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apítulo 61 - Capítulo 70

170 Capítulos

61. 기다릴게

"그래. 아직 모르면 됐어."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언니께서는 늘 그렇게 말씀하세요. 제가 모르는 것처럼. 제가 아직 어린 것처럼."서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월령의 가슴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기다림과 칭찬 사이에, 또 하나가 있었다 —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어머니에게도, 궁에도, 언니에게도."서윤아."월령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가 너무 빨리 알게 될까 봐 그래."바람이 정자를 지나며 젖은 창포 향을 흔들었다."알아 버린 뒤에는 모르는 때로 돌아가기 어렵더라. 그러니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정말 네 것인지, 누가 네 손에 쥐여 주고 싶은 것인지 한 번만 더 보라는 말이야.""언니는 제가 또 남의 말에 흔들린다고 생각하시나요?""사람은 누구나 흔들려."월령은 웃지 않았다."나도 흔들려."서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언니도.그 짧은 말이 아이에게 닿는 것이 보였다. 월령은 더 설명을 붙이지 않고, 매실 접시를 조금 밀었다."오늘은 밥부터 먹자."서윤은 한참 뒤에야 숟가락을 들었다.*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돌계단 쪽에서 행랑채 아이가 포목 꾸러미를 들고 오다 미끄러질 뻔했고, 청색 능라 한 자락이 젖은 돌 위로 흘러내렸다. 서윤이 반사적으로 계단을 내려갔다.아직 아이였다 — 비단이 더럽혀지면 어머니가 속상해할 것을 먼저 떠올리는 아이. 서윤은 비단을 집다 멈췄다.그 사이에서 작은 종이 조각이 떨어졌다. 밀랍을 살짝 먹인 얇은 종이였다.겉에는 글자가 없었으나, 접힌 모서리에 흰 실 한 올이 끼워져 있었다. 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서윤아."월령이 정자 위에서 조용히 불렀다."그 비단은 숙모께 올릴 것이니, 젖은 데를 먼저 보아야겠다. 종이는 내가 보마. 손이 젖었잖아. 종이는 물을 먹으면 바로 운다."월령은 혼내지도, 묻지도 않았다. 젖은 종이를 핑계 삼아 아이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 내고 있었다.그 다정한 수가, 서윤에게는 더 견디기 어려
Leer más

62. 한 칸을 비워라

그날 저녁, 측백나무 아래에는 비 냄새 대신 젖은 흙이 마르는 냄새가 있었다. 위지헌은 오늘 우산이 없었다.검은 장포가 밤빛과 거의 같아, 움직이지 않으면 나무 그림자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가까이 갈수록 공기가 달라졌다.흙내와 측백의 서늘한 향 사이로, 낮고 마른 감송향이 천천히 번졌다. 월령은 그 향을 알아챈 순간 숨을 작게 들이켰다.몸은 늘 마음보다 먼저 반응했다."문은 열리지 않았다."위지헌이 먼저 말했다.월령은 걸음을 멈췄다."아셨습니까.""기윤이 보았다. 서윤은 흰 실만 묶었다. 문밖에서 그것을 본 자가 있었고, 뒤를 붙였다."월령은 품 안의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그 뒤에 이것들이 왔습니다."위지헌은 바로 받지 않았다.먼저 그녀의 손을 보았다."네 손에 닿았나.""천으로 감쌌습니다.""잘했다."짧은 칭찬이었는데도, 월령의 손끝이 뜨거워졌다. 위지헌은 주머니를 열어 대나무 조각과 얇은 종이를 차례로 보았다.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주변 공기가 낮아졌다."빠르군."그는 대나무를 달빛 쪽으로 기울였다."북, 동, 남. 네가 남긴 길을 읽었다."종이의 동그라미를 보았다."그래서 남쪽 끝을 다시 눌렀다. 길의 끝이 맞는지 보려고.""서윤이를 더 부를 겁니다.""그래.""제가 막아야 합니다.""막을 수 있다."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다만 막는 모양을 잘 골라야 한다."그는 그녀가 알아들을 말을 고르듯 잠시 침묵했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그 침묵만으로 위압이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월령에게 향한 침묵은 기다림에 가까웠다."바둑에서 잡고 싶은 돌이 있을 때, 처음부터 숨통을 모두 막지는 않는다. 몰리면 달아나고, 달아날 길이 없어지면 죽은 돌처럼 보이다가도 상대의 패가 된다."그는 검지로 허공에 작은 선을 그었다."살릴 돌은 한 칸을 비워 둔다. 그 돌이 어느 쪽으로 숨을 쉬려 하는지 보아야, 손이 늦지 않는다.""서윤이에게 도망칠 길을 남기면 되겠군요."월령이 천천히 말했다.위지헌의 눈썹이 미
Leer más

