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에 미친 남편 조련법: Chapter 111 - Chapter 120

196 Chapters

제111화

“아직 안 왔어. 오는 중이라니까 곧 도착하겠지.”지혁은 다리를 꼬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정장의 깃이 더 벌어지며 단단한 복근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다.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난 이재가 슬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뒤뜰 구경시켜 줄게.”지혁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뒤뜰에는 왜?”이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물고기 보러.”“물고기가 뭐 볼 게 있다고...” 지혁은 중얼거리다가 은강에게 고개를 돌렸다. “쟤가 언제부터 물고기에 관심이 있었어?”은강은 찻잔을 들고 천천히 입김을 불었다. “솔로가 연애하는 사람들한테 관심도 많다.”솔로인 지혁은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권씨 집안의 뒤뜰은 앞뜰보다 넓었다. 산세를 따라 여러 층으로 꾸몄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짜임새가 있었다.가장 안쪽에는 크지 않지만 무척 잘 손질한 연못이 자리 잡고 있었다.자연석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수면에는 수련 이파리들이 떠 있었다. 이파리 아래로는 비단잉어들이 느긋하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연못가에는 커다란 수석이 서 있었다. 돌 위에 얼룩덜룩 낀 이끼를 보니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이재는 슬비의 손을 잡고 연못가로 가서 물속을 가리켰다. “봐.”슬비가 내려다보니 물 밑에 뭔가 가라앉아 있었다. 햇빛을 받은 물체에서 그윽한 푸른빛이 번졌다.슬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살핀 끝에야 정체를 알아보았다.“이건...”“플루오라이트야. 밤에는 빛을 내서 연못 전체가 파랗게 보여.”“와!” 슬비가 탄성을 터뜨렸다.이재가 슬비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마음에 들어?”슬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별을 담은 듯 두 눈이 반짝거렸다.“마음에 들면 운수원에도 하나 만들어 줄게.”슬비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너무 번거롭잖아요.”“안 번거로워. 네가 좋아하면 어떤 것도 귀찮지 않아.”슬비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면서 기세게 뛰었다.슬비는 눈을 내리깔고 맞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길고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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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슬비는 고함 소리에 깜짝 놀랐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허리를 감은 이재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이재는 서두르지 않고 슬비를 품 안으로 조금 더 끌어당긴 뒤에야 눈을 들어 회랑 쪽을 바라보았다.도혁이 계단 위에 서 있었다. 표정은 새파랗게 질렸고 턱선은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두 눈은 슬비의 허리를 감은 이재의 손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우리 큰형은 군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그렇게 어렵게 마음을 열고 여자친구까지 사귀었는데!’‘그런데?’‘가장 믿었던 하이재에게 여자를 빼앗겼다고?’“하이재 회장님!”도혁은 직함까지 또렷하게 부르며 이를 악물었다.“제 매니저님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이렇게 우리 큰형의 연인을 가로채고도 비열하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순간 슬비가 멈칫했다.‘큰형의 여자친구?’‘나를 말하는 거야?’“오해했어...”“입 다무세요!” 도혁이 홱 돌아서서 슬비를 향해 거침없이 쏘아붙였다.“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으십니까? 우리 큰형의 여자친구면서 돌아서자마자 다른 남자와 어울리다니, 창피하지도 않으십니까?”슬비는 호되게 몰아붙이는 말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황당하면서도 우스워서 어디부터 반박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내가 언제 권태혁 씨 여자친구가 됐지?’‘쟤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이재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지면서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권도혁, 죽고 싶어?”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서늘한 어조가 도혁의 등줄기를 차갑게 훑었다.평소라면 이 목소리만 들어도 겁을 먹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을 터였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오늘은 내 말이 맞잖아!’“직함으로 찍어 누르실 생각 마십시오.”목을 빳빳이 세운 도혁이 겁나는 걸 억누르면서 맞섰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허리는 곧게 폈다. “이 일은 우리 할아버지 앞까지 가도 회장님께서 잘못하신 겁니다!”