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춘당 약 상자는 달포마다 한 번 별궁 부엌 문턱까지 들어왔다.월령은 마루에서 그 상자를 보았다. 삼베로 싸인 뚜껑이 먼저 보였고, 그 뚜껑을 여는 은매의 왼손등 인두 흉이 다음이었고, 뚜껑을 열기 전에 먼저 코를 한 번 킁 하고 울리는 코끝이 마지막이었다. 곤원전 이름으로 다시 열린 약방이라 궁문 앞에서도 몸을 뒤지지 않고 보냈다. 손등의 인두 흉이 약재 포대를 만질 때마다 보였다. 옆에서 청아가 그릇을 닦다 말고 물었다."은매야, 이번 달 감기약은 쓴 거야, 단 거야.""소인이 만든 건 쓴 거예요. 단 건 마마님이 싫어하셔서요.""봄이 귀에 쓸 약은 안 가져왔니.""그건 소인 혼자 지을 약이 아니어서요. 늙은 태의님 방문을 세 번 두드렸는데 아직 답이 없으세요. 그래서 오른쪽 귀 닦는 가루만 가져왔어요."은매가 상자 뚜껑 안쪽에 붙은 약 이름 종이를 한 장 한 장 쓸어 넘겼다. 인두 흉이 난 왼손등이 종이 위에서 도드라져 보였다. 청아가 그 손등을 내려다보다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월령도 보았다. 국청 마당에서 그 손등이 지져지던 날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그 흉을 볼 때마다 다시 알았다.그때 대문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태후전 내수사 상궁이 나인 둘을 뒤에 세우고 마당으로 올라왔다. 상궁의 손에는 자기 약탕관이 있었고, 뚜껑이 닫힌 틈으로 하얀 김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월령이 마루로 나와 절을 받았다. 김이 먼저 코에 닿았다. 약 냄새였다. 약 냄새라는 것만 알았고, 그것이 월령의 등줄기를 굳게 했다."태후마마께서 아기씨의 귀가 걱정되시어 어의에게 약을 지으라 이르셨사옵니다. 오늘 한 첩을 달여 왔으니 아기씨께 올리시옵소서.""마마의 마음이 고맙구나. 그러나 아기에게 먹일 약은 어멈이 먼저 간을 보는 것이 법도다.""태후마마의 분부이옵니다. 식으면 약효가 떨어지옵니다."상궁이 약탕관을 월령 쪽으로 밀었다. 거절하면 태후의 호의를 물린 것이 되고, 받으면 봄의 입에 들어가게 된다. 두 길 다 벼랑이었고,
서윤은 왕부 사랑 문턱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소매 속의 종이부터 꺼냈다.위지헌은 서안 너머에서 그것을 보았다. 종이를 쥔 손가락 끝이 먼저 보였고, 두 번 접힌 자국마다 손에 땀이 배어 얼룩진 자리가 다음이었고, 그 종이를 펴는 손이 벗지 않은 신발보다 먼저 서안에 닿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급한 손이었다. 급한 것은 손뿐이었고, 얼굴은 가라앉아 있었다. 서윤이 그것을 서안 위에 펴 놓았다. 윗머리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신 위지헌은 이후 폐하께만 충성하며 옛 북경군의 이름을 폐하께 돌리겠다는 서약이었다."전하, 이것이 북경군이던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있어요. 어제는 심가 뒷문으로 장사꾼 하나가 와서 파는 것을 제가 봤고요."위지헌은 종이를 한참 내려다본 뒤에 입을 열었다. 제 이름 밑에 제가 쓰지 않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열 해를 함께 눈을 밟은 사람들이 이 종이를 돈 주고 사서 읽었다. 턱 밑이 굳었다. 그것이 분노라는 것을 그는 알았고, 분노는 지금 쓸 데가 없었다."내가 쓴 서약은 궁담 안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충성이라는 글자는 쓰지 않았다.""그래서 글씨를 봤어요. 수결은 전하의 것과 닮았는데 이름 위의 첫 획이 급해요. 천천히 따라 쓴 글씨는 첫 획이 느린데 이 사람은 빨리 쓰려다 첫 획에서 힘이 샜어요."서윤은 손가락으로 종이 위의 한 획을 짚었다. 말투는 가라앉아 있었으나 짚는 손에는 오래 눌러 온 힘이 있었다."저도 그랬거든요. 남의 글씨를 베낄 때는 첫 획이 급해요. 들키기 전에 끝내고 싶어서요."그 말을 하는 서윤의 목소리가 끝에서 조금 낮아졌다. 제 옛 허물을 자로 내놓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위지헌은 그 낮아짐을 들었다."자녕궁 필사방 손이냐.""묵련 나인이 가르친 손이라면 그래요. 같은 방에서 같은 사람에게 배운 손은 끝 획을 누르는 버릇도 닮아요."위지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윤은 종이를 접어 가슴에 안았다."이걸 어디에 올리면 돼요. 종친부에요, 아니면 폐하께 직접이에요.""올릴 곳이 없다."
