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당신을 버릴 차례: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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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오늘 영은은 평소와 달랐다. 늘 가련하고 약한 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대담하게 행동했다.‘이제는 아예 숨길 생각도 없는 건가?’은희는 힘없는 몸을 버티며 차갑게 웃었다.“소영은 씨, 여기서 함부로 굴지 마세요. 여긴 병원이에요. 당신 집도 아니고요.”영은은 비웃으며 은희의 살짝 나온 배를 훑어봤다. “지금 아이를 가졌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요? 하씨 집안에서는 그 아이를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남우한테 버림받은 주제에 헛된 기대는 하지 마요.”은희는 반사적으로 배를 감싸며 차갑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 아이는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어요. 제가 지킬 겁니다.”은희가 아이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자 영은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번졌다. 영은은 갑자기 은희의 배 쪽으로 손을 뻗어 세게 밀려 했다. “그렇게 소중하면 제가 편하게 해 드릴게요.”“안 돼!”그 모습을 본 맑음이 다급하게 뛰어들어 은희 앞을 막았다.영은의 손은 그대로 맑음의 몸을 세게 밀쳤다. 맑음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옆에 있던 수납장 모서리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맑음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뺨까지 붉게 적셨다.“맑음아!” 은희는 놀라 손을 뻗어 맑음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없어 자칫 침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영은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 제자리에서 굳었다. 안색이 창백해졌다.“맑음아! 맑음아, 눈 떠 봐!”은희는 떨리는 손으로 맑음의 얼굴을 만졌다. 손끝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너무 선명해 가슴이 서늘해졌다.맑음은 눈을 꼭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안색은 창백했고 숨도 약했다.은희는 누군가 심장을 거칠게 움켜쥔 듯 가슴이 아팠다. 고개를 들어 영은을 노려보며 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맑음이는 당신 딸이에요! 어떻게 자기 아이한테 이럴 수 있어요?”영은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말투도 억센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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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은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 간호사들과 함께 맑음을 병실로 옮겼다.은희는 침대 곁에 앉아 맑음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맑음아, 미안해. 내가 너를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어.” 은희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겼다.맑음은 눈을 뜨고 은희의 눈물 젖은 얼굴을 바라보다 힘없이 웃었다.“언니, 울지 마. 나 괜찮아.”맑음의 목소리를 듣자 은희의 눈물은 더 멈추지 않았다. “맑음아,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어? 왜 내 앞을 막았어? 네가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난 어떡하라고.”맑음은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다치는 걸 그냥 볼 수 없었어. 언니 배에는 아기도 있잖아. 언니가 다치면 아기도 다칠 수 있어. 난 그런 일 생기게 하기 싫었어.”그 말을 듣는 은희의 마음이 아려 왔다. 눈물은 계속 뺨을 타고 흘렀다.은희는 맑음을 꼭 끌어안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맑음아, 너 정말 바보야... 네가 제일 중요해. 알았지?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 뛰어들지 마. 나는 차라리 내가 다치는 게 낫지, 네가 다치는 건 못 봐.”맑음은 은희의 품에 기대어 조용히 말했다. “언니도 나한테 중요해. 언니랑 아기가 다치는 것도 싫어.”맑음의 말에 은희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벅찼다.은희는 맑음을 더 꼭 안았다. 눈물이 맑음의 어깨를 적셨다. “맑음아, 고마워. 나를 이렇게 지켜 줘서.”맑음은 너무 착한 아이였다. 다만 그런 아이에게 영은 같은 엄마가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그때 병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남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남우는 원래 영은의 말을 듣고 병원으로 온 참이었다. 은희가 왜 맑음을 밀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하지만 문밖에 서서 은희와 맑음의 대화를 들은 뒤에야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영은은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 모든 책임을 은희에게 떠넘겼다.남우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문을 밀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맑음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남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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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맑음의 이야기로 사실은 분명해졌다. 남우는 영은이 정말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남우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맑음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맑음아, 조금 쉬고 있어. 아빠 전화 통화 잠깐만 하고 올게.”맑음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남우는 병실 밖으로 나가 영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울먹이는 영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맑음이는 어때? 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정말 병원까지 못 가겠어.]‘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차마 얼굴 들고 올 자신이 없는 거겠지.’‘자기 손으로 맑음이를 밀어 놓고.’남우는 차갑게 웃었다. 