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全部章節:第 11 章 - 第 20 章

96 章節

11화

키스에서 더 나아가고 싶었지만 분명 오늘도 은성은 거절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딱 키스까지만 가야했다. 그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욕망은 작실하게 다음단계를 떠올렸다.‘하아… 하아…’거칠어진 은성의 호흡과 흐트러진 머리,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 그녀의 몸 모든 곳에 닿고 싶었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앞섶은 어느새 터질 듯이 부풀었다.‘그만 좀 생각해. 박선우. 이러다가 은성이가 짐승같다고 싫어하면 어떻게.’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자신을 싫어해도 됐으나 그녀에게만큼은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아주 조금도.“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진지해?”거슬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김종석이 서 있었다. 할아버지 동생의 손자로 선우와 동갑이었다. 그는 다가와 옆에 앉았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미소는 그저 경계심을 풀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고작 그런 수작에 넘어갈 정도로 선우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유학 어떻게 할까 생각중이었어.”“그래. 나는 웃었다가 진지했다가 해서 여자친구 생각하는 줄 알았어.”친한 척 은성을 입에 올리는 것에서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틈만 보이면 물어뜯는 이곳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선우는 가볍게 웃었다.“여자친구 생각도 맞아. 같이 갈 생각이거든.”그 말에 기가막히다는 듯 종살의 눈쌀이 찌푸려졌다.“가정부 딸하고 같이 가는 걸 회장님이 허락하셨어?”“가정부?”일순간 선우의 눈초리가 서늘해졌다. 그 눈빛을 보고서야 종석은 눈치를 봤다.“아니 그냥 아무래도 신분이 많이 다르잖아.”“신분. 그렇게 보면 어머니도 신분에 안 맞는 결혼을 한건데, 그 말 어머니한테 전해줄까? 이왕이면 아저씨 앞에서.”“아,아니…”종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아버지는 선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뒤에서는 그래봤자 여자이고, 실패한 결혼을 한 이혼녀일뿐이라고 별별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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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산수연이 끝나고 치원은 외곽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왔다. 원래 그도 선희와 함께 현암재에 살았으나 건강이 나빠지면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선희는 곁에 있었으나 선우는 없었다. 그것이 불만스러운 듯 치원이 미간을 찌푸렸다.“집에 꿀단지라도 숨겨놓았더냐. 남들은 한마디라도 더 붙여보려고 안달인데 손주라는 녀석은 어떻게 생신 축하드린다는 딱 한마디만 해!”산수연이 끝나자마자 선우는 인사를 남기고 쏜살같이 자리를 떠났다. 별장까지 따라왔더라면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 치원이 분개하는데도 선희는 태연했다.“온게 어디예요. 생신 축하드린다는 말도 했어요.”“선우 그게 상감이라도 되냐! 성은을 내렸어?”“아버지, 혈압 높아져요. 진정하세요.”선희가 눈짓하자 고용인이 재빠르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물을 마시고 나서야 치원의 호흡이 조금 진정되었다.“아직도 그 가정부 딸 만나는 게냐?”“가정부 딸이 아니라 은성이요. 같이 유학 보낼까 생각중이예요.”“유학? 가정부 딸이 선우 짝으로 가당키나 하더냐!”“안될건 뭐예요. 저도 동식이랑 결혼했잖아요.”‘동식’의 이름이 거론되자 치원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그래서 이 꼴 나지 않았더냐. 유일한 후계자가 바깥에서 자라고, 소속감도 못 느껴. 내가 그 놈하고 결혼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이제와서 분노하면 뭐하냐는 듯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었다. 딸은 기업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딸에게 물려줄 바에야 똑똑한 사위를 들여서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그럼에도 그는 선희를 후계자로 세웠다. 그만큼 그녀는 똑똑했고 사람들을 이끌줄도 알았다. 예쁘고 운동이며 악기며 뭐하나 모자람이 없는 딸이었다.그런 딸이 뭐하나 볼거 없는 동식을 데려온 날, 그는 딸에게 처음 실망했다. 그럼에도 고집강한 딸을 꺾을 수 없어서 결혼을 시켰다.하지만 그 결혼은 3년도 되지 않아 깨졌다. 당시 딸은 선우를 품고 있었다. 결혼을 반대했던 치원까지도 이혼을 다시 생각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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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기다렸다는 듯 벌컥 문이 열렸고 와락 선우가 끌어안았다. 혹여 CCTV에 찍힐까 걱정이 된 은성이 목소리를 죽였다.“들어가서 해…!”“알았어~”그는 포옹을 풀지 않고 방안으로 끌어당겨 문을 닫았다. 잠시라도 떨어지기 싫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은성이 피식 웃었다.“문을 이렇게 닫는 사람이 어디있어.”“여기있어”선우가 양손으로 은성의 얼굴을 감싸고 쪽 입을 맞췄다. 더 깊이 입술을 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더 하면 은성이가 도망갈거야.’이 시간만을 생각하면서 그 지루한 산수연을 참았다. 같이 있고 싶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선우는 다시 입맞추는 대신에 꼭 껴안았다. 그러나 그 포옹마저도 욕망이 묻어있었다. 욕망을 참는 그의 몸은 떨렸다. 은성은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등을 쓸어주었다. 몸의 떨림이 잦아들자 선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소파로 이끌었다.