허도겸은 호부 서안 위에 종이 두 장을 나란히 펴고 자를 대었다.자 눈금이 먼저 보였고, 눈금 밑에서 두 인영의 붉은 테가 다음으로 보였고, 그 테의 맨 오른쪽 아래에서 같은 자리에 갈라진 획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한 장은 염로 물표 열한 장에 찍혔던 상서 관인의 인영을 베낀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오늘 아침 태후전이 호부로 올린 살림 절목이었다. 두 인영의 갈라진 틈은 반 푼이었다. 흠은 글씨를 새길 때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눌러 쓰다 인면이 닳아 생겼다. 서른 해 동안 숫자로 안 떨어지는 것을 믿지 않고 살아온 사람의 손가락이 자 위에서 한순간 멎었다. 숫자가 떨어졌다. 떨어졌는데 반갑지 않았다.곁에서 먹을 갈던 젊은 서리가 목을 빼고 들여다보았다."낭중 나리, 어느 쪽이 먼저 찍힌 겁니까.""열한 장이 먼저다. 그때 나는 인이 도둑맞았다는 말을 들었다. 도둑이 인을 가져갔다면 도둑이 찍은 인이 태후전 절목에 찍힐 까닭이 없다.""그러면 도둑이 태후전에 있다는 말씀입니까.""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숫자가 말하는 것을 읽었을 뿐이다."허도겸이 두 장을 겹쳐 접어 소매에 넣었다. 서리가 침을 삼켰다. 서리의 붓끝에서 먹물 한 방울이 종이 위로 떨어졌다. 호부 서고의 창으로 든 볕이 서안 모서리에 걸려 있었고, 허도겸의 손등에 비친 먹물 얼룩이 볕을 받아 검붉게 말랐다. 그는 그 얼룩을 닦지 않았다. 닦을 손이 아직 자를 쥐고 있었다."이것을 어디로 가져가십니까.""올릴 곳은 하나다. 상서가 덮은 일이니 상서 위에서 열어야 한다. 종친부가 그곳이다.""종친부는 배 대감이 쥐고 있는 곳이 아닙니까. 올려 봐야 반 발 물러나고 마실 텐데요.""반 발도 물러나는 곳이 있으면 올린다. 아무 데로도 안 물러나는 곳이 더 무섭다."서리가 입을 다물었다. 그 다물린 입에 두려움이 있었고, 허도겸은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제 명치 밑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다만 그에게는 그것보다 오래 산 버릇이 하나 있었다. 재어진 것은 올린다.*종친부
태후전 상궁이 월령을 안내해 들어간 방에는 병풍이 없었다.월령은 회랑을 걸어오는 동안 이미 그 빈 자리를 보았다. 자녕궁 앞마당에서 문턱까지 열 걸음마다 서 있던 궁인들이 이제는 문 앞에만 둘 서 있는 것이 먼저 보였고, 닫혀 있던 창마다 발이 걷혀 있는 것이 다음이었고, 병풍이 서 있던 자리의 빈 벽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숨길 것이 없어진 방의 모양이었다.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은 숨길 까닭이 없어졌다는 뜻이었고, 그것이 월령의 발을 문턱에서 반 걸음 늦추었다.상궁이 월령을 들이고 물러가자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닫히는 소리가 병풍이 있던 시절보다 가벼웠다. 가릴 것이 없는 방에서는 문조차 크게 울릴 까닭이 없었다.향 냄새는 전보다 짙었다. 단내 밑에 쓴 것이 깔려 있었고, 그 냄새가 방 안에 스민 비단마다 눌려 있었다. 태후는 찻상 맞은편에 앉아 앞에 놓인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뚜껑 꼭지는 월령의 잔도 태후의 잔도 오른쪽을 향했다. 제 법도가 이 방에서 쓰이는 것을 보자 명치 밑이 서늘했다. 곤원전에서 황후가 마신 잔도 오른쪽이었다."앉아라.""예, 마마. 병풍은 어디로 치우셨사옵니까.""내 아들이 옥좌에 앉았다. 어미가 병풍 뒤에 숨을 까닭이 없지."태후가 월령 앞으로 잔을 밀었다. 월령은 잔을 들지 않고 상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 찻물이 식으면서 뚜껑 가장자리에 맺힌 김이 한 방울로 굴러떨어졌다.태후는 상 아래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펴 놓았다. 자로 재야만 보이는 옅은 먹이 한 줄 번져 있는 종이였다. 월령은 그 글씨를 알아보았다. 심월령, 황후.제 이름이 남의 글씨로 적힌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생에 죄패에 적힌 것도 남의 글씨였다. 손끝이 찼다."내가 적은 글씨다. 네 값이지.""신첩의 값이 어찌 마마의 종이에 적히옵니까.""값은 적는 사람 것이다. 받는 사람 것이 아니다."태후의 목소리는 병풍 뒤에서 들리던 때처럼 낮지 않았다. 병풍이 없으니 목소리가 곧바로 월령의 얼굴에 닿았다. 그것이 뺨에 닿는
