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101 - Chapter 110

196 Chapters

제101화

슬비는 왠지 두 사람이 수상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이 이상한지는 짚어 내지 못했다.고개를 저으면서 찜찜함을 눌러 둔 슬비가 옆으로 비켜섰다.“유 선생님, 이 선생님. 어서 앉으세요.”곧 네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직원이 들어와 차를 따른 뒤 조용히 물러나면서 문을 닫았다.별실 안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먼저 입을 연 쪽은 슬비였다.“유 선생님, 전에 전화로 말씀드렸던 일 말인데요...”희천이 황급히 찻잔을 내려놓았다.“친밀 불안 장애에 관해서라면, 일단 제가 몇 가지 초기...”슬비가 얼른 말을 끊었다. “선생님, 제... 친구를 봐 주셨으면 해서요.”“...”희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설마 이재 형을 봐 달라는 거야?’‘내가 감히 어떻게?’‘슬비 씨가 말한 ‘친구’가 이재 형인 줄 알았다면 죽어도 안 왔을 텐데...’희천은 저도 모르게 이재를 바라보았다.이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청자 찻잔을 손끝으로 굴리고 있었다. 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다만 이따금 스치는 시선에는 서늘한 냉기가 배어 있었다.희천은 입을 열려고 하다가 얼른 도로 다물었다.희천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슬비는 희천과 이재의 관계를 몰랐다. 반년 전, 이재가 슬비의 귀를 치료하게 하려고 희천을 북명시로 보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슬비는 그저 희천에게 이재의 상태를 봐 달라고 부탁하려는 것뿐이었다.논리상 이상할 건 없었다.문제는... 이재의 상태를 희천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었다.“일단... 식사부터 하실까요? 먹으면서 이야기하시죠.”“그래요.” 슬비도 바로 화답했다.직원들이 곧 음식을 내왔다.이곳의 대표 메뉴들로 꾸린 코스였다. 깔끔한 플레이팅에 향과 맛까지 빠지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하지만 식탁을 감도는 분위기는 어딘가 미묘했다.이재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슬비의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는 한편, 희천과 채솔에게 가벼운 이야기를 건넸다.식사가 끝나
Read more

제102화

슬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무슨 말씀이세요?”“하 회장님의 정신적 압박감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어요.”채솔의 목소리가 한층 심각해졌다. “이 상태를 개입하지 않고 계속 방치하면 조현병 증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조현병 증상?’그 말은 얼음물처럼 슬비의 머리 위로 쏟아지면서 온몸을 싸늘하게 만들었다.“확실하세요?” 목소리가 팽팽하게 굳었다.채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10년 동안 일하며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봤어요. 하 회장님의 상태는 그런 환자들보다 훨씬 복잡해요.” “자제력이 너무 강해서 모든 증상을 의식 깊숙한 곳까지 억눌러 버릴 수 있을 정도예요.”“하지만 그런 억압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계속 눌러 둔 용수철과 같아요.”“언젠가는 튕겨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단순한 두근거림이나 불면증만으로 끝나지 않아요.”슬비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채솔이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제 연락처예요. 하 회장님을 설득하실 수 있다면 최면 치료를 받아 보시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슬비는 명함을 받아 내려다보았다.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어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간결했다.“하 회장님이 저를 믿지 않으면 저도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채솔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신뢰를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슬비 씨의 도움도 필요해요.”슬비는 명함을 잘 넣어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별말씀을요.”채솔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상태가 위험한 건 맞지만, 제때 치료에 들어가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어요.”채솔은 말을 멈췄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단, 하 회장님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셔야 해요.”...같은 시각, 별실에서는 이재가 창가에 기댄 채 서 있었다. 마디가 뚜렷한 손가락 사이에는 거의 다 타 버린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제법인데. 내 아내를
Read more

