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Kabanata 121 - Kabanata 130

198 Kabanata

제121화

두 바퀴를 더 돌고 나자 슬비는 한결 편안해졌다. 지금은 말이 가볍게 뛰도록 속도를 조금 내 볼 정도였다.이재가 손을 놓고 옆으로 물러났다. 슬비가 트랙을 따라서 천천히 달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치맛자락이 가볍게 펄럭이면서, 마치 날아오르려는 한 마리 나비와도 같았다.이재의 시선은 슬비를 따라 움직였다. 한 번도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았다.한 바퀴를 돌아온 슬비의 뺨에는 운동 때문에 옅은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이마에는 잔땀이 맺혔고 눈은 유난히 반짝였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재밌어?”슬비가 눈꼬리를 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재밌어요.”“조금 더 빨리 달려 볼래?”슬비는 잠깐 망설였다. “떨어지지는 않겠죠?”“안 떨어져.”이재는 고삐를 놓고 능숙하게 말 등에 올라탔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슬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재의 팔이 옆으로 뻗으면서 고삐를 잡았다. 단단한 가슴이 슬비의 등에 닿았고, 이재는 그대로 슬비를 품 안에 가뒀다.슬비는 얇은 옷 너머로 이재의 체온과 심장 박동까지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느리고 힘 있는 박동이 등에 전해질 때마다 슬비의 가슴도 덩달아 떨렸다.“잘 앉아 있어.” 이재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따뜻한 숨결이 귀를 스치자 간지러운 감각이 번졌다.슬비가 대답할 틈도 없이 이재가 짧게 신호를 보냈다. 적갈색 말이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슬비의 몸에 본능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이재의 품에 더 깊이 기댔다.이재는 팔에 힘을 줘 슬비를 단단히 붙잡았다. 턱을 슬비의 머리 위에 가볍게 얹고 나지막하게 웃었다.“겁먹지 마.”슬비는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어느새 귓가를 스치는 바람까지 즐기기 시작했다.한 바퀴를 다 돌자 이재가 고삐를 당겼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멈춘 말은 꼬리를 흔들며 콧바람을 내뿜었다.“어땠어?”슬비가 고개를 들어 이재를 올려다봤다. 슬비의 눈에 선명한 턱선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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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자, 잠깐만요...”슬비가 몸을 피하자, 이재는 거친 숨을 고르면서 조금 떨어졌다. 목소리는 잔뜩 낮아져 있었다. “왜 그래?”슬비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라 양 볼이 붉었다.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촉촉한 눈으로 이재를 바라보다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그날인 것 같아요...”그녀는 며칠째 도혁의 일정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후 리허설 때부터 허리와 아랫배가 묵직했지만 그저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이제야 날짜를 떠올려 보니 마침 생리할 때가 다 됐다.이재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슬비를 바라보는 모습은 혹시 농담이라도 하는지 확인하는 듯했다.슬비는 그 시선이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일단... 놔주세요.”이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치솟던 욕망을 억눌렀다. 그제야 손을 놓고 말에서 내린 뒤 슬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려와.”슬비는 이재의 손을 잡고 그 힘을 빌려서 말에서 내려왔다. 발이 땅에 닿자 아랫배 쪽으로 다시 따뜻한 느낌이 퍼졌다. 슬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이재는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많이 아파?”슬비는 고개를 저었다. 입술을 깨문 채 목소리를 더 낮췄다. “저기... 혹시 생리대 있어요?”말을 뱉자마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대체 무슨 질문을 한 거야?’‘남자가 쓸 일도 없는데 생리대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하지만 지금 당장 부탁할 수 있는 사람도 이재밖에 없었다.오기 전부터 승마장이 아직 정식 영업 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말을 관리하는 직원 몇 명과 지혁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건 더 못 할 일이었다.게다가 산 아래 편의점까지는 차로 몇 킬로미터나 내려가야 했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옷까지 더러워질 게 뻔했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슬비는 용기를 내서 이재를 올려다봤다. 얼굴은 잘 익은 새우처럼 새빨갰다. “생리가... 시작한 것 같은데 가방에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요.”