설련은 찻상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모의 말을 기다렸다.고개를 숙인 채로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상 위에 놓인 잔 하나가 먼저였고, 잔 뚜껑의 꼭지가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가 다음이었고, 그 잔을 밀어 줄 고모의 느린 손끝이 마지막이었다. 향방이 도로 열려 방 안에는 단내가 짙게 고였고, 그 냄새가 옷깃마다 스며 있었다. 태후는 책봉례 때 입은 옷을 벗지 않은 채 첫잔을 비웠다."설련아.""예, 고모님.""오늘부터 명서 곁에 서라. 낮에는 서안 앞에서 먹을 갈고, 밤에도 불을 지켜라.""밤에도요.""그 아이가 새벽까지 종이를 보는 날이 많다. 주란은 내가 믿지 않는다. 등잔은 믿는 사람이 들어야 한다."설련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뚜껑 꼭지가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고모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내어 준 잔이었다. 열여섯 해 동안 찻상 뒤에서 남의 잔만 돌려놓던 손이 제 앞의 잔을 보자 저 혼자 무릎 위에서 오므라들었다. 기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게 온 것이었고, 늦게 온 것은 늘 값이 붙어 있었다."그 아이가 보는 종이와 만나는 사람을 내게 와서 말해라. 네가 내 눈이다.""…알겠습니다, 고모님.""너는 내 눈이 되어 돌아와서 내 입에게 말해라. 한 줄도 숨기지 말고.""예, 고모님. 한 줄도요."설련은 절을 깊이 하고 일어났다. 알고 드는 일이었다. 남의 손에 쥐여 들어가는 것보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편이 값이 가벼웠다. 가볍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비가 협도 어귀에 서서 치르던 값을 이제 제가 치른다고 설련은 제게 일렀다. 그렇게 이르면 무릎이 덜 떨렸다.회랑에 나서자 소매 끝에 이 방의 단내가 묻어 있었다. 설련은 소매를 한 번 털고 걸었다. 털어도 단내는 비단 올 사이에 남아 회랑 끝까지 따라왔다. 왕부 마당의 국 냄새는 벌써 어디에도 없었다.*편전 곁 서재에는 등잔이 하나 켜져 있었다.위명서는 서안에 종친부 문서를 펴 두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있었다. 설련이 벼루와 먹을 들고 서안 옆에 앉았다. 먹이 벼
순빈은 별궁 마루에 올라 앉기도 전에 입부터 열었다."왕비마마, 근신이 길어지시니 적적하실까 해서 들렀어요. 후궁전에서는 요즘 마마 이야기뿐이라서요. 마마가 밤에 냉궁에 가신다면서요?"청아가 들고 있던 찻쟁반이 한 번 기울었다. 월령은 그 기울어진 쟁반을 먼저 보았고, 쟁반 위에서 흔들린 찻잔 뚜껑을 다음에 보았고, 마지막으로 순빈의 얼굴을 보았다. 악의가 한 올도 없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등줄기에 가는 것이 하나 지나갔다. 서늘함이었고, 그 서늘함이 간밤 깃 안쪽에 남은 자리에서 멎었다."누가 그렇게 말하던가요.""누구라고 할 것도 없어요. 청소하던 나인이 광 창에 불빛이 비친다고 했고요, 순라 서던 군사가 그걸 봤다고 했고요, 소화전 덕비 마마도 아신다고 했어요. 저는 걱정이 되어서 마마께 미리 말씀드리려고요.""고마워요. 걱정은 접어 두세요.""예, 마마. 저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아까 태후전에 들러서 문안만 드렸어요.""문안 자리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요.""아무 이야기도요. 