을 멈췄다. 목소리가 낮게 새어 나왔다. "저 야비한 년이..." 참고 눌러왔던 감정이 그제야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이네스의 손이 천천히 주먹으로 말려들어갔다. "감히.. 감히 내 얘기를 떠벌려?"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가 했던 말. '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세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 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긁었다. 그건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한 말. 그녀는 창문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노려보듯 바라봤다. 평소처럼 완벽하게 정리된 얼굴이 아니었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그걸 엘로이즈가 분명 봤다. 살롱의 영애들도 전부 봤다. 이네스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오늘 당한 모욕." 그녀가 이를 갈듯 중얼거렸다. "똑같이 갚아줄 거야." 복도 창문 밖으로 바람이 스쳤다. 커튼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이네스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한 얼굴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녀. 그림 하일드. 엘로이즈가 유난히 신경 쓰는 아이. 동생과 닮았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손에 힘을 주었던 순간. 이네스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그래." 낮고 서늘한 목소리. "그 하녀를 정말로 아낀다, 그거지." 낮게 중얼거린 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다시 표정을 정리했다. 분노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조금씩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다. 입꼬리는 아주 얇게 올라갔고, 눈빛도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수치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이네스는 장갑을 낀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천천히 정리했다. 구겨진 부분을 펴고, 흐트러진 주름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완벽하게. 아무도 방금 자신이 넘어졌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듯이.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렸다. 또각. 굽 소리가 다시 복도에 울렸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느리고 일정한 걸음이었다. 분노를 드러내던 발걸음이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하는 사람의 걸음. 복도를 따라 걸어가던 이네스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엘로이즈 드 로베르. 항상 우아하고, 항상 완벽하고, 항상 흔들리지 않는 얼굴. 그 얼굴이 오늘 단 한순간 흔들렸다. 그림 하일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동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네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래." 거의 속삭임 같은 목소리. "그 하녀만 건드려도... 넌 결국 흔들리겠네." 복도 끝 창문으로 햇빛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네스는 그 빛 사이를 천천히 걸어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완벽한 귀족 영애의 얼굴로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 엘로이즈의 방 안. 엘로이즈의 방 안에는 서늘한 바람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얇은 커튼이 바람을 따라 느리게 흔들렸다. 해는 이미 많이 기울어 있었다. 주황빛 석양이 방 안 깊숙이 들어와 바닥 위에 길게 내려앉고 있었다. 엘로이즈는 화장대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흑발은 느슨하게 정리된 상태였고, 목에는 여전히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희미한 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엘로이즈의 낮은 목소리. 문이 조용히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건 그림 하일드였다. 두 손은 평소처럼 단정히 모아져 있었지만, 오른손 검지에는 하얀 천이 감겨 있었다. 오늘 깨진 유리에 베인 상처였다. 그림 하일드는 문가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곧 있으면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엘로이즈의 시선이 천천히 그림 하일드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눈이 자연스럽게 천이 감긴 손가락 위에 멈췄다. "...많이 아프니?"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림 하일드는 아주 살짝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약도 바르고... 천도 감았으니 곧 나을 겁니다." 엘로이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림 하일드의 손가락을 한동안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 위로 아주 희미하게 붉은 자국이 비쳐 보였다. 그녀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늘." 엘로이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많이 놀랐지?" 그림 하일드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로이즈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낮게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그런 꼴 당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방 안 공기가 아주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림 하일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닙니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잘못이 아니십니다. 제가 조심하지 못해서..." "아니." 엘로이즈가 조용히 말을 끊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지친 기색이 얇게 깔려 있었다. "...너...궁금하지 않니?" 그림 하일드의 눈이 천천히 올라갔다. 엘로이즈는 잠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커튼. 저녁 바람. 그리고 멀리 붉게 물든 하늘. 그녀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아까 그 영애가... 너랑 닮았다고 말했던 내 동생에 대해서."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이 그녀의 얼굴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흔들리던 커튼 끝이 천천히 가라앉고, 방 안에는 아주 옅은 바람 소리만 남았다.엘로이즈는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오래전의 햇빛이 다시 떠올랐다.몇 년 전.드 로베르 저택의 정원.햇빛이 눈부시게 맑던 오후였다. 테라스 한쪽에는 작은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식어가는 차와 펼쳐진 책 한 권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엘로이즈는 테라스 의자 위에 단정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자세는 이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을 곧게 세운 채,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조차 조용했다.정원에는 바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때,"언니이이!!"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엘로이즈의 눈썹이 움직였다. 곧이어 작은 발소리가 잔디를 가로질러 빠르게 가까워졌다.타다닥. 그리고 다음 순간,"언니!! 이것 좀 봐!!"클레르가 그대로 테라스까지 뛰어 올라왔다.엘로이즈는 책에서 눈을 들었다. 잠시 말이 없었다."...클레르."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드레스. 연한 크림빛 드레스 자락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치맛단은 흙투성이였고, 소매 끝에도 풀잎이 엉겨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에도 작은 잎사귀 하나가 걸려 있었다.엘로이즈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가 다시 떠졌다."...너 또 무슨 짓을 한 거야."차분한 목소리. 하지만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체념이 묻어 있었다. 클레르는 전혀 기죽지 않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나 후레지아 꺾어왔어!"그녀가 양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번쩍 들어 보였다. 노란 후레지아 꽃들.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클레르의 눈도 그 꽃만큼 반짝이고 있었다."엄청 예쁘지?!"엘로이즈는 꽃다발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너 또 정원사 아저씨 몰래 꺾어온 거야?"클레르의 눈이 순간 흔들렸다."...아닌데?"대답이 너무 빨랐다. 엘로이즈는 가만히 그녀를
