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全部章節:第 21 章 - 第 30 章

33 章節

21. 조작된 조항

“계약서, 받았어요.”“그래요. 읽어봤어요?”“네.”짧은 대화. 그러나 그 안엔 한없이 무거운 기류가 깔려 있었다.이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마음에 안 드는 부분… 있어요?”유리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진짜… 그 계약, 회장님이 직접 보셨어요?”“…네. 내가 직접 결재했는데?”“그럼… 그 조항도요?‘본사 전속 근무, 외부 영업 금지’까지?”이현은 그제야 눈빛이 바뀌었다.“…잠깐만요. 그건 제가 넣은 조항이 아니에요.”같은 시각, 본사 사무실. 은별은 조용히 컴퓨터 화면을 닫고 잔잔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그 조항이 유리에게 어떻게 읽힐지,그게 어떤 방식으로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흔들 수 있는지를.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따질 시간도 없이 먼저 유리에게 다가가야 할 만큼 조급해질 거라는 것도.‘좋아하는 감정 하나로는, 결국 무너지게 돼 있어.’그녀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늦은 밤 가게 앞. 이현은 급히 도착했다.가게 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불은 꺼져 있었지만 안에 조명이 아주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조유리 씨.”그는 문을 두드렸다.잠시 뒤, 문이 열렸다.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그 계약서… 진짜 회장님이 쓴 게 아니었다면, 그걸 왜 나한테 아무 설명 없이 보낸 거예요?”이현은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내가 실수했어요. 서류 넘기기 전에 확인을 못 했고, 그 조항은… 내가 원한 게 아니에요. 절대.”유리는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오랫동안, 길고 조용하게. 그리고 입을 열었다.“…회장님. 제가 진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는 거, 이 계약서 보고 나서 처음 깨달았어요.”이현의 눈빛이 흔들렸다.“근데요… 그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는 부족할까 봐, 갑자기 겁이 났어요.”그녀는 문을 닫았다. 차가운 철문 너머로, 그의 숨소리만이 아주 작게 새어 나왔다.“금일 휴업”가게 문 앞에는 짧고 단정한 손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이현은 이른 아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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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로의 심장 소리

그 말은 공식 선언이었다.은별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자신이 처음으로 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깨달았다.그날 밤. 이현은 조유리의 가게 앞에 다시 섰다.불 꺼진 유리문에 얼굴을 비추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조유리 씨, 지금 나 좀 멍청해요. 처음으로 누굴 붙잡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내가 준비한 계약서도, 내가 보낸 마음도 다 부족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요.돌아와요. 아니, 돌아오게 할게요. 내가, 달려가서.’문자는 발송되지 않았다.그는 그냥 핸드폰을 천천히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쥐고 돌아섰다.유리는 민박집 방 창문 너머로 잔잔하게 부는 바닷바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마음속 생각들이 자꾸만 큰 소리로 들렸다.‘그 사람 눈빛… 내가 떠나기 전에, 분명 뭔가 말하려던 거였는데.’그때 들었어야 했을까. 그냥,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을까.하지만 동시에, 그 조항 하나가 너무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그건 사랑이 아니라 계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그게, 도망친 이유였다.그리고 그 시각, 이현은 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유리가 남긴 단서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남해 바닷가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주변은 조용했고, 차 안엔 그의 짧은 숨소리만 흘렀다.핸들을 잡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창밖을 스치는 풍경은 그의 마음처럼 초조하게 흘러갔다.‘이런 내 모습, 처음이야. 누굴 이렇게까지… 찾아간 적, 없는데.’늦은 오후. 민박집 앞 작은 돌담길을 따라 낯익은 실루엣이 걸어왔다.유리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날렸고, 두 눈엔 믿기지 않는 표정이 스쳤다.이현은 숨을 고르며, 그녀 앞에 조용히 멈췄다.“여기까지 왜… 어떻게…”“당신, 이름도 안 남기고 사라졌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단단했다.“계약서… 나 그거, 진짜로 모르고 있었어요.은별이 건드린 줄도 몰랐고, 그게 당신을 이렇게까지 밀어낼 줄도 몰랐고…”이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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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좋은 일은 늘, 오래가지 않는다지만

