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첫사랑 구출기: Chapter 21 - Chapter 30

63 Chapters

EP 21. 처절한 패배감

유진이 김문기의 억센 손에 이끌려.무력하게 진흙탕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요스케는 이성의 뼈가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당장이라도 김문기의 손목을 꺾어 부러뜨리고.그녀를 제 품으로 빼앗아 오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3의 요스케는 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유진의 진짜 첫 키스를 가졌고,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지만.그는 여전히 힘없는 짝사랑의 방관자일 뿐이었다.김문기의 가스라이팅 아래서, 눈치 보는 유진을 구원할 현실적인 힘이 없었다.그렇게 잔인하도록 아픈 첫사랑의 손을 스스로 놓아버린 채.그는 비참하고 형편없는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었다.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렀다.그사이 요스케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치열하게 유학했고.일본으로 건너가 냉혹한 후계자 경영 수업을 받았다.그리고 감정을 거세한 괴물이 되었다.외로움을 달래려 수많은 여자와 의미 없는 연애도 해보았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그럼에도 지독하게 술에 취하는 밤이면, 그의 안식처는 오직 서유진 하나뿐이었다.지독한 갈증 속에서. 8년 전의 방관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주먹을 피가 나도록 쥐었다.[그날…… 널 내 품에서 절대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네가 내 것이 될 때까지, 네 안을 내 온도로 안고 또 안아줄 걸. 네가 날 절대로 잊지 못하게…]그런데 8년이 지난 오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한국으로 돌아온 첫날.꿈에서나 그리던 환상이 아닌 진짜 서유진이 제 발로 그의 품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그리고 마침내 새하얀 침대 위에서.그녀의 좁고 은밀한 순결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취했다.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인력처럼.그녀의 첫 입술도, 그녀의 온전한 처음도……전부 요스케가 차지하게 되었다.이제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그녀를 빼앗기지 않는다.그녀를 영원히 자신의 품 안에 가두고 또 가둘 테니까.다시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내가…… 뭘 기억 못 한다는 거죠? 첫 키스라니, 그게 무슨……"두려움이 섞인 가느다란 목소리가 허공에서 부서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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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2. 류와의 두번째 정사

투둑, 스르륵.햇살 아래.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가녀린 나신이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대리석의 차가운 흰 표면과 뜨거운 유백색의 말캉한 살결.그리고 유진의 나신에 박힌 지난 밤의 선홍빛 흔적들이 잔인하도록 뇌쇄적인 대조를 이루었다."아, 읏…… 흐아!"요스케의 뜨거운 손바닥이 유진의 골반을 꽉 움켜쥐었다.살결이 불타는 것 같았다.그는 유진의 하얀 허벅지를 강제로 벌려 자신의 단단한 하체 사이로 끌어당겼다.서로의 맨살이 정면으로 밀착되는 순간.어젯밤 밤새도록 그녀의 전신을 정복했던 남자의 거대함이 다시금 무시무시하게 고개를 들었다.남자의 터질 듯한 온도가 좁고 여린 속살 사이를 가차 없이 가르고 파고들었다.요스케는 유진의 은밀한 중심을 향해 서슴없이 자신을 묵직하게 박아넣었다.철썩ㅡ!단 한 치의 공백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듯 꽉 들어차는 질량감.뇌리가 마비되는 충격에.유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높은 비명을 내질렀다.거절할 새도 없었다.밀려드는 쾌락에 화르르 전신이 감전이라도 된 듯.