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141 - Chapter 150

198 Chapters

제141화

[음... 저도 모르겠어요... 여기 간판이 하나 있는데... 뭐라고 써 있냐면...]슬비는 글자를 알아보려 애를 쓰는 듯이 말을 끊었다. 한참 뒤에야 한 글자씩 천천히 읽었다.[왕... 가... 네... 식당.]왕가네 식당.이재의 미간이 더 깊게 일그러졌다.“술 마셨어?”[네에...]끝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괜히 찔리는 사람처럼 슬비가 웅얼거렸다. [조금... 조금만 마셨어요.]“거기 있어. 움직이지 말고.”[네에...]이재는 곧바로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 위의 차 키를 집어 들며 사람들을 한번 훑었다.“회의 끝.”짧고 단호한 지시였다.이재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검은 정장 바지에 감싸인 긴 다리가 성큼성큼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일면서 테이블 위 서류가 넘어갔다.회의실은 한참 동안이나 더 조용했다. 그제야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 이게 무슨 일이죠?”“모르죠. 급한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회장님이 회의 중에 전화를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까? 오늘이 처음인 것 같은데요.”“그러게요. 방금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부회장은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오늘은 살았다.’...이재의 차는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검은색 마이바흐가 차량 사이를 거침없이 빠져나갔다. 낮게 울리는 엔진음마저 사납게 들렸다.운전대를 쥔 손은 흔들림이 없었지만,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턱선도 팽팽하게 굳어 있었고 얇은 입술은 일자로 꼭 다물고 있었다.[왕가네 식당.]이재가 내비게이션에 상호를 입력하자, 같은 이름의 식당이 7, 8곳이나 검색됐다.하나씩 위치를 확인한 끝에 원씨 저택에서 멀지 않은 식당을 골랐다.슬비의 성격상 술을 마시겠다고 일부러 먼 곳까지 갈 리 없었다. 이동 경로 근처에 있는 곳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이재가 액셀을 더 깊게 밟았다....왕가네 식당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가게였다. 외관도 오래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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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셨냐고요?”슬비는 이재의 품에 기댄 채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눈에는 봄날 물빛 같은 촉촉함이 가득했다.목소리까지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늘어졌다. 한마디 한마디가 술기운에 길게 끌려서 마치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냥... 마시고 싶어서 마셨어요.”이재의 미간이 깊게 일그러졌다. 테이블에 절반 넘게 남아 있는 술병을 내려다봤다. 라벨에는 알코올 도수 65도라고 적혀 있었다.이재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미쳤어? 이런 걸 이렇게 많이 마셔?”슬비는 꾸중을 듣자 목을 움츠렸다. 눈가가 금세 붉어지면서 눈물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왜 저한테 화내요...”이재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눌렀다. 곧바로 허리를 숙이고 슬비를 번쩍 안아 올렸다.슬비는 반사적으로 이재의 목을 감싸 안으면서 붉어진 얼굴을 목덜미에 파묻었다. 뜨거운 숨결이 쇄골 위를 스칠 때마다 간질간질한 자극이 번졌다.이재의 몸이 흠칫하며 굳어졌다. 발걸음도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품 안의 슬비를 내려다본 뒤 곧바로 큰 걸음으로 식당 밖을 향했다....검은색 마이바흐는 운서원으로 가는 길을 부드럽게 달리고 있었다.슬비는 조수석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머리를 창문에 붙인 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입으로는 알아듣기 힘든 말을 계속 웅얼거렸다.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이재는 다른 손을 뻗어서 슬비의 뺨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손끝에 닿은 피부가 뜨겁게 느껴지자 이재 미간의 골은 다시 깊어졌다.“여보.”“응...?” 슬비는 몽롱하게 대답했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속 안 좋아?”슬비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차창에 두어 번 스치더니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조금 어지러워요...”이재는 말없이 에어컨 온도만 조금 더 낮췄다. 그리고 자신의 재킷을 벗어서 슬비에게 덮어주었다.재킷에 배어 있는 이재 특유의 맑은 시더 향과 옅은 담배 냄새가 슬비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슬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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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슬비는 모로 누워 있었다. 