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apítulo 91 - Capítulo 100

170 Capítulos

91. 면포

예부 앞에는 이미 호부 낭중 허도겸이 와 있었다. 그는 월령을 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적도 아군도 아닌 예였다.서윤은 그를 보자 숨을 삼켰다. 한씨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가, 예관이 보는 앞이라 천천히 놓았다.예부의 방은 건조했다.종이를 보관하는 곳이라 향도 약했고, 창문도 크게 열리지 않았다. 벽에는 선대 황제들의 예법 조항이 적힌 목판이 걸렸고, 긴 탁자 위에는 먹과 붓, 그리고 궁중 내지가 놓여 있었다.그 종이는 지나치게 희었다.월령은 한눈에 알았다.자녕궁 종이였다.가장자리에 금선이 거의 보이지 않게 들어가 있었다.허도겸도 보았다.그의 눈매가 아주 작게 굳었다. 예부 시랑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온화한 얼굴이 늘 좋은 뜻은 아니다.그는 먼저 서윤을 보았다."심서윤 아가씨. 숙비마마께서 붓끝이 곱다 하셨다지요. 오늘은 어려운 자리가 아닙니다. 그저 몇 글자만 써 주면 됩니다."월령은 그 말의 끝을 보았다.몇 글자.사람을 잡는 덫은 늘 작게 시작한다. 서윤이 붓을 잡으려는 순간, 월령이 조용히 말했다."시랑께 여쭙습니다."방 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왔다."조서에는 심가 여식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서윤만 부르신 것입니까."예부 시랑의 미소가 조금 얇아졌다."큰아가씨께서도 쓰실 수 있습니까?""필요하다면요."한씨의 얼굴이 굳었다."큰아가씨, 이 아이는…""숙모."월령은 부드럽게 막았다."예부의 뜻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허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종이 가장자리의 금선을 보고 있었다.예부 시랑은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그럼 두 분 모두 같은 글을 쓰시면 되겠습니다."그는 궁중 내지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월령은 그것을 보자 속으로 숨을 삼켰다.같은 글.같은 종이.같은 금선.둘 중 누가 손을 대든 흔적은 남는다. 이 자리는 필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손을 묻히기 위한 자리였다. 서윤도 그것을 느꼈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월령은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빈손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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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달빛과 연꽃

그때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삼전하께서 드십니다."월령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위명서가 들어왔다.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옅은 옥색 장포에 백옥패를 찼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염려가 얹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얼굴을 좋아했다.권력보다 마음이 먼저 온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얼굴."일이 생각보다 커졌군요."그는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심가 여식들이 이리 불편한 자리에 서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말은 모두를 위로했다.그러나 시선은 월령에게 먼저 닿았다.서윤이 그것을 보았다.아주 짧은 순간이었다.아이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다시 식었다. 월령은 그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위명서는 그 미세한 균열까지 보았을 것이다."심 아가씨."그가 말했다.월령은 예를 갖췄다."전하.""그날 후원에서 제 청을 물리셨지요."방 안 공기가 굳었다.그 말은 이 자리와 맞지 않았다.맞지 않기에 더 위험했다.위명서는 부드럽게 웃었다."오늘 보니 그 까닭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심 아가씨께서는 늘 먼저 집안을 생각하시는군요."칭찬처럼 들렸다.그러나 그 말은 월령을 심가의 중심에 세웠다. 장부도, 내지도, 서윤도 모두 그녀에게 모이게 만드는 말.허도겸의 눈빛이 움직였다.서윤의 손이 면포 위에서 굳었다. 월령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집안을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그 자연스러움이 때로 나라의 법보다 앞서면 곤란하지요."위명서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물론 심 아가씨께서 그러셨다는 뜻은 아닙니다."그는 그렇게 말하며 미리 빠져나갈 문을 열어 두었다. 월령은 입술 안쪽을 살짝 눌렀다.피 맛은 나지 않았다.다행이었다.위명서는 탁자 위의 두 종이를 보았다."필체가 참 다릅니다. 하나는 달빛 같고, 하나는 연꽃 같군요."서윤의 눈이 흔들렸다.연꽃.그 아이가 좋아하던 무늬.위명서는 서윤에게도 미끼를 던졌다.그것을 칭찬처럼."두 분 모두 마음이 곱습니다."위명서는 예부 시랑에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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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사라진 종이

