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왕비 : Chapter 1 - Chapter 10

14 Chapters

프롤로그

주요 등장인물 소개 그림 하일드 : 고아원 출신의 귀족가 하녀, 훗날 사악한 왕비.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온 소녀. 고아원에서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부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배웠다.쓸모 없는 아이는 남겨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항상 마지막에 손을 내밀었고, 항상 조용히 있었고, 항상 문제되지 않는 존재로 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았다.귀족가에 들어온 뒤, 그 규칙은 더 정교해진다. 틀리지 않는 법.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는 법. 상대의 기분을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법.이곳에서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세상은선택의 공간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림 하일드는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 생각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내는 것. 욕망은 애초에 가져서는 안 되는 것.그렇게 살아온 그녀에게 엘로이즈의 곁은 처음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명령이 아닌 말. 평가가 아닌 시선.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는 태도.하지만 그 경험은 그녀를 구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으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순간, 그녀의 방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감정을 버려야 했던 아이가 이제는 감정 때문에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자신이 아니라 중요한 누군가를 향해.그녀는 점점 누군가를 대신하는 존재가 되고,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틀리지 않기 위해 시작한 삶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그녀는 되찾는 대신 완전히 지워버리는 쪽을 택한다.이름. 감정. 선택.모든 것이 바뀐 뒤에 남는 건 단 하나.살아남은 결과. 그리고 그 결과로 존재하는 사람.훗날, 그녀는 더 이상 그림 하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누군가의 그림자였던 아이는 스스로 하나의 중심이 되고,그 자리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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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돌은 차가웠다.아니, 차갑다는 감각조차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한 왕비는 숨을 들이마시려 했다. 그러나 좀처럼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쪽이 바위에 눌려 있었고, 목에서는 노파의 연약한 갈라진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파. 주름진 손, 굽은 등, 한때 거울 앞에 서던 몸과는 전혀 다른 형체. 이게 지금의 자신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끝이, 누구보다도 추악한 노파의 모습이라니. 웃음 비슷한 숨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의 목소리였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왕비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분노도, 저주도 아니었다. 이름이었다. 아직 왕비가 아니었고, 마녀도 아니었을 때 불리던 이름.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노파의 굳은 가슴이 잠시 풀리는 듯했다. 그때의 그녀는 귀족 가문의 하녀였다. 대리석 바닥을 새벽마다 닦았고, 주인 아가씨의 드레스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바느질을 했다. 손은 늘 바빴고, 시선은 항상 낮아야 했다. "눈 마주치지 마." "먼저 말하지 마." "웃어도 소리 내지 마."그런 규칙 속에서 살았지만, 그녀는 그 생활을 싫어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귀족 아가씨는 언제나 아름다웠고, 그녀는 언제나 그 곁에 있는 존재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누가 더 예쁜지를 묻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손이 야무지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어."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거울을 오래 보지 않았다.아가씨의 머리를 빗겨주며 자연스럽게 비치는 자기 얼굴을 스쳐 지나가듯 볼 뿐이었다. 그 얼굴은 특별할 것도, 흉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왕비는 돌 아래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려다 멈췄다. 노파의 손은 말을 듣지 않았다. 관절은 굳어 있었고, 손톱은 부러져 있었다. 이 손으로, 아가씨의 드레스를 정리했었다. 이 손으로, 머리 장식을 닦았고, 왕관을 받쳐 들었고, 그리고 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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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복도를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한 번 멈춰 섰다.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나이 많은 하녀가 다가와 있었다. 저택 안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굳은 기척이 있었다. 하녀장은 귀족 부인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이 아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아가씨의 하녀입니까."질문이었지만 확인에 가까운 말투였다.귀족 부인은 소녀를 한 번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말은 짧았고, 망설임이 없었다."손을 보니 일은 할 줄 알겠더군요."하녀장은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귀족 부인은 덧붙였다."우리 애 성격이 조금 예민한 건 저한테 이미 들었어요."하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잘 가르치겠습니다."잘이라는 말에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귀족 부인은 그 말로 충분하다는 듯 시선을 거두었다."규칙만 제대로 익히게 해요. 우리 애 곁에 설 아이니까."그 말은 부탁도, 걱정도 아니었다. 