뺨은 술기운으로 붉게 물들었고,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로 작은 부채꼴 그림자가 졌다.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얕은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부드럽게 오르내렸다.흰 니트에는 눌린 자국이 몇 군데 보였고 목선도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드러난 쇄골 아래로도 희미한 곡선이 이어졌다.이재의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목젖이 한 번 움직인 뒤 이재는 몸을 돌려 물을 가지러 갔다.하지만 두 걸음도 채 옮기기 전에,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곧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이재가 뒤를 돌아봤다.언제 소파에서 굴러떨어졌는지 슬비는 카펫 위에 엎드린 채 얼굴까지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보기 안쓰러우면서도 우스운 자세였다.이재는 슬비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 일으켰다.끌어 올려진 슬비는 힘없이 이재에게 기대었다. 얼굴을 가슴에 묻고 셔츠를 손가락으로 움켜쥔 채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이재가 고개를 숙였다.“뭐라고?”슬비가 고개를 들었다. 촉촉한 눈으로 이재를 바라보며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우욱...”이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우야, 사람 불러서 거실 좀 치워. 카펫이랑 옷은 그냥 버리고...”전화를 끊은 이재는 창가에 선 채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검은 눈에는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조금 전 욕실에서 간단히 씻었는데도 왠지 몸에 묘한 냄새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정작 사고를 친 장본인은 침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물안개가 낀 듯한 눈으로 이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이재는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조명 아래로 단단한 상체가 그대로 드러났다.넓은 어깨와 선명한 쇄골, 탄탄하게 잡힌 가슴과 복근이 뚜렷했다. 허리 아래로 이어지는 복근 라인은 검은 정장 바지 안쪽으로 사라졌다.희고 서늘한 피부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서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숨을 쉴 때마다 단단한 근육이 조금씩 움직였다. 힘이 응축된 체격에서는 짙은 남성적인 분위기가 흘러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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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슬비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이재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가까이 몸을 숙였다. “뭐라고?”하지만 슬비는 더 말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처럼 몽롱한 모습이었다.이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고 더 묻지 않았다.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침대로 옮기려던 이재의 팔에 부드러운 감촉이 달라붙었다.고개를 내리자 자고 있어야 할 슬비가 두 팔로 이재의 팔을 끌어안고 흔들고 있었다. 검은 포도알 같은 눈은 졸음에 젖어서 천천히 깜빡였다.“이제 화내지 마요. 네?”슬비가 애처롭게 올려다보자 이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가슴 안쪽을 깃털이 살짝 스치는 듯 간질거림이 깊숙이 퍼졌다.이재는 무의식적으로 소파에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그 묘한 간지러움을 털어 내기라도 하듯.술 취한 여자한테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깨닫자, 이재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슬비의 말이 점점 많아졌다. “이재 씨.”“응.”“너무 힘들어요...”코맹맹이 섞인 가느다란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묻어났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요?”이재는 대답하지 않고 슬비만 바라봤다.소파에 웅크린 슬비는 몸을 작게 말고 있었다. 뺨도 붉고 코끝도 붉었다. 눈에는 떨어질 듯 말 듯한 눈물까지 차 있었다.“이재 씨... 내 인생... 20년 동안... 나한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은 이재 씨밖에 없어요.”속눈썹을 내리깐 채 슬비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이렇게 잘해 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나...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이재 씨를 속였어요.”이재의 눈빛이 조용히 어두워졌다.“뭘 속였는데?”슬비가 고개를 들어 눈물 가득한 얼굴로 이재를 바라봤다. 불쌍할 정도로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인 끝에 겨우 말했다. “사실... 나 원지민 아니에요... 원지민은 우리 언니예요...”고백을 마친 슬비는 예상했던 분노도 추궁도 들리지 않자 조심스럽게 눈을 들었다. 