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행을 너에게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97 챕터

51화

얼굴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채 터지고 부어올라 만신창이가 된 설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어 손을 뻗었다. 구급차좀 불러 달라는 간절한 애원과 함께 파르르 떨리는 손끝이 수현의 발 끝에 겨우 닿았다. 하지만 서진의 어머니는 그 처절한 몸부림조차 역겨운 연극이라 치부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바로 그 순간, 시어머니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찰나를 수현은 놓치지 않았다. 수현의 입꼬리가 잔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설아의 가냘픈 손가락 위로 자신의 발을 올려 몸무게를 실어 지그시 짓밟았다. "아악……! 흑, 하아……!“ 차가운 대리석 바닥 쓰러져 있는 설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다시 한번 터져 나왔다.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손을 빼려 버둥거렸지만, 수현은 시어머니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게 가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발끝에 힘을 더 단단히 주었다.수현의 발 아래서 설아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다 못해 터질 듯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머니, 설아 씨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연기가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일부러 어머니 곤란하게 만들려고 끝까지 저러나 봐요.“ 수현은 입으로는 염려하는 척 위선을 떨면서도, 발밑으로는 설아의 고통을 고스란히 즐기고 있었다. 설아의 의식이 점점 아득해져 가는 바로 그 순간, 도어락 해제음과 함께 현관의 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서진이었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선 서진이 마주한 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설아와, 그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박수현. 순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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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서진의 뇌가 거대한 충격에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아이? 유산? 이설아가 임신이라니……."무슨…… 무슨 소리에요, 그게? 아이라니?현실을 부정하듯 간호사의 어깨를 부서질 듯 움켜잡는 서진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갈라져 터졌다.간호사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의 손을 쳐내며, 붉은 피가 가득 묻은 차트를 내밀었다."환자분 얼굴 상태 못 보셨어요? 현재 산모님 상태로 보아 하복부에 가해진 강한 외상성 충격, 그리고 비정상적일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유산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아이는 이미 심장이 멎었어요. 지금은 자궁 내에 남아있는 잔류 조직을 제거하는 시술이 급선무입니다. 보호자 분, 정신 차리고 여기 서명하세요.“간호사가 억지로 쥐여준 펜과 수술 동의서에서 유독 비릿한 피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았다.서진의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서명란에 '보호자 유서진' 세 자를 적어 내려가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비된 듯 굳어, 잉크가 종이를 찢을 듯 지저분하게 번졌다. 자신의 손으로 다시 설아를 집으로 데려온 결과가 이거라니...서진은 응급실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지독하게 생생한 기억의 조각들이 칼날이 되어 그의 온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어젯밤 설아는 평소와 다르게 강하게 애원하며 그를 거부했었다.하지만 서진은 거친 폭언과 행동으로 설아를 짓눌렀다.그녀가 온몸으로 지키려 했던 것은 제 몸이 아니라, 서진 자신은 존재조차 몰랐던 그들의 작은 아기였다.어젯밤 거칠게 설아를 대했던 자신의 잔인했던 손길과, 오늘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설아의 모습이 교차하며 서진의 뺨을 거칠게 후려쳤다."내가…… 내 손으로 직접 내 아이를 죽인 거나 다름없어……."서진은 붉게 충혈된 눈을 느리게 감았다. 손바닥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설아의 핏자국이 낙인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수술실 위의 불이 툭 꺼졌다. 문이 열리며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서진은 튕겨 나가듯 의사 앞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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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화