살롱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는 것 같았다. 엘로이즈는 그림 하일드의 손을 천천히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아주 낮게 울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남아 있었다. 단정하고, 우아하고, 흐트러짐없는 미소. 하지만 그 안의 온도는 아까와 달랐다.엘로이즈는 천천히 이네스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급하지도 않았고, 화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더 숨 막히는 걸음.엘로이즈는 이네스의 앞에 멈춰 섰다.그리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하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이 넘치시는 우리 영애께서..."말은 웃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끝음은 아주 얇게 차가웠다."왜 제 하녀에게 사과하라는 말에는 그렇게 당황하시는 걸까요?"이네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엘로이즈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주 조용히 웃었다."아, 아니에요."그녀는 손끝으로 자기 드레스 소매를 아주 가볍게 정리했다."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부드러운 말투.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서늘했다."하인, 평민들을 향한 영애의 사랑은 이미 유명하니까요."엘로이즈는천천히 이어갔다."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하신다는 얘기는 저도 자주 들었습니다."살롱 안 공기가 순간 흔들렸다. 다른 영애들의 시선이 조용히 움직였다. 이네스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엘로이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이번 달만해도... 일자리 없는 평민들을 위해 직접 하인들을 3명이나 들이셨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다 남자로요."순간. 이네스의 얼굴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했다. 귀 끝이 먼저 붉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위로 열이 번졌다.살롱 안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다른 영애들도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인을 들였다.'귀족 사회에서는 때때로 다른 뜻으로도 쓰이는 말.특히 젊은 남자
살롱 안에는 은은한 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도 지나치게 커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귀족 영애들의 다과 시간. 하지만 왕의 양쪽 팔이라 불리는 두 가문의 외동딸이 마주 앉아 있는 이상, 이 자리는 단 한 번도 단순한 사교 모임이었던 적이 없었다.엘로이즈 드 로베르. 그리고 재무대신 가문의 영애, 이네스 드 몽브랑.두 사람의 대화는 언제나 부드러웠고, 언제나 우아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늘 얇은 칼날 같은 긴장이 숨어 있었다.그래서인지 같이 차를 마시러 온 다른 영애들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용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찻잔을 괜히 더 천천히 들었고, 누군가는 시선을 애매하게 창밖으로 돌렸다.한 영애가 아주 작게 한숨을 삼켰다.또 시작이구나.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찻잔을 쥔 손끝에 들어간 힘만이 보이지 않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간신히 유지된, 그러나 완벽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미소였다."...글쎄요..."엘로이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렇게까지는..."말끝은 부드러웠다.하지만 이네스는 그 틈을 그대로 넘기지 않았다."제가 영애였어도... 저 아이에게 잘해줬을지도 모르겠어요..."이네스는 천천히 이어갔다."아무리 고아원 출신의 하녀라지만... 동생분과 얼굴이 닮았다면..."이네스의 눈이 조금 휘어졌다."돌아가신 동생에게 속죄한다는 생각으로... 저 아이에게 잘해주시는 것도 이해가 되거든요."말은 다정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상대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한 것이었다.다른 영애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네...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겠죠."그녀는 미소를 유지한 채
저택 안.문이 열리자, 바깥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밀려왔다. 조용하고, 정돈되어있고,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유지된 공간.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섰다. 걸음은 일정했고,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뒤를 귀족 부인이 따랐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그림 하일드가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혔다. 덜컥. 소리와 함께, 바깥의 일은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하인들은 멀리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복도는 여전히 정숙했다.귀족 부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엘로이즈."부드러운 목소리였다.엘로이즈의 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느려졌다."네, 어머니."짧은 대답.부인은 그녀를 한 번 더 살폈다. 얼굴. 숨. 걸음. 그리고 묘지에서의 일. 사과나무. 떨어진 가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부인의 손이 아주 가볍게, 엘로이즈의 어깨에 닿았다."괜찮니."짧은 질문. 하지만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약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흔들림 없이, 단정했다.부인은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많이 놀랐을 텐데."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여전히 부드럽게, 하지만 조금 더 낮게."들어가서 쉬렴."그 말은 배려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결정이었다. 엘로이즈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여전히 일정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 번도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그 순간, 그림 하일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엘로이즈의 걸음이 방향을 틀자마자— 한 발 먼저,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뒤로 붙었다. 반 걸음. 항상 유지하던 그 거리. 숨도, 발걸음도 맞춘 채— 조용히 그대로 따라갔다. 지시를 기다리지 않았다. 묻지도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ㅡ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올리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시선은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옆에 있는 시선은 느껴지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그림 하일드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침묵.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씨익. 소리 없는 웃음. 짧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은 웃음. 그림 하일드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이 그대로 굳어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찰싹.짧은 소리."...가자."낮은 목소리.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ㅡ 바퀴가 굴러갔다. 자갈 위를 밟으며 일정한 리듬으로. 마차가 다시 길 위로 나아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차는 조용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말들은 고개를 흔들며 걸었고, 바람은 옆을 스치듯 흘러갔다.안장 위의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히 굳어져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너."짧은 한 음절.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굳었다. 숨이 한 번, 얕게 끊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주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맞지는 않았어요."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하마터면ㅡ"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큰일 날 뻔했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이상하네."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카일.'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너도 죽는다. 이해했지?'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