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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무 위험한 여자: Chapter 151 - Chapter 160

188 Chapters

150. 감정은 말보다 먼저, 삶의 결로 들어온다

그 흔들림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았다.해가 기울 무렵. 그녀는 문 앞에 멈춰 섰다.오늘은 조금 더 머물고 있었다.“다음에, 같이 차 한 잔 해요.”그녀의 말에 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아직 ‘좋아요’라는 말조차 내뱉을 용기가 없었다.하지만 그 고갯짓 하나로 그는 스스로에게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있었다.밤이 오는 시간, 책방은 다시 조용해졌다.이우는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시간을 다시 마음 안에서 되새겼다.그녀가 앉았던 자리, 그녀가 웃으며 바라보던 책의 문장, 그녀가 건넨 말의 결.그 모든 것이 그의 삶 안에 조용히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그는 일지를 펼쳤다. 그리고 단 한 줄을 적었다.‘감정은 말보다 먼저, 삶의 결로 들어온다.’그 문장을 남긴 뒤 그는 펜을 놓았다.마음속에서는 아직 이름도 확신도 없지만분명히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지켜가고 있는 자신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날 밤, 이우는 처음으로 내일을 기대했다.그 기대는 누군가의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함께 머무는 하루’에 대한 감정의 연장선이었다.그리고 그 연장은 어쩌면 지금 가장 단단한 연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오랜 시간 잠들지 않게 했다.흐린 빛이 고요히 깔린 아침이었다.햇살은 커튼을 통과하지 못했고, 창밖의 공기는 바람 하나 없이 정지된 듯 머물러 있었다.이우는 늦게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며 그는 여전히 어제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말없이 나눈 하루, 짧지만 분명했던 눈맞춤,그리고 그녀가 남기고 간 미소의 온도.그 온기가 방 안에 스며 있었고,이우는 그 잔여의 따뜻함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그는 조용히 생각했다.이것이 바로,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는 것일까.책방은 문이 열려 있었다.이우는 찻잔을 준비했고, 그녀가 앉던 자리에 오늘은 자신이 먼저 앉았다.습관이 되지 않으려 애썼고, 기다림이 되지 않으려 더 조심했다.하지만 어느샌가 그의 시선은 창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기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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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어떤 감정은 지키는 방식으로 깊어진다

아침은 무언가를 감추듯 조용히 스며들었다.빛은 창틀 너머로 똑바로 들어오지 않았고, 공기는 잠든 듯 정지되어 있었다.그 정적 속에서 이우는 일어나 앉았다.어제보다 약간 더 무거운 눈꺼풀. 하지만 그것은 피로가 아니었다.어딘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예감,그 예감이 만드는 내면의 긴장감.그는 창문을 향해 걸었다.커튼을 젖히자 창밖 골목엔 아무도 없었고,전날 밤 그림자가 사라졌던 바로 그 자리가 아직도 그의 시선에 남아 있었다.그는 조용히 커피를 내렸다.동작은 평소보다 느렸고, 물의 온도도 익숙하지 않은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찻잔을 들고 창가에 앉은 그는 마치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듯 가끔씩 고개를 돌려 가게 안을 살폈다.그 조심스러움은 어제부터 시작된 것이었고,이제는 그녀와 함께 나눈 평온을 어딘가에서 지켜야 할 무언가가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정오 즈음, 그녀가 들어섰다.이우는 짧은 눈빛으로 그녀를 맞았고, 그녀는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그 순간, 이우는 그녀가 들어선 문과 그녀가 떠날 문을 동시에 상상했다.그 상상은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 어딘가에 무언가를 예비해야 한다는 감정의 씨앗을 조용히 남겼다.책방 안은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서로 말을 아낀 것이 아니라,오히려 말없이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시기가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었다.그녀는 찻잔을 들고 햇살이 비치는 창가 자리에 앉았고, 이우는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둘 사이에는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공감대가 생기고 있었고,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이우는 더욱 더 신중하게 말과 행동을 골랐다.그는 이제 자신의 감정을 다정하게 드러내는 것보다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방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후애 그녀는 작은 이야기를 꺼냈다.“어젯밤, 이상하게 낯선 시선을 느꼈어요. 창밖에서요.”이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짧게, 그러나 깊게 내려앉았다.그녀도 느낀 것이었다.자신만의 예감이 아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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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불안은 가라앉고, 시선은 정제된다