지시였다. 하녀장은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연민도, 호기심도 없었다. 그저 이 집에 새로 들어온 역할 하나를 확인하는 눈이었다."따라와."그 한마디에 소녀의 발이 움직였다. 하녀장은 소녀를 데리고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짧은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창은 작았고, 빛은 충분하지 않았다.일을 가르치기엔 딱 알맞은 장소였다."이름."하녀장이 먼저 말했다. 소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작게 대답했다."그림 하일드입니다..."하녀장은 그 이름을 반복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여기서는 이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소녀의 시선이 바닥에 더 깊이 박혔다. "중요한 건 역할이야."하녀장은 소녀의 손을 보았다. 굳은 손. 이미 여러 번 일에 길들여진 손."아가씨의 시녀는 아가씨의 하루를 흐트러지지 않게 만드는 자리야. 아침에 기분이 상하면 하루가 망가진다.하루가 망가지면 책임은 네 몫이야."그 말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당연한 순서처럼."그러니까 기억해라."하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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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날 아침 식사 시간.식당은 저택에서 두 번째로 빛이 많이 드는 공간이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은식기와 얇은 도자기 접시가 정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빵은 이미 적당한 두께로 썰려 있었고, 수프에서는 희미한 김이 올라왔다. 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오른편, 반 걸음 뒤에 서 있었다.시선은 낮게. 숨은 일정하게. 소리는 나지 않게.아가씨는 자리에 앉아있었다.잠시 후.문이 열리고 묵직한 발소리가 들어왔다.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말보다 시선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었다.궁정 대신.왕의 곁에서 재정을 맡고, 조약을 검토하고, 귀족들의 이해를 조율하는 사람. 그는 집에서도 걸음이 일정했다. 과장도, 낭비도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 식탁을 한 번 훑어보았다. 식기, 접시, 딸의 표정, 그리고 딸의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그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짧았지만, 분명히 멈췄다.그림 하일드는 그 멈춤을 느꼈다. 고개를 더 숙이지도, 더 들지도 않았다. 그저 그대로."저 아이가.. 새로 들어왔다는 하녀냐."남자의 목소리는 낮았다. 부드럽지도, 거칠지도 않았다.사실을 확인하는 어조였다. 아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네. 며칠전부터 제 곁에 서기로 했어요."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림 하일드를 다시 보았다.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였다.손을 먼저 보았다. 굳은 손. 짧게 정리된 손톱. 하녀장의 규칙을 잘 지킨 자세. 그는 천천히 말했다."손은 쓸 줄 아는군."칭찬도, 감탄도 아니었다. 평가였다.그림 하일드는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배운 대로 하겠습니다."남자는 그 말에 작게 코로 숨을 내쉬었다.웃음도 아니고, 불만도 아니었다."배운 대로라."그는 딸을 보았다."마음에 드느냐."아가씨는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향해 미소 지었다."네. 마음에 들어요."식당 안의 다른 하인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하일드의 심장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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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귀족 부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대신의 얼굴 윤곽이 짧게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당신은 늘... 너무 앞을 보세요."그녀가 조용히 말했다."그 아이는 아직 열여섯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나이와 야심은 비례하지 않소."대신의 답은 짧았다."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아이일수록 더 멀리 보게 되지."귀족 부인은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멀리 본다 해서 다 위로 오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대신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문제는 오르느냐가 아니오."그는 천천히 말했다."오르려는 마음이 누구를 밟고 지나가느냐지."잠시 침묵.귀족 부인은 남편을 오래 보았다."우리 애를 밟을 거라 생각하십니까."그 질문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정확했다. 대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모르오."그리고 덧붙였다."하지만 우리 애는 사람을 너무 쉽게 곁에 두오."그의 시선이 문 쪽으로 잠시 향했다."외로움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지."귀족 부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동생을 잃은 뒤로 딸이 조용해졌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래도—"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그 아이 덕에 요즘은 조금은 웃는 것 같습니다."대신의 얼굴이 굳었다.그 한 문장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웃게 만드는 자가 항상 좋은 자는 아니오."촛불이 짧게 탔다. 대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하녀장은?""이미 방으로 들여보냈습니다.""내일부터는 그 아이의 동선과 접촉을 하녀장이 더 세밀히 관리하게 하시오."귀족 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감시하라는 말씀이십니까.""확인하라는 말이오."대신은 차갑게 말했다."확인은 의심이 아니라 책임이오."그는 문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우리 애는 가문의 얼굴이오."잠시 멈추었다."얼굴 곁에는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문이 닫혔다.방 안에는 촛불과 귀족 부인만 남았다.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야욕이라..."그녀의 기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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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거울 속에서 서로의 시선이 잠시 맞물려 있었다. 