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apítulo 71 - Capítulo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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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피난로

서원당 뒤 창고 안쪽은 약재 냄새와 젖은 흙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정무는 말없이 등불을 낮춰 들었다.늙은 호위장의 왼쪽 귀는 거의 듣지 못했으나, 발소리는 젊은 무사들보다 가벼웠다. 그는 약재 자루를 하나씩 치우더니 벽 아래쪽을 짚었다.손끝이 닿은 자리에서 먼지가 가늘게 떨어졌다."열렸습니다."정무가 말했다."안쪽에서 누군가 밀었습니다. 창고 안 사람이 길을 몰랐다면, 바깥에서 소리를 넣어 유인했을 겁니다."월령은 벽 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돌가루가 묻은 나무판 아래에 아주 작은 천 조각이 끼어 있었다.은매의 옷자락이었다.며칠 창고에서 입고 있던 낡은 회색 치마 끝.월령은 천을 집어 들었다.천 끝에는 약재 가루가 아니라 희미한 향이 묻어 있었다. 자녕궁의 분향도, 한씨의 매화향도 아니었다.더 값싸고 건조한 냄새 — 외궁의 낮은 처소에서 오래 피운 싸구려 향을 옷에 배게 한 사람의 냄새였다.조계.그 이름이 떠올랐으나, 월령은 소리 내지 않았다.그는 잡혀 있었다.그러면 그의 손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계의 길을 아는 누군가였다."이 통로가 어디로 이어지지?""서고 뒤 작은 화단을 지나, 서쪽 마구간 아래로 빠집니다."정무가 답했다."옛 피난로입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길은, 오래 묻어 둔 사람에게 팔리기 좋지."월령은 천 조각을 소매에 넣었다.정무가 그녀를 보았다.노인의 눈은 군말 없이 깊었다."아가씨께서는 서원당으로 돌아가십시오.""은매가 울면 소리가 멀리 갑니까?"정무는 잠시 침묵했다."통로가 좁아, 울음보다 숨소리가 더 멀리 갑니다."월령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은매는 울지 못했을 것이다.동생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믿었다면, 울기는커녕 숨조차 삼켰을 것이다. 가족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 아이의 발목을 잡아끌었을 테니까.그 마음을 탓할 수 없었다. 가장 약한 곳을 건드리는 손은 늘 빠르고 정확했고, 그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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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허락을 구했어야지

서쪽 마구간 아래 통로는 흙냄새가 짙었다. 은매는 그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입에는 헝겊이 물려 있었고, 손목은 뒤로 묶여 있었다. 눈물은 흘렀으나 소리를 내지 못했다.벽 너머에서 들리던 아이의 기침 소리는 이미 멎은 지 오래였다.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은매는 먼저 안도했다.그리고 곧바로 그 안도 때문에 죽고 싶어졌다. 동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긴 자신이 싫었다.동생이 아니었다면 어미도 동생도 여전히 저 밖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뜻인데, 그 사실에 안도한 마음이 너무 더러워 견딜 수 없었다.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소리 내지 마라."얇은 목소리였다.첫 음절이 목에서 걸렸다."소, 소리 내면 네 동생 목이 먼저 열린다."은매의 몸이 굳었다.조계와 닮았으나 조금 더 어린 목소리였다. 말끝을 누르는 습관도 덜 단단했다."네가 살아 있으면 안 된단다."그 사람은 가까이 오지 않았다."다만 지금 죽이면 심가가 시끄럽지. 조용한 곳으로 가자."은매는 고개를 저었다.헝겊 때문에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통로 끝에서 바람이 움직였다.어둠이 갈라지는 소리는 없었다.발소리도 없었다.그런데 은매 앞에 서 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옆으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히는 둔한 소리가 났고, 얇은 목소리가 목 안에서 부러졌다."그 아이를 옮기려면,"낮은 목소리가 어둠을 눌렀다."먼저 내게 허락을 구했어야지."은매는 눈을 크게 떴다.감송향이 흙냄새 속으로 번졌다.위지헌이었다.그는 등불 없이도 어둠의 결을 아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검은 장포 끝에 흙이 묻었고, 왼쪽 소매 아래에는 피가 얇게 스며 있었다.그러나 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은매의 입에 물린 헝겊을 풀어 준 것은 윤백이었다."숨은 천천히. 한꺼번에 쉬면 더 아픕니다."은매는 숨을 몰아쉬다 기침을 했다."제, 제 동생…"위지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 은매는 모든 것을 알아차릴 뻔했다.그러나 위지헌은 거짓말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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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북문으로