제103화

희천은 무척 놀랬다.‘약을 먹지 않았다고?’‘이재 형이 약을 끊었다니.’‘이게 얼마나 큰 일인데?’2년 전 그 사건이 벌어진 뒤로 이재는 하루도 약을 거르지 않았다.감정이 조금이라도 요동치면 반드시 약으로 억눌러야 했다.희천은 사설 라운지에 잠입한 ‘스파이’가 슬비를 해칠 뻔한 데다가 하빈까지 찾아와 도발했으니, 이재가 틀림없이 약으로 감정을 눌렀을 거라고 여겼다.‘그런데 이재 형이 요즘 약을 먹지 않았다고?’‘형수님 때문인가?’그렇다 해도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가 오래 이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형, 앞으로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꼭 바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이재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돌아서서 별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문 앞에 이르자, 비로소 느슨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알았어. 잔소리 좀 그만해.”희천은 살짝 웃었다. 한참 뒤에야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슬비와 채솔이 정자에서 돌아왔을 때, 멀리 별실 문가에 기댄 이재의 모습이 보였다.복도 천장의 조명이 조각처럼 날렵한 옆얼굴을 그려 냈다. 얇은 입술은 살짝 다물고 있었고 눈매는 서늘했다. 누구도 가까이하지 못할 냉랭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발소리를 들었는지 이재가 무심코 눈을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자 이재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미간에 서려 있던 냉기가 말끔히 걷혔다.슬비의 발걸음이 멎으면서 심장 박동도 빨라지는 듯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조용히 싹트는 기분이었다....그날 밤.북명시에 있는 새별엔터 대표실은 늦은 시각까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성준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사무실 안은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로 매캐한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문을 열고 들어온 우찬은 담배 연기에 흠칫 물러났다가 애써 안으로 들어섰다.들고 온 서류를 책상에 올려놓고 성준을 바라보자, 우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성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눈 밑
Read more

제104화

“우찬아, 호강시행 비행기표 3장 끊어. 지금 당장!”“3장?” 우찬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너랑 나, 시연이까지.”우찬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성준이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슬비와 다시 시작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그런데 시연이를 왜 데려가?’하지만 성준의 충혈된 눈을 본 우찬은 입술을 한번 축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준아, 정말 시연이까지 데려갈 거야?”“왜?”우찬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았다. “슬비랑 네가 완전히 틀어진 것도 시연이 때문이잖아. 슬비가...”“그래서 시연이를 데려가는 거야.”성준이 말을 잘랐다. “슬비가 아직 시연이한테 화가 나 있을 테니까 직접 사과하게 하면 끝날 일이야. 어차피 나중에는 한 가족이 될 사이인데 계속 이렇게 틀어져 있을 수는 없잖아.”‘한 가족...’그 말을 듣자, 우찬의 가슴속에는 형언하기 힘든 황당한 느낌이 차올랐다.시연은 슬비의 청력을 잃게 만들었고 몇 번이나 슬비를 모욕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됐고, 서둘러 표나 예약해.”우찬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알았어. 바로 할게.”우찬이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성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벨벳 케이스 두 개를 꺼냈다.하나는 오늘 보석 매장에서 찾아온 것으로, 성준이 직접 고른 다이아몬드 반지가 들어 있었다.다른 하나는 조금 더 작았다. 그날 병원에서 가져온 케이스였다.성준은 반지를 꺼내 안쪽에 새겨진 글자를 손끝으로 문질렀다.‘예전에는 슬비가 나에게 잘해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는데...’‘슬비가 나를 좋아하니까, 무슨 일이든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슬비의 희생과 양보도, 언제나 내 등 뒤에 서 있어서 돌아보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모습도 당연해져 버렸지.’‘슬비도 지치고 실망하고, 언젠가는... 나를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성준은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깊이 패였지만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예전에는 내가
Read more

