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비는 얼굴을 붉힌 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급히 떨쳐내고 아래층으로 향했다.계단 모퉁이를 돌자, 도우가 이재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뭔가 보고하고 있었다.그런데 도우의 옷차림이 이상했다.슬비는 걸음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오늘 도우는 눈에 확 띄는 분홍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왁스를 발랐고 셔츠 단추도 위에서 두 개 정도 풀어서, 화보 속 재벌가 도련님처럼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슬비가 도우를 알게 된 뒤로는 사계절 내내 짙은색 정장만 입은 모습밖에 본 적이 없었다. 넥타이도 검정, 회색, 남색뿐이었다. 이렇게까지 화려한 색의 옷을 입은 건 처음이었다.슬비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틀림없이 도우의 얼굴이었다.계단 쪽 기척을 들은 이재가 고개를 돌렸다.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슬비를 보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서 허리를 감쌌다. “잘 잤어?”슬비는 아직 정신이 없어서 이재의 손이 허리께를 은근히 문지르는 것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다. “몸은 이제 안 뻐근하지?”그제야 정신을 차린 슬비가 이재를 노려봤다.요 며칠 이재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연고를 매일 밤 자기 전에 발라줬다.연고만 얌전히 발라주면 좋으련만, 조금 문지르다 보면 손이 자꾸 엉뚱한 곳으로 움직였고 결국 또 다른 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그래도 효과만큼은 확실했다.다음 날 아침이면 뻐근함이 절반 이상 사라졌고, 걸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도 없었다.그렇다고 이재가 매일 그렇게 굴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회장님, 차 준비됐습니다.”현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슬비는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굳었다.‘도우 씨가 둘이야?’‘이게 뭐지?’옷만 완전히 다르지 않았다면, 정말 눈앞이 둘로 겹쳐 보이는 줄 알았을 것이다.“정신 차려.”이재가 웃으며 슬비 눈앞에서 손을 흔든 뒤 분홍 셔츠를 입은 남자를 가리켰다.“도한이야. 도우의 쌍둥이 동생. 맡긴 일을 끝내고 막 돌아왔어.”도한이 환하게 웃으며 가지런한 이를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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