서원당 뒤뜰에 은매가 돌아왔을 때, 월령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매는 흙투성이였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그러나 살아 있었다.그 사실이 너무 커서, 월령은 먼저 눈물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대신 숨이 가늘게 떨렸다.은매가 무릎을 꿇으려 했다. 월령이 먼저 손을 뻗어 붙잡았다."무릎 꿇지 마."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은매가 멈췄다."아가씨…""내가 늦었어."그 말에 은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청아는 옆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울면 죽이 짜진다던 말을 잊은 듯했다.위지헌은 뒤에 서 있었다.월령은 그제야 그를 보았다. 검은 장포 끝의 흙, 소매 아래 스민 피, 그리고 가까이 오지 않으면서도 모든 길을 막아선 듯한 자세.감송향이 밤의 흙냄새와 함께 낮게 깔렸다."왕야."월령의 목소리는 작았다."은매를 살려 주셔서…""네가 살리라 한 사람이다."위지헌은 그녀의 말을 끊지도, 끝나기 전에 답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녀가 고개를 숙이려는 것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고개는 들고 말해라."월령이 멈췄다."네가 버리지 않은 사람을 구한 일이다. 네가 고개 숙일 일이 아니다."그 말은 다정하게 들리지 않았다. 월령은 오히려 차갑게 느꼈다 — 마치 이미 정해진 판단이었다는 듯, 심가의 증인을 보호했을 뿐이라는 듯.그래도 마음은 자꾸 이상한 쪽으로 흔들렸다. 그가 왜 피를 묻히고 돌아왔는지, 왜 은매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먼저 보았는지.월령은 그 물음들을 모두 삼켰다."왕야의 소매가…"위지헌은 제 소매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네가 볼 피는 아니다."말은 짧았다.그러나 곧 그녀의 얼굴을 보고 덧붙였다."내 상처는 아니다. 놀라지 않아도 된다."월령의 숨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 한마디로 사람을 얼리고, 또 한마디로 풀어 놓았다.다른 사람에게는 앞의 한마디만 남기면서, 자신에게는 뒤의 한마디를 남겼다. 월령은 아직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그때 윤백이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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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길목

은매의 동생이 북문로 위로 옮겨졌다는 말은, 단순한 납치가 아니었다. 그 길을 아는 사람들은 북문로라 불렀고, 장부를 쓰는 사람들은 병량 제삼로라 적었다.같은 길이 누구에게는 남편과 아들을 삼키는 길이었고, 누구에게는 창고의 숫자가 한 줄 줄어드는 일이었다. 누군가 은매의 가족을 심가의 집안 다툼에서 나라의 길목 위로 끌어냈다.길목 위에 오른 사람은 쉽게 사라진다. 수레는 군량 수레가 되고, 아이는 잡역 아이가 되고, 병든 여인은 약초 캐는 촌부가 된다.이름은 길에 떨어지고, 먼지만 남는다.월령은 그 말을 이해했다.이해했기에 더 무서웠다.새벽이 올 때까지 서원당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은매는 청아가 데운 물로 손과 발을 닦았으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입가의 상처에는 약을 발랐고, 손목의 묶인 자국에는 얇은 천을 감았다. 그런데도 은매는 자꾸 손목을 내려다보았다."여기에도 실을 묶어 주세요."은매가 낮게 말했다.청아가 약그릇을 놓칠 뻔했다."상처가 있는데 실을 묶으면 더 아프잖아.""아프면 잊지 않습니다."은매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차분했다."제가 또 속으면 안 되니까요."청아는 월령을 보았다.월령은 잠시 은매의 손목을 바라보다가, 바느질함에서 가장 부드러운 흰 천실을 골랐다. 회색 실은 아직 찾지 못했다.대신 흰 실을 아주 느슨하게 감았다."아프게 묶지는 않을 거야.""아가씨.""잊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아픈 것 말고도 있어."월령은 매듭을 작게 지었다."네가 잊지 못할 일이라면 나도 잊지 않을게. 그러니 네 몸에 벌을 먼저 주지 마."은매의 눈가가 젖었다.그러나 울지 않았다.눈물이 나올 자리마저 아직 얼어 있는 듯했다. 그 곁에서 청아는 입술을 꾹 다물고 실 끝을 정리했다.눈치 빠른 아이였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겁먹은 것이 아니라, 은매를 놓쳤다는 마음이 아이의 손끝을 더 야무지게 만들고 있었다.*날이 밝자 심가의 마당은 어제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마구간에서는 말 여물에 볏짚을 섞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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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그래서 더 미워요

