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81 - チャプター 90

170 チャプター

81. 탄 종이를 모으는 사람

이번에는 공문을 든 서리가 아니었다. 짙은 남색 관복을 입은 사내가 정청에 들었다.키는 크지 않았으나 허리를 곧게 세운 자세 때문에 작아 보이지 않았다. 눈매는 가늘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웃지 않는 얼굴이었으나 무례하지는 않았다.호부 낭중 허도겸.월령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변경 군량을 줄였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남쪽 수해지에 곡식을 돌려 백성 수만 명을 굶기지 않았다는 사람.군문에서는 그를 종이 위의 칼잡이라 불렀고, 민간에서는 비 오는 해에 굶어 죽는 사람을 줄인 관리라 했다.그는 악인이 아니었다.악의로 움직이는 사람은 막으면 된다. 그러나 자기 나름의 옳음을 쥐고 오는 사람은, 그 옳음이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는 줄도 모를 때가 있었다.허도겸은 심도윤이 없는 정청에서 둘째 숙부와 예를 나누고, 심 부인의 병세를 물었다.월령에게도 예를 갖추었다.그 시선은 젊은 여식을 얕보는 눈도, 믿는 눈도 아니었다."심가의 봉인 장부를 열라는 뜻은 아닙니다."그가 말했다."다만 목록본과 등초본을 맞춰 보아야 합니다. 북문군 군량은 나라의 혈맥이니, 심가의 명예만큼 호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습니다."둘째 숙부가 불편한 웃음을 지었다."대장군께서 돌아오시면 직접…""대장군께서 변경에 계시니 더더욱 장부가 말해야 합니다."허도겸의 말은 차분했다."나라의 창고는 사람의 인품을 믿고 열 수 없습니다."정청 안 공기가 굳었다.월령은 그 말을 미워할 수 없었다.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문제는, 맞는 말이 누구의 손에 들렸는가였다.허도겸은 이어 말했다."최근 남운로에서 회암역으로 빠지는 군량 보조 수레가 세 차례 늦었습니다. 수레 문서에는 심가 별고의 인장이 찍혀 있었습니다.""그럴 리 없습니다."둘째 숙부가 말했다.허도겸은 곧장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얇은 목갑을 열어 작은 나무 패 세 개를 꺼냈다.월령의 눈이 그 패에 닿았다. 어제 위지헌이 보낸 회암역 짐패와 모양이 같았다.다만 패의 한 귀퉁이에 아주 작게 금빛이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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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보내는 것도 지키는 일

서윤은 아무 말 없이 월령을 따라 대청으로 왔다."언니. 저 사람은 저희 집을 미워하나요?"월령은 잠시 생각했다."아니.""그럼 왜 저렇게 말해요?""자기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어서. 심가가 북문을 지킨다고 믿듯이, 저 사람은 나라의 창고를 지킨다고 믿는 거야.""그럼 저희와 같은 편 아닌가요?""같은 것을 지켜도, 서로 다른 문 앞에 서 있으면 마주 보고 칼을 들 때가 있어."서윤은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언니는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아요?"요즘 서윤은 자주 그렇게 물었다. 월령은 대답 대신 대청에 말려 둔 흡지를 보았다."종이가 알려 줬어."서윤은 눈살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언니는 가끔 이상한 말을 해요.""미안해.""싫다는 뜻은 아니었어요."서윤은 곧장 덧붙였다.말끝이 급했다.월령은 웃었다."알아."그 작은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서윤은 떠나지 않았다.대청 한쪽에 앉아 마른 흡지를 접는 청아를 도왔다. 청아는 처음에는 굳었지만 곧 종이 접는 방향을 알려 주었다.두 아이가 같은 종이를 사이에 두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은 위태롭지만 따뜻했다.*밤이 깊을 무렵, 윤백이 왔다. 늘 그렇듯 담장 그림자에서 지나가는 사람처럼 나타났다.청아는 이제 놀라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조금 놀랐다."윤백 나리께서는 문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까?""문은 주로 손님에게 열립니다.""그럼 나리께서는 손님이 아니십니까?""아마 아닐 겁니다."청아는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가늘게 떴다. 월령은 윤백의 얼굴을 보았다.평소의 가벼운 기색이 조금 덜했다."왕야께서 전하신 말입니까.""예."윤백은 작은 목패를 내밀었다."은호 도련님은 당분간 왕부 의원의 손에 맡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심가 안에 있으면 다시 손이 뻗을 수 있습니다."은매의 얼굴이 굳었다.월령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을 되찾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았다.다시 떼어 놓는다는 말은 은매에게 잔인했다. 그러나 심가 안쪽 길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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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세 번째 길