이재는 한 번도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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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이재는 고개를 숙이고 슬비를 바라봤다. 작은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고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다. 코끝도 붉었고 술기운이 오른 입술은 촉촉하게 빛났다.이재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좁아졌다. 목소리도 한층 낮아지며 서늘한 기운이 섞였다. “그런 얘기 누가 했어?”슬비는 목을 움츠렸다. 하빈이라고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고개만 저은 슬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그냥 말해 줘요. 정말 나한테 그럴 거예요?”이재는 슬비를 잠시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안 그래.”슬비는 멍하니 이재를 바라봤다. 속눈썹 끝에는 아직 떨어지지 않은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이재는 무심코 엄지를 뻗어 슬비의 눈가를 가볍게 쓸었다. 떨어지려던 눈물을 닦아 내자, 손끝에 닿은 피부는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웠다.“왜 이렇게 잘 울어?”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다는 기색과 함께 이재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그냥 울보라고 불러야겠네.”놀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이상하게도 부드러웠다. 가까운 거리에서 이재의 뜨거운 숨결이 슬비의 얼굴에 희미하게 닿았다.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선명한 이재의 얼굴이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이재조차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열기가 섞여 있었다.슬비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이재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차가우면서도 뜨거운 감각이 입술에서 퍼져 나가면서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다.이재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슬비가 천천히 물러나려고 하자, 이재는 곧바로 몸을 기울여 따라붙었다.한 손으로 슬비의 뒤통수를 감싸고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더는 입맞춤을 억누르지 않았다.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술의 향이 번졌다.독한 알코올 냄새만 남은 향이 아니었다. 슬비에게서 나는 달고 따뜻한 체취와 섞여서, 꿀을 탄 독주처럼 부드럽게 스며들면서도 뒤에는 강한 열기를 남겼다.“슬비...” 이재의 목소리는 깊게 잠겨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목 안쪽에서 눌려 나온 듯했다.슬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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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슬비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재는 엄지로 눈가를 쓸면서, 남아 있던 눈물 자국을 조금씩 닦아 냈다.슬비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미간을 잠깐 찌푸렸다가 이내 다시 편안해졌다.이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슬비를 가볍게 들고 품에 안았다.슬비가 낮게 웅얼거리며 그의 가슴에 뺨을 비볐다. 편한 자리를 찾은 듯 자세를 고쳐 잡더니 다시 깊이 잠들었다.이재는 슬비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 뒤 욕실로 향했다.샤워기 아래에 선 이재는 두 손으로 타일 벽을 짚고 차가운 벽면에 이마를 기댔다. 차가운 물줄기가 피부 위로 쏟아졌지만, 욕실엔 김도 피어오르지 않았다.척추선을 따라 흘러내린 물방울이 단단한 허리와 복부를 지나 잠옷 바지 허리선 아래로 사라졌다.호흡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조금 전 슬비가 고개를 들고 먼저 입을 맞춰 오던 모습만 맴돌았다. 자신을 의지하고 믿는 그 눈빛은 어떤 직접적인 욕망보다 더 깊이 심장을 건드렸다.그만큼 이성을 무너뜨리기에도 충분했다.이재는 눈을 감았다. 목젖이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차가운 물이 얼굴을 적시면서 턱선을 따라 떨어졌다. 물인지 진땀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이재는 욕실에 꽤 오래 머물렀다.몸 안의 열기가 간신히 잦아든 뒤에야 비로소 샤워기를 잠갔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잠옷 바지만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슬비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재는 시선을 거두고 베란다로 나갔다.서늘한 밤바람이 정면으로 스쳐 지나가며 피부에 남은 물기를 식혔다.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금속 라이터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다 딸깍 소리와 함께 불을 붙였다.연기를 깊게 들이마시자, 니코틴의 매캐한 맛과 박하 향의 서늘함이 폐 안에 퍼졌다. 