이른 아침, 빛은 한층 부드럽게 창문을 넘었다.조금 이르지만, 아직 완전히 깨어 있지 않은 세상 속에서 이우는 조용히 눈을 떴다.창밖은 안개 같았고, 커튼은 반쯤 드리워진 채 어제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럽지만 익숙한 동작. 감정을 깨우기 전에 몸이 먼저 하루를 열었다.책방은 고요했다. 이우는 불을 켜지 않았고,빛은 오늘 하루를 허락이라도 하듯 가만히 바닥을 덮고 있었다.그는 책상에 앉아 텅 빈 찻잔을 바라보았다.며칠 전부터 그 자리에 놓인 그 컵은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위한 자리가 되었다.그는 여전히 커피를 한 잔만 내렸지만 그 빈 잔은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방식이었다.그는 이제,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정오 즈음, 그녀가 들어섰다.눈빛은 부드러웠고, 그녀의 걸음은 방 안의 공기처럼 천천히 퍼졌다.이우는 작게 인사했다.그 인사는 이젠 처음보다 부드러웠고, 스스로에게도 낯설지 않았다.그녀는 말했다.“오늘은 이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져요.”그 말에 그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췄고, 그녀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둘은 나란히 앉아 짧은 책을 함께 읽었다.그녀는 중간중간 페이지에 손을 멈추었고, 이우는 그 순간마다그녀의 숨소리를 들었다.그 숨의 길이, 말없이 웃는 입꼬리,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결.그는 이 조용한 감각들 속에서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삶의 언어가 되어가는지를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오후가 깊어지며 햇살은 천천히 기울었고, 그림자는 창가에서 책상으로, 그리고 그들 사이로 조용히 옮겨갔다.그녀는 떠날 준비를 하며 잠시 이우의 시선을 받았다.그 시선은 처음보다 한층 가라앉아 있었고, 그녀도 그것을 느꼈다.“오늘 하루, 참 조용했네요.”그녀가 말하자 이우는 짧게 대답했다.“조용해서 좋았어요.”그 말에는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그들 둘 다, 이 조용함이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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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말과 말 사이에서 서로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는 것.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침묵도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늦은 오후 시간, 둘은 함께 책을 정리했다.말 없이 움직였고, 때때로 눈이 마주쳤다.그 짧은 순간, 이우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조금 더 오래 그 눈 안에 머물렀다.그녀도 그 시선을 받아냈다.물러서지 않았고, 눈빛 하나로 마음 안에서 일어난 작은 파동들을 조용히 건네주었다.그 모든 것이 감정의 증명보다 더 깊은 하루의 언어였다.해가 기울 무렵, 그녀는 오늘도 가장자리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우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내일도 와요.”그 말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늘 그녀가 왔고,그는 받아들이기만 했지만, 오늘 그는 처음으로 ‘기대한다’는 마음을 말이라는 형태로 꺼내었다.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내일도, 올게요.”저녁에 그녀가 떠난 후 이우는 문을 닫지 않았다.잠시, 그 문이 닫히기 전 그녀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문틈 사이로 하루의 끝을 흘려보내고 싶었다.그는 창가에 앉아 오늘 남은 온기를 손에 쥐었다.그것은 말보다 느렸지만, 확실하게 닿아오는 감정이었다.밤이 깊어지고, 책상 앞에 앉은 그는 오늘 하루를 정리하려 하지 않았다.대신, 한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조금씩, 천천히 닿아가고 있다.’그 문장은 지금까지의 모든 거리와 망설임,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기대와 조심스러움을 하나로 묶는 문장이었다.그날 밤, 그는 불을 끄지 않은 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거리엔 사람이 없었고, 공기에는 조용한 숨이 돌고 있었다.그 숨 안에서 그는 느꼈다.자신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하루 속에 서서히 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이른 아침. 흩어지는 빛이 유리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바람은 없었고, 그 정지된 공기 속에서 모든 것은 움직이지 않아도 흐르고 있었다.이우는 그 흐름에 기대듯 침대 머리맡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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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마음은 더 조용히, 더 깊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무렵, 태양의 잔열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스러졌고,희끄무레한 하늘 아래서 도시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그 조용함 속을 이우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책방으로 돌아가기 전, 그는 오래된 골목길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벽돌은 여전히 거칠고, 가로등은 어김없이 한 박자 늦게 불을 밝히며 도시의 틈을 메우고 있었다.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이 익숙한 풍경조차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그건 분명 ‘말’ 때문이었다.그녀가 말한 것, 그리고 자신이 대답한 것.그 사이에 흘렀던 ‘정직함’이라는 감정.그것이 이우의 발걸음을, 그리고 마음의 결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책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유리는 이미 와 있었다.오랜만에 입은 연한 회색 니트,그리고 그 위로 길게 풀어내린 머리카락이 차분한 조도 속에서 고요히 빛을 흘리고 있었다.“오늘, 일찍 오셨네요.”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이우는 대답 대신 작은 미소로 응답했다.그 미소 안에는 조금 전까지 스쳐간 바람과 골목의 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유리는 그 미소를 오래 바라보았다.그리고 눈을 내리깐 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차 한 잔을 천천히 이우 앞으로 밀어주었다.“따뜻할 거예요. 지금 같은 날엔, 이런 게 제일 위로되죠.”그녀의 말은 그날 유리창 너머로 스미는 빛처럼 작고, 조용하고, 그러나 깊었다.그들은 말없이 차를 마셨다.그 차가운 공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따뜻함 속에서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히 채워지고 있었다.그 순간, 유리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지만, 그 말은 곧 닫혔다.“왜 망설이시죠.”이우가 조용히 물었다. 그 말은 부드러웠지만,그 안에는 그녀의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세심함이 스며 있었다.유리는 잠시 시선을 내려 깔았다. 그리고 결국 천천히 말했다.“가끔은… 이 감정이 너무 따뜻해서 무서울 때가 있어요.”그 말에 이우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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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당신 혼자 느끼게 두지 않을 겁니다