63. 내가 찾겠다

기윤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옷자락에 풀씨가 하나 붙어 있었고, 손등에는 얕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그러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편문 밖을 본 자는 외궁의 하급 내시 쪽 사람입니다."기윤의 보고는 짧았다."사복을 입었으나 발목 끈이 궁 안 매듭입니다. 천천히 걷는 척했지만 발끝이 깊었습니다."월령은 조계를 떠올렸다.남쪽 연못가의 얇고 눌린 목소리, 첫 음절이 걸리던 말버릇, 입을 막으라던 명령. 궁은 사람을 갈아 쓰는 곳이었다.하나가 잡히면 다른 하나가 왔고, 그래서 궁의 손은 늘 많아 보이고 한 사람의 목숨은 늘 가벼워졌다. 기윤은 품에서 작은 기름종이를 꺼냈다."발자국을 떴습니다."위지헌이 받았다.기윤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그리고 남쪽 별원 쪽도 움직였습니다."월령의 숨이 멎었다.남쪽 별원.은매의 어미와 동생이 있는 곳이었다."말해라."위지헌의 눈이 차게 가라앉았다."약값을 대던 사람이 끊겼고, 어젯밤 작은 수레가 하나 나갔습니다. 사람을 태운 흔적은 있으나, 피는 없었습니다.""그럼 살아 있을까요."월령의 손끝이 차가워졌다.기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에 월령의 가슴이 내려앉았다."죽였으면 숨기지 않는다. 옮긴 것이다."위지헌이 대신 말했다.그리고 월령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아직 늦었다고 단정하지 마라."월령은 입술을 눌렀다.창고 안에서 젖은 눈으로 엎드리던 은매. 병든 어미와 어린 동생을 살리려 독을 들었던 손.월령은 그 아이를 살려 두었고, 진실을 말하면 살 길을 주겠다 했다. 그러나 담장 밖 식솔까지 잡아당기기에는 밤이 너무 깊었고, 적의 손은 너무 빨랐다.죄책감은 날카롭기보다 둔하게, 천천히 속을 눌러 왔다."제가 더 빨리…""아니다."위지헌의 말이 조용히 잘랐다. 너무 차가워 순간 꾸짖음을 받은 듯했으나, 곧 이어진 말은 달랐다."네 손이 짧아서가 아니다. 적이 먼저 그 집의 문턱을 잡고 있었을 뿐이다. 은매를 탓하지도 마라. 가족을 미끼로 삼은 자가 죄를 지은 것이다
Leer más