그림 하일드는 아직도 자신의 얼굴이 거울 안에 또렷하게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희미하게 입가를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마치 웃는 방법을 천천히 떠올리는 사람처럼."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목소리는 낮았고 조심스러웠다.엘로이즈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지금..."말끝이 부드러웠다."웃은거야?"그림 하일드는 잠깐 당황한 듯 눈을 내렸다.엘로이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다."너 웃는 거..."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림 하일드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았다."처음 보는 것 같아."그 말은 놀림도 아니었고 비난도 아니었다.그저 새로운 걸 발견한 사람의 조용한 감탄에 가까웠다.그림 하일드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방 한쪽에서 하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그쪽으로 향했다.하녀장은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서 있었다."이제 아침 식사하러 가실 시간입니다."엘로이즈는 거울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노란 리본.정돈된 머리.그리고ㅡ그 뒤에 서 있는 그림 하일드.잠깐. 아주 잠깐.그녀의 시선이 다시 거울 속 그림 하일드의 얼굴에 머물렀다.그러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엘로이즈는 가볍게 말했다."가자."식당 안.긴 테이블 위에는 이미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은식기는 어제와 같은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창가로 들어온 햇빛이 식탁 위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오늘도 상석에는 대신이 앉아 있었다.오늘도 그의 오른편에는 부인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손은 포개져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다.식당 문이 열렸다.엘로이즈가 먼저 들어왔다. 걸음은 일정했고 고개는 곧았다.그 반 걸음 뒤에서 그림 하일드가 따르고 있었다.그림 하일드는 아가씨의 의자 뒤 정해진 자리에 멈췄다.엘로이즈가 천천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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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마부의 말이 끝난 뒤에도 마차는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 말발굽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이야기와 전혀 상관 없다는 듯 계속 이어졌다.그림 하일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은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지만 손끝에 힘이 아주 조금 들어가 있었다.그때, 마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 대신 말이다..."고삐를 쥔 손을 살짝 비틀었다."겉으로 보기엔 참 점잖지."짧은 웃음."말도 조용하고, 체면도 챙기고."잠시 후"근데 그런 인간일수록 더 무서운 법이다."그림 하일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부는 혼잣말처럼 계속 이어갔다."권력을 더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인간이다."고삐를 조금 더 당겼다."그리고 자기가 쥐고있는 건... 절대 놓지않아."잠시 침묵."그 인간의 영지 안에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말들이 고개를 흔들며 걸었다."그걸 그렇게 못마땅해 했다. 위험하다고, 왕의 법 밖에 있는 힘이라고. 마법은... 왕이 허락한 것도 아니고, 궁정이 통제하는 것도 아니니까."그림 하일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그 인간 눈에는 그게 그냥 통제가 안 되는 것이었어.통제 안 되는 건— 전부 위험한 거니까."마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그래서 어떻게 했냐."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처음엔 세금 붙이고, 등록하라고 하고,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 다 기록하게 만들었지."그림 하일드의 손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근데 그걸로 끝났겠냐."마부가 피식 웃었다."마법사들 중에는 그걸 거부한 놈들도 있었거든."짧은 숨."그때부터야."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거칠어졌다."박해가 시작된 게."바퀴가 돌을 세게 밟았다."허가 없이 마법 쓰면 처벌. 치유 마법도 금지. 의식도 금지. 모이면 불법."마부는 앞만 보며 덧붙였다."이유는 간단해."짧은 정적."그 인간은 왕보다 위에 있는 힘을 못 견디는 사람이거든."그림 하일드는 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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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철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마부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고삐 위에 얹혀 있었고, 시선은 묘지 한쪽ㅡ 그림 하일드의 뒷모습이 사라진 방향에 머물러 있었다. 바람이 한번 스쳤다. 마른 풀들이 낮게 스쳤고, 철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부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숙였다. "...하." 짧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쪽을 향해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괜히 겁줘서... 미안했다." 말은 조용했지만, 아까의 위협과는 전혀 다른 결이였다. "암살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ㅡ" 잠깐 말을 멈췄다. "...어쩔 수 없었어." 그의 시선이 다시 철문으로 향했다.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마부의 머릿속에 그림 하일드의 얼굴이 아주 잠깐 떠올랐다. 놀란 눈. 숨이 막히던 순간. 그래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던 표정. 마부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 "너라도..." 짧은 정적. "내 마지막 푸념을 들어줘서 고마웠다." 그 말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한 말이라기보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정리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마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마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버지." 