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Chapter 71 - Chapter 80

89 Chapters

72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은성이 수업을 듣는 강의실 앞으로 갔다.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은성이 도희와 함께 앉아있는 게 보였다. 어제 알바가 있는 날이 아니었는데도 피로해보였다. 웃고 있었지만 무슨 걱정이 있는지 얼굴이 어두웠다. 그럼에도 그 얼굴마저 너무 달아서 그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교수님이 들어가고 나서야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은성이도 점심을 먹겠지.” 모든 강의는 은성과 다르게 신청했지만 점심 공강시간은 맞췄다. 멀리서 그녀를 보는 게 좋았다. 사귄 이후로도 그 시간에는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뭔가 먹어야 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샌드위치라고 먹고 때울 요량으로 학교 안에 있는 카페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핸드폰이 지이잉 울렸다. 귀찮았다. 단 한 사람의 전화를 빼놓고는 그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다. 통화거절을 할 생각으로 핸드폰을 봤다. 무심코 발신인에 시선이 닿고 통과 거절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멈췄다. 은성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가 전화를 받고 싶은 단 한 사람의 전화다. 그는 홀린 듯이 전화를 받았다. “은성아.”“지금 공강이지?”“응…!” 무엇을 하려고 공강이라는 걸 물어보려는 걸까. 죽어있던 희망 회로가 약간의 가능성만으로도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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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그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트의 존재가 유라를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게 만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 은성이 자신 몰래 다른 남자의 그림을 그렸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두꺼운 노트가 가득차도록. 상상만으로도 화가 차올라서 선우는 손에 든 유리컵을 던졌다.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유리컵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거친 숨을 쉬었다. 다른 남자와 어떤 접촉도 없었다고 해도 싫었다. 은성의 마음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자신이 얼마나 은성을 아프게 한 것인지 실감이 됐다. 가슴이 조여들었다. “은성아…”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곧 그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는 날 다른 기회를 잡아야했다. 그렇지 않은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수업을 마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강의실을 나섰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도희가 물었다. “언니, 괜찮아?”“응. 안 괜찮을게 뭐야.” 애써 웃으면서 답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우 오빠한테 갖다온 뒤로 수업에 전혀 집중 못하는 거 같던데.”“그냥 오늘 집중이 좀 안돼서 그래.”“그래. 뭐 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당장 기말이 다음주부터 시작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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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잘 지내?”“응. 잘 지내.” 얕은 한숨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은성은 본가에 몇번 들렸으나 경자와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선우 내일 입대하는 거 기억하지?” 나올줄 알았던 말인데 이상하게 심장이 욱신댔다. 한달 전 그는 입영 신청을 했고 내일 입대한다. 그 한달동안 선우는 정말 그녀의 말대로 얼쩡거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도 그는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렇게 그의 존재가 차츰 옅어졌다. 잘된 일이었다. 내일이면 입대하니 이제 그와는 더 멀어질 것이다. “기억해.”“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게…”“엄마, 나 일하는 중이야. 나중에 연락할게.” 뚝 전화를 끊었다. 이 핑계를 대려고 지금 전화를 받았다. 원하는대로 전화를 끊었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섰다. 은색 안경테를 끼고 있어서인지 남자의 인상은 차가워 보였다. “어서오세요.” 사무적인 인사를 하면서 남자를 봤다. 하늘색 남방에 검은색 면바지, 대학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그럼에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잘생겼네.’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은성의 얼굴은 무감했다. 편의점 알바를 하다보면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상태에 대한 판단일 뿐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근데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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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무감한 눈빛이 온몸에 털이 쭈볏 설 정도로 두려웠다. 은성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기회를 얻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끝낼까?”“아니야…. 그런데 아니야. 나 여태까지 네가 말한대로 했어.”“그런데 지금은 내 앞에 있잖아. 우연히 만난것도 아니야.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변명이든 설명이든 해야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선우가 말했다. “입대 앞두니까… 네가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너무…” 매순간 보고 싶었다. 