64. 줄은 끊기지 않았다

기윤이 사라진 뒤, 월령은 비단 주머니를 다시 품었다."왕야. 내일 서윤이에게 길을 하나 남기겠습니다. 등초본의 흡지를 모두 모아 말리게 할 거예요. 집안일이라는 명목으로요. 서윤이가 가져간 흡지가 있다면, 돌아올 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위지헌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월령은 그 침묵을 꾸짖음으로 받아들일 뻔했다.그러나 그의 눈빛은 낯설게 깊었다."너는… 사람을 몰지 않고도 길을 막는구나.""제가 잘못 생각한 것입니까?""아니다. 좋은 수다."그 짧은 말이 밤공기 속에 오래 남았다."왕야께서 바둑으로 말씀해 주신 덕입니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바둑을 좋아하나."뜻밖의 물음이었다."어릴 때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잘 두지는 못합니다.""정말?"그가 낮게 되물었다.월령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보았다. 위지헌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그런데도 그 한마디는 그녀를 곤란하게 했다 — 이미 그녀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 수를 더 두는 사람처럼."조금은 둡니다."월령이 결국 작게 답했다."그럼 다음에는 바둑판으로 말하지.""예?""말로 하면, 네가 자꾸 정치라 오해하니."월령의 숨이 멎었다.그가 알아차렸나 — 자신이 그의 모든 배려를 정치로 돌려놓고 있다는 것을. 위지헌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그녀가 피할 곳을 남기듯 한 걸음 물러섰다.감송향이 조금 멀어졌다.그러자 월령은 숨이 트이면서도, 그 향이 멀어진 자리를 의식하게 되었다."들어가라. 오늘 밤은 길다.""왕야께서는요."묻고 나서 후회했다."내가 걱정되나."그 말은 너무 낮아 도리어 귓가가 뜨거워졌다."왕야께서 밤마다 이곳에 계시면, 심가 안팎의 눈에 걸릴 수 있습니다.""나는 들키지 않는다. 들킨다면, 내가 들키기로 한 때일 것이다."그는 그녀를 보았다."하지만 아직은 아니다."월령은 그 말뜻을 다 알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 그가 일부러 드러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그 생각이 이유 없이 가슴
Leer más

65. 종이는 숨지 못해

비가 그친 다음 날 아침, 청아는 낮은 평상 셋을 서원당 대청 아래 나란히 놓았다. 흰 천을 깔고, 그 위에 등초본을 베낄 때 받쳤던 흡지를 한 장씩 펼쳤다.밤사이 눅어 가장자리가 조금 말린 종이마다, 먹이 스친 곳에 흐릿한 그림자가 남았다."젖은 종이는 그냥 두면 곰팡이가 습니다."청아가 지나가는 하인들에게 또박또박 말했다."아가씨께서 한 장도 빠짐없이 말리라 하셨어요. 한 장도요."말끝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있었다. 월령은 대청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청아는 거짓말에 서툴렀으나, 아주 열심히 하는 거짓말은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저 아이는 원래 작은 일도 세상에서 가장 큰일처럼 떠드는 아이였으니까. 부엌 하녀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종이도 청아 손에 걸리면 쉬이 못 숨겠구나.""숨으면 더 눅습니다."그 말이 어찌나 엄숙한지 하녀들이 작게 웃었다.월령도 희미하게 웃었다.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평상 위의 흡지는 스물여덟 장이었다. 어제 청아가 갈아 댄 흡지는 모두 스물아홉 장이었다.그 아이는 숫자는 잘못 세어도, 물건을 놓은 자리는 잘 잊지 않았다.한 장이 없었다.너무 작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틈이었으나, 월령에게는 대청 한가운데 난 구멍처럼 보였다."잘 말려 다오."월령은 부드럽게 말했다."오후가 되면 뒤집어야 할 거야. 가장자리가 먼저 마르니까."*대청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서윤이었다.오늘도 연한 회색 치마였고, 어제 묻었던 흙은 정성껏 털어 내 보이지 않았다. 서윤은 평상 위 흡지를 보자 아주 잠깐 걸음을 멈췄다.그 멈춤은 짧았다.그러나 월령은 보았다 —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굳었다 풀리는 것까지."언니."서윤이 예를 갖췄다.어머니가 좋아할 목소리였다."일찍 왔구나. 어젯밤은 잘 잤니?""예."거짓말은 너무 고왔다.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거짓말은 지나치게 반듯해, 금방 깨질 것처럼 반짝였다. 월령은 그 반짝임을 건드리지 않았다."도와줄까?"서윤이
Leer más