수현은 금방이라도 억울해 쓰러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서진의 매서운 시선을 받아냈다."어머님이 설아 씨 태도 때문에 화가 나셔서 얼굴을 한 대 때리신 건 맞아. 며느리가 도리를 못 하니 시어머니로서 훈육하신 거잖아. 하지만 저렇게 크게 다치고 넘어진 건…… 설아 씨가 흥분해서 날뛰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혼자 모서리에 부딪힌 거야! 우리가 밀어낸 게 아니라고!“"박수현.“"진짜야, 서진아! 심지어 설아 씨가 훈육하시는 어머님을 먼저 밀치기까지 했어. 손지검을 하려고 들었다니까? 내가 옆에서 어머님 안 막아드렸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라. 설아 씨, 보기보다 정말 무서운 여자야……!“수현은 시어머니를 보호하는 척 은근히 설아를 못된 며느리로 몰아갔다.옆에 있던 시어머니 역시 수현의 마음에 쏙 드는 변명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높였다."그래! 수현이 말이 맞다! 어디서 시어머니 멱살을 잡으려고 드는 걸 수현이가 겨우 떼어놓은 거야. 저것이 지금 너한테 불쌍한 척 쇼하는 거다, 서진아!“시어머니의 표독스러운 외침이 병실 안을 휘저었다.힘겹게 침대 위에 누워있는 설아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악을 쓰는 두 여자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그만해, 두 사람 다. 당장 나가!!!“참다못한 서진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서진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피눈물이 고일 듯 붉은 핏발이 솟구쳐 있었다."두 사람 지금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아?! 아이를 잃었어…… 못난 나 때문에, 나 같은 놈 만나서…… 두 번씩이나…… 우리 아이를……!“두 사람은 서진의 입에서 나온 '아이'와 '유산'이라는 단어에 잠시 놀란 듯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설아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계산에 없었던 변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수현은 본능적으로 전세를 뒤집기 위해 순식간에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뻔뻔하게 말을 이어갔다."서진아…… 설마 지금 아이가 잘못된 걸 어머니랑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정말 너무하다.“수현은 억울함과 배신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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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서진의 눈동자에는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암전이 찾아와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수면마취의 기운과 극심한 피로감 속에서 설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설고 고급스러운 병실의 천장이었다.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소독약 냄새에 설아는 본능적으로 제 아랫배로 손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며 지독한 통증을 뱉어냈다. 시퍼렇게 멍이 든 손을 쳐다보던 설아의 시선이, 침대 곁에 멈추었다. 그곳에는 서진이 있었다. 늘 빈틈없이 완벽하던 수트 차림은 온데간데없고, 셔츠 깃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침대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그의 하얀 소매 자락에 박힌 붉은 핏자국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사그락거리는 미세한 소리에 서진은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고개를 든 서진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힘없이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설아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이설아…….“ 서진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깨어난 그녀를 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설아의 시선을 마주한 서진의 심장이 사정없이 덜컹거렸다. 자신 때문에 두 번이나 아이를 잃게 되었다는 잔인한 진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을 제 뜻대로 주무르던 유서진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단 한 마디도 뱉지 못하는 무력한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설아야…… 아이는…….“ 차마 잇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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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서진은 나지막한 말을 마지막으로 설아의 병실을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서진은 복도 차가운 의자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정말 이렇게 마지막이라니……. "이설아…….“ 서진은 들리지 않을 이름을 나지막히 속삭였다.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게 자리에서 일어난 서진은, 굳게 닫힌 설아의 병실 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힘없이 자리를 떴다. 어떻게 병원을 빠져나왔는지, 무슨 정신으로 운전대를 잡은 건지 기억조차 없었다. 붉은 신호등과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 속에서 서진의 머릿속은 온통 백지가 된 것 같았다. 서진이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집 안은 잔인할 정도로 아늑한 불빛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는, 그 아늑함을 비웃듯 자신의 어머니와 박수현이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서진은 핏발 선 눈으로 두 사람 앞에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살얼음 같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왜 두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야?“ 서진의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눈빛에 수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또다시 억울한 연기를 이어갔다. 슬픔과 배려를 가장한 가식적인 안색이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서진아, 그게 아니라……. 어머님이 아까 급하게 병원에 가시느라 가방을 두고 가셨더라구.....가방도 챙기고.....또 어머님이 아까 충격으로 많이 놀라셔서, 진정 좀 시켜드리느라 같이 있었어. 