월령은 밤이 깊어질 무렵, 대청에 남은 흡지를 다시 살폈다. 볕을 오래 받은 종이는 말랐고, 먹이 지나간 자리는 더 선명해졌다.그중 한 장에 아주 가는 금빛 가루가 묻어 있었다.서윤이 돌려놓은 종이.월령은 그것을 등불 아래 기울였다. 금선 가루가 종이 가장자리에서 희미하게 빛났다.자녕궁이 서윤에게 닿았고, 그 손은 다시 심가 장부에 닿았다. 이제 호부가 그 빛을 보면, 서윤이 아니라 심가 전체를 볼 것이다.월령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접으면 결이 남는다.넓게 펴 둔 채 등불을 낮췄다. 그때 밖에서 위지헌의 목소리가 들렸다."혼자 보기에는 늦은 시간이다."월령은 고개를 들었다.위지헌은 문턱 밖에 서 있었다. 오늘은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방 안에 닿아 있었다."왕야께서는 늘 늦은 시간에 오십니다."말하고 나서야 조금 날이 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희미하게 움직였다."그럼 낮에 올까.""그건…""정말?"그가 낮게 물었다."낮에 오면 덜 놀라겠나?"월령은 대답하지 못했다.위지헌은 아주 조금 가까이 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턱을 넘지는 않았다.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방 안의 공기를 천천히 끌어당겼다."장부는 종이만 보아서는 늦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종이를 보게 만들었는지 봐야 한다."월령은 금빛이 묻은 흡지를 내려다보았다."서윤이를 보게 만들려는 겁니까.""아니."위지헌의 대답은 빨랐다."심가를 보게 만들려는 것이다. 서윤은 문고리로 쓰였을 뿐."그는 잠시 멈췄다 덧붙였다."문고리는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을 만든 사람과 열려는 사람을 같이 봐야 한다는 뜻이지."월령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어렵지 않게 말씀하시려 애쓰시는군요."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네가 어렵게 알아듣는 사람이 아니라서."그 말은 칭찬 같지 않았다. 월령은 오히려 서늘하게 들었다.자신이 쓸모 있는 판단을 할 수 있으니 설명한다는 뜻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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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젖은 종이를 말렸습니다

허도겸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른 때에 왔다. 아침 안개가 아직 버드나무 잎에 걸려 있을 무렵이었다.그 틈에 오는 사람은 대개 급한 일을 품고 있다. 허도겸은 정청이 아니라 서고 앞 작은 툇마루에서 월령을 보겠다고 했다.둘째 숙부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으나, 호부 낭중의 말은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장부 봉인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심가 장녀가 보관 중인 부본을 함께 확인하겠다는 명분이었다.명분은 언제나 길을 만든다. 월령은 흡지 한 장을 넓은 나무판 위에 올려 두었다.접지 않았다.숨기지도 않았다.그저 말린 종이를 보여 주듯, 햇살이 가장 얇게 드는 자리에 놓았다. 허도겸은 그것을 보자마자 손을 뻗지 않았다.먼저 소매 끝을 접고, 품에서 작은 대나무 집게를 꺼냈다. 관청 일을 오래 한 사람의 손이었다.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체온조차 조심하는 손."이것을 제게 먼저 보이시는 까닭이 있습니까."월령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낭중께서는 탄 종이를 모으신다 하셨지요.""그랬습니다.""저는 젖은 종이를 말렸습니다."허도겸의 눈이 흡지 위를 지나갔다. 말라붙은 먹 그림자, 눅었다 마른 결, 그리고 가장자리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묻은 금빛 가루.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자녕궁 내지의 금선입니다."월령은 바로 말했다."아가씨께서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궁에서 온 물건을 만진 뒤 손끝에 남는 빛을 보았습니다."거짓은 아니었다.모든 진실도 아니었다.월령은 목소리를 낮췄다."이 흡지는 호부에 올릴 부본을 베껴 쓰던 날 받친 것입니다. 그런데 자녕궁에서 온 종이를 만진 손이 이곳에 닿았습니다.""심가 안채의 일입니까.""그렇게 보이게 만들기 좋은 일입니다."허도겸은 침묵했다.그 침묵은 무거웠다.그는 곧장 심가를 의심하지도, 월령의 말을 믿지도 않았다. 의심과 믿음 사이에 자기 자리를 세우는 사람답게, 종이의 결을 보았다."아가씨께서는 이것이 누군가의 함정이라 보십니까.""저는 함정이라 말할 자리에 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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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이름

