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첫사랑 구출기: Chapter 11 - Chapter 20

63 Chapters

EP 11. 과거를 찾아오다

요스케가 2층 그랜드 볼룸으로 향하던 그 짧은 찰나.신부 대기실 안에서, 유진이 김문기의 오만함에 난도질당하고 있던 그 숨 막히는 시간.요스케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자는, 오직 하나 서유진뿐이었다.이성적인 판단도, 앞뒤 계산도, 전부 타버린 잿더미에 던졌다.요스케는 무작정 유진을 품에 안아 든 채, 대기실을 박차고 나왔다.유진은 폭풍처럼 순식간에 나타난 사내의 손에 이끌려, 화려한 결혼식장을 빠져나갔다.황금빛 조명이 번쩍이는 로비를 가로질러,어두운 회색빛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유진의 손목을 틀어쥔 남자의 손아귀 힘은 단 한 순간도 느슨해지지 않았다.살을 파고드는 뜨거운 악력.멍하니 넋이 나간 유진을 자신의 블랙 SUV 차량 조수석에 밀어 넣듯 태웠다.칠흑 같은 차량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유진의 시야를 차단했다.쿠르릉――!맹수의 포효 같은 거친 엔진음이 지하 주차장의 시멘트 벽면을 사정없이 때렸다.차량이 도심의 호텔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차창 밖으로, 화려하고 가식적인 빌딩 숲이 맹렬하게 스쳐 지나갔다.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조수석에 갇힌 유진은 숨을 헐떡였다.차량이 북한산 방향의 한적하고 어두운 도로로 접어들었을 때쯤에서야.겨우 흐려졌던 정신이 돌아왔다.붉은 메이크업 위로 극심한 당혹감이 번졌다."……죄송하지만, 차 좀 세워주세요. 내려주세요."유진의 다급한 요청에도, 남자는 차가운 석상처럼 전방만을 주시했다.스티어링 휠을 감아 쥔 그의 두터운 손가락에 핏줄이 붉게 솟아 있었다.요스케는 유진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했다.아무런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오직 거칠게 도로를 집어삼키는 타이어 마찰음만이 차 안을 채웠다.지독한 침묵이 흐르는 차 안.한참 동안 질주하던 차량은 인왕산의 가파른 자락이 보이는 홍제천 바로 앞,한적하고 모던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서 거칠게 멈춰섰다.끼이익, 턱―차의 시동이 꺼졌다.암전된 주차장의 어둠 속에서, 요스케가 차에서 내렸다.성큼성큼 조수석으로 걸어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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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2. 8년 전 오대산 사고

초여름의 금요일.기말고사가 끝난 해방감과 여름 방학을 사흘 앞둔 전교생 수련회.오대산 야영장은 낮까지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짙은 초록색 수풀과 아이들의 새파란 흥분으로 일렁였다.하지만 통제를 벗어난 사춘기의 열기는 언제나 최악의 사고를 부르는 법이다.지독한 연기만 뿜어대던 바비큐 저녁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기상청 예보에도 없던 스산한 회색빛 빗줄기가 대지를 때리기 시작했다.웅장하게 타오를 예정이던 캠프파이어는 흔적도 없이 축축하게 꺼졌다.당황한 선생님들이 확성기를 잡고 찢어지는 고함을 내질렀다."전원 각자 텐트로 귀가해! 지금 당장!"암흑이 내려앉은 야영장.툭툭대는 장대빗소리를 방패 삼아,아이들의 은밀하고 추잡한 일탈이 대가리를 들었다.가방 깊숙이 숨겨온 초록색 소주병들이 텐트마다 뒹굴었다.그리고 사고는 가장 취약한 곳,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텐트에서 터졌다.야영장의 시계 바늘이 밤 11시를 가리켰을 그때.손전등의 노란 불빛을 든 지도교사들과 까만 밴드를 팔에 찬 3학년 학생 지도부의 삼엄한 인원 점검이 시작됐다.질척이는 진흙탕을 밟던 지도부의 발걸음이 고1 여자 텐트 앞에서 뚝 멈추어 섰다.부러진 이빨처럼, 인원이 비어 있었다."여기, 두 명 어디 갔어?"호랑이라 불리는 학생부장 교사의 서슬 퍼런 포효.텐트 안의 아이들은 손전등 조명 아래서, 서로의 눈치만 보며 겁에 질린 채 웅얼거렸다."그게…… 화장실 간다고 나갔는데…….""순찰조가 화장실 다 돌았는데 아무도 없었어! 없어진 두 명 이름 대, 당장!""그게…… 한혜선이랑, 서유진이요. 근데…… 혹시 3학년 김문기 선배한테 갔을 수도 있는데……."[서유진.]그 세 글자가 빗줄기를 찢고 흘러나온 순간이었다.텐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3학년 학생부 부회장, 요스케의 전신이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격렬하게 반응했다.뇌를 거치지 않은 본능이었다.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요스케는 검은 진흙탕을 박차고 동급생 김문기의 텐트를 향해 무작정 질주했다."김문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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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3. 급류 속 유진