“우리 큰형이 하이재 회장님을 친동생처럼 믿었는데, 큰형의 여자친구를 빼앗고도 큰형에게 미안하지 않으십니까?”이재는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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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이게 무슨 상황이지?’‘큰형 여자친구는 내 매니저 누나 아니었어?’‘그런데...’‘왜 갑자기 사람이 바뀐 거야?’태혁이 미간을 찌푸린 채 도혁을 바라보았다.“아까 이재랑 뭘 그렇게 떠들어 댔어?”도혁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내가 방금 누나한테 뭐라고 했지?’‘창피한 줄도 모른다고?’‘겁도 없이 이재 형을 향해 고함까지 쳤고...’도혁은 5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함부로 입을 놀린 자신의 따귀라도 날리고 싶었다.도혁이 고개를 돌려 이재를 바라보았다.이재도 도혁을 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까지 걸려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조금도 없었다. 보기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했다.“도혁아.” 이재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까 뭐라고 했지? 잘 안 들렸는데 다시 말해 봐.”도혁의 종아리가 떨리기 시작했다.도혁은 평생 두려운 게 없었지만 딱 두 사람만은 무서워했다.한 명은 큰형인 태혁.다른 한 명은 눈앞의 이재였다.그런데 오늘 두 사람을 한꺼번에 건드리고 말았다.“이재 형... 제가... 오해했습니다...”이재가 눈썹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오해? 뭘 오해했는데?”“제가... 그러니까...”도혁은 이를 악물었다. “방금 한 말은 전부 헛소리였습니다. 이재 형, 마음에 담지 마세요.”이재는 눈을 내리깔고 느긋하게 소맷단을 정리하면서, 도혁을 곁눈질로 힐끗 보았다. 마치 어디부터 손을 대는 게 좋을지 가늠하는 듯 느리면서도 여유로운 움직임이었다.“골라. 어디에 묻힐래?”도혁의 머리보다 무릎이 먼저 반응했다. 털썩 소리를 내며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형,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어떤 벌이든 받겠습니다!”뜰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그때 지혁이 집 안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무릎을 꿇고 있는 도혁을 보자 신이 나서 웃었다.“야, 설날도 아닌데 웬 세배야? 갑자기 왜 무릎을 꿇고 그래?”하지만 아무도 지혁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도혁은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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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응접실은 앞쪽 거실보다 한결 아늑하고 독립적이었다. 옅은 색의 속커튼을 반쯤 쳐서 눈부신 햇살이 부드럽고 따스한 빛으로 걸러졌다.일행이 자리를 잡자, 직원들이 다과를 내온 뒤 소리 없이 물러났다.“요즘 네가 지혁이 스타엔터를 인수했다며?”태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재를 바라보았다.이재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손가락 사이로 찻잔을 굴리며 담담하게 답했다.“그냥 재미로.”태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이재 곁의 슬비를 흘끗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재미로 벌인 일치고는 규모가 크던데. 호강시 전체가 하이재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뛰어들었다고 떠들고 있어.”“떠들라고 해.”태혁은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어서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맞다. 네가 보낸 반도체, 시험 결과가 나왔어.”이재의 손길이 살짝 멎으면서 눈을 들어 태혁을 바라보았다.“정밀도가 지난번보다 13% 올랐어. 조달 담당 부서에서 이 일만 놓고 회의를 세 번이나 열었대.”“윗선에서는 최근 5년 동안 나온 자체 개발 반도체 가운데 정밀도가 가장 높다고 하더군.”이재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지혁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13%? 이재야,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발전 속도가 말도 안 되는데.”이재는 지혁을 힐끗 보더니 대꾸도 하지 않고 태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양산은?”찻잔을 내려놓은 태혁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면서, 깍지 낀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준비 중이야. 방위산업 쪽에서 1차 주문이 들어왔어. 물량이 적지 않은데, 생산 라인이 따라갈 수 있겠어?”“돼.”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대단하네.”지혁과 은강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마주쳤다.권씨 집안은 수십 년 동안 군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 왔다. 태혁은 삼십 대 초반에 소령으로 진급한 손꼽히는 인재였다. 그런 태혁에게서 ‘대단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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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태혁의 미간이 더 깊이 일그러졌다. 