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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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짙은 회색 실크 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려서 창백할 정도로 하얀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도드라진 손목뼈 옆에는 아주 옅은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깊은 눈매와 곧은 콧대, 살짝 다문 얇은 입술까지 선이 또렷했다. 차갑고 귀한 분위기가 몸 전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잡지 화보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것 같은 남자가 이런 평범한 편의점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넋을 놓고 바라보던 알바생은 이재가 계산대 앞까지 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어떤 걸 찾으세요?”이재의 시선이 진열대를 훑다가 알록달록한 포장의 생리대 코너에 멈췄다.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쪽으로 다가간 이재는 한 팩을 집어서 설명을 읽고 다시 내려놓았다.다른 제품도 하나 들었다가 확인한 뒤 제자리에 두었다.속도는 느긋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진지하고 꼼꼼했다.뒤에서 지켜보던 알바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저 남자... 생리대 고르는 거 맞지?’‘세상에... 여자친구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이재는 5분 넘게 포장을 읽었지만 종류별 차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주간용, 오버나이트, 입는 타입 등 눈에 보이는 종류마다 하나씩 카트에 담아서 계산대로 가져갔다.“이걸로 계산해 주세요.”알바생은 서둘러 바코드를 찍으면서도 카트 안을 자꾸 힐끗거렸다.주간용, 오버나이트, 입는 생리대...“총 5만 8천6백 원입니다.”이재는 지갑을 꺼내 검은색 프리미엄 카드를 건넸다.카드를 받아 든 알바생은 디자인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블랙카드... 실물은 처음 보는데...’단말기에 카드를 꽂았던 알바생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데 이 카드가 결제 오류가 나네요.”이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지갑에서 다른 카드를 꺼냈다.이번에도 검은색 카드였다.알바생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떨렸다.“혹시 다른 카드나 현금 있으세요?”이재의 미간이 더 깊게 일그러졌다.지갑을 뒤져 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카드는 전부 비슷한 등급의 카드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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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이재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인 뒤 옆의 재떨이에 꽁초를 눌러 껐다. 작은 불씨가 손끝 가까이에서 사라지며 살짝 뜨거웠지만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씁쓸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평생 쓸 자제력을 요 며칠 사이에 다 끌어다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이걸 언제까지 누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화장실에서 나온 슬비는 벤치 옆에 선 이재를 발견했다. 손에는 이미 꺼진 담배가 들려 있었다.인기척을 들은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슬비의 얼굴에서 아래로 내려오더니 아랫배에 머물렀다.“괜찮아졌어?”슬비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가 손을 내밀자 그제야 천천히 다가갔다.이재는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슬비를 품에 끌어안았다.슬비의 몸이 굳어졌다가 저도 모르게 살짝 뒤로 물러났다.“왜, 왜 그래요?”슬비가 올려다본 눈에는 경계와 긴장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그 표정을 본 이재가 조용히 웃었다. 가슴에서 울리는 웃음소리가 슬비의 마음까지 간질였다.이재는 검지를 살짝 굽혀 슬비의 코끝을 가볍게 쓸었다.“또 무슨 엉뚱한 상상을 해?”슬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내가 뭘요?”이재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아니야? 그럼 방금 그 표정은 뭐였는데.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속을 들킨 슬비는 얼굴이 더 뜨거워져 고개를 돌렸다.이재는 웃으면서 팔에 힘을 줬다. 슬비를 품 안으로 끌어당기고 턱을 머리 위에 가볍게 얹었다.“걱정 마. 그 정도로 못 참는 사람은 아니니까.”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에서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얇은 셔츠 너머로 전해졌다. 이재에게서 나는 맑은 솔향과 뒤섞이자, 슬비의 심장이 괜히 ‘쿵’하고 흔들렸다.“추워?”슬비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배고파?”슬비가 조금 머뭇거렸다. “조금요...”이재가 살짝 웃었다. “가자. 밥 먹으러.”...승마장을 나설 무렵에는 하늘이 제법 어두워지고 있었다.