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을 위장한 후, 복수를 시작하다: Chapter 1 - Chapter 10

23 Chapters

제1화

왕부로 돌아온 뒤 맞이한 첫 생일, 아버지는 성대한 연회를 열어주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거절했다.이전에는 생일을 한 번도 챙겨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만큼은 그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아버지, 왕비, 그리고 고윤우만 있으면 충분했다.그날 나는 직접 주방에 들어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손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고기 음식과 채소 음식을 각각 여덟 가지씩 만들었다.아버지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뻐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역시 내 딸답구나, 이렇게 많은 음식을 할 줄 알다니!"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아버지, 음식을 만든 건 처음이라 혹시 입에 맞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았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긴장으로 요동치던 내 마음도 조금씩 진정되었다."내가 여기 있으니, 그 누구도 너를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행복에 젖은 나는 서둘러 아버지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 주었다.그때 하인 하나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왕야(王爺), 군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허둥대는 것이냐?"그러다 문득 무언가 깨달은 듯 벌떡 일어섰다."방금 누구라고 했느냐?!""왕야, 안양군주께서 돌아오셨습니다!"안양군주라는 이름을 똑똑히 들은 아버지는 흥분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왕비인 맹은수와 고윤우도 그 뒤를 따랐다.영문을 모르는 나는 곁에 있던 시녀에게 물었다."안양군주가 누구냐?""군주님, 안양군주는 왕야께서 민간에서 거두어 자신의 딸로 삼으신 분입니다." 알고 보니 내가 실종된 지 2년째 되던 해, 아버지가 나를 찾던 도중 오갈 데 없는 어린 소녀인 맹소양을 만났던 것이다.나와 또래인 맹소양을 가엾게 여긴 아버지는 결국 그녀를 딸로 삼아 왕부에서 길렀다고 한다.그녀가 나타나 내 빈자리를 대신하자, 아버지는 내게 주지 못한 사랑을 모두 그녀에게 쏟았다.이름까지 바꿔주며 안양군주라는 칭호까지 내린 것이다.3년 전, 맹소양은 아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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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버지께서 나를 소개하려 하자, 맹소양은 아버지의 팔을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다."아버지, 지금은 제가 너무 지저분해서 이런 모습으로 언니를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참, 이번에 아버지께 들려드릴 이야기가 정말 많으니 귀찮아하시면 안됩니다!"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어찌 귀찮겠느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밤새도록 하거라. 내가 다 들어주마."왕비와 하인들이 맹소양을 둘러싸고 처소로 데려가 몸을 씻고 단장하게 했다.아버지는 집사에게 명령했다."어서 내가 미리 준비해둔 물건들을 소양이의 방으로 모두 옮기도록 하거라."그러고는 맹소양의 처소 쪽으로 몇 걸음 가다가 문득 내가 생각났는지 다시 돌아왔다."유주야, 소양이가 그동안 밖에서 고생이 많았으니 네가 좀 이해해 주거라. 생일 연회는 취소하고 나는 소양이 곁에 있어 줘야겠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가버렸다.고윤우도 혼자서 중얼거렸다."소양이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모르겠네, 의원이라도 불러서 진찰받게 해야겠어."말을 마친 그는 왕부를 나가버렸다.오늘 오후 주방에서 요리하다 서툴러서 몇 번이나 다쳤던 내 손이 생각났다.고윤우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었다."너도 참, 왕부에 숙수가 있는데 왜 직접 해서 이 고생을 하느냐. 결국 다쳤잖느냐."당시 곁에 있던 시녀들은 고윤우가 나를 살뜰히 챙긴다며, 직접 돕기까지 한다고 수군거렸다.나 또한 그것이 고윤우의 서툰 배려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맹소양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니 그건 걱정이 아니라, 내가 일을 벌였다는 타박이었음을 깨달았다.방금 전까지 북적이던 대청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고, 탁자 앞에 앉자 극심한 허탈감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졌다.연화가 조심스레 물었다."군주님, 음식이 다 식었는데 주방에 데워달라고 할까요?"나는 고개를 저었다."연화야, 음식들을 챙겨서 나와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자꾸나."나는 어릴 적부터 생문이라는 살수 조직에서 자라 매일같이 훈련만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내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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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연화와 나는 정처 없이 성 안을 걸었다.