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 Kapitel 141 – Kapitel 150

216 Kapitel

141. 서로의 하루에 늦게 도착하는 우리

이른 저녁, 파리의 하늘은 유리창에 부드러운 회색을 입히며 하루를 천천히 접고 있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작은 머그잔을 감싸쥔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방 안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은 평화보다는 조금씩 스며드는 공허에 가까웠다.오늘도 이현은 퇴근이 늦었다.며칠 전부터 이현은 잦은 미팅과 외부 일정으로 식사도, 퇴근 시간도 들쑥날쑥해졌다.“오늘은 회식 있을 것 같아.”“회의가 늦게 끝나서 좀 걸릴 수도 있어.”“오늘 저녁은 먼저 먹고 있어요.”그는 언제나 미안해했고, 유리는 언제나 “괜찮아요.”라고 답했다.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언제나 마음의 반을 비워두고 말하는 거였다.유리는 그날도 혼자 저녁을 준비했다.작은 냄비에 된장국을 끓이고, 파와 애호박을 얇게 썰어 조용히 볶았다.식탁은 어제와 같았고, 그제와도 같았지만유리가 앉은 자리 맞은편이 비어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한참을 바라보다그녀는 이현의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마치 누군가 곧 들어올 것처럼 그 빈자리를 그대로 둔 채 자신의 밥만 떠먹었다.식사를 마친 뒤 유리는 설거지를 하지 않은 채 거실로 향했다.불을 환하게 켜지 않았다.전등 하나만 켜두고 그 안에서 몸을 말았다.음악도, TV도 틀지 않고 그저 조용한 공간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시간은 지나갔고, 그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가 느리게 일렁이고 있었다.‘같은 집에 있지만, 우린 지금 서로 다른 하루를 살고 있구나.’밤 10시가 다 되어 현관문이 열렸다.“다녀왔어요.”이현의 목소리는 예의 그 따뜻한 톤이었지만 피곤이 묻어 있었다.유리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작게 웃었다.“늦었네요.”“회의가 길어졌어요. 미안해요.”“저녁은 먹었어요?”“아뇨. 배는 안 고픈데, 뭔가 따뜻한 거 한 입 먹고 싶긴 해요.”유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남겨둔 국을 데우고, 반찬 하나를 접시에 덜었다.그의 앞에 놓인 조용한 식판.그 안엔 기다림과 피로, 그리고 다정함이 조금씩 묻어 있었다.이현은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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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낯선 테이블의 대화