아침 햇살은 부드럽게 흘러내렸고,작은 민박집 방 안엔 은은한 커튼 사이로 바람이 살며시 스며들고 있었다.유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에는 여전히 조용한 바닷소리, 그리고 머리맡엔 어제 남겨둔 머플러 위로 서이현이 따뜻한 손편지를 올려두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당신 덕분에 오늘 아침 공기가 조금 더 달콤했어요. 같이 서울로 돌아가요. 우리, 이제 도망치지 않기로 했잖아요.’그 짧은 글은, 어느 고백보다 더 따뜻했고 유리는 그걸 손에 꼭 쥔 채 미소를 지었다.서울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처음으로 아무 부담 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이현은 유리에게 도시락을 직접 싸주겠다고 했다가 유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회장님, 진짜 요리하면 주방 폭발 나요.”“그럼 내가 다 터뜨릴게요. 주방이든, 마음이든.”그 말에 유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창밖을 바라보았다.바람은 부드러웠고, 마음은 드디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하지만, 좋은 순간은 언제나 누군가에겐 불편한 일이었다.다음 날 오전. 유리는 가게 앞에서 굳게 닫힌 출입문을 바라보고 섰다.현관문에 붙은 공문.‘불법 증축으로 인한 시정 명령. 관할 구청과의 협의 없이는 영업 불가.’유리는 그 자리에서 말을 잃었다.서류를 다시 확인했지만,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없던 내용이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은별. 유리는 망설이다가 통화를 받았다.“사장님, 가게에 문제 생기셨죠?”“이건… 비서님이 하신 거예요?”“아뇨. 저는 그냥, 회장님께서 사적인 감정으로 판단을 흐리시지 않도록 조금 정리만 했어요.”은별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엔 뚜렷한 위협이 묻혀 있었다.“이제 그만 두시는 게 사장님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그날 밤. 이현은 유리에게 전화를 받고 가게 앞으로 바로 달려왔다.문 앞에 붙은 공문을 본 순간, 이현의 얼굴이 굳어졌다.“이건… 일부러 노린 거예요.”“회장님, 이런 식으로까지… 저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요.”유리는 침착하려 애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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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빈 접시의 기억

유리는 오늘 아침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겨우 되살린 가게의 문을 열며 손끝으로 열쇠를 돌리는 감각조차,어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괜찮아. 오늘은 그 사람 옆에 선 첫날이니까.’그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주방 앞에 조용히 섰다.오늘은 이현과 함께 S그룹 재단 기부 갈라 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날이었다.“이런 자리에 제가 가도 괜찮을까요?”유리는 전날 밤, 이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이현은 짧게 웃었다.“나랑 같이 있는 건데 왜 안 돼요.”“모두가 쳐다볼 거예요.”“봐요. 보고 뭐라고 하든, 내 손 잡고 있는 건 조유리 씨예요.”그 말에 유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행사 당일, 고급 호텔의 로비엔 이미 각계 인사들이 모여 있었고,카메라 플래시는 쉼 없이 터지고 있었다.유리는 숨을 고르며 이현과 나란히 들어섰다.시선이 쏟아졌다. 무언의 평가, 호기심, 속삭임.하지만 이현은 유리의 손을 단단히 잡고,어느 누구보다 당당하게 그녀를 이끌었다.“긴장돼요?”그가 속삭였다.“아니요.”유리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그냥, 잘 걷고 싶어요. 당신 옆에서.”그 순간, 멀리서 은별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녀의 옆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유리 씨, 조유리 맞죠? 그 동네 식당 하던 여자.”“네. 그분이… 한때 저희 쪽 정보에도 스쳤던 이름이긴 해요. 자세한 건 이 안에 있습니다.”은별은 조용히 USB 하나를 손에 받았다.“감사합니다. 이건, 조용히 처리할게요.”그녀는 천천히 일어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당신의 과거가 당신을 흔들게 될 줄 당신은 아마 몰랐겠지.’행사장에서 돌아오는 길. 유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기분 솔직히 무서웠어요.”이현은 조용히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유리의 손등을 덮었다.“나도 무서웠어요. 혹시라도 당신이 손 놓을까 봐.”유리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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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꼬리표의 무게