제105화

성준은 슬비의 얼굴 옆으로 팔을 뻗어 벽을 짚으면서, 슬비를 자신과 벽 사이에 가두었다.“놔!” 슬비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못 놔!”슬비는 고개를 들어 성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우린 이미 끝났어.”“난 동의한 적 없어.”“헤어지는 데 네 동의는 필요 없어.”성준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슬비야, 이제 그만 화내고 나랑 돌아가자.”슬비는 성준을 바라보다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이 남자는 지금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성준에게 슬비의 행동은 그저 심술을 부리고 투정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달래기만 하면 얌전히 돌아가서 예전처럼 성준만 바라보는 슬비가 될 거라고 믿었다.“강성준, 나 화내는 거 아니야.”슬비는 한 글자씩 힘주어 말했다. “아주 진지하게 말할게. 우리는 끝났어! 다시는 나 찾아와서 괴롭히지 마...”성준의 표정이 거듭 일그러졌다. 슬비의 손목을 쥐는 힘도 저절로 강해졌다.“시연이 때문이야?” 성준이 미간을 깊이 구기며 물었다.“말했잖아. 시연이랑 나는 남매 같은 사이일 뿐이야. 걔가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런 거고, 내가 따끔하게 혼냈어. 다시는 안 그럴 거야.”‘남매 같은 사이?’슬비는 그 말을 듣자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치밀었다.슬비는 차갑게 웃으면서 힘껏 손을 빼냈다. 더는 성준을 보지 않고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슬비야...”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보였다. 정체가 드러날까 걱정된 슬비는 곧장 돌아서서 성준을 노려보았다. “더는 매달리지 마. 나 결혼했어!”‘결혼?’성준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터무니없게만 들렸다.“뭐...라고?”‘무슨 결혼?’‘누구랑 결혼했다는 거야?’‘지난 2년 동안 슬비의 세상은 거의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어.’‘청력을 잃은 뒤로는 다른 사람들과 연락까지 거의 끊었잖아.’‘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나만 좋아했는데, 대체 누구와 결혼했다는 거야?’‘말도 안 돼.’“나
Read more

제106화

같은 시각, HM그룹 회장실.무거운 표정의 도우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도우가 들어오자, 고개를 숙여 서류를 검토하던 이재가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회장님, 방금 아래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강성준이 오늘 아침 호강시에 도착했는데, 스타엔터 지하주차장에서 사모님 차량을 막아 세우고 몇 마디를 나눴다고 합니다.”“사모님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신 뒤에도, 계속 그곳에서 기다리며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이재가 쥔 펜이 곧바로 멈췄다.“아직도 거기 있어?”“네, 아직 있습니다.”회장실 안은 순간 고요해졌다.이재는 눈을 내리깔았다. 만년필이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회장님, 제가 처리할까요?” 도우는 뒤처리를 뜻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이재는 눈길을 들어 도우를 바라보았다.무심한 듯한 눈빛에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도우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다물었다.“일단 놔둬.” 이재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직접 처리할게.”도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쪽으로 물러섰다.이재는 서랍을 열고 까만 작은 약병을 꺼내서 손안에서 굴렸다.잠시 약병을 바라보다 다시 서랍 안으로 밀어 넣었다....성준은 지하 주차장에서 꼬박 반나절을 기다렸다.차 옆에 기댄 성준의 발치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흩어져 있었다. 구겨진 셔츠는 단추가 두 개나 풀려 있었고 소매는 팔뚝까지 아무렇게나 걷혀 있었다. 평소 빈틈없던 강씨 집안의 장남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성준아, 벌써 7시가 다 돼 가. 슬비는 진작 갔을지도 몰라...”“그럴 리 없어.”성준이 쉰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슬비 차가 아직 그대로 있잖아.”우찬은 한숨을 내쉬고 더 말하지 않았다.그때 주차장 반대편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성준은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나온 사람은 슬비가 아니었다.퇴근하는 직원 몇 명이 웃으면서 주차 구역으로 걸어왔다. 성준 곁을 지나면서 힐끔거린 뒤
Read more