그날 밤, 예부에서 쓴 두 장의 종이 중 하나가 사라졌다. 허도겸이 보낸 전갈은 짧았다.'월령 아가씨의 글은 남아 있음. 서윤 아가씨의 글이 없음.'그리고 그 아래, 더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대신 삼전하의 별도 봉서가 예부 기록함에 들어감.'허도겸의 글씨는 자로 잰 듯했다.감정을 싣지 않는 사람의 획. 그런데 마지막 문장만은 먹이 조금 진했다. 같은 붓으로 두 번 눌러쓴 자국이었다.장부와 혼인했다는 사내가, 이 한 줄만은 두 번 확인했다는 뜻이었다.월령은 그 문장을 읽고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서윤의 글은 사라지고, 위명서의 봉서가 남았다.그 의미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펼쳐졌다. 면포 덕에 두 사람의 손에는 금선 가루가 묻지 않았다.손을 묻히려던 첫 함정은 빗나갔다. 그러자 적은 방법을 바꿨다.서윤의 글 — 어린아이의 떨리던 정직한 선 — 을 통째로 빼돌리고, 그 빈자리에 위명서의 봉서를 채워 넣었다. 이제 예부 기록함에는 '심가 여식이 쓴 글'이 한 장, 그리고 그 글의 진위를 증언할 '삼전하의 봉서'가 한 장 남았다.둘을 잇는 손은 보이지 않았다. 월령은 등불 아래에서 생각을 천천히 더듬었다.위명서는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리를 정리하러 왔다.면포로 막힌 함정을 거두고, 더 깨끗한 함정을 새로 깔러. 달빛 같다던 월령의 글, 연꽃 같다던 서윤의 글 — 그 칭찬조차 누구의 손을 어느 종이에 묶을지 미리 골라 둔 말이었다.월령은 소매 안에서 손을 천천히 폈다.빈손이었다.어머니의 말대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았다. 그러나 빈손이라고 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다만 이제는, 두려운 채로 다음 수를 둘 수 있었다.문밖에서 청아의 목소리가 났다."아가씨, 아직 불 안 끄셨어요?""곧 끌 거야.""거짓말이시죠.""…반쯤."문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나더니, 잠시 뒤 문틈으로 따뜻한 꿀물 한 잔이 들어왔다. 잔을 든 손만 들어오고,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주무시라는 뜻이었다.월령은 그 잔을 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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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문밖

심월령.궁첩 위 세 글자는 지나치게 단정했다. 먹은 번지지 않았고, 획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이름을 쓴 사람은 월령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글자는 오래전부터 그녀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 궁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어제는 서윤의 이름이 불리던 자리였다. 이제 월령의 이름이 그 자리에 있었다.서윤은 궁첩을 보자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기뻐하지도, 질투하지도 않았다. 어제 제 글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뒤로, 아이의 마음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한씨는 반대로 오래 침묵했다. 그 침묵이 월령에게는 더 크게 들렸다.기회가 사라졌다는 생각. 위험이 큰아가씨에게 옮겨 갔다는 안도. 그리고 그 안도를 부끄러워하는 마음.한씨는 월령을 미워했으나, 월령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제 딸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대신 서도 된다고, 아주 짧은 순간 생각했을 뿐이다.월령은 그 마음을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은 쉬웠고, 오늘은 쉬운 일을 할 수 없는 날이었다."제가 가겠습니다."서윤이 벌떡 일어섰다."언니.""괜찮아.""괜찮지 않잖아요."서윤의 목소리가 흔들렸다."어제는 제 이름이었는데, 오늘은 언니 이름이에요. 그게 어떻게 괜찮아요?"월령은 그 아이를 보았다. 서윤은 처음으로, 제 몫의 위험을 남에게 넘겼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그것이 아이를 찌르고 있었다.월령은 그 아픔을 빼앗아 줄 수 없었다. 아픔까지 빼앗으면, 서윤은 다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아이가 된다."네가 어제 멈췄기 때문에, 오늘 내 이름이 온 거야."서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그게 제 잘못이라는 뜻인가요?""아니."월령은 곧장 말했다."네가 처음으로 네 손을 지켰다는 뜻이야. 그러자 저들이 다른 손을 찾는 거고."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럼 저도 가겠습니다."한씨가 딸의 팔을 붙잡았다."서윤아.""어머니."서윤은 처음으로 한씨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손 아래에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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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네 이름으로 버텨라