목소리에도 경계심이 묻어났다. “사람을 찾아? 누구를? 네 영업 기밀을 빼내려는 건 아니겠지?”이재는 태혁을 바라보면서 입꼬리에 희미한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그럴 정도는 아니야.”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이재를 보던 태혁이 잠시 침묵한 끝에 다시 물었다. “누구를 찾는데?”“주현석과 어떤 사이인지는 정확히 몰라. 이름이 부서정이라는 것과 1976년생이라는 것만 알아. 올해 쉰 살이야.”태혁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이재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아는 사람이야?”태혁은 눈을 내리깔았다. “몰라.”이재는 잠시 태혁을 바라보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찻잔을 든 이재가 태혁의 잔에 가볍게 잔을 부딪혔다.“차나 마셔.”태혁은 이재를 힐끗 보고는 말없이 찻잔을 단숨에 비웠다....월요일 오전에는 평소대로 예능 ‘슈퍼 보이스’ 녹화가 잡혀 있었다.슬비가 매니지먼트팀 사무실에 들어서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도혁이 보였다. 슬비를 발견한 도혁의 두 눈이 환하게 밝아졌다.“누나!”도혁은 꼬리를 흔드는 골든레트리버처럼 활짝 웃으면서 단숨에 다가왔다. 평소 그답지 않게 살가운 태도였다.“아침 드셨어요? 누나 드리려고 전복죽이랑 새우만두 사 왔어요. 좋아하시는 카페의 라테도 있습니다.”사무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모두가 곁눈질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대놓고 말만 하지 않을 뿐,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눈치였다.“잠깐 나와.”슬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 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사무실을 벗어나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슬비가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너 왜 그래? 평소처럼 좀 해...”도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저 정상입니다. 그냥 오는 길에 샀어요. 누나가 아침 못 드셨을까 봐...”“청로만에서 해온만까지 오는데 별하동 카페가 어떻게 오는 길이야?”도혁의 미소가 굳어지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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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성준은 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시선은 관객석에 앉은 가느다란 실루엣에 못 박힌 채, 손가락 마디는 저도 모르게 굳어 갔다.벌써 며칠째였다.스타엔터 주차장에서 마주친 그날 이후, 성준은 슬비 곁에 한 번도 다가가지 못했다.다가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다.애초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스타빌딩의 경비가 갑자기 빈틈없이 강화되면서, 성준은 건물 반경 백 미터 안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슬비를 직접 만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전부 써 봤다. 그런데 매번 절묘한 때와 장소에 누군가 나타나서 정확하게 성준의 앞을 가로막았다.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며 성준과 슬비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하나씩 끊어 내는 듯했다. 깔끔하고 빈틈없어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성준은 바보가 아니었다.호강시 전체를 놓고 봐도 이런 힘과 수완을 가진 사람은 하씨 집안의 하이재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하이재가 왜 슬비를 보호하지? 원지민과 결혼할 사람이 아니었나?’‘생각해 보면 하이재와 슬비는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예비 형부라는 이유만으로 슬비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설 필요가 있나?’‘하이재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지? 슬비 곁에 다른 남자가 있는 건가?’‘...’며칠 내내 같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생각할수록 짜증과 불안만 커졌다.“강 대표님?”뒤에서 류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성준은 생각에서 벗어나서 몸을 돌렸다.문가에 선 류건이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저, 말씀하신 원 매니저님이 도착하셨어요. 지금 아래층에 계신데...”“올라오시라고 하세요.” 성준이 말을 끊었다.류건은 잠깐 망설였다. “원 매니저님은 저희 회사 사람이 아니라서 제가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가 없습니다. 올라오실지는 본인 뜻에 달렸고요.”성준은 류건을 한 번 바라본 뒤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밀었다.“1억 원 더 드리죠.”류건의 눈이 수표에 붙었다. 마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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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무려 1억 원이었다.