이 성의 이름은 천림성(天臨城)으로, 가장 중심이 되는 황제가 계신 성이었다.살수로 일할 때는 이곳에 별로 와본 적이 없었다. 천림성에는 황제가 있었기에 이 근처에서 하는 임무는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해서, 내가 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천림성이 화려하기로 유명하다는 소문은 늘 들어왔고, 언젠가 자유를 되찾게 되면 천림성에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해 남은 생을 보내고 싶었다.그런데 내가 존귀한 안왕 화태수의 딸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머릿속에 소혜 언니의 말이 맴돌았다.'반드시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찾아내야 한다.''소혜 언니, 집을 찾았는데 왜 하나도 기쁘지 않은 건가요?'어디선가 갑자기 아이 몇 명이 튀어나와 연화를 밀치고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낚아채 달아났다.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던지며 소리쳤다."거기 멈추거라!"앞장 섰던 아이가 내 공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넘어졌고, 다른 아이들이 부축하려 할 때 나와 연화는 이미 그들의 앞까지 다가갔다."왜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연화가 화를 내며 묻자,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는 턱을 치켜들며 대꾸했다."맞아요, 훔쳤습니다. 어쩌실 겁니까?"나는 단검을 꺼내들었고, 칼날이 번뜩였다."한 번 더 물어보마. 왜 훔친 것이냐?"아이는 움찔하며 겁에 질린 듯 침을 꿀꺽 삼켰다."그게... 물건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서요. 며칠동안 굶어서, 그냥 운에 맡기고 해본 겁니다."연화가 들고 있던 것은 내가 챙겨두라고 했던 음식이었다.길고양이나 들개에게라도 주려고 챙긴 건데, 이런 아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나는 단검을 거두고 연화에게 음식을 나눠주라고 했다.아이들은 우리가 해를 끼칠 마음이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음식을 안고 쏜살같이 도망쳤다.연화와 나는 그들을 따라 한 폐옥까지 가게 되었다.그 안에는 노인, 아이, 여자,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얼굴은 핏기를 잃고 앙상하게 마른 데다, 몸을 가릴 옷조차 변변치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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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결과적으로 맹소양의 수법은 비록 유치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아버지는 아침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내 방으로 달려와 나를 다그쳤다.이유도 묻지 않고 한바탕 소리를 지른 뒤, 나를 보며 물었다."유주야, 네 잘못을 아느냐?"나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어제 제 생일 연회 때 저한테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께서 계시니 아무도 저를 함부로 말하지 못할 거라고 하셨지요.""그런데 지금은 맹소양 말 한마디에 저를 그런 사람으로 몰아세우시네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딸이 하나 있는데 저를 왜 다시 찾아온 것입니까?"맹소양의 수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오직 아버지의 태도뿐이었다.그는 세상에서 유일한 나의 혈육이기에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다.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유주야, 너도 나의 딸이고 소양이도 내 딸이다.""네가 밖에서 고생한 건 내가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네가 오만하고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늘부터는 왕부에 머물며 반성하도록 하거라. 내 허락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그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그 뒷모습에서는 분노가 느껴졌다.연화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군주님, 왕야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분명 안양군주님께서 군주님을 비꼬았는데, 앞뒤 사정도 묻지 않고 왕부에만 머물면서 반성을 하시라니요."나는 멍하니 앉아 가슴에 손을 얹었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연화도 아는 도리를 아버지께서 모를 리가 없었다.밤이 깊어지자 나는 연화를 데리고 몰래 왕부를 빠져나갔다.어제 범이에게 약속했으니 음식을 가져다줘야 했다. 아버지는 약속을 어겨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생문을 떠나던 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앞으로 착하게 살며 과거에 내 손으로 남을 해쳤던 죄를 씻어내겠다고 말이다.외출 금지 처분을 받은 덕분에 맹소양은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며칠간 조용히 지냈고, 덕분에 나도 며칠은 평온했다.