허도겸이 돌아간 뒤, 서윤이 툇마루 끝에 서 있었다. 월령은 그 아이가 언제부터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서윤은 눈이 붉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손에는 어제 월령이 닦아 준 자리의 감각이 아직 남은 듯, 자꾸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제 이름이 나오나요?"서윤이 물었다.월령은 잠시 침묵했다."아직은.""아직은, 이라는 말은 나중에는 나올 수 있다는 뜻인가요?"아이의 말은 이제 제법 날이 서 있었다. 상처가 입을 배우면 그렇게 된다."그럴 수 있어."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럼 언니는 저를…""숨길 수 있는 데까지 숨길 거야.""왜요?"그 물음에는 원망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다."제가 언니를 미워한다고 했잖아요.""미움이 죄는 아니니까.""제가 더 나쁜 일을 했으면요?"월령은 서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그때는 네가 한 일을 보겠지.""저를 보지 않고요?""너도 볼 거야."서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언니는 왜 둘 다 보려고 해요?"월령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너를 하나로만 보면 잃게 되니까.' 그 말은 아직 너무 무거웠다."사람은 한 가지 마음으로만 움직이지 않으니까."대신 그렇게 말했다.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어른스럽게 말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입술은 늘 먼저 상처가 났다."숙비마마께서 제 이름을 아세요."그 말은 갑작스러웠다.월령은 눈을 들었다.서윤은 떨리는 숨을 삼켰다."자녕궁에서 받은 붓갑 안에 제 이름이 있었습니다. 심서윤. 세 글자가 너무 예쁘게 쓰여 있었어요. 집에서는 늘 둘째 부인의 딸이고, 큰아가씨의 사촌이고, 심가의 여식인데…"아이의 눈물이 떨어졌다."궁에서는 제 이름만 적혀 있었어요."월령의 마음이 조용히 아팠다.숙비는 정확했다.사람이 가장 굶주린 곳을 찾아 먹이를 놓았다. 서윤에게 그것은 이름이었다."그 이름은 네 것이야."월령은 부드럽게 말했다."누가 써 주어서 생긴 것이 아니야."서윤은 고개를 저었다."언니는 태어날 때부터 다 있었잖아요."말끝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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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문밖에 서는 일

그날 밤 위지헌은 오지 않았다. 대신 담장 너머에서 윤백이 짧은 말을 전했다."왕야께서 궁문 안에서는 말을 줄이라 하셨습니다. 숙비마마는 침묵도 글처럼 읽으신다고."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또?"윤백은 잠시 망설였다."정말 문밖에만 계실 겁니까."그 말은 윤백의 말이 아니었다.월령은 알 수 있었다.위지헌의 말이었다.월령은 살구나무 아래에 서서 밤을 보았다. 어린 열매가 가지 끝에서 검게 맺혀 있었다."문밖에 서는 것도, 들어가는 일의 일부라고 전해 주세요."담장 너머가 조용해졌다.윤백이 낮게 웃은 듯도 했다."왕야께서 좋아하시지는 않겠습니다.""정치적으로요?"윤백은 한 박자 늦게 답했다."아마 그보다 조금 더 사사롭게요."담장 너머에서 낮은 헛기침이 들렸다.강무진이었다."…말이 길다는 뜻입니다."윤백이 통역했다."그건 저도 압니다.""아, 예."월령은 그 뜻을 알 것 같았으나, 알고 싶지 않았다. 안다고 인정하는 순간, 발밑이 흔들릴 것 같았다.*월령은 방으로 돌아와 등불 아래 앉았다.잠은 오지 않았다.청아가 자리끼를 들이고도 나가지 않고 문가에 서 있었다."아가씨.""왜.""내일… 저도 갑니다.""당연하지.""그 말을 들으려고요."청아는 그제야 웃고 물러갔다.겁이 많은 아이가 겁을 이기는 방식을 월령은 알았다. 곁에 있어도 된다는 확인 하나. 그거면 저 아이는 자녕궁 문 앞에서도 손이 야무질 것이다.내일 자녕궁의 붉은 문 앞에 설 자신을 미리 그려 보았다. 그곳은 전생의 자신이 마지막으로 무릎 꿇었던 자리와 멀지 않았다.같은 향이 흐를 것이고, 같은 사람이 발을 늘어뜨린 채 앉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죄인의 이름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사촌의 문밖을 지키는 사람으로 선다.그 차이가 얼마나 얇은지 월령은 알았다. 숙비는 문밖에 선 사람의 침묵까지 저울에 올릴 것이다.그러니 월령은 가장 단정한 침묵을 준비해야 했다. 너무 순하면 약점이 되고, 너무 곧으면 적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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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등불