서윤은 대청 앞에 서 있었다. 밤을 거의 새운 얼굴이었다.분을 얇게 올렸지만 눈 밑의 그늘을 다 가리지는 못했다. 손에는 작은 약합을 들고 있었다.어른들이 병문안 올 때 들고 오는 모양새를 흉내 낸 듯했다."언니."서윤은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어제 은매가 놀랐다고 들었어요. 제가 쓸 수 있는 연고가 있어서…"청아의 얼굴이 굳었다.은매는 안쪽 방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몸을 움츠렸다. 월령은 그 모든 반응을 보았다.서윤도 보았을 것이다.자기가 들어서자 방 안이 굳었다는 것을, 예민한 아이가 모를 리 없었다."고마워."월령은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지금 은매가 사람을 많이 보면 놀랄 거야. 약은 내가 전해 줄게."서윤은 약합을 내밀었다.손끝이 떨리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이 더 애처로웠다."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말은 너무 갑작스러웠다.청아가 숨을 삼켰다.월령은 서윤을 오래 보았다. 서윤의 말투는 어른스러웠으나 그 물음은 아이였다.어른 흉내를 내던 껍질 아래에서, 누가 자신을 미워하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왜 그렇게 생각했니?""다들 저를 피해서요.""네가 피하고 싶은 말을 들을까 봐, 사람들이 말을 고르는 걸 수도 있어.""그 말이 그 말 아닌가요?"서윤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날카로워졌다. 곧 스스로 놀란 듯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제가…""서윤아."월령은 낮게 불렀다."너는 아직 내게 약을 가져다줄 수 있구나."서윤이 고개를 들었다."그럼 됐어.""왜요?""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야."월령은 약합을 받아 들었다."네가 정말 잘못한 일이 있다면 언젠가 말해야 할 거야. 하지만 오늘 내가 묻지 않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야."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월령은 한 걸음 가까이 가지 않았다."네가 말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거야."서윤의 눈이 젖었다.그러나 울지 않았다.울면 아이처럼 보일까 봐 참는 얼굴이었다."언니는 늘 그렇게 말해요.""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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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살릴 순서

위지헌은 밤이 깊어서야 왔다. 측백나무 아래 감송향이 먼저 닿았다.월령은 뒤돌아보지 않고도 그가 왔음을 알았다. 그 사실이 자신을 더 불안하게 했다.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을 몸이 먼저 익히고 있었다."회암역이라 들었습니다."위지헌은 고개를 끄덕였다."무진이 놓친 수레가 그곳까지 갔다.""놓쳤다는 말은…""사람은 보지 못했다."그는 바로 덧붙였다."하지만 네가 준 단서가 맞았다. 아이가 혀끝으로 이를 치는 소리를 들은 역졸이 있다."월령의 손이 소매 안에서 굳었다."살아 있군요.""그렇다.""어머니는요."위지헌의 침묵은 짧았다.그 짧은 침묵이 답이었다.월령은 눈을 내리깔았다."모릅니까.""아직 모른다."그는 거짓을 보태지 않았다."수레는 둘로 갈라졌다. 아이의 흔적은 회암역에 남았고, 병든 여인은 다른 길로 빠졌다.""어디로요?""내수사 물품을 실은 수레가 같은 시각 동쪽 길을 탔다."내수사.황실의 사사로운 창고를 관리하는 곳. 궁의 옷감, 향, 약재, 사치품이 그 이름으로 움직였다.겉으로는 작은 살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궁의 손이 조정의 장부를 거치지 않고 사람과 물건을 옮기는 길이었다."자녕궁이군요."월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대신 작은 바둑돌 두 개를 꺼냈다.오늘은 판이 없었다.그는 돌을 손바닥 위에 놓고, 하나를 월령 쪽으로 조금 밀었다."길이 갈라졌을 때는, 더 울리는 쪽을 쫓고 싶어진다.""은매 동생이요.""그래."그는 다른 돌을 손끝으로 눌렀다."하지만 소리가 큰 쪽이 진짜 목적이 아닐 때가 많다. 아이는 들키기 쉬운 미끼였고, 병든 여인은 조용히 사라지기 쉽다.""그럼 어머니를 먼저 찾아야…""둘 다 찾는다."월령이 그를 보았다.위지헌은 아주 차분했다."다만 오늘 밤에 둘 다 데려오기는 어렵다."월령의 숨이 흐려졌다."어느 쪽을 먼저 구하실 겁니까."그 말은 너무 잔인했다.묻는 자신도, 답해야 하는 그도. 위지헌은 오래 침묵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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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온기

