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어떤 맛을 원하세요?》全部章節:第 11 章 - 第 20 章

33 章節

11. 명확한 선 긋기

그의 장난스러운 눈빛에 유리는 할 말을 잃은 듯 눈만 동그랗게 떴다가,급히 고개를 휙 돌리며 국자로 찌개를 저었다.‘진짜 이 사람, 못 말려…’저녁 무렵, 가게 문이 열리며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조은별. 그녀는 오늘따라 한껏 치장을 하고, 완벽한 미소를 얼굴에 얹은 채 들어왔다.식당 안이 순간적으로 정적에 휩싸였고, 조유리는 두 손에 힘을 주며 주방 문에 몸을 숨겼다.“회장님, 오늘은 저녁 약속 없으셨잖아요. 왜 여기서 시간을 보내세요?”은별은 이현 쪽으로 다가가며 자연스레 웃음을 지었다.이현은 잠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비서님, 업무 시간 끝났으면 집에 가세요.”그 짧고 명확한 선 긋기에 조유리는 주방 안에서 잠깐 숨을 멈췄고,은별은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곧 부드러운 미소로 덮어버렸다.“알겠어요, 회장님. 그럼, 사장님.”은별은 유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매끈하게 웃으며 말했다.“요리 계속 맛있게 해주세요. 회장님, 쉽게 안 질리는 분이니까요.”그 말끝에 서린 뉘앙스가 유리의 가슴을 툭 치고 지나가 한순간 손끝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밤이 깊어가고, 문을 닫으려던 유리는 골목 끝에 여전히 서 있는 이현을 발견했다.“진상님, 언제까지 거기 계실 거예요.”그녀는 지친 듯 웃으며 말했다.이현은 천천히 다가와, 언제나처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말했다.“조유리 씨, 너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죠.”유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잠시 멈췄고, 이현은 짧게 웃었다.“근데, 그쪽이 더 위험한 거 알아요?지금은 멀어지라고 말하지만, 계속 끌어당기고 있는 건… 조유리 씨 쪽이에요.”그 말에 유리는 숨이 막히는 듯 말문이 막혀 그저 고개를 떨궜다.이현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일도 올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잘 쉬어요.”그리고 그는 돌아서서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조유리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서 있다가,서서히 몸을 돌려 가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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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단단해질 시간

유리는 작게 웃으며 말했지만,그 웃음 뒤에 감춰진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켜 있는 건 그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이현은 천천히 걸어와 그녀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조유리 씨, 흔들리게 만드는 건 저만이 아니더라고요.”조유리는 그 말에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이현은 짧게 숨을 내쉬며 덧붙였다.“그러니까, 앞으로 제가 더 귀찮게 굴 겁니다. 괜찮죠?”유리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작게 웃음 짓다가, 얼굴을 붉히며 가게 문을 닫았다.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혼잣말은 마치 바람결에 휘날리듯 사라졌다.“…왜 이렇게 쉽게 마음을 들키지…”유리는 오늘따라 주방 안이 너무 좁게 느껴졌다.칼끝에서 파송송 썰리는 소리,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국물, 접시에 담긴 음식들, 이 모든 일상이 평소에는 마음을 다잡게 하는 버팀목 같았는데,요즘은 오히려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는 방패처럼 느껴지고 있었다.‘안 흔들려야지. 안 넘어가야지. 이 사람은 손님이고, 나는 가게 사장이고, 그냥 그 이상은 아니니까.’그러나 골목 저편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이는 순간, 심장은 늘 그 다짐을 비웃듯이 먼저 반응했다.유리는 손끝을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내쉰 뒤 자연스러운 미소를 짓고 주방 문을 열었다.“진상님, 오늘은 메뉴 정하셨어요? 아니면 또 제가 알아서 드려야 돼요?”유리는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지만,그 안에 살짝 묻어나는 떨림은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다.이현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으며, 짧게 웃음을 흘렸다.“조유리 씨가 주는 거라면 뭐든 괜찮아요.”그 말에 유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고, 급히 고개를 돌리며 뺨에 번지는 열기를 감추려 애썼다.행주로 괜히 접시를 닦으며 중얼거렸다.“아, 진짜… 저 사람 말만 저래…”늦은 오후, 가게 문이 또각또각 울리며 열리자유리는 자동으로 고개를 들었고, 길게 뻗은 다리, 매끈한 실루엣,조은별의 서늘한 미소가 눈앞에 들어왔다.“사장님, 요즘 참 바쁘시죠? 회장님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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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진심의 고백