유진은 속수무책으로 뜨겁게 열려버린 자신의 몸을 그대로 맡겨버렸다.대리석 아일랜드의 차가운 촉감이 아랫배의 맹렬한 열기와 충돌하며 이성을 마비시켰다."아흫…… 아…… 읏!"여자의 호흡이 가파라질수록, 남자의 짓씹는 신음 소리도 거칠어졌다.허리를 밀어 올리는 요스케의 반동의 깊이와 강도가 무섭게 세져만 갔다.찰팍, 철퍽거리는 끈적한 마찰음.가쁜 거친 숨소리만이 아틀리에의 높은 천장을 때리며 울려 퍼졌다.두 사람은 이성도, 과거의 상처도 전부 잊은 채 무아지경으로 얽혀들었다.인왕산의 푸른 아침이 가장 뜨겁고 붉은 정욕의 소음으로 물들어갔다.요스케의 구릿빛 가슴 근육이 거칠게 꿈틀거렸다.솟아오른 핏줄들이 유진의 시야를 완전히 덮어버렸다."헉…… 윽…… 아…… 헉, 헉…… 유진…… 아……."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하얀 목덜미와 도드라진 쇄골 위로 쏟아지듯 떨어졌다.밤새 남겨두었던 선홍빛 열꽃들 위로 다시 새로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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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3. 비루한 현실

하룻밤을 지낸 남자와 지독하게 얽혔던 정욕의 파편을 뒤로한 채,인왕산 아틀리에를 빠져나왔다.그리고 유진은 제일 먼저 대학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탁하고 매캐한 매연을 지나 지하도로 내려서자,차가운 금속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지하철 물품 보관함이 모습을 드러냈다.회색빛 스틸 상자들.유진은 그 앞에 서서 오늘 아침 맡겨두었던 커다란 블랙 캐리어를 꺼냈다.철컥.무거운 캐리어의 손잡이를 손아귀에 꽉 쥐자마자.정신력 하나로 겨우 버티고 있던 긴장의 나사가 실타래처럼 스르륵 풀어져 내렸다.약혼자의 외도와 혼외자가 있다는 충격.데일 듯 뜨거웠던 하룻밤의 정욕과 도발.지옥 같은 결혼식장에서 감행한 파혼.그리고 아틀리에에서의 폭발적인 두번째 정사까지.겨우 반나절 만에 일으킨 생애 최악의 파란.순간 칠흑 속에 감춰져 있던 육체의 비명이 뒤늦은 해일이 되어 터져 나왔다."으윽ㅡ!"유진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집어삼키며 회색빛 보관함 벽면을 하얗게 짚었다.스르륵, 찌르르――.허벅지 안쪽의 연약한 살결부터 척추뼈 마디마디까지.낯설고 둔탁한 통증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묘할 정도로 노골적인 근육통이었다.평생 느껴본 적 없는 남자의 온도.그 온도에 거칠게 유린당하고 정복당한 육체의 잔흔.제대로 발을 내딛는 것조차 아찔하게 불편했다.‘아…… 이런 게, 진짜 첫 경험이구나.’어젯밤 펜트하우스 스위트룸의 포근한 침대에서부터.방금 전 아틀리에의 그 차가운 화이트 대리석 테이블 위까지.장장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그 무시무시한 부피감을 가진 거구의 남자에 짓눌려 온몸이 헤집어졌으니, 신체가 비명을 지르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통증이 뼈마디를 스칠 때마다.자신을 안고 사납게 허리반동을 몰아치던 요스케의 단단한 체구와.몸 안쪽 가장 깊은 자궁 벽까지 찢을 듯이 꽉 채우던 압도적인 질량감이.유진의 살결 위에 낙인처럼 생생하게 맴돌았다.아랫배 안쪽이 여전히 뻐근하게 짓이겨진 느낌이었다.자괴감과 황홀경의 여운이 더럽게 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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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4. 고결한 소유욕의 진짜 이면

"그냥…… 아무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아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랑 그 남자 라인업이 너무 완벽하잖아."응? 라인업이라니…… 무슨 소리야, 그게?"―뭐야? 너 진짜 그 선배 정체 알고 데려온 거 아니었어? 복수하려고 일부러 판 짠 거 아니었냐고."……뭘?"―얼음왕자! 너 진짜 기억 안 나? 우리 고등학교 때 전교를 씹어 먹던 인간 말이야!"누구……? 얼음 왕자 그게 도대체 누구야?"황당하다는 듯한 선호의 추궁과 반응.순간 유진의 구두 굽 소리가 바닥을 긁으며 뚝 멈추어 섰다.[아…… 나 그 남자 이름도 모르네.]그제야 유진은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밤새도록 몸을 섞고, 자신의 은밀한 처음과 온전한 나신을 통째로 바쳤던 사내.심지어 8년 전 오대산 암자의 첫 키스와 추악한 진실을 쥐고 흔들던 그 남자.그런데 그 남자의 이름조차 몰랐다.