“네가 전에 보고 싶다고 말한 영화 받아놨어.”“원더랜드 받았어?”토끼처럼 동그래진 눈을 보자 그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응. 보고 싶어했잖아. 같이 보자.”“고마워.”품에 폭 안기는 은성이 좋아서 선우는 한번 더 꼭 끌어안고 영화를 틀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했다.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였다. 간질거리는 썸에서 달콤한 연애가 이어졌다. 첫키스 장면이 나오자 선우는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은성이 영화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귀엽기는. 푹 빠졌어.’영화보다 표정을 지켜보는 것이 더 재밌어서 그의 시선은 은성에게 더 많이 머물렀다. 그녀와 삶을 함께한다면 지루할 틈이 없을 거 같았다.‘그런데 은성이가 날 지루해하면 어떻게 해?’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덜컹내려앉았다. 차가워진 은성의 눈빛을 본다면 심장이 조여들 것 같았다. 불안감이 차오르자 선우는 은성을 더 깊이 끌어안았다.‘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거야.’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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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날 버리고, 그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혹여라도 떠나버린다는 입에서 나올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은성이 그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안 떠나. 네가 날 아프게 하지 않으면.”그제야 비로서 선우는 웃었을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아이처럼 그는 은성의 품을 파고들었다.“아프게 하지 않아. 절대로. 그러니까 떠나지마. 계속 내 곁에 있어.”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절박했다. 거기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비로서 안도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그럴게. 계속 곁에 있을게.”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선우가 자신을 이렇게 간절하게 원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쿵쿵쿵 거칠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전해져 그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었다.*은성은 부스스 눈을 떴다.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였다.“조금 더 잘까?”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화들짝 놀랐다. 선우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선우의 방이다.“미쳤어…!”혹여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했다. 황급하게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어제 그대로였다. 안도하는 한편 어딘지 서운한 감정도 들었다.“정말 미쳤나봐.”어제 일들이 떠올랐다.“그럴게. 계속 곁에 있을게.”선우를 한참 품에 안고 있었다. 12시가 넘어가자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선우가 붙잡았다.“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돼?”안된다고 말해야 했지만 애처로운 눈망울에 그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선우는 은성의 손을 잡고 침대로 갔다.“나 잠들 때까지만 같이 있어줘.”“알았어.”그러나 정작 침대에 누운 그는 은성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계속 대화했다.“회장님이 한달 안으로는 유학 갈지 결정을 해야 된대.”“알았어. 고민해 보고 말해줄게.”“같이 유학가면 매일 이렇게 잠들 수 있겠다.”그날이 너무 기대가 된다는 듯 그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은성이 곱슬거리는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은은한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이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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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노트로 손이 가려다가 멈췄다.“한은성, 너 뭐하는 거야.”아무리 선우가 남자친구라지만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확인할 자격은 없었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2분이 더 지나가 있었다.“빨리 나가자.”그렇게 방에서 그녀가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가 눈을 떴다. 은성이 침대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눈썹이 푹 쳐졌다.“잠들자마자 갔나보네.”자신이 은성의 방에서 잠들었다면 유혹을 참지 못하고 꼭 껴안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때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노트…!”어제 은성을 기다리면서 시간이 가지 않아서 서랍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러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당황해서 노트를 책장에 꽂아놓았다.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서 노트를 확인했다. 어제 그가 꽂아둔 곳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누군가 만진 흔적은 없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그럼에도 불안감은 다 가시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은성은 자신에 대해 잘 알았다. 