콰아아아아――!하늘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칠흑 같은 오대산의 산속.사방에서 들이치는 장대비를 정면으로 맞닥뜨리자,머리에 쓴 강력한 헤드 랜턴의 불빛마저,하얗게 피어오르는 물보라에 가로막혀 무력하게 분산됐다.빛조차 삼켜버리는 완벽한 암흑.한 치 앞의 시야도 허락하지 않는 수포(水泡)의 장벽이었다.이런 진흙탕 속에서 무작정 산비탈의 거친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였다.하지만 조금 전,길목에서 마주친 혜선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요스케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러댔다.초저녁부터 사납게 누적된 강수량.오대산 하류 계곡의 물은 이미 위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었다.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하늘을 뚫은 듯한 폭우까지 쏟아지는 상황.가녀린 여자애 혼자 그 음습한 계곡가에 고립되어 있다면,불어난 누런 급류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최대한 빨리 그녀를 찾아야 했다.이 지옥 같고 숨 막히는 수마의 아가리 속에서,서유진을 꺼내야만 했다.단 1초, 찰나의 시간조차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빗물과 땀이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요스케는 눈을 찌르는 빗물을 커다란 손등으로 닦아내며, 걸음을 재촉했다.그는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의 푸르스름한 나침반 센서에 오직 의지한 채,전나무 숲의 거대하고 축축한 어둠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바스락, 콰당―!장장 30분 동안,발목까지 빠지는 진흙탕에 미끄러지고, 날카로운 나뭇가지가 뺨을 사정없이 긁어내렸다.스친 상처에서 붉은 핏방울이 배어 나왔지만,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얼마나 미친 듯이 산속을 헤맸을까……마침내 아홉사리골 근처에 도달했을 때였다.귀를 찢을 듯이 광포하게 울부짖는 계곡의 거센 물소리 너머로,요스케의 푸른 랜턴 불빛 끝에 아스라한 형체 하나가 걸려들었다.집채만 한 거대한 바위.이미 사방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누런 급류로 둘러싸여,완벽한 섬이 되어버린 그 위태로운 바위 끝에,한 사람이 작은 점이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서유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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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4. 류 유진을 구하다

콰아아아! 순간 무릎을 치고 나가는 거센 물살의 반동. 유진의 가녀린 몸이 종잇장처럼 허무하게 휘청였다. 중심을 잃고 그대로 하류로 휩쓸려 내려가려던 그 짧은 찰나. 스윽, 팍――! 요스케가 커다란 두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부서질 듯 꽉 붙들었다. 힘줄이 불거진 그의 손이 유진의 젖은 옷 너머의 살결을 고스란히 느끼며, 자신의 품으로 그녀를 꽉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홀딱 젖은 신체가 빈틈없이 강하게 밀착되었다. 심장 박동이 살을 타고 동기화되는 감각. 요스케는 신속하게 자신의 허리에 묶여 있던 로프의 여분을 풀었다. 그리고 유진의 가녀린 허리에 거칠게 감아 단단히 고정시켰다. "자, 이제 물가로 이동할 거야. 내가 앞에서 물살을 막으면서 걸을 테니까, 무조건 내가 걷는 방향으로만 발을 밟고 따라와. 알겠지?" 그는 유진의 한쪽 팔목을 부러질 듯 강하게 움켜쥐었다. 자신의 거대한 체구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급류의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유진이 딛고 설 안전한 디딤돌을 하나씩 확보해 나갔다.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는 거센 물길과의 잔인한 사투였다. 지옥 같은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마침내 거친 물가를 벗어났다. 그리고 축축하고 안전한 흙바닥 위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온몸의 근육에서 힘이 툭툭 빠져나갔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이었다. 요스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품에 안긴 유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됐어…… 무사해. 잘했어, 유진아." 그때였다. 요스케의 두터운 가슴팍에 기대어 있던 유진의 몸이, 긴장이 풀리며 젖은 인형처럼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극도의 공포와 저체온증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유진! 서유진!" 요스케는 급하게 유진을 안아 들었다. 뺨을 톡톡 두드렸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이 꺾였다. 그는 지체 없이 유진의 가냘픈 몸을 등에 업었다. 하지만 이미 오대산의 산길은 장대비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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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5. 첫 키스