궁문 앞에는 위지헌이 있었다. 오늘은 숨지 않았다.검은 장포를 입은 그는 정문 옆에 서 있었다. 금군도, 내관도, 예부 관리도 그에게 먼저 길을 물었다. 누구도 감히 말을 길게 붙이지 못했다.그는 그저 서 있었다. 그 서 있음만으로도, 문 하나가 더 생긴 듯했다.월령은 마차에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왕야.""혼자 왔군.""예.""잘했다."뜻밖의 말이었다. 월령은 고개를 들었다.위지헌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오늘은 네가 혼자 서야 한다. 그래야 서윤을 뒤로 물릴 수 있다."월령은 그가 모든 흐름을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늘 먼저 본다.그런데 오늘은 그 사실이 차갑지 않았다. 혼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그는 돌려 하지 않았다. 어렵게 숨기지도 않았다. 그저 필요한 수를 필요한 말로 건넸다."무섭습니다."말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그는 다가오지 않았다. 궁문 앞이었고, 모든 눈이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월령에게만 닿을 만큼 낮았다."알고 있다.""그래도 가야 하지요.""그래.""제가 잘못 말하면요.""그때는 내가 바로잡을 길을 찾겠다.""제가 무너지면요."위지헌의 시선이 깊어졌다."네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사람으로 보이나."월령은 숨을 멈췄다. 그 말은 너무 곧았다. 곧아서 오히려 믿기 어려웠다.그는 곧 한 걸음 물러났다."하지만 오늘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대신하지 않는다."위지헌은 차분히 말했다."네 이름으로 온 궁첩이니, 네 이름으로 버텨라."월령은 소매 안에서 손끝을 폈다. 어머니의 말처럼, 빈손이었다."예."그녀는 궁문 안으로 들어갔다.*자녕궁은 전날보다 조용했다.조용한 궁은 더 위험했다. 사람 소리가 적을수록 향 냄새가 두드러지고, 향이 두드러질수록 사람은 제 숨소리를 듣게 된다.월령은 숨을 작게 쉬었다. 멈추지는 않았다. 위지헌이 그랬다. 멈추라는 뜻은 아니라고.숙비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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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그 이름을

그 말과 함께 내관 하나가 들어왔다. 손에는 붉은 비단에 싸인 긴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월령의 숨이 낮아졌다. 두루마리 끝에는 황제의 어보가 있었다.아직은 현 황제의 조서였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길 이름은, 삼전하의 길을 열 수도 있었다.숙비는 천천히 말했다."심가가 흔들리면 북문도 흔들린다. 북문이 흔들리면 조정은 군문을 의심한다. 의심은 오래 두면 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란다."월령은 그 말을 들으며, 아주 오래된 비 냄새를 떠올릴 뻔했다. 하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그래서 황실은 심가를 묶을 새 줄을 내려야 한다."숙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혼인보다 오래가는 줄은 드물지."두루마리가 펼쳐졌다. 월령의 손끝이 차가워졌다.방 안의 궁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낮췄다.문상궁은 숙비의 반 걸음 뒤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발 너머의 빛이 두루마리의 붉은 비단 위에서 얇게 미끄러졌다.내관이 읽기 시작했다. 황실의 은혜, 심가의 충정, 북문의 공로, 나라의 화목. 아름다운 말들이 차례로 흘렀다.전생에도 이런 말들을 들었다.그때는 그 말들이 고와서, 제 이름이 그 안에 놓이는 것이 복인 줄 알았다. 붉은 비단, 금실 매듭, 어보의 인주 냄새.그 모든 것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모른 채, 어린 심월령은 고개를 숙여 절을 올렸다.그 절 한 번이, 끝내 빗속의 형장까지 이어졌다.지금 같은 냄새가 다시 코끝에 닿았다. 인주와 비단과 향이 섞인, 황실의 냄새.월령은 무릎 위의 손을 조용히 포갰다.그 아름다움이 무엇을 감싸고 있는지, 이번에는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문밖에서 아주 낮은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궁녀를 제지하는 소리, 내관들이 물러서는 소리.감송향이 먼 회랑에서 희미하게 스며왔다. 위지헌이었다. 그는 문밖에 있었다. 들어오지 못하는 것인지, 아직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 향이 가까워지는 속도로, 월령은 문밖의 걸음을 셌다.빠르지 않았다. 뛰지 않는 사람이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거나, 뛰는 순간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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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교서를 멈추십시오