이대로 일이 틀어진다고 생각만 해도 속이 쓰렸다.류건은 어금니를 악물고 슬비를 따라가서 앞을 가로막았다.“매니저님, 저 좀 곤란하게 만들지 마세요. 협찬사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 한 번만 보시면 됩니다. 몇 분이면 끝나요...”“PD님.”그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류건이 돌아보자 도혁이 무대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아직 마이크를 든 채였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갈색 눈동자에는 싸늘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제 매니저한테 무슨 일이십니까?”류건은 그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져서 어색하게 웃었다.“아, 아닙니다. 그냥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있었습니다.”도혁은 류건에게 더 시선을 주지 않고 슬비를 바라봤다.“누나, 잠깐 와 주세요. 이 노래의 한 부분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한번 들어 봐 주세요.”슬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류건은 그 자리에 선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마의 식은땀을 훔쳤다.‘매니저를 너무 철통같이 끼고 도는 거 아닌가?’‘내 1억 원...’눈앞에 들어온 돈이 날개라도 단 듯 멀어져 버렸다....2층 모니터링룸.성준은 창가에 서서 슬비가 도혁을 따라 무대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가까이 맞댄 채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운 걸 보니 제법 친밀해 보였다.성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눈빛은 싸늘할 정도로 차가워졌다.문을 열고 들어온 류건도 난처한 표정이었다.“강 대표님, 원 매니저님이... 올라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성준은 돌아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그 남자는 누구입니까? 슬비와 무슨 관계죠?”“권도혁 가수님입니다.”말을 하던 류건이 멈칫했다. “강 대표님,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것 아닙니까? 저 매니저님 성함은 원지민인데요...”“PD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성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원지민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슬비와 2년을 만났다. 자기 약혼녀 얼굴을 못 알아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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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아니야. 말도 안 돼.’성준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곧바로 부정했다.‘하이재가 누군데?’‘호강시 하씨 집안의 하이재...’‘냉혹한 수완에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사람...’‘수십 년을 사업판에서 버틴 노련한 인물들도 하이재 앞에서는 번번이 수를 읽혔는데...’‘그런 사람이 이 정도 얕은 수작에 속아 넘어갈 리가 있나?’‘...’하씨 집안과 원씨 집안의 혼사는 하씨 집안의 최고 어른인 민혜숙이 직접 궁합을 보고 날짜까지 택한 일이었다. 호강시 재계 사람들 대부분이 관심을 두고 있었다.신부가 바뀐 줄도 모를 정도였다면, 하이재가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성준은 꽉 쥐었던 손을 천천히 풀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이유도 모를 불안을 억눌렀다.‘내가 너무 멀리 갔어.’‘슬비는 그냥 화가 난 거야.’‘나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원지민 이름을 쓰는 것뿐이야.’‘그게 전부야.’성준은 몸을 돌리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층수가 내려가는 동안 거울처럼 비치는 패널에 어둡게 굳은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성준은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뒤엉킨 감정을 억지로 정리하고 평소처럼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준의 차가 방송국을 빠져나갔다.검은 세단은 차들 사이로 섞이면서 점점 멀어졌다.성준의 차가 교차로 너머로 사라진 바로 그때, 맞은편 차선에서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차가 스튜디오 입구 앞에 멈췄다. 차 뒷문이 열리고 반듯한 검은색 정장 바지에 감싸인 긴 다리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선명한 바지선과 윤이 나는 구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차가운 분위기까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마침 입구에서 협찬사 관계자들을 배웅하고 있던 류건은 멀리서 차를 알아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차에서 내린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는 거의 휘청거릴 뻔했다.‘하... 하이재?’‘세상에... 저분이 여긴 왜 오셨지?’‘하이재 회장님이 왜?’‘현장 점검이라도 하러 온 건가?’