자녕궁에 가는 날, 경안의 거리에는 낮부터 등틀이 세워지고 있었다. 빛은 늘 아름다웠으나, 그 빛을 밝히는 기름값은 누군가의 장부에 적혔다.마차 안에서 서윤은 말이 없었다. 옅은 연두빛 치마를 입었다.한씨가 골라 준 옷이었다.너무 화려하지 않되, 궁의 눈에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옷. 머리에는 자녕궁에서 받은 작은 붓 모양 비녀가 꽂혀 있었다.월령은 그것을 보았으나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서윤은 방어할 것이고, 방어하는 아이는 귀를 닫는다.청아는 월령 옆에서 작은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심 부인께 올릴 약재 목록과, 서윤이 속이 불편해질 때 먹일 매실정과가 들어 있었다.청아는 궁에 간다는 사실보다, 정과가 눌려 모양이 망가질까 더 걱정하는 얼굴이었다."청아."월령이 낮게 불렀다."너무 꼭 안고 있으면 정과가 숨을 못 쉰다."청아는 깜짝 놀라 보따리를 조금 풀었다."정과도 숨을 쉽니까?""아마 네 손에서는 쉬어야 할 거야."서윤이 아주 작게 웃었다.웃은 뒤에 스스로 놀란 듯 고개를 돌렸다. 월령은 그 웃음을 못 본 척했다.마차는 남운로 초입을 지나 궁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종이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있었다.어떤 등에는 연꽃이, 어떤 등에는 장수를 비는 수자문이 촘촘히 오려 붙어 있었다. 쌀을 사러 나온 여인들은 등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곧 빈 바구니를 내려다보고 지나갔다.월령은 창밖을 보며 마음속으로 길을 그렸다.남운로.회암역.북문로.내수사 수레가 빠진 동쪽 길. 경안은 아름다웠으나, 그 거리 아래에는 수많은 길이 엉켜 있었다.권력은 늘 대로로만 다니지 않았다. 때로는 약재 수레 밑, 종이등 꾸러미 사이, 부엌으로 들어가는 숯가마니 속에 몸을 숨겼다.궁문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위지헌은 없었다.그 사실에 월령은 먼저 안도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안도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서운했다.그가 있으면 숨이 조여 오고, 없으면 길이 갑자기 넓어져 발을 헛디딜 것 같았다.궁녀가 나와 예를 갖췄다."숙비마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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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숨은 천천히