잔잔한 오후였다. 창밖으로는 늦여름과 초가을이 맞물린 듯한 공기가 느릿하게 흐르고,하늘은 흐리지도 맑지도 않은 애매한 회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무언가가 곧 비로 쏟아질 것 같으면서도, 차마 떨어지지 못하는 감정처럼 공중에 걸려 있었다.유리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눈동자는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은 채 그저, 창문을 따라 흐르는 세상의 빛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커피는 식어 있었고, 책장 너머로 들려오는 조용한 음악 소리도 그녀의 귀에는 닿지 않는 듯했다.그녀는 조용히 숨을 쉬었고, 그 숨결은 너무 조용해서 마치 그녀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렸다.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이 시간이 흘러가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평온과 불안 사이, 그 얇은 선 위에서 조용히 균형을 잡는 듯한 모습이었다.문이 열렸다. 바람과 함께 이우가 들어섰다.그는 말없이 유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둘 사이에는 인사가 없었지만, 대신 눈빛이 있었다.그의 눈빛은 다정했고, 무겁지 않았으며,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는 안도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오래 기다렸어요?"그가 조용히 물었다.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그냥, 앉아 있었어요.""생각하고 있었어요?""…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했어요."그녀는 작게 웃었다."근데 그게, 은근히 어렵네요."이우는 그 말을 듣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가끔은 생각을 멈추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요.""그래서, 그냥 두었어요. 생각이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느렸고, 조용했다.단어들은 흩날리는 먼지처럼 천천히 공기 속을 떠돌다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앉았다.그것은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안아주듯 내린 평온이었다.하지만 그 평온 속에서, 유리는 문득 시선을 멈추었다.카페의 유리창 너머, 한 남자가 서 있었다.모자에 가려진 이마, 어두운 옷차림, 그리고 조금은 낮게 숙인 어깨.그 모습은, 어쩌면 오래전 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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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마주치지 않아도, 기척은 남는다