낮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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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맹소양은 또 울며불며 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이번에는 고윤우도 함께였다.맹소양이 왕부로 돌아온 뒤로 고윤우는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예전에는 내 뒤를 쫓아다니며 내 이름을 불렀던 그가 이제는 온통 맹소양 생각뿐이었다.상처가 난 맹소양의 얼굴을 보자 그는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칼날 같은 살기가 서려 있었다.맹소양은 스스로 얼굴에 상처를 낸 뒤, 아버지를 찾아가 그게 내가 한 짓이라고 모함했다.그녀 곁의 시녀들도 내가 꽃을 다듬는 가위로 맹소양의 얼굴에 대고 위협하듯 휘둘렀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윤우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유주야, 네가 이토록 제멋대로일 줄은 몰랐구나. 소양이는 피부가 여리고 너와는 다르다. 어찌 소양이의 얼굴에 상처를 낼 수 있느냐. 혹여 흉터라도 남으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나는 눈가의 흉터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저는요? 오라버니, 제 얼굴은 중요하지 않단 말이십니까?"왕부로 돌아온 지난 1년 동안,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둘 되찾기 시작했다. 나와 고윤우는 어릴 적부터 그림자처럼 붙어다녔고, 함께 글을 배우고 뛰어놀았다.그가 나보다 몇 살 많았기에 나는 항상 그를 윤우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그의 뒤를 쫓아다녔었다.다섯 살 때, 고윤우가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나무에 올라가 따주려다 실수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그때 눈가가 돌에 부딪히는 바람에 흉터가 남았고, 나는 서럽게 울며 이제 다시는 예뻐질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그는 나를 안고 안타까워하며 함께 펑펑 울었었다.그 후 고윤우는 아버지 앞에서 나중에 크면 나를 아내로 맞이하고, 천림성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아버지와 재상인 고정훈도 본래 사돈을 맺을 뜻이 있었기에, 이 기회를 틈타 자연스럽게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혼인을 약속해 두었다.하지만 몇 달 뒤 장터 축제에서 내가 실종될 줄은, 그것도 십여 년이나 흐를 줄은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내 흉터를 언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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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만하거라!"아버지는 고함을 지르며 먹을 가는 돌을 던져 내 손에 있던 칼을 떨어뜨린 뒤, 화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무릎을 꿇거라!"나는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제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화유주, 너는 동생을 해치고도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구나. 내 오늘 너를 꼭 벌하고야 말 것이다!"나는 차갑게 비웃었다. "제 어머니의 자식은 저 하나뿐이고, 제게 동생은 없습니다. 그리고 전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곁에 있던 집사가 벌을 주려고 준비해 둔 회초리를 가져왔고, 아버지는 그것으로 나를 때리려 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았다."무슨 자격으로 저를 때리시는 겁니까? 저는 인정 못 합니다!""나는 네 아버지다. 내가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다.""오늘은 너뿐만 아니라 네 시녀도 함께 벌하겠다. 주인이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말리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너를 모시지 못하게 할 것이다."이대로 계속 버텼다가는 연화까지 말려들 것임을 알았기에 나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아버지는 회초리로 쉬지 않고 나를 때렸다.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꼿꼿이 서 있었다.열 대, 스무 대를 맞자 몸의 통증이 점차 마비되어 갔고, 아버지는 그제야 매질을 멈추었다.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입술이 터져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피가 입가로 번져갔다.나는 말했다."오늘부터 제게 아버지는 없습니다."연화는 옆으로 끌려가서 뺨을 맞아 양쪽 볼이 퉁퉁 부어올랐다.내가 쓰러지는 것을 본 연화는 몸부림치며 풀려나,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내게 기어왔다."군주님."울부짖으며 나를 부르던 연화가 마침내 나를 품에 안았고, 울면서 내게 말했다."군주님, 제발 아무 일도 없으셔야 합니다. 군주님 어머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그 말이 나와 분노에 차 있던 화태수가 이성을 찾았고, 그는 황급히 집사를 시켜 의원을 불러오게 했다.