목소리는 서늘했다. “맑음이 어떤 상태인지 네가 감히 물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 몰라?”이번 일이 들킬 가능성이 크다는 건 영은도 이미 알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둔 듯 더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좀 들어 봐. 나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야 엄마가 자기 딸을 저렇게 밀 수 있어?’남우는 더는 화를 억누르지 못했다. “이제 그만해. 맑음이 다 말했어. 네가 은희를 밀어서 아이를 잃게 하려고 했고, 맑음이 은희를 막다가 다친 거잖아. 어떻게 자기 딸한테까지 그렇게 해?”영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맑음이 역시 고은희 편을 들었어.’‘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봐. 친모녀끼리 나를 상대로 손을 잡은 거야.’[어떻게 맑음이 말만 듣고 나를 몰아붙여? 맑음이는 아직 애야. 상황을 제대로 모를 수도 있잖아. 내가 어떻게 내 딸을 일부러 다치게 하겠어? 나는 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임신한 은희를 밀어 넘어뜨리는 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남우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다. “나를 위해서라고? 소영은, 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어.”영은은 더 크게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너를 위해서였어! 은희 씨 뱃속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야. 전무님 아이야.][은희 씨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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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조금 전 남우가 복도에서 영은과 통화할 때 목소리가 꽤 컸다. 은희는 정확한 내용까지 듣지 못했지만 남우가 영은을 대하는 태도가 전과 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남우는 들고 온 봉지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먹을 것 좀 샀어. 너랑 맑음이 둘 다 기력 보충해야 하잖아.”“필요 없어. 우리끼리 알아서 잘 지낼 수 있어.”은희의 대답에 남우는 가슴 한쪽이 아렸지만 물러서지 않고 말을 이었다.“전에 내가 잘못한 거 알아. 널 의심하면 안 됐고, 영은이 말만 듣고 판단한 것도 내 잘못이야.”은희는 비슷한 말을 이미 셀 수 없이 들었다. 매번 확실한 증거가 나오거나 다른 사람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남우는 은희를 믿는다고 말했다.누구라도 할 수 있는 뒤늦은 신뢰였다. 은희에게는 이런 남우의 불신이 필요하지 않았다.은희는 고개를 숙이고 조금 나온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이미 끝났어. 더는 이렇게 얽히고 싶지 않아. 난 내 아이만 잘 지키고 싶어. 다른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아.”의사는 임신 중에는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남우도 은희와 더 다투지 않았다.그 뒤 며칠 동안 남우는 매일 병원으로 와 은희와 맑음 곁에 머물렀다. 먹을 것도 많이 사 왔고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걸 세심하게 챙겼다.은희의 태도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남우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남우가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맑음은 은희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언니, 아빠 요즘 진짜 많이 달라졌어. 정말 자기 잘못을 안 걸까?”은희는 맑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맑음아, 어른들 일은 복잡해. 너는 그런 거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지금은 너 다친 데 잘 낫는 게 제일 중요해.”맑음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눈을 감았다.맑음에게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고 은희도 좋은 사람이었다.엄마 영은도 원래는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의 엄마는 조금씩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은희가 다친 맑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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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남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방 안에 서 있는 은희가 보였다. 남우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왜 여기 있어?”은희도 뜻밖이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남우가 갑자기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은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침착하게 답했다. “맑음이 숨바꼭질하자고 해서 여기 숨은 거야. 넌 왜 여기 왔어?”남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방 안을 둘러봤다. 안에는 정말 은희 혼자였다.남우 역시 맑음이 자신을 찾는다는 메시지를 받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단순한 착오라고 생각한 남우는 핸드폰을 꺼내 사람을 불러 문을 열게 하려 했다. 하지만 핸드폰 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았다.“문 잠겼어.”남우가 차갑게 말했다. 은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누가 우리를 여기 가둔 거야?”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몸 안쪽에서 이상할 정도로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호흡도 점점 거칠어졌다.남우는 자신이 약을 먹었을 가능성을 알아챘다. 표정이 단단하게 굳었다.‘누가 우리를 가뒀냐고? 은희는... 정말 모르고 묻는 건가?’남우는 고개를 돌려 은희를 차갑게 바라봤다.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대체 뭘 하려는 거야? 이미 다른 남자 아이까지 가졌으면서 이런 방법으로 나까지 끌어들이려고 해?”은희는 갑작스러운 추궁에 잠깐 어이없다는 듯 굳었다가 곧 상황을 이해하고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하남우, 미쳤어? 내가 왜 너한테 약을 먹여? 난 네가 여기 올 거라는 것도 몰랐어!”‘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기가 세상 모든 일의 중심인 줄 아나?’ 은희는 남우가 자신이 일부러 불러들였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남우는 차갑게 웃었다. 은희의 설명을 믿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몰랐다고? 그런데 넌 하필 여기 있고, 문은 잠겨 있고, 핸드폰도 안 터져. 