지옥 같던 급류 속에서의 구조는 일단락되었다.요스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을 바삐 움직였다.마지막으로, 탈진한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유진의 하얀 이마 위로 손을 얹었다."……읏."손바닥을 타고 심장으로 들이치는 감촉이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계곡물에 젖어 얼음장처럼 차갑던 그녀의 몸이,지금은 마치 붉은 용암을 집어삼킨 불덩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비정상적인 고열이었다.요스케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주머니에서 젖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스윽.어두컴컴한 암자의 목조 벽면 위로, 액정의 푸르스름한 광선이 번뜩였다.그 차가운 청색 빛이, 유진의 붉게 달아오른 뺨과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기괴하게 비추었다.화면 속 숫자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창밖에는 여전히 사나운 장대비가 몰아치는 중이었다.지독한 수마의 포효였다.[일단 해열제부터 먹이자. 6시가 일출이니까……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보고 산악구조대에 연락하는 게 맞아.]요스케는 서둘러 배낭 안쪽 깊숙이 넣어두었던 구급함을 낚아챘다.미끈하게 손에 잡히는 투명한 약통을 열어, 진통제 알약 하나를 꺼냈다.그리고 알약을 앞니로 거칠게 깨물어 조각을 냈다.빠득, 소리와 함께 여러 조각으로 부셔졌다.요스케는 새하얀 가루약을 자신의 구릿빛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모았다.그는 유진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작은 턱을 부드럽게 벌렸다.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캉하고 뜨거운 숨결이 훅 느껴졌다.요스케는 손가락 끝으로 가루약을 쓸어내려, 유진의 좁고 깊은 입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그리고 가녀린 유진의 상체를 한 팔로 낚아채듯 끌어안았다.가녀린 질량감이 그의 가슴팍으로 쏟아졌다.유진의 몸을 비스듬히 일으켜 세운 그는 이내 생수병을 열었다.붉어진 입술 사이로, 맑은 물을 조금씩 흘려 넣었다.꿀꺽.하얀 목덜미 아래로 작은 목울대가 위태롭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그제야 요스케는 굳은 턱관절을 풀며,그녀를 차가운 바닥 위로 다시 조심스럽게 눕혔다.얼마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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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6. 빼앗긴 유진

두근, 두근, 두근.은빛 모포 아래서,나누었던 숨 막히는 첫 입맞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이었다.유진의 작고 뜨거운 몸을 안아주던 청춘의 요스케는,척추를 타고 흘러내리는 미쳐버릴 것 같은 욕정의 화염에 그대로 얼어붙었다.그는 입술을 겨우 떼어내며, 힘겹게 유진을 놓아주었다.굵은 목줄기에 핏대가 터질 듯이 불거졌다.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이성을 붙잡았다.그는 유진을 더 넓은 품으로 가만히 끌어안았다.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가녀린 등 줄기를, 매끄러운 척추 뼈를 천천히 쓰다듬어 내렸다.낮고 굵직하게 가라앉은 요스케의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를 끈적하게 간지럽혔다."조금만…… 더 자자. 아직 너, 미열이 있어."그의 다정한 아우라와 안정적이고 든든한 체온에 안심한 탓이었을까.유진은 그의 가슴팍에 하얀 고개를 부비며,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은빛 모포의 매무새가 다시 굳게 닫혔다.그는 단단한 이빨을 악물며,안고 있던 유진을 마루 바닥 위로 조심스레 눕혔다.어둠 속에서 홀로 거친 숨을 고르던 요스케는,바닥에 내려두었던 휴대폰을 쥔 채 암자 밖으로 걸어 나갔다.스산한 목조 문이 열리자마자,여전히 굵은 빗줄기가 그의 구릿빛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댔다.그리고 칠흑 같은 암흑.그때였다.거센 장대비를 뚫고,저 멀리 산길 아래서, 노란 손전등 불빛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다가왔다.비옷을 겹쳐 입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숲을 헤치고 다가온 사내.김문기였다.문기는 요스케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을 듯이 덮쳐들었다."서유진 어딨어?"요스케는 순간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머뭇거렸다.가슴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부터,김문기를 향한 강렬한 거부감이 치밀어 올랐다.목숨을 걸고 광포한 계곡물에서 건져 올린 유진이었다.요스케가 문기의 앞을 탁, 하고 가로막았다."지금 안에서 자고 있어. 저체온증에 탈진까지 와서 상태가 안좋아. 구조대원들 올라올 때까지 절대로 깨우면 안 돼.""비켜, 새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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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7. 도둑맞은 첫사랑