의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동안 맥을 짚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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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가 깨어난 건 며칠 뒤였다. 원래는 연화 혼자 나를 모셨는데, 내가 쓰러진 뒤 화태수는 연화를 계속 내 곁에 두고, 열 명이 넘는 다른 시녀들도 내 처소로 더 보내주었다.나는 연화를 시켜 그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연화만 내 곁에 두었다."연화야, 상처가 나으면 떠날 생각인데 너도 나와 함께 가겠느냐?""떠나신다고요? 군주님,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왕부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다."나는 이곳이 집인 줄 알았으나, 이제 보니 생문만큼이나 위험한 곳이었다.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내가 편히 지낼 곳 하나쯤은 있을 터였다."군주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군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화태수가 자주 찾아왔지만, 그가 올 때마다 나는 자는 척을 했고 깨어 있더라도 그와는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그도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유주야, 언제까지 투정을 부릴 셈이냐? 소양이처럼 나에게 좀 굽힐 수는 없느냐? 소양이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면, 겨우 매 몇 대로 이 일이 끝났을 것 같느냐?""너는 하마터면 소양이를 죽일 뻔했다!"나는 그를 보지 않은 채 담담히 대답했다."그럼 맹소양을 찾아가십시오. 저는 맹소양이 부리는 수작 같은 건 할 줄 모릅니다."내가 맹소양을 나쁘게 말하자, 그는 곧바로 얼굴이 어두워졌다."화유주, 네가 그러고도 어찌 군주라 불릴 자격이 있단 말이냐!""전 단 한 번도 군주가 되고 싶다고 한 적 없습니다."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처음부터 나는 그저 그의 딸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는 알아주지 않았다."정말 실망스럽구나!"화태수는 화가 나 손을 부르르 떨며 나를 가리키더니, 결국 모진 말을 남기고 소매를 뿌리치며 가버렸다.연화가 조심스레 나를 살피며 위로했다. "군주님,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나는 연화의 말을 자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연화야, 오늘 밤에 범이 일행을 찾아가서 은자를 넉넉히 전해주거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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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맹소양의 처소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며 매우 시끌벅적했다.내가 단검을 쥔 채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문 앞에 나타나자, 하인 두 명이 몽둥이를 들고 나를 막아섰다.나는 단검을 휘둘러 그들의 방어를 뚫었다."죽기 싫으면 비켜라."마당은 순식간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곧바로 한꺼번에 몰려나왔다.고윤우가 맹소양의 앞을 가로막았다."유주야, 이게 무슨 짓이냐?"나는 맹소양을 노려보았다."네가 서쪽에 있는 폐옥에 불을 저지른 것이냐?"맹소양은 시치미를 떼며 모르는 척했다."언니,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단검으로 위협하시는 겁니까?"나는 피 묻은 옥패를 맹소양에게 던졌다."네가 인정하든 안 하든, 오늘 너는 그 폐옥의 열여섯 명의 목숨을 대신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고윤우가 다시 맹소양의 앞을 막아섰다."유주야, 그만하거라! 고작 비천한 사람들 목숨 몇 개 가지고 왜 이리 유난이냐? 설마 소양이의 목숨이 그들보다도 못하단 말이냐?"나는 고윤우를 차갑게 쏘아보았다."오라버니도 한패이십니까?""내가 사람을 시켜 조사하지 않았으면 네가 뒤에서 그런 천한 것들과 어울리는 줄 몰랐을 것이다. 어쩐지 천박한 버릇이 물들었다 했더니.""그까짓 천한 것들 몇 명쯤은 죽어도 그만이다. 오히려 너한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그는 마치 개미 몇 마리가 죽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였다.나는 이를 악물었다."그럼 오라버니도 함께 죽으십시오."나는 고윤우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맹소양의 오른쪽 팔과 왼쪽 어깨를 칼로 찔러 바닥에 쓰러뜨렸다.내가 다시 칼을 치켜들자, 고윤우는 맹소양의 몸 위로 엎드려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단검이 그의 등에 깊숙이 박혔음에도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그 모습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맹소양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나 보군요. 죽어서도 함께하고 싶으신 겁니까? 허나 저는 오라버니의 뜻대로 해줄 생각은 없습니다."나는 물에 젖은 솜뭉치마냥 축 늘어진 고윤우를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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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는 사흘 동안 곳간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누군가 몰래 먹을 것을 넣어주었으나 연화는 아닌 듯했다.