제107화

‘강성준...’이재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성준은 자신감이 넘쳐흐르던 남자였다.하지만 지금은 영락없이 버림받은 개 꼴이었다.‘누구 보라고 저런 가련한 꼴로 저러고 있는 거지?’‘슬비가 마음이 약해질까?’‘강성준한테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어쩌지?’‘예전에 그렇게 강성준을 좋아했으니까...’이재의 새까만 눈동자에 섬뜩한 냉기와 병적인 소유욕이 번뜩였다.‘슬비가 후회한다고 하면?’‘가둬 버릴까?’‘슬비를 덮쳐 버릴까...’‘울 때까지 몰아붙일까...’‘울면서 빌게 만들까? 나만 좋아하고 평생 떠나지 않겠다고...’이재는 눈을 감고 거칠게 솟구치는 감정을 억지로 억눌렀다.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불길한 상상이 좀처럼 멎지 않았다.‘강성준이 달래서 마음이 약해지면, 슬비는 틀림없이 떠날 거야.’‘예전에 그만큼 강성준을 좋아했으니까.’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마치 가슴에 가느다란 바늘을 한 움큼 뿌려 놓은 듯했다. 작은 벌레 떼가 속을 갉아먹는 것처럼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이재의 손가락이 서서히 오므라들면서 손등 위로 푸른 힘줄이 솟았다. 머리도 은근히 아파 오더니 관자놀이의 핏줄이 쿡쿡 뛰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는 것 같았다.손이 저절로 코트 안주머니를 향했다. 이재의 손끝에 차가운 약병이 닿았다.“무슨 일이에요?”곁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재가 고개를 돌렸다.슬비는 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재의 꽉 쥔 주먹에 시선을 둔 채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에는 걱정의 기색이 선명했다.“또 불편하세요?”이재는 대답하지 않고 슬비만 바라보았다.차 안은 어두웠다. 이따금 창밖을 스치는 가로등 불빛만 한 줄기씩 비쳐 들었다.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슬비의 흰 피부에는 부드러운 윤기가 흘렀다. 긴 속눈썹은 눈 밑에 작은 부채꼴 그림자를 만들었고, 갓 익은 과일처럼 촉촉하고 도톰한 복숭아빛 입술은 살짝 다물고 있었다.이재의 시선이 입술에 머무르더니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이재 씨?
Read more

제108화

“차 안에서는 안 돼?”‘그런 질문을 태연하게 던지다니...’슬비는 귓불이 뜨거워지면서, 저도 모르게 이재의 입을 손으로 가렸다.이재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이재는 눈길을 내리깔면서 자신의 입술을 덮고 있는 슬비의 손을 바라보았다. 희고 보드라운 손바닥, 붉은 기가 살짝 밴 손끝은 작은 5장의 꽃잎을 닮았다.남자의 부드러운 입술과 따뜻한 숨결이 손바닥에 닿고 나서야, 슬비는 자신의 행동이 지나치게 아슬아슬했다는 걸 깨달았다. 황급히 손을 거두려고 했다.그러나 움직이기도 전에, 이재가 손을 붙잡고 슬비의 손바닥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따스한 감촉이 손바닥에서 번져 나갔다. 가느다란 전류처럼 혈관을 타고 심장까지 단숨에 치달았다.슬비는 흠칫 덴 것처럼 손가락을 오므리면서 빼려고 했다. 하지만 이재의 굵은 손가락이 가는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면서 깍지를 끼더니, 맞잡은 손을 좌석에 눌렀다.딸깍-슬비가 고개를 들자,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의 가림막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앞좌석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면서, 뒷좌석은 사방이 막힌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슬비의 얼굴은 더이상 붉어질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도우 씨가...’‘역시 전부 들었구나.’입꼬리를 살짝 올린 이재가 고개를 숙이면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코끝으로 슬비의 코끝을 스치자 서로의 숨결이 섞였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제는 괜찮아?”슬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이재를 보지도 못했다. 귓가가 뜨겁게 타오르면서,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듯 빠르게 뛰었다.슬비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재가 몸을 숙이면서 입술을 덮었다.깜짝 놀란 슬비의 등이 바짝 긴장했다. 온몸의 모공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슬비의 긴장을 알아챈 듯 이재의 움직임이 느려졌다.조심스럽게 달래듯 입술을 파고들면서 조금씩 깊이를 더했다.슬비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손은 저도 모르게 이재의 셔츠를 꽉 움켜쥐었다.이재의 손이 허리에서 가느다란 등줄기를 쓸며 올라가 슬비의 뒷머리를 감쌌다.
Read more

