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이 격려의 눈빛을 보내고 자리로 돌아가자, 설아는 곧바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서류 더미를 품에 안고 냄새를 맡아보니, 오랜 시간 캐비닛에 묵혀있던 종이 냄새가 났다.설아는 무작정 타이핑을 시작하는 대신, 서류들을 바닥과 책상 위에 넓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년도별, 월별, 그리고 프로젝트 레이블별로 순식간에 분류를 시작했다.대학 시절에도 과제나 조별 프로젝트를 할 때면 특유의 꼼꼼함과 빠른 손놀림으로 항상 조장을 도맡아 '에이스'로 불렸던 설아였다.서진과의 결혼 생활동안 그 명민함이 잠시 먼지에 싸여 있었을 뿐, 날카로운 직관과 빠릿한 손재주는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었다.'날짜별로 먼저 묶고, 중복되는 데이터는 필터링해서 한눈에 보이게 차트로 넣는 게 좋겠어.‘입덧 때문에 이따금 속이 울렁거렸지만, 설아는 얼음물을 한 모금 마셔가며 정신을 집중했다.정신없이 모니터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시계 바늘이 11시 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며 사무실 분위기가 한층 말랑해질 무렵, 닫혀 있던 3층 유리문이 열렸다."다들 오전 업무 고생 많았어요.“낮고 시원한 중저음 목소리와 함께 강윤 대표가 사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직원들과 격의 없이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활기차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에는, 면접장에서 보았던 숨 막히는 긴장감 대신 상대를 단숨에 매료시키는 독보적인 아우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범접할 수 없는 세련된 모습에 설아는 자기도 모르게 척추가 꼿꼿하게 서며 긴장감이 돌았다.자신의 대표실로 바로 들어가려던 강윤의 걸음이, 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는 설아의 책상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강윤은 허리를 살짝 숙여 시선을 맞추더니, 신입 사원인 설아를 향해 오히려 깍듯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오늘 첫 출근이시죠?""……아, 안녕하세요! 이설아입니다.“갑작스러운 눈맞춤에 설아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받았다. 설아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짓는 그의 입술과 대조적으로, 예리하게 빛나는 눈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