몸 안에 남은 뜨거운 기운도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담배 연기가 가늘게 오르다 밤바람에 흩어지며, 잘생긴 옆모습을 흐릿하게 가렸다.이재는 베란다 난간에 기대 한쪽 다리를 느슨하게 굽혔다. 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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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매트리스가 살짝 가라앉았다.슬비는 인기척이라도 느낀 듯 몸을 돌리더니 곧장 이재의 품속으로 굴러 들어왔다. 얼굴을 남자의 가슴에 붙이고 팔로 허리를 감은 채 다리까지 올렸다.말 그대로 온몸으로 이재를 꽉 붙잡은 꼴이었다.이재의 몸이 순간 굳어졌지만 곧 천천히 힘을 주면서 풀었다.슬비의 허리를 감싸안고 품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턱은 정수리에 가볍게 댄 채 눈을 감았다.창밖의 달빛이 잔잔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약간 덜 닫힌 창틈으로 들어온 밤바람이 얇은 커튼을 흔들었다. 침대 밑 바닥에 서로를 안고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이상할 만큼 평온한 풍경이었다....“사모님, 일어나셨어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회장님이 숙취에 드시라고 미리 준비해 두신 차예요.”슬비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가사도우미가 따뜻한 숙취차 한 잔을 내왔다.“고마워요.” 슬비는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속이 계속 울렁거리던 게 조금 가라앉고 난 뒤에야 물었다. “회장님은요?”“외출하셨어요.”슬비는 고개를 끄덕인 뒤 가사도우미에게 쉬어도 된다는 뜻으로 손짓했다.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머릿속의 묵직한 통증과 어지럼증을 달랬다. 어제 이재를 속이려고 독한 술을 반 병 가까이나 마신 탓에 아직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세세한 기억은 대부분 흐릿했다.분명하게 떠오르는 건 이재의 입맞춤이 지나치게 거칠었다는 것뿐이었다.애초에 슬비는 이재와 정말 무슨 일을 벌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이재가 그쪽으로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적당히 마음을 흔들어서 경계심을 풀게 하고 관심을 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칫 자신이 만든 함정에 자신이 빠질 뻔했다.어제 이재의 손길이 떠오르자 슬비의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하이재, 어제 대체 왜 그런 거야?’‘키스 한 번에 사람을 잡아먹을 듯 굴잖아.’엉망이었던 어젯밤을 떠올리니 두통이 더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자신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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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하빈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방은 상당히 넓었다. 짙은 벨벳 커튼과 크리스털 샹들리에, 화려한 조각 장식 가구로 꾸민 고전 유럽풍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페르시안 러그가 깔려 발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금빛 기둥에 짙은 적색의 벨벳 캐노피가 겹겹이 늘어져 있어서 침대 안쪽은 희미하게만 보였다.침대 주변에는 온갖 도구가 갖춰져 있었다.채찍, 수갑, 밧줄, 깃털, 양초...모두 침대 옆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하빈은 도구들을 훑어본 뒤, 입꼬리를 올리면서 침대 위의 여자를 바라봤다.정확히는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묶여 있는 상태였다.여자는 스무 살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희고 창백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긴 검은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흐트러져 있어서 안색이 더 하얗게 보였다.손목과 발목에는 질긴 가죽끈이 묶인 채 침대 기둥에 고정돼 있었다. 옷도 심하게 흐트러진 상태라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인기척을 들은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입술도 가늘게 떨렸다. 막다른 곳에 몰린 짐승처럼 도망치려 해도 달아날 곳이 없는 사람의 표정이었다.“읍... 읍읍...”입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어서 제대로 된 말 대신 막힌 신음만 새어 나왔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하빈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더 깊게 끌어올렸다.침대 곁에 다가선 하빈은 내려다보듯 여자를 훑었다. 얼굴에서 목, 쇄골 쪽으로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마치 값비싼 수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같았다.실은 하빈에게는 수집품보다도 이쪽이 더 자극적이었다.물건은 겁을 먹지도, 떨지도,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달랐다.여자가 보이는 공포와 반응 하나하나가 하빈에게는 비정상적인 만족감을 줬다.“겁먹지 마.”