폭우 속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안아주며,안전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던 그 거대하고 든든한 실루엣이 문기라고 철저히 믿었다."미안……해, 오빠. 고마워요.""됐어. 그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거길 꼭 올라가야 했어? 혹시 너, 부모님 위폐가 있는 상원사까지 올라갈 생각이었어?"순간 유진은 얼굴이 빨개졌다.사실은 부모님의 위폐가 아니라,상원사의 일출이 보고 싶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변명을 쏟아냈다."몰라……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잘 안 나.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까 계곡이었어.""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소주 두 잔.""뭐? 겨우 두 잔? 미친…… 너 다음부터 나 없는 데서 술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진짜 죽는다. 쪼그만 게 겁도 없이 산에는 왜 기어 들어가!"자신을 험악하게 다그치는 문기를 바라보며,유진은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워졌다.몽롱한 의식 속에서도,웅웅대는 빗소리와 함께,귓가를 터질 듯이 울리던 그 뜨겁고 격정적인 심장 소리가 자꾸만 뇌리를 맴돌았다.저체온증으로 마비되던 몸을 녹여주던 달콤한 키스의 감촉이 생생했다.유진은 붉어진 얼굴로 하얀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렸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근데…… 나, 아직도 오빠한테 그냥 꼬맹이야?""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뚱딴지같이.""아니야…… 됐어.""뭐가 됐는데? 싱겁게……"유진은 침대 시트를 꼭 움켜잡았다.심장이 쿵쾅거렸다."우리…… 산에서 말이야. ……오빠가 나한테 키스했잖아……."순식간이었다.응급실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던 문기의 잘생긴 얼굴이,마치 대리석 조각상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그의 아름다운 짙은 갈색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리고 번개처럼, 상황 파악이 끝났다.어젯밤,자신보다 먼저 유진을 찾아내,암자에 단둘이 숨어 있었던 요스케.그 새끼가 서유진의 입술을 탐했던 것이다.충격도 잠시, 문기의 눈빛이 이내 잔인하고 오만하게 뒤틀렸다.그리고 요스케를 향한 비틀린 열등감이,문기의 입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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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8. 정혼자

비린내 나는 아스팔트,흉직하게 찌그러진 쇠덩어리.부모의 목숨을 단숨에 앗아간 잔인한 교통사고의 흔적이 채 수습되기도 전이었다.검은 상복.빳빳하고 거친 삼베의 촉감이 목덜미를 쓸어내릴 때마다 오한이 돋았다.중학생 서유진은 자신의 몸집만 한 초라한 가방을 쥔 채, 거대한 저택의 현관에 우두커니 섰다.김문기의 아버지는 상복도 벗지 못한 유진의 등을 떠밀며, 거실 한가운데로 이끌었다.높은 천장. 숨이 막힐 듯 사치스러운 샹들리에 불빛.그 아래로 사내아이 하나가 걸어 나왔다."이놈이 내 아들, 김문기. 그리고 이쪽은 서유진이다."문기의 아버지가 유진의 어깨를 감싸 쥐며 말했다."문기 너 혹시 기억하니? 너희 어렸을 때 자주 여행도 같이 가고 했는데. 그때 우리 유진이가 아홉살 때였으니까…… 넌 열두살이었겠다.""아……."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고등학생 김문기.그가 턱을 까딱이며, 유진을 느리게 내려다보았다.백지처럼 하얗고 수려한 얼굴 위로 불쾌함이 노골적으로 스쳤다.핏기 없는 입술이 삐죽였다.불청객의 등장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오만한 태도였다."그 맨날 질질 짜던 꼬맹이…"단어에 자비가 없었다."오늘부터 유진이는 우리와 함께 살 거다. 그러니까 사이좋게 잘 지내고.."남편의 독단적인 통보.순간 거실의 공기가 냉혹한 겨울 한기가 들이닥친 것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문기 아버지의 옆, 짙은 음영 속에 서 있던 문기의 어머니가 상체를 틀었다.그녀의 눈동자가 새빨간 독기로 빛났다.문기가 본능적으로 살벌하게 얼어붙은 어머니의 낯빛을 살폈다.그리고 슬그머니 자세를 고쳤다.숨 막히는 침묵.거실을 짓누르는 위압감 속에서, 아버지가 다시 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김문기! 네가 유진이 데리고 2층 방 안내해 줘. 오늘은 늦었으니까 일단 자고, 내일 학교 전학이랑 여기서 필요한 것들 상의하자."유진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이 거대한 저택이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괴물의 아가리 같았다.가방 손잡이를 부서지라 쥔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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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9. 반발심