제109화

“왜 이렇게 착해?”‘키스하고 싶다고 하니 이렇게 얌전히 받아 주고.’‘너무 착해서 하마터면 자제력을 잃을 뻔했어.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날 정도로.’“네?”슬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들어 이재를 보았다.이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화제를 돌렸다.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밖에서 먹자.”“당신이... 정하세요.”“그래.” 이재의 미소가 짙어지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슬비의 입꼬리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정말... 너무 착해.’‘평생 내 곁에 가둬 두고 싶을 만큼...’...이후 며칠 동안 슬비는 성준을 다시 보지 못했다.‘마음을 정리한 모양이네. 기다려도 내가 나오지 않으니 북명시로 돌아갔겠지.’슬비는 마음을 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예전에는 그 남자 없이 평생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막상 떠나고 보니 하늘도 무너지지 않았고 땅도 꺼지지 않았다. 해는 똑같이 떠올랐고 하루는 변함없이 흘러갔다.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나았다.금요일 퇴근을 앞두고 슬비는 자리에서 다음 주 일정표를 정리하고 있었다.도혁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문가에 기댔다. 손에는 차 키를 빙빙 돌리고 있었고 표정은 느긋했다. 입꼬리에는 속내를 감춘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매니저님, 내일 뵙겠습니다.”슬비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내일 보자고?’‘내일은 토요일인데?’‘출근도 안 하는데...’슬비가 까닭을 묻기도 전에 도혁은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사라졌다.슬비는 잠시 굳어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맞다.’며칠 전 이재가 이번 주 토요일에는 권씨 집안의 본가에서 모임이 있다고 말했었다.‘권도혁이 말한 게 혹시 그 모임인가?’...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슬비는 드레스 룸에서 입을 옷을 골랐다.드레스 룸은 널찍했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휑했지만, 이제는 그 계절의 신상품으로 가득했다.대부분 이재가 사람을 시켜서 보낸 옷들이었다. 평상복부터 격식을 차린 자리의
Read more

제110화

이재의 시선이 눈앞의 촉촉하고 붉은 입술에 꽂혔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슬비가 얼른 손을 들어 이재의 어깨를 막았다. “안 돼요...”방금 립스틱을 발랐는데, 또 이재 때문에 번질 게 분명했다.이재는 어두운 눈으로 슬비를 내려다보았다. “걱정 마. 화장 안 번지게 한 번만 할게.”“안 돼요. 당신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슬비의 뒷목이 붙잡혔다. 이재의 얼굴이 다시 가까워지면서, 진득한 숨결이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입 벌려.”이재가 깊게 입을 맞췄다. 슬비는 밀어내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풀려서 제대로 버틸 수도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이재가 슬비를 놓아주었다. 그래도 팔은 여전히 가느다란 허리를 감고 있었다. “오늘 정말 예뻐. 꼭 요정 같아...”슬비는 키스에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칭찬까지 듣자 심장의 고동 소리가 곧바로 흐트러졌다.이재는 슬비의 뒷목을 감싸 쥐고 입꼬리에 다시 입을 맞췄다. 목소리는 아주 낮게 갈라져 있었다.“저녁에 돌아오면 바로 갈아입지 마. 내가 벗겨 줄게...”슬비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서 이재를 흘겨보았다. 몸을 일으켜 이재의 무릎에서 벗어나다가 거울에 비친, 키스 때문에 엉망이 된 입술을 힐끗 보았다.“당신... 정말...!”십여 분이 흐른 뒤에야 슬비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이재는 눈을 들었다. 슬비가 아직도 화난 얼굴로 노려보자, 새로 고친 입술 화장에 시선을 잠시 멈추고는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가자.”이재를 한번 흘겨본 슬비가 가방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이재는 천천히 슬비의 뒤를 따랐다. 입가의 웃음은 아무리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권씨 집안의 본가는 태평산 중턱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전체가 권씨 일가의 사유지였다.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양옆에는 하늘을 가릴 만큼 오래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면서, 차 안에 얼룩진 빛과 그림자를 드리웠다.슬비는 차창에 바싹 붙어서 바깥을 내
Read more
PREV
1
...
910111213
...
2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