[진짜…… 나 미쳤었구나.]멍청한 자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날카로운 비수처럼 스쳤다.그때 수화기 너머로, 선호의 기가 차다는 듯 한 한숨 소리가 귓가를 긁었다.―류 요스케. 우리 제주도 국제학교, 2년 선배. 그 선배가 학교 전체 짱이었잖아. 피지컬 무지막지하고 조각처럼 잘생긴 데다, 여자애들이 고백하면 하도 칼같이 쳐내고 철벽을 쳐서 별명이 ‘얼음왕자’였어. 그리고…… 김문기 선배랑은 둘이 아주 유명한 앙숙이자 라이벌이었잖아."……!"심장이 거칠게 멎었다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오빠…… 라이벌?”―서유진, 너 진짜 기억 안 나냐? 그 선배 일본에서 전학 오자마자, 전교 1등만 도맡아 하던 김문기 선배가 처음으로 전교 1등 뺏기고, 전교생 인기 투표에서도 1위 자리를 처참하게 내주고. 암튼 그것 때문에 둘이 진짜 완전 살벌하게 싫어하고 서로 보기만 해도 으르렁댔다고 학교에 소문이 파다했었는데……"그랬어? 그랬구나…… 난 전혀 몰랐어."차가운 공기가 허파 가득 밀려들었다.불안하고 잔인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학창 시절 암흑에 가라앉아 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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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5. 혜선의 정체

순백의 대기실 안,두 사람의 음침하고 은밀한 대화소리가 질척하게 섞여 들었다.탁――.신경질적인 파동과 함께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이 어둠 속으로 꺼졌다.화려했던 조명은 반쯤 꺼져 음산한 음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그 처참한 공간 한복판에서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어두워진 화면 위로 그녀의 초조한 안색이 기괴하게 비쳤다.[결국…… 선호에게 간 거야? 이 사단을 내고 고작 거기에 숨었네. 진짜 서유진 재수없어.]서유진이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절친이자 브라이드 메이드,한혜선.달콤한 권력과 돈이라는 덫에 걸린 추악한 스파이.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유진의 등 뒤에 날카로운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혜선의 낮게 가라앉은 뒤틀린 눈매가 소름끼치도록 텅 빈 공간을 스윽 훑었다.식장이 완전히 박살 나고 하객들이 전부 빠져나간 처참한 폐허.그 아수라장의 중심에서 완벽한 핏의 블랙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그가 오만하고 거대하게 서 있었다.혜선은 초조하게 대리석 바닥을 구두 굽으로 짓밟고 있는 사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유진이 연락 왔어요.”초조했던 남자의 발끝이 그제서야 흐트러짐 없는 고요함을 유지했다.대신 그의 눈동자에는 서늘한 살기가 도돌이표처럼 맴돌고 있었다."저…… 상무님. 유진이도 유진이지만, 그보다도…… 한정희는 어쩌실 예정이에요? 지금 식장 밖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요. 정희 임신 스캔들 냄새를 맡고 대기 중이라는데, 이대로 두실 거예요?"혜선의 조심스러운 질문.문기의 붉은 입술 사이로 피식 서늘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스윽ㅡ!블랙 턱시도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넣는 그의 태도에는.단 한 자락의 당황도 정혼자를 향한 죄책감도 묻어나지 않았다.오직 태생적인 선민의식만이 번뜩였다."글쎄……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지, 지금?""네? 그럼 정희 임신…… 이대로 그냥 방치하실 가요? 정희가 오빠 비서로 있으면서 오빠 방 수시로 드나들었던 거, 회사에서 알 만한 사람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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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6. 류의 반격