그가 숨기고 싶어하는 부분들까지도. 사람들은 선우를 착한 사람으로 기억했지만 은성만은 알았다. 선우가 무언가를 정말 원한다면 법이나 윤리따위는 상관없다는 것을.아직 그가 착한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선을 넘는 걸 은성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극도로 불안해졌다.노트를 보지 않았더라도 무언가 눈치챈 것이 아닐까. 만약 그녀가 무언가 눈치챘다면 곧 알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깨져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깨질 것이다. 은성은 분명한 선이 있고 그걸 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작은 불안의 불씨가 바람을 먹고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때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혹시 은성일까봐 빛의 속도로 확인했다. 그녀가 보낸 것이 맞았다.[방금 방에서 나왔어. 이따 오후에 산책 같이해!]눈 녹듯이 불안감이 녹고 입꼬리가 사악 올라왔다.“눈치 못챘어…!”그러면 됐다. 앞으로도 절대로 은성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것이다. 빛을 보면 안되는 어두운 마음을 숨기는 것처럼 맨 아래서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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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사람들은 자주 착각해. 잘해주면 사랑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맞아. 상대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일 수도 있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구와 단순한 대화였다. 하지만 유라의 곧게 꽂힌 시선이 그 말이 은성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직접적으로 은성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선우가 나중에라도 유라를 찾아가서 한마디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저린 짓을 한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유라의 친구는 보란듯이 맞장구를 쳤다. “내 친구도 남자친구가 엄청 잘해줘서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그냥 스킨십을 원한거였더라고.”“그래. 그렇다니까. 멍청한 애들이나 그게 뭐 대단한건줄 알고 좌지우지되지.” 그때 멀리서 선우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오자 이를 발견한 유라가 친구하고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은성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은성아. 무슨 일이야?”“으응? 왔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은성이 싱긋 웃었다. 선우가 리치콘의 포장을 벗겨 먹기 좋게 만들어 내밀었다. “녹기 전에 먹어.”“응. 고마워.” 그녀는 화답하듯 미소를 짓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 학교가 끝나고 은성은 선우와 함께 학원으로 향했다. “내일 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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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은성이 부스스 눈을 떴다. “깨웠구나. 미안해.”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선우였다.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다.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느렸다. 왜 여기 있는 거냐고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혹여나 거슬릴까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온 그는 조심스럽게 죽을 내밀었다. “밥 안 먹었을 거 같아서 사왔어.” 배달용기에 담겨있는 죽이 눈에 들어왔다. “흐윽….” 눈물을 참으려 할수록 더 눈물이 났다. 결국 땜이 무너지듯 눈물이 콸콸 쏟아나왔다. “흐앙….!”선우가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했다. “주,죽이 싫어? 싫으면 당장 버리고 올게.” 정말 말을 실행하겠다는 듯 그가 죽을 가지고 벌떡 일어섰다. 방에서 나가려는 그를 은성이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거 아니야.” 사실 죽 같은 음식은 얼마든지 집에서 해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은성이 그런 것을 껄끄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친구일적에도 선우가 아픈 은성을 챙겨서 주방에 뭘 요청하거나 하면 몇몇 고용인들이 불만을 이야기했다. 왜 고용주도 아니고 고용인도 아닌 고용인의 자식 병수발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였다. 물론 당연히 선희나 선우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자와 은성은 그런 말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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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일주일 후, 시험 끝나고 교실의 분위기는 들떠 있었다. 시험을 망친 몇몇 사람들은 우울했지만 대다수는 시험의 끝을 환영했다. 하지만 시험을 잘봤는데도 기분이 안좋은 사람이 있으니 선우였다. 쭈욱 나온 입이 귀여워서 은성이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우리 선우~ 뭐가 그렇게 불만일까.”“시험 끝난 당일에 특강을 받으러 가야한다는 게 말이 돼?”선우는 전체적으로 성적이 좋았지만 영어가 취약했다. 그런 그를 위해 선희는 일타강사와의 일대일 과외를 준비했다. 외부에 알려지면 안되는 일이라 강사가 사용하는 오피스텔에서 진행됐다. 다만 강사의 개인 일정상 오늘밖에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그래서 선우는 오늘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가야했다. 