오후의 햇살이 건물 벽을 타고 서서히 기울어 가던 때였다.비록 빛은 따뜻했지만, 그 안에 섞인 공기의 기류는 어딘가 낯설게 서늘했다.길가를 스치는 바람은 나뭇잎 사이로 얇게 퍼졌고, 그 잎들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이 저절로 쏠렸다.조유리는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창문 너머의 건물들은 여전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게 움직였지만,그녀는 그 흐름 속에서 문득 한 시선을 느꼈다.눈에 보이지 않는 기척,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의도를 품고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직감 같은 것이었다.손끝에 머물던 커피잔의 열기가 어느새 식어 있었고, 그녀는 컵을 내려놓으며 눈을 감았다.그 짧은 찰나,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불안’이라는 단어조차 다 담아내지 못할 어떤 기척.그것은 윤시훈과 마주했던 폐창고의 날,그날의 어둠과 공기, 숨조차 가빠졌던 그 감각과 어디선가 닮아 있었다.“괜찮습니까.”문득 들려온 이우의 목소리에 유리는 눈을 떴다.그의 얼굴은 창밖으로 쏟아지는 오후 빛에 살짝 가려져 있었다.그러나 음영 사이로 비치는 그 눈빛은 평온했다. 하지만 그 평온 아래에, 그 역시 어떤 조짐을 감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괜찮아요. 아직은.”유리는 조용히 웃었지만, 그 미소는 입꼬리만 움직였을 뿐그녀의 눈동자엔 여운이 남아 있었다.이우는 무언가 더 묻고 싶어 했지만, 곧 말없이 그녀의 앞에 앉아 있던 노트북을 닫았다.“오늘은, 이만 쉬어도 됩니다.”그 말은 단지 피곤함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그는 느끼고 있었다.유리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 흔들림은 위협이라기보다,다가오는 것을 예감하는 이의 고요한 대비에 가까웠다.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둘 사이의 공기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마치 바람이 지나간 뒤 남겨진 잔향처럼,어디선가 기척이 남아 말없이 그들의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그날 저녁, 바람은 조금 더 거세게 불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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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여기서 기다릴 겁니다

햇살은 무심했다. 이른 아침부터 기온이 빠르게 올라갔고, 도시는 벌써 하얗게 달궈진 숨을 토하고 있었다.하지만 유리는 창문을 열지 않았다.커튼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조용히 벽을 타고 흘러내릴 뿐이었다.바깥의 온도와는 다르게, 방 안은 적막했다.그 적막이 오늘따라 유독, 가슴을 눌러왔다.탁자 위에 식지 않은 커피가 놓여 있었다.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유리는 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이대로 식어가면, 다시 데워 마실 수 있을까.’하지만 그건 단지 커피에 대한 생각은 아니었다.지난밤 이우의 말. 짧고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였던 그 말.그리고 그 말을 들은 자신의 심장. 놀랄 만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울린 고동.그 울림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채, 가슴 한가운데에서 이질적인 온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유리 씨.”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이우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손에는 따뜻한 물병과 작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유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말보다 먼저 물었다.‘괜찮으세요?’“어젯밤, 잠은 좀 잤습니까.”이우의 물음은 조심스러웠다.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었다.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진심.그리고 무너지게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을 향한 진심.유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 고개 끄덕임 속엔 ‘괜찮다’는 말도, ‘괜찮지 않다’는 말도 함께 담겨 있었다.“오늘은 잠시 나가시죠.”이우는 말하며 커튼을 젖혔다.햇빛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유리는 그 빛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그러나 그건 불쾌해서가 아니라, 너무 밝은 것이 낯설어서였다.“어디로요?”그녀가 물었다.이우는 짧게 숨을 고른 뒤, 부드럽게 말했다.“당신이 편해지는 곳이면 어디든지.”“말씀만 해주십시오.”그 말에 유리는 잠시 침묵했다.말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 거리.그 경계에서, 그녀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그냥, 가까운 공원에라도.”유리는 그렇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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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조용히 감겨오는 그림자의 속삭임