또각, 또각, 또각.8년 전, 불쾌했던 장마로 잔인하게 축축했던 학교의 회색 복도처럼.유진은 이번에도 그를 차갑게 스쳐 지나갔다.등 뒤로 멀어지는 그녀의 단호한 구두 굽 소리.요스케의 심장은 결이 갈라지듯 처참하게 쪼개져 내렸다.지옥 같았던 지난 8년.뼛속까지 시린 지독한 후회와 갈증 속에서 살았다.이제야 겨우 돌고 돌아 다시 마주한 지금.결과는 잔인하리만치 똑같았다.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요스케는 8년 전의 무력했던 그 고3 소년이 아니었다.그대로 포기하고 손을 놓은 채,운명이 주는 비참한 결말을 무력하게 받아들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또다시 평생을 후회하며, 잔인한 가시밭길 속에서 자학하며 살 수는 없었다.그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틀리에 통창 너머 서슬 퍼런 인왕산의 회색 암벽을 한참동안 응시했다.그러다 굳은 표정으로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단축버튼이 눌러지고, 수화기 너머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리고 그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공간을 통째로 얼려버릴 듯 울려 퍼졌다."지난 달에 전달해 준…… 한국 투자 리스트 중에 의료 재단이 하나 있었지. 한국병원."ㅡ네, 이사님. 근데 LX 그룹 측의 영향력이 워낙 강하게 뻗어 있는 곳이라 그냥 단순 지분 투자로만 검토 중이었습니다만.”"단순 투자 말고 인수로 방향 틀어."요스케의 음성이 소름끼치도록 서늘하게 내려앉았다."지분 쪼가리가 아니라, 아예 재단 자체를 인수할 수 있는 방안 지금 당장 알아봐."―네? 이사님… 한국병원의 규모를 생각하면 거액의 투자금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 본사 회장님의 최종 승인이 필수적입니다. 이사회 절차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해질 텐데요.”그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알아."요스케는 답답한 듯, 셔츠 버튼을 풀어헤쳤다.그리고 흐트러진 셔츠 단추 사이로 구릿빛 가슴 근육을 거칠게 들썩였다."오늘 밤 비행기로 바로 도쿄 본사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회장님 승인은 내가 직접 받아올 테니까, 넌 내가 한국에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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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7. 수난의 인턴생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결혼식장을 통째로 폭파해 버린 파혼 소동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숨 돌릴 틈도 없는 지옥 같은 인턴 생활은 유진의 영혼을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유진은 피곤에 절어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의사 휴게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그리고 딱딱한 철제 테이블 위로 시체처럼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구겨진 백색 의사 가운이 볼품없이 늘어졌다."아…… 진짜 죽겠다, 죽겠어. 지옥이 따로 없네.""너 몰골이 그게 뭐냐? 연속 근무 몇 시간째야?"동기이자 소꿉친구인 선호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36시간…… 나 진짜 때려죽여도 컨퍼런스는 못 가. 아니, 안 가. 여기서 그냥 잠들래.""정신 안 차려? 오늘 병원 재단 새 이사장 첫 부임 날이라 전 스태프 총 집합이야."선호가 사정없이 흔들며, 축 처진 유진의 하얀 상체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너 가뜩이나 파혼 하고 병원에서 찍혀서 눈총받고 있는데, 새 이사장 눈에까지 미운털 박히면 여기서 레지던트 생활 절대로 못 해. 쫓겨난다고. 그러니까 얼른 눈곱이나 떼고 일어나, 서유진!"유진이 괴로운 신음을 내지르던 그때였다.달깍, 소리와 함께 휴게실 문이 열리며 여러 명의 간호사가 상기된 얼굴로 우르르 들어섰다."어머, 윤 선생님! 아…… 서 선생님도 여기 계셨네요?""거 봐. 너 땡땡이 치려던 거 이미 온 병원에 소문 다 났나 보다."선호가 낄낄대며 유진의 귀에 대고 장난스레 속삭였다.그런데 간호사들의 표정들이 하나같이 붉은 장미빛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근데 선생님들,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생겼어요? 다들 얼굴에 아주 웃음꽃들이 활짝 피셨네."선호가 특유의 싹싹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자.