그날은 맑은 날이었다. 햇살은 모처럼 무겁지 않았고,바람은 카페 테라스의 흰 천막을 부드럽게 건드릴 뿐이었다.유리는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늘 가던 작은 골목의 카페에 앉아 있었다.오늘은 장을 보지 않았다.오전부터 마음이 낯설게 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한참을 화면만 바라보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찰나,그녀는 테이블 너머 누군가의 짧은 한국어 인사를 들었다.“실례합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고개를 든 유리 앞에는 검정 테라스 의자에 조심스럽게 선 낯선 한국인 남자가 있었다.그는 여행객처럼 보였고, 말투는 공손했으며 눈빛은 지나치게 밝지도, 무례하지도 않았다.“네. 맞아요.”유리는 짧게 답했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반가워서요. 이런 데서 한국어 들으니까 괜히 반갑네요.”그는 그녀 옆 테이블에 앉았다.다른 자리들도 충분히 비어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다.“혼자 여행 오셨어요?”유리는 머뭇거렸다가 고개를 저었다.“여기 살아요. 남편 일 때문에 잠시…”“아, 그러시구나.”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전 이번 주까지만 있어요. 여긴 이상하게… 사람을 조용하게 만들죠.”그가 조용히 말했다.“조용한 건 좋은데, 가끔… 혼자 남겨지는 느낌도 들고요.”유리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듯, 한숨처럼 내뱉었다.“그 기분 알아요.”그 대답은 머리로 한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데서 흘러나온 말이었다.그들은 짧은 시간, 몇 마디 말을 더 나누었다.그는 파리 외곽의 고서점 이야기를 했고, 유리는 지난주에 들렀던 작은 시장 이야기를 했다.말의 깊이는 얕았지만, 그 얕음 속에서 의외로 마음을 스치는 정적이 생겨났다.“사실… 요즘 제일 그리운 게 김치찌개예요.”그가 웃으며 말했다.“얼큰한 거. 가끔, 그 맛 하나가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잖아요.”그 말에 유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맞아요. 그 맛 하나 때문에 여기서도 매일 부엌에 들어가요.”“그럼… 그 집은 참 따뜻하겠네요.”그 말은 칭찬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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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더 믿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날 이후, 이현은 이전보다 조금 더 말이 줄었다.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출근 시간도 같았고, 퇴근 뒤 씻는 순서도 변함없었고,식탁에 앉아 조용히 국을 한 입 떠먹는 것도 여전했다.하지만 유리는 그 작은 일상의 틈들 사이에서 이현의 눈빛이 예전보다 자주 멈춘다는 걸 느꼈다.자신의 손끝에, 입술 근처에, 무언가를 맴도는 시선처럼.그는 묻지 않았고, 유리는 설명하지 않았다.말하지 않기로 서로가 합의한 것도 아닌데,자연스럽게 침묵이 그들의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오늘 뭐 했어요?”저녁을 마친 뒤, 이현이 조용히 물었다.“시장 다녀왔어요. 신선한 두부가 있어서, 조림용으로 사왔죠.”유리는 평범한 말투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준비된 해명을 삼킨 것이었다.그날 이후 카페에서의 우연한 대화 이후,자신 안에도 조용히 남아버린 ‘작은 설명의 조각’을 이현에게 주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의 손끝은 가만히 젓가락을 비비고 있었고, 식탁 위의 된장국은 식어가고 있었다.어떤 날은 이현이 퇴근 후에도 노트북을 덮지 않았고, 어떤 날은 유리가 먼저 잠든 척 등을 돌렸다.말을 하지 않는 건 어쩌면 싸움보다 더 조용한 전쟁이었다.그리고 그 전쟁의 방식은 ‘조심함’이라는 이름의 친절을 가장한 거리였다.유리는 문득, 그 거리감이 가장 차갑게 느껴졌던 순간을 떠올렸다.예전, 이현과 아직 멀었던 그 시절,그의 부엌에 있던 수많은 ‘기계적인 정돈’과 ‘무미의 식탁’.그것은 한 사람의 외로움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난 풍경이었다.그런데 지금 자신의 부엌이 그때와 비슷한 공기로 가득 차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유리는 묘한 공포를 느꼈다.“혹시…”유리는 이현이 노트북을 덮고 앉아있을 때 말을 꺼냈다.“그날, 카페에서 봤어요?”이현은 순간 눈을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응. 잠깐 봤어요.”조용한 대답이 돌아왔다.그 말 뒤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질투도, 오해도, 해명을 바라는 마음도.그냥,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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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가장 부드러운 거짓

유리는 그날 오전, 시장 대신 작은 요리 교실로 향했다.파리 14구의 오래된 아틀리에 건물 안,외국인을 위한 한식 클래스가 한 달에 두 번 열렸다.이현이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이제 당신도, 당신만의 리듬을 가져요.”그 말은 마치“나는 당분간 당신을 기다려주지 못할 거예요.”라는 문장의 완곡한 표현처럼 들렸지만, 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였다. 그녀는 오늘 오랜만에 ‘식탁의 다른 의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수업은 조용하게 시작됐다.프랑스어,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부엌 안. 유리는 익숙하게 손끝을 움직였다.오늘의 메뉴는 고추장 삼겹살 볶음과 무생채.익숙한 레시피였지만 설명할수록 낯선 리듬이 흘러들었다.그러다, 그가 들어왔다.카페에서 마주쳤던 그 한국인 남자 여행자라 말했던 사람.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유리는 그를 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간장을 한 박자 늦게 부었다.“여기서 다시 뵐 줄은 몰랐네요.”그는 웃었다. 유리는 미소를 지었지만그 안엔 당황스러움이 조용히 감추어져 있었다.“저도요. 그날 이야기 듣고,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그의 말은 무해했고, 그 시선도 가볍게 흘렀지만 유리는 그 시선을 온전히 의식하고 있었다.그날 수업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간장은 넘치지 않았고, 무생채의 간도 적절했지만유리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모든 촉각이 유리처럼 깨질 듯 긴장되어 있었다.“여기 정말 좋네요. 이런 공간에서 요리하면 시간이 조금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요.”그가 수업이 끝난 후 남겨진 시간에 말했다.유리는 조용히 수건을 접으며 답했다.“그럴 수도 있죠. 다만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너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그 말에 그는 유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괜찮다면… 다음에도 오겠습니다.”유리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허락도, 거절도 아니었다.그 애매함 안에 유리는 자신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조금씩 자각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이현은 회의 후 팀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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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감정의 모서리