그 사람은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음식을 던져두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곤 했다.독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맹소양과 고윤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매번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맹소양과 고윤우가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화태수는 사람을 보내 나를 풀어주었다.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작은 창문 너머로 종이 뭉치 하나가 날아들었다.'매원에서 만나자.’매원은 맹소양의 처소였다. 이 왕부에서 연화를 제외하면, 나를 도와줄 사람이 또 있을 리 없었다.나는 나를 감시하던 시위들을 따돌리고 몰래 매원으로 향했다.그곳에는 화태수와 왕비가 있었고, 맹소양은 왕비의 품에 안겨 가냘프게 울고 있었다."아버지, 너무 무섭습니다. 언니가 정말 저를 죽이면 어찌 합니까? 저를 싫어한다면 제가 떠나겠습니다."화태수는 미간을 찌푸린 채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그럴 리가 없다. 유주는 사리분별이 바른 아이다."그러나 왕비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왕야, 유주가 대체 어디서 무공을 배운 걸까요? 그동안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기에 저토록 살기가 가득하단 말입니까. 군주의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게다가 그동안 소양이가 왕야의 곁을 지키며 정을 쌓았으니, 유주가 소양이를 시기하여 앙심을 품은 게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목숨을 건졌으나 다음에는 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를 일입니다.""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제가 얼마 전 서쪽 지역에서 온 의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진 약 중에 먹으면 몸을 완전히 바꿔놓는 약이 있다 하더군요. 그걸 쓰면 유주가 배운 무공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침 저번에 어의도 유주의 몸이 허약하다 했으니, 한번 먹여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어머니, 그 약이 언니의 몸에 해롭지는 않습니까?""걱정 마라. 의원이 말하길 몸을 다스리는 약이라 이롭기만 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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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곳간에 갇힌 뒤, 화태수는 연화가 몰래 나를 찾아갈까 봐 사람들을 시켜 연화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방에 가두었다고 한다.연화는 그들이 던져준 적은 양의 상처에 바르는 약을 품에 안고 깊은 밤을 틈타 몰래 빠져나왔던 것이다.자신의 다리 상처가 더 심각했음에도 약을 전혀 쓰지 않고, 그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내게 약을 전해준 것이었다.내가 곳간에 갇혀 있던 사흘 동안, 연화는 먹을 것도 없어 물 한 모금으로 버텼다.결국 상처가 곪아 터졌고, 스스로 대충 수습하려다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다.내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걷자, 고약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상처 부위의 살은 이미 썩어 들어가 주변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나는 처음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눈물을 떨구었다. 내 상처보다 연화의 상처가 나를 더 아프게 했다.나는 울면서 연화에게 사과했다."미안하다. 연화야, 나 때문에 네가 이런 일을 겪게 되었구나."연화는 고개를 저었다."군주님 탓이 아닙니다. 그때 전왕비 마마께서 구해주지 않으셨다면 전 진작 굶어 죽었을 겁니다. 게다가 군주님은 저를 친동생처럼 대해주셨으니, 제게는 과분한 행복이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연화야, 내 너를 보내주마. 오늘 밤 당장 이곳을 떠나거라."나는 단검을 불에 달구어 연화의 썩은 살을 도려내고 약술로 상처를 소독했다.그리고 화태수가 보냈던 귀한 약재들을 연화에게 먹이고, 남은 인삼과 영지 등은 보따리에 싸서 챙겨주었다.그리고 가진 돈을 털어 하인들을 매수하여 연화를 왕부 밖으로 내보냈다.성 밖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연화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군주님, 저랑 같이 갑시다.""연화야, 내게는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다. 너는 먼저 가거라. 내게 약속해 다오.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네가 만든 만두가 가장 맛있으니, 훗날 네 만두 가게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면 내가 그 냄새를 맡고 찾아가마."연화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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