노을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선명해 자꾸 시선을 붙잡았다.도우는 알아서 돌아가게 승마장에 남겨두고,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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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슬비가 잠깐 멈칫했다. “안 먹어요?”“너부터 먹어.”슬비는 먹기 좋게 잘라진 스테이크를 바라봤다. 조각마다 크기도 가지런했고 결도 선명했다. 가장자리는 살짝 바삭하게 익었지만, 안쪽은 촉촉한 분홍빛을 띠고 있어서 구운 정도도 완벽해 보였다.슬비는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부드러운 고기에서 육즙이 퍼졌다. 간도 딱 알맞아서 씹을수록 감칠맛이 돌았다.“맛있어요!” 슬비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반짝이는 슬비의 눈을 바라보면서 이재 입가의 미소는 조금 더 깊어졌다.식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직원이 따뜻한 대추생강차 두 잔을 가져왔다.단정한 찻잔 안에는 진하게 우린 차가 담겨 있었고, 얇게 썬 대추와 잣이 띄워져 있었다. 은은한 단내와 생강 향이 따뜻하게 퍼졌다.이재는 그중 한 잔을 슬비 앞으로 밀었다. “이것도 마셔. 속이 좀 편해질 거야.”슬비는 차를 내려다보면서 며칠째 지키고 있던 식단 관리를 떠올렸다.“배불러요.”“차는 많이 안 차.”슬비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더는 못 먹겠어요.”이재는 잠시 슬비를 바라보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큰 손바닥을 슬비의 아랫배에 대고 가볍게 눌렀다.따뜻한 손이 얇은 니트 위로 밀착됐다. 손바닥의 온기가 천천히 피부 안쪽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온몸에 퍼졌다.“남편 말을 들어. 이 정도는 들어가.”“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확인하는 중.”슬비는 할 말을 잃고 이재를 바라봤다.‘누가 배부른지 확인한다고 남의 배를 만져?’결국 슬비는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뜨겁지 않고 딱 좋은 온도였다. 부드러운 단맛에 대추 향과 은은한 생강 향이 섞여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몸까지 한결 편안해졌다.두어 모금 더 마시다 보니 어느새 한 잔을 다 비웠다.이재는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배부르다며?”슬비는 얼굴을 붉히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구나 몸매와 체중은 신경 쓰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슬비는 지금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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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대신 결혼했다고?”우찬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 너 스스로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슬비가 어떻게 원지민 대신 결혼을 해?’애초에 슬비는 하이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우찬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어. 여긴 북명시가 아니잖아.”우찬은 테이블 옆에 서서 일그러진 성준의 표정을 살폈다. 한참 말을 고른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성준아, 호강시에 내가 아는 형님이 한 명 있어. 여기 사정도 잘 알고 인맥도 넓어. 한번 불러서 물어볼까? 우리가 못 찾은 얘기를 알고 있을 수도 있어.”성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 사이에서 거의 다 타 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작은 불씨가 튀었다가 이내 사라졌다.“불러.”우찬은 그제야 숨통이 트인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두어 번 신호가 간 뒤 통화가 연결됐다. 우찬은 목소리를 낮춰서 몇 마디 설명한 뒤 호텔 이름과 객실 번호를 알려 줬다. 연달아 고맙다는 말을 한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여기서 멀지 않대. 20분이면 온대.”성준은 대답하지 않고 소파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미간을 눌렀다.방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낮은 바람 소리와 창밖의 차 소리만 간혹 들려왔다.정확히 20분 뒤 벨이 울렸다.우찬이 빠르게 문으로 가서 열었다.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짙은 남색 폴로 셔츠에 캐주얼 팬츠를 입었고 구두는 반들반들하게 닦여 있었다. 호강시의 재계 인맥 속에서 오래 어울린 사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풍겼다.“우찬아!”남자가 웃으면서 우찬의 어깨를 툭 쳤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연기와 재떨이를 훑어보더니 눈썹을 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야? 분위기가 왜 이래?”“형님, 갑자기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우찬은 옆으로 비켜 길을 내주며 남자를 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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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우찬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곁눈질로 성준의 표정을 살폈다.