창밖으로 부드러운 빗방울이 떨어지던 늦은 오후,유리는 부엌에 서서 당근을 얇게 채 썰고 있었다.칼끝은 부드럽게 움직였지만, 그녀의 시선은 멍하니 창문 너머 회색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요즘 부엌은,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정리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었다.그녀는 요리하며 마음을 정리했고, 칼질을 하며 생각의 결을 맞췄다.그리고 오늘, 그 정리되지 않은 생각 중 하나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그 남자의 얼굴. 아니, 정확히는 그가 건넨 말투 속에 숨어 있던 어딘가 따뜻한 공기.유리는 그 기억을 털어내듯 칼끝을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저녁 무렵, 이현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돌아왔다.“오늘은 회사 사람들 안 만나?”유리가 물었고, 이현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그냥… 당신이랑 저녁 먹고 싶어서요.”그 말은 다정했고, 동시에 어딘가 단정적인 감정이 들어 있었다.식탁은 차려졌고, 두 사람은 조용히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된장국, 무나물, 김치전. 익숙한 맛들이었고, 조용한 저녁이었다.그러나 그 조용함 안에 뭔가 작게 긁히는 소리 같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수업은 어땠어요?”이현이 물었다.“무난했어요.”유리는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도 왔어요?”이현의 질문은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그러나 그 순간, 유리는 수저를 잠깐 멈추었고, 그 정적이 이현의 가슴 속에 아주 미세하게 파문을 일으켰다.“…응. 근데 그냥, 수업 들으러 온 사람일 뿐이에요.”유리는 눈을 들지 않았다.그 말은 거짓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솔직하지도 않았다.그게 더 큰 틈을 만들었다.식사를 마친 후, 이현은 설거지를 자청했다.유리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거실과 부엌 사이엔 물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이 흘렀다.그러다 이현이 조용히 말했다.“요즘 당신, 예전보다 웃는 얼굴이 늘었어요.”그 말은 칭찬 같았지만 그 안엔 알 수 없는 질문이 숨어 있었다.유리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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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현관 벨이 울릴 때

오전 내내 흐리던 하늘이 늦은 오후 들어 드문드문 햇살을 드러냈다.유리는 요리 교실을 마치고 돌아와 늘 하던 대로 부엌을 정리하고 있었다.방금 씻은 도마엔 남은 마늘 향이 아직 어지럽게 얹혀 있었고,그 사이로 멀리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둔하게 울렸다.그때였다. 현관 벨이 울렸다.'이현이 일찍 돌아왔나?'유리는 물을 닦지도 못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그 문 앞엔 낯익은 얼굴이 서 있었다.요리 수업에서 만났던 그 남자였다.카페에서, 그리고 두 번의 수업 안에서 그녀와 두세 문장씩 나누었던 사람.그는 작은 종이 상자를 두 손에 들고 있었다.“이 근처에서 잠깐 볼일이 있었어요. 수업도 마지막이고… 그동안 감사해서요.”그는 짧게 웃으며 상자를 유리에게 내밀었다.작은 유리병 두 개. 하나는 꿀, 하나는 직접 만든 잼.병 뚜껑엔 작은 스티커로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To. 요리 선생님. 따뜻했던 시간 고마웠습니다.’유리는 잠시 멈칫하다 그 선물을 받으며 작게 인사했다.“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그냥, 그날 카페에서 마주친 것도 여기까지 인연일 것 같아서요.”그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어색하지 않았고,단정한 끝맺음을 고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그런데 그때였다.현관 바깥,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그리고 곧, 이현이 복도를 돌아 그들 앞에 나타났다.이현은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그의 시선은 유리와 마주 선 남자,그리고 유리의 손에 들린 작은 종이 상자를 차례로 스쳐갔다.공기는 잠깐 멎었다.어느 누구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무언가 단단히 부서지는 소리가 서로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유리는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이현 씨, 이쪽은… 요리 수업 들으셨던 분이에요.근처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선물 주시고 가시려던 참이에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선 어떤 미소도, 인사도 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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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내가 하지 못한 것