함께했던 추억들을 곱씹고 또 꼽씹으면서 참았다. 하지만 입대가 다가오자 그것조차 힘들었다. 참고 참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오늘 이곳에 왔다. 사실 핑계였다. 은성은 마음이 약했다. 내일 입대인 만큼 오늘은 봐도 눈감아 줄 거 같았다. 모른척 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보니. 간신히 붙잡고 있는 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면서도 훽 돌아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은성아… 잠깐만…” 선우가 불렀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따라갔다.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그가 앞을 막았다. “이번만… 이번만… 용서해줘.”“내가 왜 그래야 해?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어도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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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맹렬한 키스를 이어갔다. 거친 물결에 휩쓸리는 것처럼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지가 벗겨져 있었고 팬티 안에 그의 손이 들어가 있었다. 입술을 벗어나 그는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촉촉 부드럽게 닿는 입술과 다르게 손의 움직임은 거칠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진득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그만하라고 말해야했다. 그냥 널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말이었다고 말해야했다. 그러나 그의 손과 입술이 그런 것들을 잊어지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정에 다다랐다. “으읍…!” 몸이 바르르 떨렸다. 떨림이 가라앉은 후에는 나른함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짜릿한 자극으로부터 잠시 해방된 그 순간 집 나갔던 이성이 돌아왔다. ‘한은성, 너 지금 헤어진 남자랑 뭐하는 거야?’ 기회를 주겠다고 했을 뿐 선우와 헤어진 상태였다. 앞으로도 만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남자랑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상황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멈춰야했다. 선우를 내쫓아야했다. “그만하고 나가.”“아직 별로 즐겁지 않잖아.” 그는 어느새 아래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침대 아래에는 허물마냥 바지와 팬티가 떨어져 있었다. 그는 유혹하듯 끈적하게 은성의 허벅지를 만졌다. 그저 접촉에 불과한데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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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뚝뚝뚝 무언가가 팔에 떨어졌다. 그것이 선우의 눈물이라는 것을 한박자 느리게 알아차렸다. 당황한 것도 잠시 화가 났다. ‘잘못을 저지르고 눈물을 흘리면 다야?’ 따져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본 순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은성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사…상처 주려는 게 아니야. 네가 다른 사람을 원한다고 해서… 그래서…” 얼굴 한쪽이 붉게 달아오르는데도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선우의 시선은 은성에게 붙박여 있었다. 사랑을 구걸하는 듯한 그 모습이 가여웠다. 동시에 은성 자신의 모습같기도 했다. 눈물이 흐르는데 웃음이 났다. “하….” 그녀가 울자 선우는 뭔가 큰일이 난 사람처럼 어쩔줄 몰라했다. “내…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마. 은성아…” 그는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주었다.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녀가 더 화를 낼까봐 두려웠다. 그때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그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그녀가 앉았다. 그를 내려다 보면서 명령했다. “지금부터 넌 가만히 있어.” 선우는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성이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다시 두 사람의 몸이 엉켜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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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휴식시간이면 그는 여지없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지 않으면 공중전화 줄에 서 있었다. 여자친구한테 보내는 편지라고 했다. 그러나 한번도 그 여자친구에게서 편지가 온적은 한번도 없었다. 생활관 동기들의 말로는 그 여자친구가 전화도 한번 받아준적이 없다고 했다. ‘한성그룹 후계자가 목매는 여자라니’ 부대에서 모두가 그 여자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여자에 대해서 쉽게 물어보진 못했다. 사실 상병 하나가 빈정거린 적이 있었다. “자꾸 편지 쓰지마. 이미 마음 뜬 거 같은데 자꾸 편지 쓰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 그때 선우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늘한 눈으로 그 상병을 바라봤다. 온몸의 털이 하나하나 설 것 같은 서슬퍼런 눈이었다. 그때 이후로는 그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도 여자친구에 대한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부사관이 물었다. “그 여자친구 편지 아직도 온적 없냐?”“네. 한번을 안 왔습니다. 휴가 가서 바로 찾아갈 생각인 거 같은데 사고 칠까봐 걱정입니다.”“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사관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 부대를 나서자마자 유 실장이 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유실장님.”“네. 오랜만입니다. 도련님.”&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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