투덜거리는 선우가 귀여워서 은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가기 싫어?”“응. 가기 싫어. 너랑 있고 싶어. 요새 시험 공부한다고 나 만나주지도 않았잖아.”선우가 불퉁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꼭 골을 내는 아이 같아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일부러 그녀는 건조하게 말했다.“선우 너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나는 네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바로 달려가지. 그러니까 나 좀 달래줘.”“어떻게?”선우가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속삭였다.“오늘 밤에 방으로 와주면 안돼?”이런 이야기가 나올줄 진작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은성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오늘은 좀 피곤한대. 시험도 오늘 끝났고.”“시험 끝났으니까 나한테 시간 좀 내어줘. 응?”“어차피 내일 아침에 또 만날건데?”“그거랑 이거랑 같아?”선우의 입이 더 나왔다. 여기서 더 가면 달래는데 한참 진을 빼야했다. 삐졌다고 은성을 안 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그녀에게 달라붙어서 꼼짝을 못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오늘 일타 강사와의 과외도 팽개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오늘 계획이 무너졌다.‘그렇게 되면 안돼.’은성이 선우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내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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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6시가 되고 은성은 뒷문을 통해 선우의 방으로 몰래 들어왔다. 다행히 경자를 만나지도 다른 고용인들과 마주치도 않았다. “오늘 뭔가 잘 풀리네.” 이제 선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뭘하지?” 조심스럽게 방안을 둘러봤다. 혼자 이 방에 있는 건 처음이라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책상 앞에 서서 케이스를 열고 괜히 선우에게 줄 반지를 꺼내어 봤다. 그러다가 손이 미끌어져 반지가 떨어졌다. 바닥을 봤지만 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그때 맨 밑에 있는 서랍이 살짝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서랍이 열린 작은 틈새 사이로 반지가 떨어진 거 같았다. 마지막 서랍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트, CD같은 물건들이 보였다.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졌다. “선우가 이렇게 물건을 가득 채운다고?” 그는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물건이 가득 차 있는 것도 이상한데 물건들이 별 공통점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꼭 뭔가 숨기기 위한 거 같다.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반지나 찾자.” 서랍 안에 손을 넣어 촉각으로 반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물건을 빼내지 않는 상태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빼냈다. 맨 아래 있는 검은색 스트링 노트가 눈에 꽂혔다. 지난번에 선우의 방에서 잠이 들었을 때 봤던 그 노트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언가 확인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던 그 노트 말이다. 이번에도 그 이상한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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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샤워를 마치고 은성이 나왔다. 도희의 옷을 입은 터라 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것처럼 팔 다리 기장이 길었다. 평소였다면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성도 도희도 웃지 않았다. 도희는 말없이 바지 밑단과 팔 소매를 접어주었다. 은성은 소파에 기대어 감각이 마비된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도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선우 오빠 일이겠지.’ 은성의 젖은 옷을 정리하다가 주머니에서 반지 케이스를 찾았다. 007작전을 벌이면서 도희가 사다 나른 바로 그 반지였다. 케이스 안에는 두개의 반지가 있어야 하건만 하나의 반지만 있었다. 오늘 은성은 선우에게 깜짝 서프라이즈를 해주겠다고 했다. “유학 갈 결심했어! 그동안 선우 애를 태웠으니까 선물해주고 싶어!” 그 말을 하는 은성의 눈이 얼마나 반짝였는지 선명하게 기억했다. 오늘 은성에게도 선우에게도 행복한 하루가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까 비를 맞고 헤메이는 은성을 봤을 때는 순간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야.’ 선우가 은성이 주는 반지를 거절했을리가 없었다. 설사 거절했다고 해도 이렇게 무너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 줄곧 침묵을 지키던 입술이 열렸다. “가끔 선우가 최유라를 봤어. 나랑 사람들 몰래…. 물어봤어. 거슬려서 본거래. 눈동자가 흔들렸는데 그렇다고 믿고 싶었어…” 믿고 싶지 않았다.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노트를 본 순간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었다. 마음처럼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런데 오늘… 노트를 봤어. 한장도 빼놓지 않고 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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