심월령.그 이름이 자녕궁 안에 떨어진 순간, 향로의 연기마저 잠시 길을 잃은 듯했다.궁녀들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낮췄고, 내관은 두루마리를 든 손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붉은 비단 끝에 매달린 금실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월령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손끝은 소매 안에서 차가웠으나 떨리지는 않았다.큰 파도가 닥치면 월령은 먼저 젖는 대신 굳는 사람이었다. 숨도, 눈물도, 두려움도 늘 한 박자 늦게 왔다.문밖에서 위지헌의 그림자가 길게 들어왔다. 감송향이 자녕궁의 단 향을 조용히 밀어냈다."그 교서를 멈추십시오."낮은데도 먼 기둥까지 닿는 목소리였다.숙비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이미 읽혔습니다, 섭정왕.""읽힌 것과 행해지는 것은 다릅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 궁녀 하나가 본능적으로 물러났고, 내관 둘은 길을 비켰다.그는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않았다. 칼을 뽑지도 않았다. 다만 걸어 들어왔다. 그 한 걸음마다 자녕궁의 공기가 뒤로 밀렸다."황제의 어보가 찍힌 교서입니다.""그러므로 더더욱 예를 갖춰야 합니다."위지헌은 두루마리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숙비에게 있었다."심가 여식은 지금 예부와 호부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혐의가 풀리기도 전에 삼전하의 배필로 삼으신다면, 황실은 스스로 의심받는 집안의 손을 잡는 셈이 됩니다."말은 황실의 체면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심가를 지키고, 북문을 지키고, 황실의 흠을 막는 말.월령은 그 말을 들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말 안에 자신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생각이 스치자, 스스로를 꾸짖었다. 지금 그런 것을 헤아릴 때가 아니었다.숙비는 찻잔을 내려놓았다."섭정왕은 지금 삼전하의 혼사를 막으려는 것입니까.""황실의 혼사가 흠 없이 이루어지도록, 막을 것을 막는 것입니다.""말이 곱군요.""마마께 배운 궁의 말은 늘 곱습니다."자녕궁 안 공기가 차갑게 굳었다."내가 그 아이를 해치려 한다 보십니까.""마마께서는 나라를 보십니다."위지헌은 조금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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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사흘짜리 우리

"혼사는 예입니다. 예는 절차입니다. 절차가 흐려지면 훗날 교서도 흐려집니다."허도겸은 고개를 더 낮췄다."소신은 심가를 감쌀 뜻이 없습니다. 다만 조사가 끝나지 않은 이름을 황실 혼서에 올리면, 호부와 예부의 장부가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월령은 숨을 천천히 들이켰다. 허도겸은 사람을 살리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종이를 살리려고 왔다. 그러나 때로는 종이를 살리려는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숙비는 찻잔을 다시 들었다. 차는 이미 식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주 천천히 잔을 입가에 가져갔다.늙은 궁의 사람은 시간을 마시는 법을 안다. 대답하기 전에 침묵을 길게 끌어, 상대가 제 말의 무게를 먼저 견디게 만든다."사흘."그 한마디에 자녕궁의 공기가 움직였다."사흘 뒤 예부 정전에서 납채를 논하겠다. 그 안에 심가의 혐의가 풀리지 않으면, 황실은 의심받는 집안을 혼사로 끌어안아 은혜를 보였다 할 것이다."그녀의 시선이 월령에게 닿았다."그리고 혐의가 풀리면, 심가 여식은 더더욱 황실의 은혜를 거절할 까닭이 없겠지."어느 쪽으로 가도 길은 궁으로 향했다.월령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혐의가 풀리지 않으면 황실은 심가를 구하는 은혜를 내세운다. 혐의가 풀리면 심가는 깨끗한 공신가가 되어 황실 혼사를 거절하기 어려워진다.숙비는 사흘을 준 것이 아니었다. 사흘짜리 우리를 만든 것이다.위지헌의 눈빛이 낮아졌다."그 사흘 동안 심월령은 자녕궁에 들지 않습니다."숙비가 웃었다."섭정왕.""조사가 끝나지 않은 사람을 다시 부르는 것은 예부에도 호부에도 흠입니다.""그 아이가 그대의 사람이기라도 한 듯 말하는군요."자녕궁 안이 얼어붙었다. 월령의 숨도 아주 잠깐 멎었다.위지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심월령은 심가의 여식입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다."아직은."그 두 글자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월령은 그 말을, 황실 혼사 전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아직 심가의 여식이고, 아직 삼전하의 사람이 아니며, 아직 황실이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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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깃발