태후마마께서 차를 따라 주시면서 요즘 별궁에 불빛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있다고 대답했을 뿐이에요. 광 창에 비친 불이 아주 작았다고도요."방어멈이 마루 기둥 뒤에서 몸을 굳히는 소리가 났다. 청아는 쟁반을 내려놓다가 찻잔을 하나 달그락 부딪쳤다. 월령만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게 하는 데 턱 밑의 힘줄이 다 들어갔다. 태후가 손수 따라 준 차 한 잔으로 이 헐거운 입을 열었다. 그 값이 얼마나 싼지 월령은 셈해 보았고, 셈하는 제가 싫었다.순빈이 환하게 웃으며 차를 마셨다. 월령은 그 웃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찻잔 뚜껑의 꼭지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손가락 끝이 뚜껑 위에서 조금 떨렸다. 이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문은 열려 있었다. 간밤에 제 손으로 든 빗장이 오늘 저녁에는 남의 손에 들릴 것이다.*해가 기울기 전에 태후전의 명이 별궁에 닿았다.냉궁이라 불리던 광의 문 앞에 상궁 둘이 풀 먹인
아침빛은 얇았다.밤새 창을 열어 두었기 때문인지 방 안에는 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연꽃 향도, 난향도, 사람의 판단을 늦추던 희미한 쓴내도 모두 빠져나가고 없었다.대신 창가에는 말린 살구꽃 한 줌이 놓여 있었다.누가 두고 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청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과 울음을 참는 얼굴이 이상하게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월령은 그때 처음 알았다."왕부에서 보낸 거예요."청아는 아주 작게 말했다.왕부.그 두 글자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다시 낮아지는 듯했다. 월령은
심가의 아침은 낮은 소리들로 가득했다.지하 창고가 비었다는 말은 아직 누구의 입에서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물동이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내려앉고, 회랑을 쓸던 하인의 빗자루가 같은 자리에서 두 번 멈추고, 부엌의 계집종들이 죽 솥을 젓다 말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큰 집의 소문은 늘 사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쌀을 씻는 물소리,말에게 여물을 붓는 소리,행랑채 문고리가 바람도 없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그 작은 것들이 밤사이 심가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먼저 알렸다.안에서 잠긴 문.끊어지지 않은 밧줄.
이번에는.내 손을 놓지 마라.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심가를 살리겠다고,당신을 이용하겠다고,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모두 참이었다.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말은 입
해시가 가까워질 무렵, 남쪽 연못에는 안개가 내려앉았다.봄밤의 안개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얇고 희어서, 손을 뻗으면 손바닥 위에서 곧장 풀어질 듯했다.그러나 그 안에 오래 서 있으면 숨이 조금씩 낮아졌다.물 위의 달도,버드나무 아래 그림자도,멀리 별채 처마에 걸린 등불도 한 겹씩 지워졌다.소리가 먼저 숨었다.벌레 우는 소리는 물가의 돌 틈으로 잦아들었고, 회랑 아래 고인 밤공기는 젖은 약재처럼 싸늘했다.월령은 회랑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흰 장삼 위에 짙은 남색 겉옷을 걸쳤다. 밤 안으로 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