해가 넘어간 뒤의 도시는 무채색이었다.햇살의 여운은 이미 사라졌고, 그 뒤를 따라온 미세한 어둠이 조금씩 이면과 표면을 뒤섞고 있었다.유리는 그 어스름한 공기 속에서도 미묘한 떨림 하나를 놓치지 않았다.손끝에 감긴 이우의 온기, 그리고 그 온기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의 기척.바람과 함께, 아주 천천히 거리를 파고드는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확실하고, 너무 의도적이었다.이우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몸을 살짝 틀어, 유리의 옆에 더 단단히 자리를 틀고 앉았다.마치 시야를 가리기 위한 무언의 배려처럼,아니, 누군가로부터의 시선을 가로막기 위한 다짐처럼.“누구죠, 저 사람.”유리가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물었다.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안엔 분명한 날이 있었다.이우는 시선을 멀리 두며 대답했다.“모르겠습니다. 방금부터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우릴 보는 건 확실해요.”“멀리서 보면, 섞여 있는 듯해도 보여요.”유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우리는 익숙하니까. 누가 섞인 사람인지 바로 알아채요.”이우는 말없이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그림자였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 어색하게 박혀 있었고,그중에서도 단 한 사람만이,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그 시선의 방향은 분명했다.유리. 그리고 이우. 두 사람을 향한 또렷한 겨냥.유리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오랜 시간 침잠해 있던 본능이 다시 깨어나는 느낌.피부가 먼저 알아차리고, 눈이 그것을 좇기 시작했다.그림자는 의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오히려 가만히 서서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각인시키고 있었다.“자극하지 마세요.”이우가 낮게 말했다.“지켜보는 중입니다. 움직이면 따라올 겁니다.”“알아요.”유리의 눈동자가 조용히 가늘게 떨렸다.“그게 목적이겠죠.”둘은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그림자도 움직였다. 같은 속도, 같은 거리.정확히 미행이라는 단어가 환기되는 간격.공원의 나무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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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살아남고 싶었던 사람의 기록

아직 이른 오후의 햇살이 창문 밖을 맴돌고 있었다.눈부시지도, 따뜻하지도 않은,그러나 은근하게 바닥을 훑으며 방 안을 조용히 물들이는 그런 무심한 빛이었다.유리는 노트북 앞에 앉은 채, 한참 동안 손끝만으로 테이블을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화면은 꺼져 있었고, 마우스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가만히 앉아, 조용히 생각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엔 아직 열지 않은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이우가 가져온 것이었고, 분명 어딘가에서 건져낸 오래된 기록의 파편들이 그 안에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이우는 그녀의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무릎 위로 올려둔 노트 한 권을 펼친 채,오랫동안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채, 묵묵히 펜끝으로만 밑줄을 긋고 있었다."…이 안에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유리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하지만 그 안엔 이름 모를 감정이 미세한 파동처럼 번지고 있었다."당신 언니 사건 관련한 걸로 추정되는 보고서 일부와…""누군가의 사적인 음성 기록."이우는 짧게 대답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유리에게서 잠시도 벗어나지 않았다.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할 수 있었다.유리는 USB를 집어 들었다.작은 바디에 꽂혀 있는 실버 메탈의 연결부,그 끝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더니 결국 가만히 노트북에 꽂았다.'띵.' 짧은 소리.그리고 화면이 켜졌다.파일 하나, ‘2020_11_JY_memo.wav’"…언니 목소리일 수도 있겠네요."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파일을 클릭하진 않았다.그녀는 숨을 삼켰고, 이우는 말없이 그녀 옆에 다가와 앉았다.정말 아주 천천히, 그녀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같이 듣죠."유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그것은 쉽게 이루어진 동의가 아니었다.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였다.재생 버튼이 눌렸다. 처음은 잡음이었다.그리고 이내,『…그날, 나는 서회장을 만났고…』낮고 두려움에 젖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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