한 간호사가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선호 앞으로 바짝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글쎄, 말도 마세요! 오늘 부임하신 새 이사장님, 진짜 미치도록 섹시하고 잘생기셨어요! 지금 외래부터 병동까지 지금 전부 난리 났다니까요?"그때 유진의 입에서 갑자기 툭 핀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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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8. 류의 병원재단 이사장 취임

위선적인 찬양. 웅웅대는 마이크 소음.연단에 선 병원장의 장황한 연설과 노골적인 아부 발언들이 공기 중에 질척하게 흩어졌다.36시간 연속 근무.전신의 세포가 통째로 녹아내리는 듯한 피로의 한계점에 다달았다.유진은 밀려드는 살인적인 수면욕을 이기지 못했다.하얀 의사 가운의 깃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가슴팍 깊숙이 고개를 턱 꺾어 내렸다.감겨드는 무거운 눈꺼풀을 감추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이었다.쿵.하마터면 이마를 앞 좌석 등받이에 사정없이 찧을 뻔한 위태로운 고비가 몇 번이고 찾아왔다.흐릿한 정신줄이 나사 풀린 인형처럼 덜컹거렸다.위압적인 분위기와 사람들의 체취가 코끝을 스쳤지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자…… 우리 한국병원의 새로운 미래와 도약을 이끌어 주실 글로벌 나노바이오 재단의 류 요스케 신임 이사장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장내를 가득 메운 의료진의 우렁찬 박수갈채가 컨퍼런스 룸의 천장을 깨부술 듯 쏟아졌다.그때 육중한 문이 열리고,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실루엣이 단번에 컨퍼런스 룸의 공기를 압도했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진한 턱선과 명검 같은 높은 콧날.완벽한 핏으로 재단된 다크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랐다.그가 무대를 디딜 때마다 둔탁한 파동이 일었다.연단 마이크 앞에 선 그가 맹수처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청중석 전체를 훑어내리기 시작했다.압도적인 질량감. 잔인할 정도로 수려한 피지컬.하얀 가운들의 물결이 요동쳤다."어머, 미쳤나 봐…….""저 사람이야? 대박…… 일본 투자회사 대표라더니 모델 아니야?"직원들의 숨 가쁜 웅성거림과 달뜬 소리가 가득 차올랐다.그때 정면을 응시하던 선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얼음왕자……!]선호가 경악에 찬 얼굴로 유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거칠게 찔러댔다.팍, 팍――!"야! 야, 서유진! 정신 차려봐, 야! 완전 비상이야, 비상!""아, 왜 이래 진짜…… 귀찮게……."유진은 마지못해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밀어 올렸다.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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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29. 류가 유진에게 공개적인 낙인을 찍다

컨퍼런스 룸의 육중하고 무거운 다크 우드 문이 열리자마자,서유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도망쳤다.비명을 지르려는 심장을 악착같이 움켜쥔 채,무서운 기세로 인파를 헤치고 멀어지는 그녀의 가냘픈 등 뒤로,요스케의 집요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거대한 그림자가 되어 끈적하게 따라 붙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이 도망치는 그녀의 발끝에서 그대로 느껴졌다.척추뼈 마디마디가, 전신의 살갗이 그의 시선에 찔려 저릿거렸다."선호야, 나…… 나 먼저 갈게. 치프 선배들이나 교수님들한테 나 갑자기 집에 급한 일 생겨서 퇴근했다고 말 좀 잘 전해줘.""야! 서유진! 너 설마 이대로 완전히 도망가는 거 아니지? 미쳤어?!"유진은 하얀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자신을 붙잡는 선호의 팔을 다급하게 밀쳤다."생각 중…… 그러니까 일단 비켜!"유진은 의국 락커 룸으로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갔다.