바로 그때, 전각 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났다. 월령은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감송향이 향로 냄새를 가르고 다가왔다.위지헌이었다.그는 자녕궁 회랑 끝에 섰다. 검은 장포는 낮에도 빛을 먹는 듯했고, 옥관 아래로 내려앉은 눈빛은 서늘했다.궁녀들이 허리를 숙였고, 내관들은 말없이 물러났다. 그는 월령에게 다가오지 않았다.그러나 그가 같은 회랑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문 안쪽의 말이 조금 멀어졌다.월령은 그를 보지 않았다.보면 흔들릴 것 같았다."문밖에만 있겠다더니."위지헌의 목소리가 아주 낮게 닿았다."문밖입니다.""문턱에 너무 가까운 문밖이지."월령은 그제야 그를 보았다. 위지헌의 시선은 그녀의 손끝에 닿아 있었다.소매 안에서 세게 접은 손가락. 그는 그것을 보았고, 아무 말 없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감송향이 더 선명해졌다."숨은 작게 쉬어라."그가 말했다."안에서 네 숨이 들리면, 숙비는 그것도 글로 읽는다."월령은 당황해 숨을 멈췄다. 위지헌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멈추라는 뜻은 아니다."그는 낮게 덧붙였다.목소리가 한 음 더 내려갔다."천천히."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까웠다. 이런 곳에서, 이런 때에,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월령은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그가 시키는 대로.그가 보는 앞에서.살구꽃 향은 거의 나지 않을 만큼 희미했으나, 감송향 아래에서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는 다그치지 않았다.그저 그녀가 다시 숨을 고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평온함이 월령의 안쪽을 더 흔들었다.*문 안에서 숙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서윤아. 네가 언니를 편하게 해 주고 싶다면, 네 손으로 한 가지 글을 써 보거라."월령의 눈빛이 변했다.위지헌도 들었다.문 안에서 궁녀가 작은 상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붓이 놓이고, 종이가 펼쳐지는 소리.서윤의 숨이 흔들렸다.월령은 움직이려 했다.위지헌의 손이 그녀의 소매 끝 가까이에서 멈췄다.닿지는 않았다."아직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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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봄바람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숙비는 웃었다."무엇이 두려우냐.""제 이름으로 남는 글이 아닌 듯합니다."서윤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제 손은 제 이름에 먼저 닿아야 합니다."회랑 밖, 등 장인들이 세우던 낮은 등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월령은 눈을 감을 뻔했다.서윤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남의 손에서 빼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숙비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문 안에서 찻잔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그 말을 누가 가르쳤느냐."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침묵이 너무 길어지기 전에, 위지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숙비마마."그의 목소리는 회랑을 가로질렀다.문 안쪽이 조용해졌다."섭정왕이오."숙비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남아 있었다."문밖까지 바람이 많군요.""봄바람이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위지헌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황실의 글은 예관이 보는 자리에서 쓰는 것이 법입니다. 어린 여식에게 사사로이 글을 청하시면, 호부가 또 종이를 세게 됩니다."허도겸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숙비는 알아들었다.긴 침묵 뒤, 숙비가 웃었다."그렇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서윤아."문이 열렸다.서윤은 창백한 얼굴로 나왔다. 손에는 붓물이 묻어 있었으나, 종이는 들고 있지 않았다.월령은 약속을 지켰다.서윤이 나오기 전까지 문밖에 있었다. 서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그 아이는 월령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위지헌은 이미 두 걸음 물러나 있었다.그의 향은 가까웠다가, 다시 멀어졌다.*궁문을 나서는 길, 경안의 종이등에 하나둘 불이 들어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등불을 켰다.빛은 이른 어둠을 밀어내는 듯도, 다가올 어둠을 미리 부르는 듯도 했다. 서윤은 마차 안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언니. 제가 오늘 잘한 걸까요."월령은 서윤을 보았다."오늘은 네 손이 네 이름을 먼저 생각했어."서윤의 눈이 젖었다."그럼 잘한 거야."청아가 옆에서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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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빈손으로 가라

조서는 얇았다.얇은 종이일수록 사람을 깊게 베는 날이 있다. 심가 대문에 걸린 등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내관이 돌아간 뒤에도 하인들은 감히 소리를 높이지 못했고, 부엌의 솥뚜껑은 평소보다 조용히 닫혔다. 종이 한 장이 집 안의 숨을 바꾸었다.누가 지나가도 발끝이 먼저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은 웃다가도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월령은 조서를 다시 펼쳤다.'궁중 내지 유출. 호부 군량 장부 조작. 심가 여식.' 그 말은 일부러 넓었다. 월령일 수도, 서윤일 수도, 둘 다일 수도 있었다.넓은 말은 사람을 서로 의심하게 만든다. 누가 불려 갈지 모르는 동안, 집 안 사람들은 먼저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된다.한씨는 조서를 본 뒤부터 서윤 곁을 떠나지 않았다."예부에서 묻는 말에만 답하면 된다. 숙비마마께서 너를 아끼신다. 겁낼 것 없다."서윤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손끝은 계속 차가웠다.숙비마마께서 아끼신다.그 말은 어제까지는 빛이었을지 모른다.오늘은 줄이었다.목에 걸릴지, 손을 잡아 줄지 알 수 없는 줄. 월령은 서윤의 얼굴을 보았다.어제 자녕궁에서 제 이름을 지키려던 아이가, 오늘은 다시 어머니 곁에 작게 앉아 있었다. 하루 만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용기를 냈다고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운 채로 다음 숨을 쉬는 일에 가까웠다.월령은 그 숨이 꺼지지 않게 해야 했다.*아침이 밝자, 어머니가 월령을 불렀다. 침상에 기대 앉은 어머니는 병색이 아직 남았으나 눈빛은 흐리지 않았다.손등 위 푸른 혈관이 가늘게 비쳤고, 입술은 조금 말라 있었다."예부에 네가 가려 하느냐."월령은 고개를 숙였다."서윤이 혼자 보내기에는 말이 넓습니다.""넓은 말에는 늘 그물을 숨긴다."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네가 그물 안으로 들어가면, 빠져나올 길도 보고 들어가야 한다.""알고 있습니다.""정말 알고 있니?"그 물음에 월령은 잠시 멈췄다. 어머니의 물음은 위지헌의 물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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