성준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 앉아 있었다.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차분해 보이기까지 했다.하지만 우찬은 찻잔을 쥔 성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걸 똑똑히 봤다. 손등의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솟을 정도로.주경은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이어 갔다.“내가 듣기로 원씨 집안 큰아가씨는 민혜숙 여사님이 직접 고르셨다더라. 하이재 회장하고 사주 궁합도 제일 잘 맞고 집안 운도 받쳐 준다고 했다나 봐.”“지난달에 혼인신고까지 마쳤고 이달 말에 결혼식을 한다던데. 호강시 재계에선 다들 그 얘기뿐이야.”이달 말 결혼식.그 말은 달궈진 쇠붙이처럼 성준의 가슴을 거세게 지졌다.성준의 손가락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손안의 찻잔이 금이라도 갈 듯 작은 마찰음마저 났다.우찬은 불안하게 지켜보다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형님, 정말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죠? 사진 속 사람이 원지민이 맞아요?”“내가 어떻게 잘못 봐. 하이재 회장이 SNS에도 올렸어.”주경은 핸드폰을 꺼내 몇 번 화면을 넘긴 뒤 내밀었다.“봐. 이거야. 나도 처음 봤을 땐 눈을 의심했다니까.”우찬이 무심코 손을 내밀었지만 성준이 먼저 핸드폰을 가져갔다.화면에는 이재의 SNS 피드가 떠 있었다. 글은 없고 사진 한 장만 올라와 있었다.슬비가 쪼그려 앉아 검은 셰퍼드를 쓰다듬고 있었다. 노을에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치맛자락은 바람에 살짝 들려서 마치 막 날개를 펴려는 나비처럼 보였다.설명도 없고 이모티콘도 없었고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그런데 사진을 찍은 사람의 기분만큼은 화면 밖으로 넘칠 듯 선명했다. 보는 사람의 눈이 아릴 정도로 진한 애정이 사진 구석구석에 배어 있었다.성준은 아래로 화면을 넘겼다.이번에는 혼인관계증명서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사진 아래 적힌 문구는 짧았다.[내 사람.]성준은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옆에서 우찬이 걱정스러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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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그제야 주경도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소파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더니 성준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달려들었다.무릎이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차가 쏟아졌지만 신경 쓸 틈도 없었다.“강 대표, 미쳤어?! 지금 뭘 하는 건지 알아? 상대가 하이재야! 거기다 음성 통화를 걸다니, 나까지 죽일 셈이야?!”주경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이재와 톡 친구가 되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평소에는 괜히 방해가 될까 봐 먼저 인사 한마디 보내는 것도 조심했다.그런데 북명시에서 온 성준이 갑자기 이재에게 음성 통화를 걸어 버렸다.‘하이재가 기분이라도 상해서 나를 차단하면 어쩌려고?’‘괜히 나에게까지 화가 미치면 또 어떻게 할 건데?’“핸드폰 돌려줘!”하지만 성준은 주경보다 반 머리쯤 컸다. 팔을 위로 들자 주경의 손이 닿지 않았다.그때 통화가 연결됐다.수화기 너머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세 사람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멎었다.주경이 먼저 정신을 차렸다. 성준이 굳어 있는 틈을 타서 핸드폰을 재빨리 낚아챘다.옆에 있던 우찬도 곧바로 성준을 눌러서 소파에 앉혔다. 한 손으로는 성준의 입까지 단단히 막았다.“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주경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지더니,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기, 그거 좀 가져다줘요.]슬비의 목소리였다.성준의 온몸이 굳어졌다. 곧이어 몸부림이 더 거세졌다.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면서 우찬을 통째로 밀어낼 기세였다.이재는 수화기 너머의 소란을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일이야?]주경은 서둘러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별일은 아니고요. 회장님 언제 시간이 괜찮으신지 여쭤보려고요. 제가 식사라도 한 번 모시려고...”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통화 종료음이 들렸다.통화가 끊어졌다.주경은 핸드폰을 귀에 붙인 채 그대로 굳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이었다.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했다.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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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성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충혈된 눈으로 우찬을 노려봤다.