66. 돌아온 한 장

정오가 가까울 무렵, 없던 한 장이 돌아왔다.아무도 들고 오지 않았다.청아가 뒤집어 놓은 흡지 사이에, 처음엔 없던 종이가 끼어 있었다. 가장자리가 조금 더 눅었고, 접혔다 펴진 자국이 대각선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청아가 발견하자마자 숨을 멈췄다. 서윤은 맞은편에서 마른 천을 접고 있었다.고개를 들지 않았으나, 귀 끝이 희게 질려 있었다. 월령은 돌아온 흡지를 집지 않았다.손끝이 닿으면 아이의 마음이 또 굳을 것 같았다."청아. 이 종이는 아직 덜 마른 것 같구나. 그늘 쪽에 따로 두자."그리고 서윤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젖은 종이가 제 자리를 찾아와 다행이야."서윤의 손이 멈췄다.얇은 천이 손가락 사이에서 구겨졌다. 월령은 그 소리를 들었으나 돌아보지 않았다.어떤 고백은 얼굴을 마주 보지 않을 때 더 쉽게 숨을 쉬었다. 서윤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만 대청을 떠나기 전, 흡지가 놓인 그늘 쪽을 한 번 보았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있었고, 조금의 안도도 있었다.월령은 그 안도를 놓치지 않았다. 돌아올 자리는 아주 좁았지만, 일단 돌아왔다.*오후가 되자 서원당 뒤 창고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은매는 빛을 보자 먼저 눈을 감았다.오래 어둠에 익숙해진 탓에, 회랑 끝에서 드는 햇살도 너무 밝은 모양이었다. 얼굴은 전보다 나아졌으나 뺨은 말랐고, 손목은 약재 자루 끈보다 가늘어 보였다.청아가 묽은 죽과 삶은 배 한 조각, 따뜻한 물이 담긴 사발을 든 쟁반을 내려놓았다."천천히 먹어."월령은 문턱 안쪽에 앉았다.은매는 바로 먹지 않았다.월령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아가씨."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말해도 됩니까.""응."은매는 두 손을 무릎에 올렸다. 손톱 밑의 검푸른 가루는 거의 사라졌으나, 월령의 눈에는 아직 그 흔적이 보이는 듯했다."제 어미와 동생은…"청아의 손이 쟁반 아래에서 굳었다. 월령은 숨을 조용히 들이켰다.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찾고 있어.""심가에 계신 것이 아닙니까.""아직
Leer más

67. 회색 천

그날 저녁, 왕부의 전갈은 평소보다 늦게 왔다. 윤백이 아니라 강무진이었다.강무진은 대청 그림자 안에 서 있었다. 몸집이 커서 그림자마저 무거워 보였다.예를 올릴 때도 필요 이상으로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무례해서가 아니라, 제 몸이 어디까지 숙여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청아는 그를 보자마자 한 걸음 물러섰다.강무진이 내려다보았다."놀라지 마라."목소리는 낮고 짧았다.청아는 더 놀랐다."예. 안 놀랐습니다."완전히 놀란 얼굴로 그렇게 답했다.강무진은 잠시 침묵했다.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윤백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에서 들렸다."무진은 위로가 서툽니다.""윤백 나리도 오셨어요?"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저는 지나가던 중입니다.""늘 지나가시네요.""길이 많아서 그렇습니다."강무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윤백은 담장 너머에서 더 말하지 않았다.월령은 그 짧은 소란 덕에 조금 숨을 돌렸다. 강무진은 품에서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낡은 회색 천이었다.끝에는 두 번 묶은 실매듭이 있었다. 한 번은 약하게, 한 번은 세게.월령의 손끝이 차게 식었다."어디서 찾았습니까.""남쪽 길목."강무진은 천 조각을 내려놓았다."수레는 놓쳤습니다."청아가 숨을 삼켰다.강무진은 변명하지 않았다."아이 기침 소리를 들은 자가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다."그 말에 월령은 눈을 감을 뻔했다.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 방 안의 숨을 붙들었다.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지, 그곳에 선 사람들은 모두 알았다."왕야께서는요."월령이 물었다.강무진의 시선이 잠깐 움직였다."남운로 쪽을 보고 계십니다."남운로.등초본의 마지막 동그라미가 찍혔던 곳이었다. 은매 가족을 옮긴 수레와, 심가 장부의 함정이 같은 길목으로 모이고 있었다.월령은 손수건을 접었다."왕야께 전해 주세요. 은매 동생은 기침을 참을 때 혀끝으로 이를 친다고 합니다. 딱, 딱, 하고요."강무진의 눈이 아주 작게 변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이름보다 쓸모 있는 정보
Leer más