유리는 무심한 척 말을 꺼냈지만, 손끝은 조금씩 굳어져 갔다.“일이 좀 길어졌어요.”이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고, 조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주방으로 돌아가자신도 모르게 접시에 담는 반찬을 평소보다 정성스럽게 골랐다.그녀는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은 이거예요. 괜히 별 기대하지 마세요.”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작게 웃으며 말했다.“조유리 씨가 준 건데, 그게 제일 괜찮죠.”그 짧은 말에 조유리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저 시선만 피하며 행주로 괜히 식탁을 훔치며 마음을 달래려 애쓸 뿐이었다.저녁 무렵, 문이 열리며 은별이 들어섰다.유리는 마음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은별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완벽히 다듬어진 미소였지만,그 안에서 번쩍이는 눈빛은 누구보다 날카로웠다.“회장님, 여기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시니까 회사 쪽에서 다들 궁금해하더라고요.”은별은 부드러운 말투로 웃음을 얹었다.이현은 시선을 잠깐 들었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신경 안 써도 돼요. 여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유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이상한 불안이 번져왔다.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현이 ‘우리 편’이길 바라기 시작한그 마음을 자각했을 때, 숨이 막히는 듯한 감각이 그녀를 덮쳤다.밤, 가게 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선 유리는 오늘도 서 있는 이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진상님… 진짜 안 가세요?”그녀는 피곤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그 안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설렘과 혼란이 엉켜 있었다.이현은 천천히 다가와, 낮게,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유리 씨, 사람 마음이 언제 반응하는지 아세요?”유리는 순간 멈춰 서며 그를 바라보았다.“생각보다 마음이 빨라요. 머리는 그걸 한참 나중에 알죠.”그 말에 조유리는 눈을 크게 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그런 말 하지 마요. 저… 진짜…”이현은 미소 짓듯 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진짜예요.”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머뭇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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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얇아진 방어막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가게 문을 닫으려던 유리는골목 저편에서 이현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진상님, 진짜 이제 좀 그만 오세요.”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현은 천천히 다가와 낮게 웃음을 흘렸다.“조유리 씨, 저 말만 하지 말고, 한 번만 진짜로 밀어내 봐요.”그 말에 조유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달싹였다.“왜, 못 하겠죠?”이현의 눈빛은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그 안에 깃든 진심이 유리의 마지막 방어선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그런 말 하지 마요. 저… 진짜…”유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고, 이현은 조용히 웃으며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내일 또 올게요.”그리고 그는 천천히 걸어가며 손을 살짝 들어올렸고,조유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숨이 차오르는 가슴을 가만히 누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 사람 온도에… 자꾸 물들어 간다니까…”유리는 새벽부터 눈을 떴지만, 한참 동안 이불 안에서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어젯밤 이현이 골목 끝에서 던진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저 말만 하지 말고, 한 번만 진짜로 밀어내 봐요.’그 한 문장이 밤새 마음 안쪽을 톡톡 건드렸고,조유리는 그토록 자신 있어 하던 방어막이 사실은 너무 얇고 여렸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겨우 몸을 일으켜 가게로 향한 조유리는 평소처럼 주방 안에서 칼을 들었지만,칼끝은 자꾸만 어색하게 떨리고,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정말로 밀어낼 수 있었으면, 진작 했겠지…’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칼끝을 도마에 힘주어 눌렀다.점심 무렵, 이현은 어김없이 나타났다.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얼굴로.“오늘은 제가 먼저 말할게요. 조유리 씨, 오늘도 보고 싶어서 왔어요.”그 말에 유리는 당황한 얼굴로 접시를 들고 멈췄고,손끝에서 미묘한 떨림이 전해졌다. 이현은 짧게 웃으며 덧붙였다.“이제 슬슬 인정하시죠? 저라는 사람, 그냥 손님이 아니라는 거.”유리는 그 자리에 굳은 채, 겨우 한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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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지막 부탁