“조유리 씨.”문이 열리고 이현이 들어섰다.유리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다 봤어요? 저에 대한 이야기들.”“네…. 다 봤어요.”그 말에 유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 저…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저한테 붙은 그 꼬리표들,그거 다 떼어내느라 얼마나 오랜 시간 걸렸는지 몰라요.”“그래서 숨겼던 거예요. 나쁜 마음은 아니었어요. 그냥… 당신 앞에 당당하고 싶었어요.”이현은 조용히 그녀 앞으로 다가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조유리 씨, 당신이 내 아픈 이야기를 들어준 첫 번째 사람이에요. 이번엔, 내가 그 이야기를 지켜줄게요.”그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가슴을 치는 고백이었다.그날 밤. 이현은 공식 보도자료를 지시했다.조유리의 가정사 루머는 ‘허위 사실’로 정정되고,법무팀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다.유리는 그 보도자료를 조용히 내려놓았다.눈물이 났다. 기쁘거나 슬퍼서가 아니라,누군가가 ‘내가 아닌 내 이야기’를 대신 안고 싸워주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기자 앞에서 정말, 같이 서도 괜찮을까요?”유리는 거울 앞에서 작은 진주 귀걸이를 만지며 조심스레 물었다.질문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망설임과 두려움은 쉽게 들여다보였다.“나는 괜찮아요.”이현은 그녀의 뒤에서 짧게 대답했다.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낮고 단단하게 말했다.“지금부터는 이름이 아니라 옆자리를 지키는 걸로 증명해요.조유리 씨는 ‘누군가의 여자’가 아니라 내가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그 말은 유리가 단단해지기 위해 들어야 했던 첫 번째 문장이었다.이현과 유리는 S그룹이 준비한 내부 언론 미팅에 함께 참석했다.공식적 기자회견은 아니었지만, 재벌가가 ‘공식적으로 누군가와 교제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에식당을 운영하던 개인 요리사가 함께 나섰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파장을 일으킬 만한 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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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세상 앞에 선 방패

그 시각. S가의 저택,넓은 응접실 한가운데에 앉은 이현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단단했다.“유리 씨를, 공식적으로 내 옆 사람으로 받아주세요.”어머니는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었다.“그 사람, 너무 많이 가진 것 없어.”“가진 게 없다는 말, 나도 들었어요. 근데요 어머니. 그 사람이 가진 건, 그 어떤 상속보다도 단단한 신뢰예요.”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그저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현에게 말했다.“가족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지금 하지 마.”“하지만”“대신,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하려는 게 진심이라는 걸 나한테 보여줘. 소문이 아니라, 입맞춤도, 계약도, 아니라. 너 스스로를 걸고 보여줘.”이현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럴게요.”유리는 그날 밤, 이현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내가 직접 어머니와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가려면, 내가 먼저 내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아야겠더라고요.”“회장님…”“나, 지금 당신한테 기댈 수는 없어요. 오히려 내가 기둥이 돼야 하니까.그러니까…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줘요.”그 말은 유리의 가슴을 천천히 흔들었고, 그 안에 깃든 믿음이 차오르는 눈물보다 먼저 가슴을 데웠다.“…저, 잘하고 있는 거 맞죠?”“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더 잘해질 거예요.”그리고, 어두운 호텔 라운지 한켠. 은별은 낯선 기자와 비밀리에 만남을 갖고 있었다.“이 기사, 원본은 없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자극적인 포인트는 있으니까,표현만 살짝 조절하면 됩니다.”그녀는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조유리, 과거 사기 혐의로 조사받은 모친과 동반 조사된 이력.’“이건 공식 기록은 아니잖아요.”“그렇죠. 하지만 ‘의혹’이라는 말 하나면 충분해요. 그리고 이건, 사실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문제니까.”은별은 조용히 찻잔을 밀며 미소 지었다.“끝내야죠. 이제 정말.”아침, 가게 문 앞. 유리는 배달된 신문 더미 중 가장 위에 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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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당당하게, 당신 곁에