“뭐라고?”그 눈빛에 우찬은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끝까지 말을 이어 갔다.“슬비는 지금 하이재랑 결혼했어. 대신 들어간 결혼이든 억지로 한 결혼이든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네가 계속 찾아가면 너한테도 슬비한테도 좋을 게 없어. 게다가 하이재라는 사람은...”“그만해!”벌떡 일어난 성준이 우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우찬은 비틀거리며 뒤로 밀렸다. 입꼬리가 찢어져서 피가 턱을 타고 떨어졌다.우찬은 한쪽 얼굴을 감싼 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성준을 바라봤다.“나보고 그만하라고? 슬비랑 2년을 만났어. 2년이야. 그런데 지금 나보고 그냥 포기하라고?”“성준아...”성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날이 서 있었다.“슬비는 오랫동안 나만 좋아했어! 그런 마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어?” “억지로 결혼한 게 분명해. 부모님이 강요했을 거야! 내가 제대로 설명만 하면 슬비는 다시 돌아와!”우찬은 입가를 누른 채 눈앞의 성준을 바라봤다. 너무 낯설었다.우찬이 알던 성준은 언제나 냉정하고 자기 통제가 철저했다. 아무리 큰 일이 닥쳐도 중심을 잃지 않았고 차분하게 대처했다.그런데 지금은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이성도 판단력도 전부 다 놓아 버린 모습이었다.“성준아, 좀 진정해...”“진정 못 해!”성준은 몸을 돌려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단단한 원목 벽면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손등이 바로 터져서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어두운 카펫 위에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며 짙은 얼룩을 만들었다.성준의 몸 전체가 떨렸다. 어깨도, 팔도,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까지 흔들렸다.“슬비가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목소리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긁혀 나온 것처럼 잔뜩 갈라져 있었다. 울음을 겨우 억누르는 소리와도 비슷했다.“슬비가 어떻게...”우찬은 그 자리에 선 채 허리를 굽히고 있는 성준을 바라봤다. 성준은 이마를 벽에 기댄 채 어깨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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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같은 시각, 이재의 집.슬비는 현관 신발장에 한 손을 짚고 신발을 갈아 신다가 말을 멈췄다. 그제야 이재가 통화 중인 걸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재는 무표정하게 통화를 끊었다.슬비가 조금 미안한 듯 웃었다. “내가 방해했어요?”“아니. 스팸 전화였어.”슬비는 별생각 없이 몸을 숙이고 현관 바닥에 떨어진 머리끈을 주웠다.어느새 가까이 온 이재가 자연스럽게 슬비의 허리를 감쌌다. 손바닥을 아랫배에 대고 부드럽게 문질렀다.“배 아직 아파?”따뜻한 손바닥의 온기가 얇은 니트 천을 지나 천천히 스며들었다. 묵직하게 부풀어 있던 아랫배가 조금씩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슬비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었다.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챙겨 주는 감각이 너무 낯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낯설었다.“이제 안 아파요.”이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손도 떼지 않았다.한 팔로 슬비를 안은 채 손바닥을 아랫배에 댔다. 엄지로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힘을 주면서 천천히 원을 그렸다.슬비의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졌다.이재는 빨갛게 달아오른 슬비의 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제 자자.”“나... 먼저 씻고 올게요.”슬비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이재가 가느다란 허리를 감아서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슬비의 등이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에 닿았다.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자 가느다란 떨림이 온몸으로 번졌다.“지금도 충분히 향기로워.”슬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슬비는 얼른 몸을 돌리면서 이재의 가슴을 손으로 밀었다. 셔츠 아래의 단단한 근육이 손바닥에 닿자 뜨거운 느낌에 바로 손을 빼고 싶어졌다.“장난치지 마요.”“장난 아닌데. 진짜 향기로워서 그래.”이재가 다시 가까이 오려고 하자, 슬비는 급히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화제를 바꿨다. “저기... 저, 물어볼 게 있어요.”이재는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슬비의 손을 잡고 식탁 쪽으로 데려갔다. 슬비를 앉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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