점심 무렵, 가게 문이 열렸다.이현은 오늘도 당연한 듯, 그러나 약간은 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유리는 고개를 들고 그를 마주하자마자 속으로 ‘오늘은 좀 단호해야지’ 다짐했지만,막상 눈을 맞추는 순간 그 다짐은 모래성처럼 힘없이 무너졌다.“오늘도 계신 거 보니까… 괜히 안심되네요.”이현은 가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유리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부랴부랴 주방으로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진상님, 진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마세요…”작게 떨리는 목소리는 스스로도 미처 감추지 못한 진심의 울림이었다.오후, 은별은 이번엔 가게에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서 전화를 걸어왔다.“사장님, 저예요. 조은별 비서.”유리는 놀라서 전화를 받았다.“네, 무슨 일로…”“회사 쪽에서요, 회장님 요즘 일정에 문제가 생기면 사장님 때문 아니냐는 말들이 많아요.제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부탁이라 생각하고 말씀드리는 거예요.”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말의 무게는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다.“저… 저는 그냥… 정말 그런 마음 없었어요.”유리는 간신히 대답했지만, 전화 너머의 웃음기 어린 대답은 마치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오늘 따라 달빛이 밝은 밤, 가게 문을 닫으려던 유리는 골목 끝에 서 있는 이현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진상님… 오늘은 그냥 가시면 안 돼요?”그녀의 목소리는 낮았고, 그 안에는 애써 지키려는 선과, 이미 무너져버린 마음의 흔들림이 뒤섞여 있었다.이현은 천천히 다가와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조유리 씨가 저한테 올래요?”그 말에 유리는 순간 숨이 턱 막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손끝이 떨리고, 입술이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현은 짧게 숨을 내쉬며 살짝 웃음을 짓더니 조용히 한마디를 남겼다.“내일도 올 거예요.”그리고 그는 천천히 돌아서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유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파도 같은 감정을 애써 누르며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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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유일한 따뜻함

그 순간, 멀리서 은별이 나타났다.“회장님, 급히 보셔야 할 자료가 있어서요.”은별의 시선이 유리를 스쳐갈 때, 묘하게 엷은 미소가 그 입가에 스쳤다.이현은 고개를 돌려 은별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유리 쪽으로 돌아왔다.“내일… 또 올 거예요.”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고,유리는 남은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술을 눌렀다.‘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그걸 알게 되면… 나는 여전히 이 사람 옆에 설 수 있을까.’ 밤이 깊어지자, 유리는 주방 한켠에 앉아 그저 두 손을 모은 채 멍하니 있었다.오늘 하루는 유난히 길고도 묵직했다. 낯선 중년 여성의 냉담한 말투,그 여자의 눈빛 속에서 느껴진 경계와 차가움, 그리고 그 뒤로 따라붙던 은별의 얇은 미소.‘최선을 다하면,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그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고, 조유리는 천천히 손끝을 비벼가며 마음을 달래려 애썼지만,내면 깊숙이 흔들리는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그때, 가게 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진상님… 오늘은 오지 마시라니까요…”유리는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이현은 주방 쪽으로 다가와낯선, 그러나 어딘가 부드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괜찮아요? 우리 어머니, 상처 주는 말 많이 했죠.”유리는 순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그냥 좀 놀랐을 뿐이에요.”그러자 이현은 조용히 의자에 앉으며 두 손을 포개어 무릎 위에 올렸다.그의 눈빛은 평소처럼 여유롭지도, 장난스럽지도 않았다.“조유리 씨, 내가 왜 이렇게 음식에 집착하는지 말해줄까요?”유리는 순간 숨을 고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릴 때, 우리 엄마가 음식을 참 잘하셨어요. 입맛 까다로운 나도 항상 깨끗이 비우게 만들던…세상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사람이었어요.”이현은 잠시 말을 멈추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근데 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갔고, 며칠 후에 못 돌아왔죠.”유리는 숨조차 삼키지 못한 채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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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풀리지 않는 긴장