자신의 과거, 상처, 무너질까 두려웠던 진실까지 그 모든 걸 안고 감싸며 보호하고 있었다.그리고 유리는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이제는 나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서야겠다.’그날 밤. 이현은 아무 말 없이 가게 문 앞에 섰다.문이 열리고, 유리가 나왔다.“진상님.”그의 눈빛이 흔들렸다.“…이제 괜찮아요?”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니요. 하지만, 그래도 내일 문 열고 싶어요.”“제가 도와줄게요.”“괜찮아요. 대신… 옆에만 있어주세요.”그리고, 유리는 조용히 말했다.“…이제, 나도 회장님 지키고 싶어요.”유리는 낯선 대기실 안, 하얗게 정리된 조리복 위로 머리끈을 단단히 묶으며 거울을 바라보았다.거울 속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예전과는 달랐다.두려움보단 결심, 불안보단 준비된 단단함이 그 작은 동공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정말… 괜찮겠어요?”이현은 대기실 문을 반쯤 연 채 조심스레 물었다.유리는 짧게 숨을 들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이젠, 회장님 뒤에 숨지 않을래요.”행사는 국내 최정상급 셰프들이 초대된 S그룹 주최의 고급 식문화 포럼이었다.처음엔 조유리를 굳이 초대할 필요는 없었지만,이현의 강력한 추천으로 '요리의 따뜻함’이라는 소주제 아래 그녀가 한 팀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무대 앞 객석에는 그녀를 향한 각기 다른 시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음식계 인사들, S그룹 사내 고위 인물들, 그리고 서이현의 어머니.은별은 그 옆에서 조용히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첫 번째 요리는 유리의 대표 메뉴였던 ‘우엉볶음 가니쉬를 얹은 고등어 덮밥’.정갈하게 담긴 그릇 위, 윤이 반들반들 흐르던 고등어 한 점과달짝지근하고 깊은 풍미의 우엉채,그리고 마지막에 곱게 얹은 봄잎 장아찌 하나.딱 한 입. 그것만으로 관객석 분위기가 달라졌다.시식이 끝난 뒤, 사회자가 물었다.“조유리 셰프님, 요리 콘셉트가 다소 소박해 보이는데, 이 요리에 담은 의미는 뭔가요?”유리는 마이크를 쥐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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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더 이상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말 나가겠다는 거예요?”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단정하게 셔츠 소매를 걷었다.“이제는 내가 직접 말해야 해요. 지켜지기만 하는 사람으로는 이 사람 옆에 서 있을 자격이 없을 것 같아서요.”기자 회견장, S그룹이 마련한 별도 공간.보도자료 배포 없이 준비된 비공식 회견이었지만,이미 사전 정보를 입수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유리는 단정한 베이지 셔츠에 정갈하게 묶은 머리로 단상 앞에 섰다.카메라 셔터 소리,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고 시선.그 모두가 똑바로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안녕하세요, 조유리입니다.”그녀는 숨을 고르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최근 보도된 기사들에 대해 제 입장을 직접 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어느 한 음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저의 어머니는 과거 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법적 조치 없이 무혐의로 종결되었습니다.저는 그 사건의 피해자였고, 당시 미성년자로서 조사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그 순간, 기자들의 질문이 터져 나왔다.“S그룹 회장과의 관계가 이 사안을 덮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혹도 있습니다.”유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사랑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방패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방패로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그 사람은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저를 숨기지 않고 마주봐 준 사람입니다.”“그래서 저도, 이제는 그 사람을 향한 제 감정을 세상 앞에 놓기로 했습니다.”그 말이 끝난 순간, 회견장 뒤편 문이 열리고 이현이 들어섰다.기자들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고, 유리는 순간 숨을 멈췄다.이현은 천천히 그녀 옆에 섰다.“이 자리에 함께 서는 건, 그 사람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입니다.”그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오늘을 기점으로 조은별 비서와의 모든 업무 관계를 종료합니다.앞으로 그 사람 곁에는, 조유리 씨만 있습니다.”이현의 단호한 말은 곧이어 터진 플래시 세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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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우리만의 온전한 식탁