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딱 맞아떨어지잖아.”공교로운 상황인 건 은희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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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하지만 남우는 이미 이성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남우는 은희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낮고 잠긴 목소리가 은희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너도 계속 나 원했잖아. 네가 바라던 대로 해 줄게.”은희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힘으로는 남우를 당해 낼 수 없었다.평소의 남우라면 어떻게든 자신을 억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머릿속에는 한 문장만 끈질기게 맴돌았다.‘고은희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어.’‘어떻게 감히...?!’ 이미 남우의 이성은 질투와 분노에 삼켜진 뒤였다.남우의 숨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가락은 은희의 허리를 세게 움켜쥐었다.은희의 저항은 점점 힘을 잃었다. 정신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한참 뒤에야 남우는 겨우 정신을 되찾았다.남우는 화들짝 은희에게서 손을 뗐다. 은희는 종잇장처럼 창백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두 손은 배를 꼭 감싸고 있었다.남우가 급히 쪼그려 앉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아?”은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몸은 가늘게 떨렸고 안색은 갈수록 나빠졌다.그제야 남우의 시선이 은희의 치맛자락에 닿았다. 선명하게 피가 번지고 있었다.“은희야!” 붉은 핏자국을 본 남우는 완전히 정신이 들었다. 곧바로 은희를 안아 들고 방을 뛰쳐나가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복도에서 남우는 초조하게 서성였다.마침내 의사가 밖으로 나오자 남우가 급히 다가갔다. “선생님, 제 아내는 어떻습니까?”의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환자분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지만 당분간 충분히 쉬셔야 합니다.”남우의 심장이 푹 꺼지는 듯했다. 벽에 기대선 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은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병실의 하얀 천장이었다.몸에는 여전히 힘이 없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은희는 반사적으로 배 위에 손을 얹었다.침대 곁에 앉아 있던 남우가 은희가 깨어난 것을 보고 낮게 말했다. “깼어?”은희는 남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싸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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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남우는 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막 사 온 따뜻한 죽이 들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은희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아직도 안색은 희었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남우가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죽 사 왔어. 조금이라도 먹어.”은희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목소리만 서늘하게 흘러나왔다. “우리 이혼해.”남우의 손이 크게 떨렸다. 들고 있던 용기를 놓칠 뻔했다.남우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낮게 말했다. “아직 몸도 회복 안 됐어. 지금 그런 얘기는 하지 마. 몸부터 추스르고 나중에 이야기하자.”‘나중에? 몸부터 추스르라고?’ 모든 일의 원인을 만든 남우가 그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은희에게는 기가 막혔다.은희가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날 선 눈이 남우를 꿰뚫었다. “나중에? 우리한테 아직 나중이 있다고 생각해? 네가 내 아이를 죽였어.”남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은희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아이만큼은 남겨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남우는 은희와 자신의 아이였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여겼을 것이다.하지만 남우는 여전히 그 아이가 다른 남자의 아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남우는 죽을 내려놓고 은희 앞에 몸을 낮췄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한 거 알아. 용서해 달라는 말 안 할게. 대신... 한 번만 기회를 줘. 내가 갚을 수 있게.”‘갚는다고?’‘아이 생명을 어떻게 갚아?’은희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갚아? 뭘로 갚을 건데? 내 아이는 이미 없어졌어. 그 사실은 평생 안 바뀌어.”“우리 둘의 아이를 다시 가지면 되지.”그 말을 듣자 은희는 남우의 뺨을 힘껏 때렸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네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도 더는 다른 방법 없어. 내 목숨 걸고라도 끝낼 거야.”남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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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은희는 차갑게 손을 빼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하남우, 오늘부터 우린 남이야.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건물 밖으로 나온 은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배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낮게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앞으로는 엄마가 널 꼭 지켜 줄게. 누구도 우리를 다치게 못 하게 할 거야.”...남우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적막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현관에 선 남우의 손에는 이혼 신고 접수 서류가 들려 있었다. 종이 몇 장이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져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남우는 소파까지 가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남우는 벌떡 일어나 술장으로 가더니 독한 술 한 병을 꺼내 그대로 병째 들이켰다.