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회색 실크 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려서 창백할 정도로 하얀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도드라진 손목뼈 옆에는 아주 옅은 점 하나가 박혀 있었다.깊은 눈매와 곧은 콧대, 살짝 다문 얇은 입술까지 선이 또렷했다. 차갑고 귀한 분위기가 몸 전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잡지 화보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것 같은 남자가 이런 평범한 편의점에 서 있는 모습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넋을 놓고 바라보던 알바생은 이재가 계산대 앞까지 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어, 어떤 걸 찾으세요?”이재의 시선이 진열대를 훑다가 알록달록한 포장의 생리대 코너에 멈췄다.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쪽으로 다가간 이재는 한 팩을 집어서 설명을 읽고 다시 내려놓았다.다른 제품도 하나 들었다가 확인한 뒤 제자리에 두었다.속도는 느긋했다. 평범한 생활용품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진지하고 꼼꼼했다.뒤에서 지켜보던 알바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저 남자... 생리대 고르는 거 맞지?’‘세상에... 여자친구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이재는 5분 넘게 포장을 읽었지만 종류별 차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주간용, 오버나이트, 입는 타입 등 눈에 보이는 종류마다 하나씩 카트에 담아서 계산대로 가져갔다.“이걸로 계산해 주세요.”알바생은 서둘러 바코드를 찍으면서도 카트 안을 자꾸 힐끗거렸다.주간용, 오버나이트, 입는 생리대...“총 5만 8천6백 원입니다.”이재는 지갑을 꺼내 검은색 프리미엄 카드를 건넸다.카드를 받아 든 알바생은 디자인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블랙카드... 실물은 처음 보는데...’단말기에 카드를 꽂았던 알바생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데 이 카드가 결제 오류가 나네요.”이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지갑에서 다른 카드를 꺼냈다.이번에도 검은색 카드였다.알바생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떨렸다.“혹시 다른 카드나 현금 있으세요?”이재의 미간이 더 깊게 일그러졌다.지갑을 뒤져 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카드는 전부 비슷한 등급의 카드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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