철제 캐비닛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어젖힌 그녀는 온몸을 옥죄던 의사 가운을 가차없이 벗어던져 버렸다.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배낭 가방 하나만 간신히 챙겨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의국 문을 열었다.사냥꾼을 피해 빠져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탁――.문을 열고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유진의 걸음이 그대로 석상처럼 얼어붙었다.허파 속의 산소가 단숨에 증발해 버렸다.바로 문 앞에.거대한 철옹성 같은 벽이 딱 버티고 서 있었다.류 요스케.어찌나 급하게 가르고 쫓아왔는지, 그 완벽하던 다크 수트의 재킷 자락이 가파른 호흡을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코끝이 닿을 듯 잔인하게 가까운 거리.압도적인 질량감과 거대한 음영을 만들며 유진을 압박했다.유진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창백하게 질려버렸다.요스케는 자신의 발밑에서 나뭇잎처럼 바르르 떠는 사냥감을 내려다보았다.그의 회색 눈동자가 잔인하리만치 번뜩이며, 유진의 귓가로 은밀하고도 끈적한 저음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이번에는 날……"그의 커다란 상체가 유진의 하얀 이마 위로 더 깊숙이 기울어졌다."똑똑히 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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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30. 류의 공개 청혼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할 수는 없었다.대한민국 최고의 대학병원 정문 한복판에서.수백 명의 동료와 환자들에게 둘러싸여 마녀사냥 하듯, 조리돌림을 당하는 미래만큼 끔찍한 것은 없었다.수치심과 당혹감에 전신이 새빨갛게 타오르던 유진은 정문 바닥에 못이라도 깊숙이 박아 넣은 듯 뚝 멈추어 섰다.그러자 그녀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던 요스케의 억센 손가락에 무시무시한 힘이 들어갔다.하얗게 피가 통하지 않아 살결이 문드러질 듯 짓눌렸다.요스케가 자신을 완강하게 거부하며 버티는 유진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거구의 몸을 돌렸다.그의 넓은 어깨가 대낮의 햇빛을 가로막으며 유진의 시야 위로 거대한 암전을 드리웠다."뭐 하는 거죠, 지금? 도대체…… 무슨 대단한 일로, 절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개처럼 함부로 끌고 다니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 무례하잖아요! 이사장 취임하자마자, 그저 말단 인턴 하나 괴롭히는 게 취미예요?!"유진이 독기를 품고 쏘아붙였다.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요스케는 여유롭게 낮게 가라앉은 음성을 토해냈다."내 취임 연설, 똑바로 안 듣고 뭐했어?"남자의 예상치 못한 질책에, 유진은 순간 숨이 턱 막혀 말문이 막혔다."……연설이요? 그건 왜…….""실수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하겠다고 분명히 말했잖아."순간.한 달 전, 인왕산 아틀리에의 그 서늘했던 대리석 위에서의 파괴적인 정사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유진은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전 분명히…… 그날 아틀리에 떠나면서 말씀드렸는데요. 더 이상 얽히는 거 싫다고.""알아."요스케의 회색빛 눈동자가 칠흑 같은 심연으로 가라앉았다."그런데…… 병원 직원들 다 있는데서 이렇게 무작정……!""난 널 이 세상에 숨길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물론 넌 날 지독하게 감추고 도망치고 싶겠지만.""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는 건데요?"유진이 그를 책망하는 매서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눈물과 분노가 가득 고인 채, 흔들리는 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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