목을 태우는 술기운이 잠깐 통증을 흐리게 했지만 곧 더 깊은 공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그 뒤로 남우는 날마다 술에 취해 지냈다. 회사 일까지 손에서 놓았다.소식을 들은 민영순이 남우의 집으로 찾아왔다.문을 열자마자 짙은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엉망이 된 손자의 모습을 보자 화도 나고 가슴도 아팠다.민영순은 남우 앞에 서서 호되게 꾸짖었다. “네 꼴이 지금 이게 뭐니! 언제까지 이렇게 망가져 있을 거야?”남우가 흐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쉰 상태였다. “할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은희한테 그러면 안 됐어요.”민영순은 가슴이 저릿했다. 은희의 뱃속 아이가 사실 남우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남우가 진실을 알게 되면 지금보다 더 무너질 게 뻔했다.민영순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은희는 참 좋은 애야. 이번엔 네가 정말 그 아이 마음을 산산이 부쉈어. 아이까지 잃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팠겠니? 넌 어떻게 그렇게 철이 없니?”남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먹만 꽉 쥐어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이미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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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그 말을 듣고서야 민영순은 한숨을 돌렸다. 적어도 남우가 영은과 결혼할 생각은 없다는 걸 알았다.“그럼 됐다. 선은 지켜. 은희처럼 좋은 아내를 두고 네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남우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남우도 예상하지 못했다. 은희가 목숨까지 걸고 이혼을 요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예전에도 은희는 몇 번이나 이혼을 입에 올렸지만 실제로 끝까지 밀어붙인 적은 없었다.이번에도 결국 이전과 비슷하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한 남우의 완벽한 착각이었다.남우는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은희가 어디로 갔는지 샅샅이 알아봐.”고씨 집안 저택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은희는 그곳에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우는 은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우에게는 사람 하나의 행적을 끝까지 쫓아낼 자원도 힘도 있었다.서재에 앉은 남우는 무의식적으로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머릿속에는 법원과 구청에서 마지막으로 본 은희의 모습만 떠올랐다.은희의 눈을 떠올릴수록 가슴이 조여 왔다. 한때는 남우만 바라보던 사람이 이제는 완전히 마음을 접은 듯했다. 그런 은희의 눈 안에 더는 남우가 없었다.남은 건 미움뿐이었다. 남우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지만 가슴 한가운데가 찌르는 듯 아파 숨이 막혔다.마음속을 수많은 벌레가 파먹는 것처럼 괴로웠다. 창밖을 바라보니 세상이 전부 예전과 달라진 것만 같았다.그때 서재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영은이 들어왔다.영은은 깔끔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있었다.“요즘 많이 지쳐 보이더라. 차 좀 마셔.”남우는 고개를 들었다가 영은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차를 받지는 않았다. 무심하게 말했다. “고마워. 책상에 놔.”영은은 차를 내려놓고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남우 곁으로 다가온 영은이 조심스럽게 떠보듯 물었다. “나도 들었어. 너... 은희 씨랑 이혼했다며?”남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영은을 올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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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나는 이렇게 계속 남의 관계에 끼어드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영은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영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눈에 눈물이 차오르며 목소리마저 울먹였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분명 나랑 결혼할 거라고 했잖아! 이제 이혼까지 했는데도 나한테 제대로 된 자리를 줄 생각이 없는 거야?”“너 나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었던 거야? 계속 은희 씨를 못 놓고 있었던 거지?”남우는 영은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손을 대지 않았던 것도, 영은에게 베푼 모든 호의도 사랑이 아니라 영은이 베푼 은혜에 대한 보답에 가까웠다.더 잔인한 사실은 영은이 베푼 그 호의조차 애초에 영은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모두 은희가 한 일이었다.영은이 누려 온 것의 시작에는 결국 은희가 있었다.남우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영은에게 등을 보였다. 차갑게 말했다.“영은아, 이제 그만해. 나 지금 바빠. 이런 얘기까지 할 여유 없어. 먼저 가.”영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은희와 이혼만 하면 남우가 당연히 자신을 선택할 줄 알았다.하지만 아니었다. 은희가 없어도 남우는 영은과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영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은 은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남우였다.남우가 영은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문제였다.“정말 한 번도 날 사랑한 적 없어?”남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싸늘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감정은 억지로 만들 수 없어. 내가 너한테 갚아야 할 건 다른 방식으로 갚을게. 결혼은 안 돼.”영은은 제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이를 악문 영은이 차갑게 내뱉었다. “넌... 후회할 거야.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말을 마친 영은은 몸을 돌려 서재를 뛰쳐나갔다.영은은 하씨 저택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고은희 행방 알아봐 줘. 지금 어디 있는지 전부 다...”전화를 끊은 영은은 이를 악문 채 낮게 중얼거렸다. “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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