‘아니면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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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류건은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시선이 오가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환하게 웃으며 이재를 바라봤다.“회장님, 더 필요하신 일 있으십니까?”이재는 무심한 눈으로 류건을 힐끗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은 먼저 나가 계세요.”“아, 네. 알겠습니다.”류건은 연신 고개를 끄덕인 뒤 슬비 쪽으로 몸을 돌렸다.“매니저님, 하 회장님과 권도혁 가수님께서 따로 말씀을 나누실 게 있는 것 같으니 저희 둘은 먼저...”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혁이 품에 안고 있던 기타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러더니 류건의 뒷덜미를 잡고 그대로 문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영문도 모른 채 끌려 나온 류건은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멍한 얼굴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권도혁이 왜 나까지 데리고 나온 거야?’‘그럼 하 회장님은 대체 누구를 보러 온 건데?’‘게다가... 원 매니저는 왜 안 나오지?’“PD님.”그때 도혁이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벽에 기대며 말했다. “여기 잘 지키고 계세요. 아무도 가까이 못 오게 해 주세요.”“예?”“문 좀 잘 봐 주세요.”류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도혁은 느긋하게 자리를 떠났다.류건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도혁이 사라진 쪽을 보고, 다시 굳게 닫힌 문을 한번 바라본 뒤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설마...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겠지?’...대기실 안에서 슬비가 이재를 올려다봤다.“어떻게 왔어요?”이재는 대답하지 않고 슬비를 바라봤다. 시선이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오늘 슬비는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 살짝 열린 목깃 사이로 가느다란 쇄골이 조금 드러나 있었다.이재의 눈길이 그곳에 잠깐 머물렀다가 느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지혁이 새로 승마장을 열었어. 라온만 쪽인데 같이 놀러 가자고 하네.”“승마장요?”슬비의 눈이 반짝거렸다. 맑은 눈동자에는 작은 빛들이 아른거렸다.“응.” 이재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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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검은 마이바흐는 라온만 쪽으로 향했다.승마장은 라온만의 산자락을 따라 조성돼 있었다. 잔디는 반듯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 트랙에는 승마 전문용 모래가 깔려 있었다. 붉은 벽돌과 흰 외벽으로 꾸민 마방도 말끔했다. 공기에는 마른 풀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지혁은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지혁은 유난히 눈에 띄는 승마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붙는 흰 바지에 검은색 롱부츠, 손에는 승마용 채찍까지 들고 있었다. 눈꼬리를 휘며 웃는 모습에는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제수씨!”멀리서부터 손을 흔든 지혁이 외쳤다. “이재가 제수씨 타라고 얌전한 애로 골라 달랬어요. 절대 안 떨어지게 해 드릴게요.”슬비가 마방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적갈색 말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크고 늘씬했다. 윤기가 흐르는 갈기와 길쭉한 다리, 촉촉한 큰 눈을 가진 말은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고 있었다.“여기 있는 말 중에 제일 온순해요. 3살짜리 암말인데 성격이 정말 얌전합니다.”슬비는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지혁과 말을 번갈아 봤다.말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들더니 콧바람을 한번 세게 내뿜었다.슬비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이재가 바로 슬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머리 위로 낮은 웃음소리가 떨어졌다. “무서워?”“아니에요.”이재는 굳이 놀리지 않았다. 대신 슬비의 손을 단단히 잡고 천천히 말 가까이 데려갔다.“먼저 한번 만져 봐. 냄새를 익히게 해 주면 돼.”슬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끝이 말의 목에 닿자, 고개를 돌린 말이 촉촉한 눈으로 슬비를 바라봤다. 이내 얌전히 코끝을 슬비의 손바닥에 비볐다.슬비는 잠깐 놀랐다가 곧 환하게 웃었다.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정말 얌전하네요.”이재는 웃는 슬비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옆에서 지켜보던 지혁은 혀를 차듯 웃더니 슬쩍 돌아섰다. 둘이 꼭 붙어 있는데 거기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이재는 말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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