오후, 가게 문 앞에 은별이 나타났다.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이현의 어머니.“사장님, 잠깐 괜찮으세요?”은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회장님 어머님께서, 다음 주 회사 VIP 만찬에 사장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네요.회장님이 요즘 그렇게 칭찬하신다니까, 한 번 맛보고 싶으시다나 봐요.”유리는 순간 굳은 채,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저… 제가요? 그런 큰 자리는 좀…”“괜찮아요, 사장님. 회장님께서도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은별은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물론, 사장님이 그 자리에 오실 수 있다면 말이죠.”어두운 밤,문을 닫으려던 유리는 골목 끝에 서 있는 이현을 발견했다.“진상님, 오늘은 좀 피곤하신 표정인데요.”유리는 처음으로 먼저 그에게 말을 건넸다.이현은 잠시 놀란 듯 유리를 바라보다, 천천히 웃었다.“조유리 씨가 그런 말 해주니까… 괜히 힘나네요.”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작게 웃음을 지었다.그러나 그 순간, 은별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올랐다.‘그 자리에 오실 수 있다면 말이죠.’짧지만 묘한 긴장감이 조유리의 심장에 스며들었다.이현은 무심히 웃고 있었지만, 유리는 처음으로‘이 사람 곁에 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손끝을 꼭 잡았다.그 자리에 나를 세운 건 당신이었다유리는 멍하니 서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정리된 레시피 노트,그 옆으로 깔끔하게 놓인 식재료 목록과 도착하지 않은 몇 가지 특수 식자재 메모. 그 모든 것들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음에도,마음 한구석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긴장으로 얼룩져 있었다.‘재벌가 VIP 만찬이라니. 내가, 거기서 요리를… 정말 할 수 있을까…’그 자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수많은 눈과 입, 그리고 계산되는 시선이 오가는 곳일 것이 분명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자리를 이현의 어머니가 직접 마련했다는 사실이 유리의 가슴을 가장 무겁게 만들었다.이른 오후, 회사 구내 고급 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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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상한 동행

유리는 다시 가게 안에 혼자였다.밤이 깊어지고, 손님도 다 돌아간 뒤였지만 몸에 밴 피로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은 건 가슴속을 짓누르는 뭔지 모를 긴장감이었다.VIP 만찬은 끝났지만, 그날의 말과 눈빛들은 하루를 지나도 여전히 가슴속에 선명했다.‘이 자리에 조유리 셰프를 초대했습니다. 제가 매일 먹는 음식이고, 제일 좋아하는 맛이니까요.’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다.축하도, 경계도, 호기심도 뒤섞인 눈빛들.그 눈들이 자신에게 향할 자리가 아니라는 걸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그 말이 너무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식어갔던 것이었다.다음 날 아침. 은별은 이현의 사무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회장님, 어제 발언은 조금 무리하셨던 것 같습니다.”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 깃든 뾰족한 경계는 노골적이었다.이현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문서를 넘기며 말했다.“뭐가 무리였다는 거예요?”“공식 석상에서, 사적인 감정이 섞인 발언을 하신 건 회사 내에서도… 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그 말에 이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그 사람이 만든 음식이 내 입맛에 맞다는 게 회사에 무슨 해가 되는지 모르겠네요.”“그분은 요리사입니다. 회장님과 그런 방식으로 엮이면, 오히려 불편해지는 건 그쪽일 수도 있어요.”은별의 말은 정확히 유리의 입장을 겨냥하고 있었다.그러나 이현은 짧게 웃으며 문서를 덮었다.“그쪽이 걱정 안 해줘도 돼요. 조유리 씨, 그런 일에 무너지지 않아요.”그날 저녁, 유리는 평소보다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몸도 지치고, 마음도 조금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이현이 기다렸다는 듯 골목에 서 있었다.“오늘은 좀 일찍 끝났네요?”그는 평소보다 더 조용한 얼굴로 물었다.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좀 쉬고 싶어서요.”그 말에 이현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며 말했다.“그럼, 드라이브 갈래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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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부의 무게