그날 아침, 유리는 눈을 떴을 때처음으로 이현의 부재를 '편안하다'고 느꼈다.늘 어깨 너머에 머물던 무게가 없어진 자리에 스며든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그녀는 곧 그것이 편안함이 아니라 ‘회피’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식탁 위엔 전날 버리지 못한 작은 잼병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작은 유리병 하나가 이 집 안의 공기를 바꿔놓고 있었다.이현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출근 준비를 마치고 셔츠 단추를 채우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거울 앞에 선 그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그의 눈빛은 거울 속 자신과 어디에도 초점을 두지 못한 채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오늘, 저녁은 늦어요.”그가 말하자 유리는 고개만 끄덕였다.말이 짧아졌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도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그건 애써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조심이었고,동시에, 서로를 오해하지 않으려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오후가 되자 하늘이 흐려졌고, 유리는 장을 보기 위해 익숙한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그녀는 손에 닿는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문득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저는 곧 떠나요. 이 도시도, 이 골목도 다 그냥 스쳐가는 시간이니까요.”떠날 사람. 남지 않을 사람.유리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는지 생각했다.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정말 그는 그녀의 마음 어디에도 스며들지 않았을까.그날 저녁, 유리는 조심스럽게 식탁을 차렸다.된장국엔 버섯을 많이 넣었고, 잡채는 이현이 좋아하던 당면을 넉넉히 삶았다.하지만 식탁의 중심에 앉을 사람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시계를 몇 번이고 보다가 결국 국을 데우다 식히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늦은 밤. 이현이 현관을 열고 들어왔을 때, 유리는 마치 기다리지 않은 사람처럼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식사… 했어요?”그녀가 묻자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당신 요리 냄새가 집안에 남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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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조용한 부엌의 파편들

밤이 깊었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는 늦은 불빛 몇 점만이 잊힌 듯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그 불빛 아래 유리는 홀로 부엌에 앉아 있었다.식탁 위엔 작은 유리병이 하나.그 안의 잼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유리는 그것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에 들었다.차가운 유리의 촉감이 손끝에 닿는 순간, 그녀는 작은 숨을 들이켰다.이건 선물이 아니라 잔여물이었다.그 날, 그 사람의 마음보다도 이현의 눈빛보다도 더 오래 남아 있었던 ‘묻히지 않은 장면’의 조각.그녀는 그 조각을 이제는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리는 잼병을 조심스럽게 들고 부엌 한켠의 쓰레기통 앞에 섰다.뚜껑을 열고 손에 든 병을 천천히 들이밀었다.그런데 이상하게, 손끝이 떨어지지 않았다.그저 유리병 하나일 뿐인데 그 작고 가벼운 것을 왜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유리는 그 병 안에 남은 마음을 스스로도 모르게 훑어보고 있었다.그건 오히려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려는 태도였다.“그 사람은 나에게 감정을 주지 않았고, 나는 그걸 받지도 않았다.다만… 그 사람 앞에서 내 마음이 설명 없이 움직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사실이 이현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사랑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란 걸 유리는 알고 있었다.뚜껑을 닫는 순간, 뚝~하는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그것은 유리병이 아니라 그녀 안의 감정이 금이 가는 소리 같았다.그 순간, 문득 뒤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유리는 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거기 서 있는지 알 수 있었다.이현이었다.샤워 후 물기를 말리지도 않은 머리로,베란다 앞에 서서 그녀의 움직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유리는 놀라지 않았다. 단지, 오히려 안심했다.“왜 안 자요.”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걸음을 옮겨 유리의 맞은편에 조용히 섰다.그들의 시선 사이엔 아직 버려지지 못한 감정이 작은 병 속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이현이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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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버린 병 대신 놓아둔 마음

