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방은 상당히 넓었다. 짙은 벨벳 커튼과 크리스털 샹들리에, 화려한 조각 장식 가구로 꾸민 고전 유럽풍 공간이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페르시안 러그가 깔려 발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원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금빛 기둥에 짙은 적색의 벨벳 캐노피가 겹겹이 늘어져 있어서 침대 안쪽은 희미하게만 보였다.침대 주변에는 온갖 도구가 갖춰져 있었다.채찍, 수갑, 밧줄, 깃털, 양초...모두 침대 옆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하빈은 도구들을 훑어본 뒤, 입꼬리를 올리면서 침대 위의 여자를 바라봤다.정확히는 누워 있는 게 아니라 묶여 있는 상태였다.여자는 스무 살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희고 창백한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긴 검은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흐트러져 있어서 안색이 더 하얗게 보였다.손목과 발목에는 질긴 가죽끈이 묶인 채 침대 기둥에 고정돼 있었다. 옷도 심하게 흐트러진 상태라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인기척을 들은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했고 입술도 가늘게 떨렸다. 막다른 곳에 몰린 짐승처럼 도망치려 해도 달아날 곳이 없는 사람의 표정이었다.“읍... 읍읍...”입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어서 제대로 된 말 대신 막힌 신음만 새어 나왔다.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하빈은 그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더 깊게 끌어올렸다.침대 곁에 다가선 하빈은 내려다보듯 여자를 훑었다. 얼굴에서 목, 쇄골 쪽으로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마치 값비싼 수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같았다.실은 하빈에게는 수집품보다도 이쪽이 더 자극적이었다.물건은 겁을 먹지도, 떨지도,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달랐다.여자가 보이는 공포와 반응 하나하나가 하빈에게는 비정상적인 만족감을 줬다.“겁먹지 마.”하빈은 말 안 듣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잘 들으면 목숨 정도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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