“다녀왔어요.”유리는 조용히 말했다.“가서, 어린 날 나를 조금 안아줬어요.”이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그리고 작은 서류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이건…”“당신 가게. 재건축 승인이 났어요. 위험한 구조 걷어내고 1층은 예전처럼 가게로, 2층은… 우리가 살 집으로.”유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우리?”“응. 가게도, 삶도, 식탁도 같이 만들고 싶어요.”그 순간, 세상이 아주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유리는 천천히, 종이에 사인된 자신의 이름을 내려다봤다.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고마워요. 그냥… 이렇게까지 나를 함께 데려와 줘서.”반면, 그 시간 은별은 조용히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책상 위 사진들, 일지 노트, 서랍 속 유리 조각처럼 흩어진 감정의 잔해들.그녀는 모든 걸 천천히 정리한 뒤, 핸드폰을 꺼내 문자 하나를 남겼다.‘이젠, 보내줄게요.’그 말은 누구에게 보낸 건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은별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새로 단장된 가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바닥의 나무 결은 더 고요했고, 조명은 조금 더 따뜻했으며,주방 벽 한쪽에는 유리가 고른 작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내일도, 당신 입에 따뜻하게 닿기를.’그 문장을 고르고, 스스로 적어 걸었던 순간,유리는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느꼈다.첫날 아침. 유리는 앞치마 끈을 고쳐 매며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따스한 봄바람이 스며들었고, 기분 좋게 간판이 흔들렸다.조유리 식당 그렇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간판을 처음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바라봤다.문이 열리고, 첫 손님이 들어섰다.“예약한 사람인데요.” 익숙한 목소리. 낮고, 느긋하고, 조금 장난기 어린. 이현이었다.유리는 고개를 들며 웃었다.“진상 손님, 오늘은 예약도 하셨어요?”“첫날인데, 줄 서는 건 좀 모양 빠지잖아요.”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꽃다발 하나를 꺼냈다.장미도, 백합도 아닌 작고 수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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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예고 없이 찾아온 잔상

“회장님, 정말 잘 들으셨죠? 진상 고객 할인은 없어요.”“아쉽네…그럼 그냥 매일 와야겠다.”저녁 시간이 지나 가게 문을 닫고, 둘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밖에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테이블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유리는 컵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오늘도, 잘 지나갔네요.”이현은 그 말을 조용히 따라하며 대답했다.“그게 기적이더라고요.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거.”“아무 일 없지 않았어요.”유리는 웃었다.“사랑이 있었죠. 그리고 잘 먹은 한 끼도 있었고요.”그 밤. 식당의 불이 꺼지고,가게 입간판이 다시 ‘영업 종료’로 뒤집히는 순간. 작은 가게의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지만,그 안에 담긴 온기만은 천천히,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온기 속에, 유리와 이현, 두 사람의 삶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겨울 첫눈이 내린 날. 도시는 느릿했고, 가게 앞 골목도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유리는 창가에 서서 유리문에 닿아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다 속삭이듯 말했다.“오늘, 첫눈이에요.”이현은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웃었다.“알죠. 그래서 오늘, 내가 밥 짓는 날이에요.”주방에서는 이현이 직접 계란을 풀고, 김을 굽고, 밥을 짓고 있었다.재료는 특별하지 않았다.달걀, 참기름, 밥, 그리고 어제 유리가 담가둔 무말랭이 무침.하지만 이현의 얼굴엔 어느 때보다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음식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그는 조용히 중얼이며 접시를 테이블에 놓았다.“재료는 똑같은데, 그 사람 손에서 나올 때마다 다른 온도가 느껴지잖아요.”유리는 조용히 테이블 앞에 앉았다.이현이 만든 음식은 소박했지만 단정했다.계란지단이 곱게 얹힌 밥 위에 작게 썬 김가루, 그리고 정갈한 장국 한 그릇.“이게… 오늘의 메뉴예요?”“응. 이름은…”그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같이 먹고 싶은 밥’이에요.”유리는 수저를 들었다. 한 입,두 입.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갈 때, 갑자기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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