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압박이 아니라 계획된 시나리오.’그걸 모를 정도로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그 말, 이번 주까지만 기다릴게.”형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그 시각. 유리는 요리사로서의 이름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셰프님, 해외 셰프 협회에서 콜라보 제안이 들어왔어요.”“이탈리아 쪽도 반응 좋아요.”언젠가 바라던 일이었지만, 그녀의 마음 한켠은 불안이 스며들고 있었다.‘나는… 이걸 정말 바랐던 걸까?’이현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세상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그날 밤. 이현과 유리는 서로 피곤한 얼굴로 가게에 마주 앉았다.“오늘도 많이 힘드셨죠?”유리가 먼저 말을 건넸다.“조유리 씨야말로… 이제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 되시겠네요.”“그런 말씀… 무겁게 들려요.”“…우리, 같은 방향 보고 있는 거 맞나요?”이현의 말에 유리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무슨 뜻이에요?”“요즘 유리 씨, 나한테만 조심스럽고 세상 앞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잖아요.”“…그건, 이현 씨 세계가 더… 두렵고 어렵기 때문이에요.”그 말에 이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난, 그렇게까지 어려운 사람 아니었는데요.”유리는 고개를 숙였다.“…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이 요즘 제일 싫어요.”이현의 말은 조용했지만 날카로웠다. 유리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둘 사이엔 처음으로 언어가 아닌 침묵이 더 깊게 내려앉았다.그날 밤, 이현은 혼자 가게 뒷골목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불을 붙인 담배 끝이 그의 손끝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같은 방향인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했나.’그 말이 그의 가슴 안에서 낮게, 오래도록 울리고 있었다.유리는 조심스럽게 이현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이현 씨.”“네.”“잠시만요, 저 혼자… 좀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요.”그 말은 마치 조심스럽게 그려진 선처럼 둘 사이에 새로운 벽을 그었다.이현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입술만 달싹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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