하빈은 말 안 듣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잘 들으면 목숨 정도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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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이 미친 새끼, 감히 사람을 채찍으로 때려? 죽고 싶어?”여자는 입을 열자마자 거친 욕을 쏟아 냈다. 하빈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다.하빈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매듭은 더 조여들 뿐이었다. 가죽끈이 손목 살을 파고들자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너 대체 누구야!”여자는 대꾸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서 하빈을 내려다봤다.표정은 무감정했고 눈빛은 차가웠다. 조금 전 공포에 질려 떨던 사람과 같은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하빈은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스울 만큼 처참한 꼴이었다.셔츠는 풀어 헤쳐서 가슴이 드러났고 이마 위로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얼굴에는 억누르지 못한 광기가 일렁였다.“아무도 없어? 당장 들어와!”하빈이 문밖을 향해 고함쳤다.곧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빈의 눈이 번뜩이면서 몸부림도 더 거세졌다.“빨리 와! 이 년부터 잡아서...”말이 끝나기 전에 문이 밖에서 열렸다.키 큰 남자가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왔다.짙은 회색의 실크 셔츠에 소매는 팔뚝까지 걷어 올렸다. 창백한 손목뼈 근처에는 아주 옅은 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날카롭게 빚은 듯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매, 높은 콧대, 굳게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고급스럽고 차가운 분위기가 짙었다.문가에 기댄 이재는 한쪽 다리를 느슨하게 세운 채, 바닥에 무릎을 꿇은 하빈을 웃는 듯 아닌 듯이 바라봤다.“형, 내가 보낸 선물 마음에 들어?”하빈의 동공이 순식간에 작아졌다.“하이재?!”이재는 그대로 문가에 기대고 있었다. 하빈을 위아래로 한 번 훑은 뒤 방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인테리어에 돈은 꽤 썼네. 취향이 영 별로라 그렇지. 색도 과하고 촌스러워.”하빈의 표정이 거칠게 굳어졌다. 입술이 떨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이재는 몸을 일으키며 느긋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여자는 바로 옆으로 물러나더니 구석에서 의자를 하나 끌어다 방 중앙에 놓았다. 소매로 앉는 자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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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이재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깎아 둔 사과를 그대로 하빈의 벌어진 입 안에 밀어 넣었다.하빈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통증 탓에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입을 막은 사과 때문에 비명은 목구멍 안에서 뭉개졌다.짙은 피가 두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면서 바닥과 침구를 적셨다.이재가 몸을 숙이면서 하빈의 귀 가까이 입을 댔다.“형, 내가 어떤 상황에서 발작하는지 그렇게 알아내려고 했지?”목소리는 정말 조용했다. 차갑게 벼린 칼날처럼 한 글자씩 귀를 파고들었다.“축하해. 제대로 건드렸네.”말을 끝낸 이재가 손잡이를 잡고 단검을 빼냈다.상처에서 피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하빈의 몸이 경직되더니, 고개가 옆으로 꺾이면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이재는 단검을 바닥에 던지고 오진서를 바라봤다. “이제 신고해.”진서는 침대 위에 한쪽 발을 올린 채, 채찍에 맞아 피가 배어 나온 다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앳되고 순한 얼굴과 달리 태도는 거칠기 짝이 없어서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네.”진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숙여 하빈의 주머니를 뒤져서 금방 핸드폰을 찾아냈다.신고 전화를 걸려던 진서는 곁눈질로 이재의 붉게 충혈된 눈을 발견했다.“회장님, 상태가...” 진서가 말을 고르며 드물게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굉장히 돌려 말한 표현이었다.단순히 ‘안 좋아 보이는’ 수준이 아니었다.이재는 증상이 심해지면 피를 보고서야 겨우 흥분이 조금 가라앉는 경우가 있었다.예전에는 약으로 어느 정도 눌렀지만, 오늘은 이미 약이 제대로 듣지 않는 상태였다.희천은 여러 번 설명했다. 이재가 발작하면 아드레날린과 각종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몸 전체가 과부하 상태로 된다고.그 상태로 끝까지 버티면 몸이 먼저 망가지거나 다른 사람을 크게 다치게 만든다.사실상 둘 중 하나에 가까웠다.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하빈을 발끝으로 건드렸다. 숨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이재를 향해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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