오해하지 마.“ 수현의 말에 서진의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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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이튿날 아침, 병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빛을 받으며 설아는 밤새 허물어졌던 눈빛을 완벽하게 지워냈다. 부어오른 눈가와 피멍이 든 얼굴은 처참했지만, 그 위로 들어앉은 눈동자만큼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서늘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설아는 오전 회진을 돌러 들어온 간호사에게 다급하게 사정해 휴대폰을 빌렸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익숙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네, 스타트업 이음입니다.“ "……팀장님. 저 설아예요.“ "어? 설아 씨! 연락도 없이 왜 출근 안 해? 무슨 일 있어? 이건 또 무슨 번호야?“ 수화기 너머 장서인의 목소리에는 설아의 걱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사회에서 만난 유일하게 자신을 '이설아'라는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주며 능력을 믿어주었던 직장 상사이자 멘토였다. "그게…… 어제 일이 좀 있었어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입원?! 왜? 어디가 아픈 건데? 무슨 일 있는 거야, 지금?!“ 설아의 짧은 대답 뒤에 숨겨진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는지, 서인의 목소리가 단숨에 거칠어지며 다급하게 물어왔다. 누구 하나 제 편이 없던 설아의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향해 쏟아지는 조건 없는 걱정과 온기. 그 따스함이 도화선이 된 듯, 밤새 독하게 치켜세웠던 설아의 마음 한구석이 툭 하고 허물어졌다. "팀장님…… 흐흑, 흑…….&l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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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택시에서 내린 설아가 크게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손에 쥔 이혼 서류 봉투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도달하고, 묵직한 대리석 복도를 지나 대표실 앞에 도착한 설아는 곧바로 서진의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설아의 등장에 비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지금 대표님 회의 중이시라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회의요?“ "예,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일정이 조금 길어질 것 같아서요…….“ 대답하는 비서의 시선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설아는 더는 유서진을 기다리며 단 1분 1초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얼굴을 마주해봤자 지옥 같은 기억과 끔찍한 환멸만 되살아날 뿐이었다. "네, 알겠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설아는 잠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흐르는 침묵 속에서 대표실 문 너머의 묘한 기류를 감지한 듯, 이내 생각보다 회의가 더 길어지는 것 같자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서에게 다가가 이혼 서류가 든 빳빳한 봉투를 건넸다. "이거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설아가 비서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차갑게 돌아서서 대표실 로비를 벗어나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 철컥- 마치 타이밍을 맞춘 듯,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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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 마음고생이라니. 설아는 기가 차서 말문이 턱 막혔다. 정작 지옥 밑바닥을 구르며 피눈물을 쏟은 게 누구인데, 감히 제 아이를 앗아간 악마들의 입에서 저런 가당치도 않은 단어가 튀어나오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뻔뻔하게 낯짝을 쳐들고 자신을 기만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역겨운 토기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설아는 더 이상 이 지독하도록 추악한 공간에, 그리고 제 모든 것을 처참하게 망가뜨린 두 인간과 단 1초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말 상대를 해주는 것조차 시간 낭비였다. 설아는 서진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수현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설아의 시선은 오직 서진만을 향해 있었다. 설아는 들고 있던 하얀 봉투를 서진의 손에 가차 없이 쥐여주었다. “빨리 처리해 주세요” 바스락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이혼 서류 봉투가 서진의 손에 쥐어지자, 서진의 커다란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서류를 전달한 설아는 미련 없이 그대로 뒤돌아 서진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대표실의 대리석 바닥 위로 설아의 구두 굽 소리가 서늘하게 울려 퍼졌고, 서진은 붙잡지도 못한 채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던 서진의 회사 건물에서 마침내 빠져나오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다. 마치 온몸의 뼈가 녹아내리는 듯 힘이 쭉 빠져나갔다. 