자녕궁을 나서는 길, 회랑의 향이 유난히 짙었다.월령은 바깥 공기를 마시기 전까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긴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앉았고, 손끝은 여전히 소매 안에서 차가웠다.궁문 가까이 이르자 위지헌이 걸음을 늦췄다. 허도겸은 이미 예부 시랑과 함께 다른 회랑으로 사라졌고, 내관들과 궁녀들도 멀어졌다.처마 아래, 둘만의 침묵이 아주 짧게 생겼다."숨을 참지 마라."월령은 그제야 자신이 또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알았다."죄송합니다.""사과할 일이 아니다."그는 한 걸음 가까이 오다가 멈췄다. 궁문 밖이라 해도 눈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감송향은 가까웠다. 월령은 그 향이 자꾸만 자신을 흔드는 것이 두려웠다."사흘입니다.""그래.""사흘 안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위지헌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어렵게 말하지 않으려는 침묵이었다. 월령은 이제 그 차이를 조금 알 것 같았다."네 이름을 네 손으로 되찾아야 한다.""제 이름을요?""오늘 교서에 오른 것은 네가 아니라, 저들이 쓰려는 네 이름이다."위지헌은 아주 낮게 일렀다."군문으로 치면 깃발을 빼앗긴 것이다. 병사들이 아직 살아 있어도, 깃발이 적 손에 있으면 진영이 흔들린다."월령은 그 말을 이해했다. 너무 쉽게 이해했다."깃발을 되찾으려면요.""먼저 누가 들고 있는지 봐야 한다.""숙비마마 아닙니까.""숙비는 깃발을 세운 사람이다."위지헌의 시선이 궁문 너머로 향했다."하지만 깃대를 깎고, 천을 물들이고, 바람 부는 자리를 고른 사람은 따로 있을 수 있다."월령은 위명서를 떠올렸다. 예부에서 다정한 얼굴로 자신을 심가의 중심에 세우던 남자. 서윤에게 연꽃 같다 말하던 목소리."삼전하."말은 아주 작게 나왔다.위지헌은 부정하지 않았다."그자는 숙비의 그늘 아래 있으나, 그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왜 저입니까."월령은 결국 묻고 말았다."심가가 필요하다면 서윤이도 있습니다. 오히려 숙비마마께서는 서윤이를 먼저 부르셨고요. 그런데 왜…"위지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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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이미 되었다

"제가 왕야께 폐가 되겠습니다.""이미 되었다."월령의 얼굴이 굳었다. 위지헌은 그 반응을 보고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다."그런 뜻이 아니다."그는 숨을 낮췄다."내가 네 일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와서 폐를 따질 일이 아니다."월령은 귀 끝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왕야께서는 가끔 말씀을…""어렵게 하나?""놀라게 하십니다."위지헌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그럼 다음부터 먼저 풀어 말하겠다."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월령은 오히려 대답을 잃었다.멀리서 윤백의 헛기침이 들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일부러 낸 소리였다. 위지헌의 시선이 차갑게 돌아갔다."윤백.""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윤백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강무진이 심가 쪽에서 전갈을 보냈습니다. 청아가 사흘을 세다가 죽 솥을 태울 뻔했다고 합니다."월령의 눈이 커졌다."청아가요?""죽 솥은?"위지헌이 물었다."살았습니다."윤백이 엄숙하게 답했다."죽도 대체로 살아 있습니다."월령은 참지 못하고 아주 작게 웃었다. 짧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궁의 긴 회랑 끝에서 난 웃음이라 그런지, 스스로도 낯설 만큼 따뜻했다.위지헌은 그 웃음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아주 희미하게 풀렸다.*심가로 돌아오자, 서원당 앞에는 정말로 탄 냄새가 조금 남아 있었다.청아는 죽 솥 곁에서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얼굴에는 억울함과 반성이 한꺼번에 떠 있었다. 은매는 은호를 안은 채 앉아 있었고, 은호는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은 얼굴로 작은 숟가락을 쥐고 있었다."아가씨."청아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달려왔다."죽이 아주 조금 눌었습니다.""죽이 아주 조금만 눌었니?""예. 바닥 쪽만요."은호가 작게 말했다."맛은… 씁니다."청아가 배신당한 얼굴로 은호를 보았다."은호야.""하지만 청아 누나가 배를 많이 넣었습니다."은호는 기침을 한 번 참았다가, 혀끝으로 이를 아주 작게 쳤다. 딱.그 소리에 은매의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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