68. 바둑판

밤이 내리고, 월령은 다시 측백나무 아래로 갔다.오늘 밤은 맑았다.비가 씻고 간 하늘에 별이 몇 개 떠 있었고, 젖은 잎들은 달빛을 받아 검은 비단처럼 빛났다. 후원 끝 살구나무에는 작은 열매가 더 또렷해져 있었다.꽃이 지고 남은 것들은 처음엔 보잘것없어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 더 단단해졌다. 위지헌은 작은 바둑판을 들고 있었다.월령은 걸음을 멈췄다."정말 가져오셨습니까."묻고 나서야, 너무 놀란 목소리를 냈다는 것을 깨달았다."말로 하면 네가 정치라 오해한다 하지 않았나.""제가 오해한다고 하신 건 왕야십니다.""그럼 내가 바로잡을 책임도 있겠지."월령은 대답을 잃었다.그는 바둑판을 낮은 돌 위에 놓았다. 손바닥 두 개를 붙인 정도의 작은 여행용 판이었다.감송향이 밤공기 속에서 낮게 번졌다."앉아라."명령처럼 짧았으나, 손은 먼저 돌 위의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월령은 그 손끝을 보았다.길고 곧은 손가락이 돌 표면의 물기를 천천히 걷어 냈다. 다른 사람에게는 칼을 쥘 손이, 지금은 그녀가 앉을 자리를 닦고 있었다.그 느린 손길이 이상하게 숨을 낮게 만들어, 월령은 얼른 눈을 내렸다."괜찮습니다.""젖은 자리에 앉으면 청아가 또 운다.""청아 핑계를 자주 대십니다."말이 나간 뒤, 월령은 스스로 놀랐다.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그럼 네 핑계를 대도 되나?"월령의 숨이 멎었다.그는 아무렇지 않게 바둑돌 주머니를 열었으나, 월령의 귀 끝은 이미 뜨거워져 있었다.그녀는 결국 앉았다.위지헌은 흑돌 하나를 판 위에 놓았다."이것이 서윤이다."곧 백돌 셋을 멀찍이 놓았다."자녕궁, 호부, 문밖의 손.""셋이 모두 서윤이를 향하고 있군요.""그래.""그러면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위지헌은 곧장 막지 않았다. 흑돌 옆 한 칸을 비워 두고, 그 너머에 다른 흑돌 하나를 놓았다."이것은 너다.""제가 너무 멀지 않습니까?""가까우면 그 아이가 숨을 못 쉰다."그는 차분히 말했다."멀면 손이 닿지 않고
Leer más