회사를 나서는 설아의 위로 잔인하도록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이미 메말라 더는 나올 눈물조차 없을 줄 알았는데, 설아의 눈가에 금세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지난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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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순간 분을 참지 못한 서진의 어머니의 손이 허공으로 치켜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주위의 시선과 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손을 거두며 고상한 척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표독스러운 독설을 고상한 어조에 담아 다시 말을 이어갔다."그래, 다행이구나. 아무것도 가지고 나갈 생각이 없다니. 어디 한번 맨몸으로 나가서 구질구질하게 살아봐라. 너 같은 건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네가 살던 집 현관 문짝도 못 살 테니까."서진의 어머니는 설아는 무시하며 비아냥거렸다."우리 서진이가 진작에 수현이 같은 격에 맞는 짝을 만났어야 했는데, 너 같은 걸 만나서 지난 3년 동안 신세 망친 걸 생각하면...휴...그런데 넌 미안해 할 줄도 모르고 아주 뻔뻔하기까지 하구나. 그래서 내가 널 처음부터 싫어했던 거야.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지, 아유, 증말 재수 없으려니……."서진의 어머니가 혀를 쯧쯧 차며 테이블 위의 명품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채 일어났다."다시는 우리 서진이 앞에 얼씬거리 지도 마라. 재수 없으니까.“마지막까지 폭언을 한바탕 쏟아부은 서진의 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카페를 빠져나간 후, 홀로 남겨진 설아의 입가에 허탈한 쓴웃음이 새어나왔다."누가 누구 인생을 망쳐…… 하…….“설아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 속에 고인 응어리가 무거웠지만, 기운을 내어 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집으로 걸어가는 길, 설아는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과거의 기억들과 방금 전 유서진의 어머니의 독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어 놓아, 주위의 자동차 소리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마치 음소거 상태가 된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빵—————!그때, 뒤쪽에서 날카롭고 거친 클락션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울려 퍼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설아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발걸음 바로 옆으로 고급 스포츠카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조수석 창문이 아래로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강윤이 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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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서진의 어머니의 폭언으로 얼어붙었던 심장이 강윤의 다정한 온기에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설아가 옅게 미소 짓자, 강윤 또한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얼굴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설아의 얼굴에 비친 작은 생기가 그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차가 부드럽게 멈춰 선 곳은 강윤이 평소 자주 찾던 고즈넉하고 고급스러운 단골 일식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늙은 셰프이자 사장이 강윤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항상 혼자서만 조용히 식당을 찾던 강윤이 처음으로 아름다운 여성을 동반하자, 사장은 호기심과 반가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강윤에게 슬쩍 물었다."강 대표님. 항상 혼자 오시더니 웬일이세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혹시…… 여자친구?“사장의 짓궂은 질문에 설아의 뺨이 살짝 붉어졌고, 강윤은 그런 설아를 배려하듯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답했다."아, 저희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주 능력있는 직원이에요.“프라이빗한 룸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묘하고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메뉴가 준비되는 동안 어색한 정적이 이어지려 하자, 강윤은 설아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회사 업무 이야기를 꺼내며 분위기를 리드했다. 공적인 화제가 나오자마자 어색했던 기류는 거짓말처럼 눈 녹듯 사라졌다.설아는 일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방금 전의 어색함은 어디로 갔냐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금세 대화에 집중했고, 강윤 역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범접할 수 없는 프로다운 날카로움을 빛냈다."설아 씨, 이번에 우리 기획실에서 준비 중인 반도체 관련 프로젝트 알고 있죠?“"네, 장서인 팀장님께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어서 알고 있어요. 이번 분기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업이라고…….“"맞아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설아 씨가 우리 회사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생각엔 설아 씨도 이 프로젝트에 구성원으로 같이 참여했으면 좋겠는데, 설아 씨 생각은 어때요?“강윤의 파격적인 제안에 설아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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