그 말은 직선적이었다. 어떤 서두도, 완곡한 표현도 없었다.유리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입술을 꾹 다물었다.“아닌 척 하지 마세요. 그 사람 눈빛 보면 알아요. 요리사 대하는 눈빛 아니에요.”“비서님…” 유리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은별은 한 발 더 다가오며 말을 끊었다.“그 사람, 여자한테 쉽게 마음 주는 사람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곁에서 봐 왔어요. 그 사람 옆에 서는 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유리는 순간 가슴 안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끼며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내가… 이현 씨한테 감정이 있다는 건 맞아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 사람한테 솔직한 건 제가 아니라 비서님이 먼저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은별의 눈빛이 일순 멈칫했다.“…제가 뭐든 하든, 사장님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런 감정, 잠깐 흔들리다 마는 거니까.”그 말에 유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눈을 감았다가 뜨며 조용히 말했다.“…그 잠깐이, 누군가에겐 전부일 수도 있어요.”밤. 가게 문을 닫고, 조유리는 천천히 불을 껐다.오늘은 이현이 오지 않았다.괜히 마음이 허전했다.아무 일도 없었는데, 마음만 조용히 텅 비어 있었다.그때, 문 앞에 놓인 작은 종이봉투 하나. 거기엔 짧은 메모가 함께 있었다.“오늘은 피곤해서 못 갔어요. 그 대신, 제일 좋아하는 조유리표 김치볶음밥이 그리웠다는 거… 전하려고요.”유리는 그 메모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으며 눈가를 문질렀다.‘이 사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내 안에 들어와 있었구나.’유리는 오늘따라 아침 햇살이 조금 눈부셨다.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빛이 테이블을 가볍게 덮고 있었고,그 위에 어젯밤 이현이 놓고 간 종이봉투와 메모가 아직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제일 좋아하는 조유리표 김치볶음밥이 그리웠다는 거…”그 한 줄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말이 짧았고, 글도 간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오히려 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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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간 밖의 정원

주방은 아직 따뜻했고, 테이블 위에 마저 닦지 못한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평소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하지만 그가 불쑥 말없이 건네온 ‘잠깐만’이라는 초대는이상하게도 그녀의 심장을 어지럽히면서도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대를 심어주었다.차는 조용한 강변을 따라 달렸다.햇살이 낮게 깔린 오후, 서늘한 공기가 창문 사이로 살짝 밀려 들어왔고, 둘 사이에는 묘하게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도착했어요.”이현이 문을 열며 말했다.유리가 차에서 내려 바라본 곳은 작은 유리 온실과,그 앞에 나무 테이블 하나가 놓인 조용한 정원이었다.한적한 강 근처의 허름하지만 따뜻해 보이는 이 공간은서울 어디에도 없는 공기처럼, 묘하게 시간 밖에 있는 듯한 고요함을 안고 있었다.“여기… 어릴 때 엄마랑 자주 왔던 곳이에요.”이현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엄마가 병원에 가기 전까지 가끔 여기서 차 마시고, 하늘 보면서 같이 밥도 먹고 그랬어요.”유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서 오늘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네. 유리 씨랑 같이 오면… 엄마 생각이 나서, 괜찮을 것 같아서.”그 말에 유리는 가슴 한복판이 조용히 뻐근하게 저려왔다.“그때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메뉴가 김치볶음밥이었거든요. 그래서 자꾸 그 맛 찾게 되는 거예요.”“제가 만든 건… 그거랑은 다르잖아요.”“아니요. 거의 비슷해요. 처음 먹었을 때, 너무 비슷해서 울 뻔했어요.”그 말에 유리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다.이현은 조용히 그녀 옆에 앉아 작게 웃으며 말했다.“유리 씨 음식 먹으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해서 계속 찾게 돼요.”잠시 뒤, 정원 한켠에서 준비된 작은 식사가 나왔다.이현이 직접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단정한 테이블 세팅과 유리병에 담긴 차,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김치볶음밥 한 그릇.“오늘은… 내가 대접하고 싶었어요. 항상 받기만 해서.”“이거, 제가 만든 거 아니면 맛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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