69. 미끼가 둘

그때 담장 밖에서 아주 작은 새소리가 났다.한 번.다시 한 번.위지헌의 눈빛이 차게 변했다. 윤백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이번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왕야. 남운로에서 연기가 올랐습니다."월령의 손끝이 얼어붙었다."수레입니까."윤백은 월령을 보지 않고 위지헌에게 말했다."강무진이 따라붙었습니다. 다만…"말끝이 끊겼다."다만?"위지헌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아이 기침 소리가 둘로 갈라졌답니다."월령은 그 뜻을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위지헌이 설명했다."미끼를 둘로 나눈 것이다."바둑판 위의 돌들이 갑자기 낯설어졌다.하나의 수레가 아니었다.아이의 기침 소리를 따라가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적은 은매 가족을 숨기는 데 그치지 않고, 찾는 사람의 손까지 둘로 찢으려 했다."어느 쪽을…"월령이 숨을 삼켰다.위지헌은 이미 일어서고 있었다."둘 다.""하지만 사람이…""있다."그는 월령을 보았다."너는 심가에 남아라.""저는…""은매를 지켜라."그 말에 월령이 멈췄다.위지헌은 그녀가 알아들을 만큼 짧게 덧붙였다."밖의 미끼를 흔드는 동안, 안의 증인을 노릴 수 있다."월령의 손이 소매 안에서 굳었다. 은매, 서윤, 흡지, 서쪽 편문.모든 자리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위지헌은 바둑돌 주머니를 닫지 않았다.판 위에는 아직 돌들이 놓여 있었다. 비워 둔 곳과 돌아온 자리, 막아야 할 길과 열어 두어야 할 길이 모두 그대로였다."월령."그가 낮게 불렀다.월령이 고개를 들었다."판은 그대로 두어라."그 말은 차가웠으나, 이어진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내가 돌아와서 마저 설명하겠다."그는 바둑판을 남겨 두고 돌아섰다.감송향이 빠르게 멀어졌다.월령은 그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판 위에는 서윤을 뜻하는 흑돌 하나와, 자신을 뜻한다던 흑돌 하나,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작은 기회 하나가 남아 있었다.달빛이 그 돌 위에 걸렸다.*멀리 서원당 쪽에서 청아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아가
Leer más

70. 안쪽

은매가 사라졌다는 말은, 밤공기보다 먼저 월령의 손끝에 닿았다. 청아는 거의 뛰어오다시피 했으나, 마지막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숨은 목구멍에서 가늘게 부서지고 있었고, 치맛자락에는 뒤뜰의 젖은 흙이 묻어 있었다. 품에 넣어 둔 열쇠가 삐져나와 달빛을 받았다."제가 문을 잠갔습니다."청아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분명히 안에서 잠그고, 바깥 고리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월령은 먼저 아이의 손을 보았다. 열쇠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거짓말하는 손이 아니라, 너무 놀라 제 잘못부터 찾는 손이었다."청아. 숨부터 천천히 쉬어.""아가씨, 제가…""네가 놓친 게 아니라, 누가 네가 지키는 것을 알고 온 거야."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 위로였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아이를 달래는 말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말이었다.월령은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측백나무 아래 작은 돌 위에는 아직 흑돌과 백돌이 놓여 있었다.서윤을 뜻한다던 돌, 자신을 뜻한다던 돌, 그 사이에 놓인 기회 하나. 위지헌은 판을 그대로 두라 했다.밖의 미끼를 흔드는 동안 안의 증인을 노릴 수 있다 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알았기에 떠났다.그 생각이 목 안쪽을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그가 자신을 멀리 두고 움직인 것은 배려였을까, 판이 흔들릴 것을 미리 계산한 수였을까.묻고 싶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먼저였다."창고에 누가 들어왔니?""아무도요. 제가 약방 종에게 죽을 받아 오려고 잠깐…"청아의 목소리가 끊겼다."그때 복도 끝에서 기침 소리가 났습니다. 은매가 듣고 몸을 세웠어요. 아이가 이를 치는 소리 같다고…"월령의 손끝이 멈췄다.딱, 딱.은매가 말한 동생의 버릇.그것을 누군가 흉내 냈다."그 뒤에는?""은매가 문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 창고 안쪽 벽에서 소리가 또 났어요. 꼭 아이가 벽 너머에서 참는 것처럼요."청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열쇠를 찾는 사이에, 안쪽 약재 자루 뒤가
Leer más
ANTERIOR
1
...
56789
...
17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