회색 실은 따뜻한 물 위에 놓이자 조금씩 풀어졌다. 청아는 작은 사기 대접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물이 식지 않도록 대접 아래에 천을 두 겹 깔았고, 옆에는 마른 수건을 세 장이나 준비해 두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보다 많은 준비라며 스스로 민망해했을 아이가,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매는 그 앞에서 숨만 쉬었다. 실은 동생의 손목에 있던 것과 같았다.어미가 낡은 속곳 자락을 꼬아 만들었다던 빛.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약하게 한 번, 세게 한 번 묶는 버릇까지 같았다.하지만 손은 없었다.실만 풀려 대접 바닥에 가라앉았다. 월령은 은매 곁에 앉아 있었다.어깨에 손을 얹지는 않았다. 닿으면 아이가 무너질 것 같았고, 닿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멀어 보일 것 같았다.그래서 월령은 은매의 손이 닿을 만큼만 가까이 앉았다."살아 있을까요."은매가 물었다.목소리는 마른 나뭇잎처럼 작았다. 월령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거짓말은 쉬웠다.그러나 쉬운 말은 사람을 더 오래 기다리게 했다."왕야께서 살아 있는 흔적이라 하셨어."은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분 말은 믿어도 됩니까."청아가 숨을 들이켰다.그러나 월령은 그 물음이 무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잃을까 두려운 사람은, 가장 단단해 보이는 말부터 의심한다.무너질 때 덜 아프려고."믿어도 되는지 나도 아직 배워 가는 중이야."월령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왕야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는 않으셔."은매는 실을 보았다."그럼 제 동생이 살아 있다는 말도…""들은 것과 본 것만 말하신 거야.""그게 더 무섭습니다.""응."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그 솔직한 말에 은매의 입술이 떨렸다. 아가씨도 무섭다고 말할 수 있구나.위에 선 사람이 두려움을 숨기지 않으면, 아래 선 사람은 자기 두려움을 조금 덜 부끄러워해도 된다. 월령은 그것을 황궁의 높은 방에서 너무 늦게 배웠다.오늘은 늦고 싶지 않았다.청아가 물을 갈아 오겠다며 일어섰다.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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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네 손이 닿은 자리

정오 무렵, 왕부 의원이 서윤이 가져온 약합을 돌려보냈다.작은 쪽지가 함께 있었다.'독은 없음. 다만 자녕궁 금선 가루 극미량. 직접 넣은 자는 모를 수도 있음.' 월령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독은 없었다.그 사실에 먼저 안도했다.그리고 금선 가루라는 말에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자녕궁 내지의 금선은 손끝과 소매에 남아 사람의 개입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서윤이 그것을 알고 넣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약합이 자녕궁 손을 거쳤다는 뜻은 분명했다.서윤은 아직 누군가가 건넨 물건과 제 마음의 경계를 가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금지의 목소리가 들렸다."큰아가씨."서윤의 곁에서 서신을 나르던 아이. 남쪽 연못에서 궁의 손과 닿았던 아이.지금은 서윤보다 더 창백한 얼굴이었다."서윤 아가씨께서… 약합을 돌려받고 싶다 하십니다.""서윤이가 직접 오지 않고 너를 보냈구나.""아가씨께서 밤새 토하셨습니다. 음식이 얹힌 듯하다 하셨지만…"금지는 말을 삼켰다.월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안내해."*서윤의 방에는 향이 너무 짙었다. 한씨가 피우는 매화향이 아니라, 자녕궁에서 받은 붓갑에 배어 있던 향이었다.얇고 고운 냄새였지만 오래 맡으면 머리가 무거워지는 향. 서윤은 창가에 앉아 있었다.얼굴은 희고, 눈가에는 잠을 자지 못한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언니."서윤은 일어나려 했다."앉아 있어."월령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가벼운 명이 있었다.서윤은 다시 앉았다.그 아이는 늘 명령을 싫어하면서도 명령에 먼저 몸이 반응했다. 어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너무 오래 훈련된 몸이었다."약합을 돌려받고 싶다 들었어. 누가 준 약이니?"서윤의 눈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어머니가…""서윤아."월령은 그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다시 말해도 돼."서윤의 손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손끝에는 금선 가루가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햇살이 닿아야 겨우 보이는 빛. 월령은 그것을 보았으나 손을 잡지 않았다."자녕궁에서 온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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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등불