두 사람은 섬 중앙 작은 골목 어귀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섰다.따뜻한 커피와 아몬드가 박힌 조각 케이크가 나왔고,그들은 서로의 손에 닿지 않는 컵과 컵 사이의 공간을 두고 마주 앉았다.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어제까지의 침묵과는 달랐다.이젠 누군가 먼저 말할 수 있다는,그리고 그 말을 받아줄 용기가 생겼다는 기류가 작게, 그러나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요즘 당신, 전보다 많이 생각이 깊어졌어요.”유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게 좋은 건가요?” “좋다고 말하기엔… 마음이 복잡해졌다는 뜻 같아서요.”그녀는 살며시 웃었다. 그 웃음은 얇았지만, 속에 담긴 감정은 진짜였다.“맞아요. 예전엔 그저 내가 다 감당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이제는… 내가 감당한 만큼 당신도 상처받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그 말에 이현의 시선이 깊어졌다.“그래서일까요. 당신 말 한 마디에 내가 더 조심스러워졌어요.”“서로가 서로를 자꾸 조심하게 되면… 함께 있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유리가 물었다.이현은 그 말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대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나는 그 어려움을 감수하고 싶어요. 당신이니까.”그 말은 짧았지만 단단했다.그 순간, 유리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마치 겨우 붙들고 있던 감정의 실이 조금 느슨해지는 듯한 순간이었다.카페에서 나와 걷는 길.그녀의 손이 작게, 그러나 분명히 이현의 손등에 스쳤다.이현은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대신 천천히 걸음을 멈춰 유리를 바라보았다.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침묵 안엔 '이제 괜찮다'는 메시지가 부드럽게 담겨 있었다.그래서 이현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다.유리는 이른 아침, 부엌 한가운데 멈춰 선 채 오래된 유리병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작은 잼병. 뚜껑은 여전히 닫혀 있었고,안쪽에 흐르는 꿀과 잼은 시간이 지난 탓인지 가장자리에 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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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다시, 식탁에 앉다

파리의 겨울 햇살은 유난히 느릿하게 기울었다.오전과 오후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유리는 부엌에 서서 국물의 간을 보며숟가락 끝에 얹힌 뜨거운 그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입술에 닿게 했다.싱거웠다. 하지만 다시 간을 맞추진 않았다.그날은, 그냥 그렇게 먹기로 했다.식탁을 차리는 동안 이현은 아무 말 없이 유리의 옆에 있었다.그녀가 손을 뻗으면 조용히 그릇을 건넸고, 접시를 내리면 묵묵히 젓가락을 맞췄다.두 사람은 어느새 함께 요리하는 호흡에 익숙해져 있었지만,그 익숙함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조심’으로 이뤄진 합이기도 했다.식탁 위엔 버섯 크림 파스타와 그 위에 소복이 얹힌 파르메산 치즈,그리고 가지 토마토 구이와 바게트가 올려졌다.파리는 언제나 식욕을 깨우는 도시였고, 유리는 그 도시의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요리를 올렸다.그런데 그날의 식탁은 음식보다 ‘말’이 더 필요해 보였다.조용히 숟가락을 들던 이현이 작은 숨을 토하듯 말을 꺼냈다.“유리 씨.”그 짧은 호명이 그녀의 손끝을 멈추게 했다.“혹시… 당신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그 말은 기다려온 대화의 문이었다.그동안 서로가 말하지 않았던 것, 말할 수 없었던 것들.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유리는 천천히 포크를 내려놓았다.그리고 물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낮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걸 나도 요즘 매일 물어요.”그녀의 눈동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지만,그 시선은 아주 먼 곳을 보고 있었다.“내 마음이 지금 어디 있는지, 당신 곁에 있는 건 맞는지…아니면 그냥 여기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그녀는 말을 이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엔 아주 선명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이 무게로만 남아 있는 느낌이 들어요.”이현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는… 당신 마음이 내 곁에 있다는 걸 매일 확인하고 싶었어요.그게 불안이라도 상관없었어요. 당신이 내 옆에만 있어준다면.”그의 고백은 처음으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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