무서운 족쇄가 발목을 감아오는 감각.문기 역시 미간을 험악하게 구기며 거칠게 반발했다."아버지! 저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얜 겨우 중학생 꼬맹이고! 근데 무슨 뜬금없는 결혼 타령이에요? 싫어요, 난!""누가 지금 당장 결혼하라고 했니! 말이 그렇다는 거니까…… 암튼 당신은 일단 나와 서재로 가서 얘기 좀 하지. 너희는 2층으로 올라가서 쉬어라."쾅――!서재 문이 부서질 듯 닫혔다.폭탄을 던진 부모들이 사라진 거실.어색하다 못해 기괴한 정적이 두 남녀를 무겁게 감쌌다.문기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거친 숨을 내뱉던 그가 유진의 커다란 짐가방을 휙 낚아채듯 들었다.182cm에 달하는 훤칠한 체구가 계단을 향해 성큼성큼 올라갔다.유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계단 벽면을 타고 음산하게 울렸다.잠시 후, 유진은 앞으로 제 방이 될 낯선 침실에서 문기와 다시 마주했다.어두운 원목 가구로 가득 찬 방.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힘들 정도로 서먹하고 서글펐다.문기의 눈동자에.잔뜩 주눅이 든 채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유진의 실루엣이 담겼다.불과 일주일 전에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된 아이.검은 상복에 파묻힌 하얀 안색이 지독하게 가련했다.사정이 어쨌든.자신의 어머니가 던진 추잡한 독설에 상처받은 아이에게 눈칫밥을 주는 건.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문기는 문에 비딱하게 기대어 서서 툭 말을 내뱉었다."……신경 쓰지 마. 우리 부모님은 원래 사이가 최악이야. 하루가 멀다고 싸워 대니까, 너 때문에 난리 친 거 아니라고. 괜히 눈치 볼 필요 없어."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유진은 자신을 투박하게 위로하는 문기를 올려다보았다.큰 키에 슬렌더 체형.백지처럼 하얀 피부와 조각처럼 수려하지만 날카롭게 각이 진 이목구비.유진의 뇌리 너머로.아주 어릴 적, 자신이 졸졸 따라다니던 꼬마 김문기의 실루엣이 겹쳐 들었다.기억 속의 그는 작은 키에 상냥하고 귀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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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0. 유진과 문기의 첫키스

문제의 오대산 수련회에서 돌아오자마자.맞이한 여름 방학식 아침.축축하고 불쾌한 초여름의 열기가 학교 복도를 통째로 점령하고 있었다.웅성거리는 소음,아이들의 땀 냄새가 섞인 공기.그 복도 한가운데서 요스케는 문기와 정면으로 마주쳤다.문기의 안광에는 씹어 삼킬 듯한 적의가 가득 서려 있었다.요스케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붉게 충혈된 요스케의 서늘한 눈매에도, 그에 못지않은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폭발 직전의 시선이 좁은 허공에서 사납게 부딪쳤다.찌릿한 스파크가 일었다."비켜."자신의 앞을 완벽하게 가로막고 선 김문기를 향해.요스케가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뱉어냈다.퍽――!제어력을 상실한 문기의 주먹이 요스케의 턱뼈를 사정없이 강타했다.둔탁한 마찰음이 복도 벽면을 때렸다.고개가 거칠게 돌아갔다.요스케가 중심을 잡기도 전이었다.문기가 거칠고 강한 악력으로, 요스케의 하얀 교복 셔츠 깃을 한 움큼 쥐어 잡았다.그러자 요스케도 문기의 멱살을 잔인하게 낚아챘다."개새끼…!"문기가 이를 악물며 신음을 삼켰다."왜? 내가 왜 개새끼인데, 김문기."입술 끝이 터져 흘러내린 새빨간 핏방울.요스케는 그것을 혀끝으로 슥, 훔쳐내며 서늘하게 물었다.문기의 화이트 셔츠 깃을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문기는 끝끝내 그 지독한 적의의 진짜 이유를 입 밖에 내지 못했다.비겁하고 추잡한 침묵이었다."왜? 그날 밤 오대산 빗속에서 서유진을 구한 게, 네가 아니라 나라는 걸,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은가 보지?""그 입 닥쳐, 새끼야! 죽여버리기 전에!""만약 내가…… 그날 밤 암자에서 유진이 곁에 있었던 게 나라고, 유진이한테 전부 밝히면 어떻게 될까?"요스케의 날카로운 도발.문기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거칠게 흔들렸다.밑천이 들통난 도둑놈의 눈빛이었다.그러나 이내, 문기는 특유의 오만한 아가리를 처올리며 비열한 냉소를 흘렸다."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서유진이 내 정혼자라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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