그날 밤, 위지헌은 서원당에 들어오지 않았다.대신 기윤이 왔다.기윤은 담장 그림자처럼 조용히 나타나, 청아가 들고 있던 물동이를 놓칠 뻔하게 만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물동이를 받았고, 받은 뒤에야 자신이 너무 가까이 섰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한 걸음 물러났다."죄송합니다."청아는 물동이보다 기윤을 더 의심스럽게 보았다."어디서 나오신 겁니까?""담장.""그건 압니다."기윤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월령은 아주 작게 웃을 뻔했다.그러나 기윤의 손에 들린 것이 웃음을 멈추게 했다.작은 검은 깃.북문군 역참에서 긴급 전갈에 쓰는 깃이었다."왕야께서 회암역으로 가셨습니다."기윤이 말했다."아이의 흔적을 따라붙으셨고, 강무진은 내수사 수레 쪽으로 갔습니다.""둘이 갈라졌군요.""예."월령의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길은 이미 둘로 갈라졌고,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곳에 흩어졌다.그중 누군가는 끝내 손이 닿지 않을지도 몰랐다."왕야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기윤은 잠시 말을 골랐다."심가 안채의 등불을 밤새 끄지 말라 하셨습니다.""은매가 돌아올 수 있게요?""예. 밖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밝은 집을 먼저 봅니다."그 말은 위지헌의 말투와 조금 달랐다. 외워 온 문장이 아니라, 자기 말로 바꾸어 전한 듯했다.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기윤은 물러나려다 멈췄다."그리고…"그의 귀 끝이 아주 미세하게 붉어졌다."왕야께서, 아가씨께서 밤새 서 계시면 청아가 운다고 하셨습니다."청아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왜 제가 또 나옵니까?"기윤은 더 대답하지 못했다. 월령은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아주 작고 희미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이 나온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잠시 숨을 놓았다.은매도, 청아도, 기윤도.큰 구원이 오기 전에, 사람은 이런 작은 틈에서 먼저 한 번 살아났다. 월령은 등불을 더 켜게 했다.서원당 처마 아래, 약방 앞, 서쪽 창고, 어머니의 방 앞.불빛은 밤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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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은호

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은호야.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은호는 작았다.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았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딱, 딱.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 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청아는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해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은매는 의원의 얼굴만 보았다.월령은 은매를 보았다.위지헌은 문가에 서서 아무도 보지 않는 듯했으나, 사실은 모두를 보고 있었다."당장 목숨을 잃을 맥은 아닙니다."의원이 마침내 말했다.은매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다만 오래 굶었고, 연기를 마셨습니다. 며칠은 열이 오를 수 있습니다.""연기요?"월령이 물었다."수레 안에 젖은 쑥을 태운 흔적이 있습니다. 기침 소리를 숨기려 한 듯합니다."은매가 동생의 손을 더 꼭 잡았다. 기침 소리를 숨기려 아이 곁에 연기를 피웠다.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그저 방법이었을 것이다. 들키지 않기 위한 조치, 장부에 남지 않는 운반의 요령.그러나 은매에게는 동생의 작은 폐 속으로 들어간 검은 연기였다.월령은 눈을 내리깔았다.종이 위에서는 수레 하나, 잡역 아이 하나, 병든 여인 하나. 사람의 방 안에서는 기침과 손목과 울음을 참는 목울대.두 세계 사이를 잇는 것이 장부였고, 그 장부는 이미 거짓말을 배운 지 오래였다. 위지헌이 문가에서 낮게 물었다."아이 곁에 누구를 둘 거냐.""은매가 둡니다."월령이 답했다."그래."위지헌은 더 묻지 않았다.다만 의원에게 한마디를 남겼다."이 아이의 기침은 약보다 곁이 먼저다. 곁을 떼지 마라."의원이 고개를 숙였다.그때 이불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났다."…쑥만 아니에요."모두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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