그 한 단어가 아주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떨어졌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지만 돌아오는 건 바람 소리 뿐이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아주 작게. "저도..."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오늘 저 첫째 계집을 죽이고..." 고삐를 쥔 손에 아주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당신 곁으로 갈게요." 그 말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정해둔 결론처럼. 그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고요해졌다. 마부,아니,'카일 로웬'은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삐를 정리했다. 말들은 조용히 숨을 내쉬고 있었고, 마차는 여전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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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쾅!!굵은 가지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짧게, 아주 짧게 엘로이즈의 목에 걸려 있던 진주 목걸이가 빛을 받았다. 햇빛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반응하듯, 한 점에서 번져 나오는 미세한 반짝임. 그 반짝임이 공기를 스쳤다. 그리고,툭. 가지의 낙하 궤도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렸다. 정확히 머리 위로 떨어지던 것이 한 치 옆으로 어긋났다. 쾅!가지가 엘로이즈의 바로 옆 땅을 강하게 내리쳤다. 흙이 튀었고, 꽃잎 몇 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엘로이즈!" 부인의 목소리가 터졌다. 그녀가 급하게 다가와 엘로이즈의 어깨를 붙잡았다."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니?" 엘로이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자리. 자기 머리 위로 떨어졌어야 할 가지. 그리고 바로 옆에 박혀 있는 무게.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괜찮아요."목소리는 평소보다 아주 조금 느렸다."맞지는 않았어요."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하마터면ㅡ"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 대신 눈으로 가지를 확인했다. 굵기. 무게. 낙하 위치."...큰일 날 뻔했어."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엘로이즈는 고개를 조금 돌렸다. 떨어진 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눈을 좁혔다."...이상하네."혼잣말처럼 낮게. 하지만 이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표정은 다시 정리되고 있었다. 그때, 조금 뒤에 서 있던 그림 하일드의 손이 굳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방금 전. 나무의 움직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철문 밖에서 느껴졌던 그 시선. 그녀의 눈이 아주 잠깐, 철문으로 향했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카일.'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목이 조여오던 감각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손. 숨이 막히던 순간.'...너도 죽는다. 이해했지?'그 목소리가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림 하일드의 입술이 아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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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마차 문이 닫히고,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고, 시선은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고개를 들지 않은 채ㅡ 시선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안장 위. 카일.그는 이미 그림 하일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하지만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 하일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목이 아주 미세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되살아났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 걸음,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가 발을 올리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움직임은 조심스러웠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시선은 다시 앞으로 고정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옆에 있는 시선은 느껴지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그림 하일드를 바라봤다. 아주 잠시, 침묵.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씨익. 소리 없는 웃음. 짧지만 분명한 의미를 담은 웃음. 그림 하일드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이 그대로 굳어졌다. 카일은 그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찰싹.짧은 소리."...가자."낮은 목소리.말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컹ㅡ 바퀴가 굴러갔다. 자갈 위를 밟으며 일정한 리듬으로. 마차가 다시 길 위로 나아갔다.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마차는 조용히 길을 따라 움직였다. 말들은 고개를 흔들며 걸었고, 바람은 옆을 스치듯 흘러갔다.안장 위의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그림 하일드는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손끝은 아주 미세히 굳어져 있었다. 그때,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너."짧은 한 음절. 그림 하일드의 어깨가 굳었다. 숨이 한 번, 얕게 끊겼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아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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