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나는 식탁 위 빈자리를 한 번 더 봤다.젤리 하나가 사라진 자리.그 자리에 오늘은짧은 말 하나가 남아 있었다.알아.내가 마지막 하나를 먹지 않았다는 걸,하루 종일 가지고 다니다결국 자기에게 건넸다는 걸.굳이 다 설명하지 않았는데도조금은 닿은 것 같았다.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지는 않았다.그렇다고 바로 접어두지도 않았다.오늘은 그냥마음 한쪽에 잠깐 펼쳐두었다.망가지지 않을 만큼만.⸻【태준의 속마음 41】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휴대폰이 울렸다.[집이야?]서윤이었다.나는 화면을 보다가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일으켰다.[응. 방금 들어왔어.]답장을 보내고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잠시 뒤,다시 화면이 켜졌다.[잠깐 로비로 내려올래?]문장을 두 번 읽었다.잠깐.로비로.내려올래?서윤이 먼저 나를 불렀다.그 사실이 좋아서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그래. 내려갈게.]답장을 보내고그대로 현관으로 갔다.신발을 신으면서도괜히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봤다.메시지는 그대로였다.잠깐 로비로 내려올래?예전에는 이런 말이 흔했다.나와.내려와.편의점 갈래?뭐 좀 같이 사자.그때는 서윤이 부르면 나갔고,내가 부르면 서윤이 왔다.그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받은 말은이상할 만큼 오래 눈에 남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숫자가 하나씩 줄었다.괜히 느렸다.나는 닫힌 문만 보고 있었다.로비에 도착하자서윤이 먼저 보였다.그리고 그다음에,서윤의 손에 들린 작은 봉지가 보였다.포도맛 젤리였다.어제 내가 준 것.아직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마지막 하나 남았어.”서윤이 말했다.봉지가 작게 흔들렸다.“안 먹었어?”“응.”“왜?”서윤은 이번에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네가 먹었으면 해서.”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서윤은 이미 내 쪽으로 봉지를 내밀고 있었다.“포도맛 좋아한다며.”나는 그 봉지를 봤다.어제
태준이 봉지를 봤다.“안 먹었어?”“응.”“왜?”이번에는 대답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네가 먹었으면 해서.”말하고 나니 조금 간지러웠다.나는 괜히 봉지를 살짝 흔들었다.안에서 젤리 하나가 움직였다.“포도맛 좋아한다며.”태준은 잠깐 나를 바라봤다.그 시선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러내가 먼저 말했다.“안 먹을 거야?”“먹을 거야.”태준이 봉지를 받아 들었다.그게 다였다.왜 하루 종일 가지고 있었냐고 묻지도 않았고,왜 마지막 하나를 남겼냐고 다시 확인하지도 않았다.나는 그게 좋았다.태준이 접힌 입구를 펼쳤다.구석에 붙어 있던 마지막 젤리를손끝으로 꺼냈다.작고 보라색인 하나.그걸 보고 있으니아침부터 계속 신경 쓰였던 일이갑자기 정말 작은 일처럼 보였다.태준이 젤리를 입에 넣었다.몇 번 씹는 걸 보고 있다가 내가 물었다.“어때?”“맛있네.”“그치?”“응.”나는 웃었다.“포도가 제일 낫다며.”“그래서 아쉬웠지.”뜻밖의 대답이었다.“아쉬웠어?”“하나밖에 없어서.”“그런데 왜 나 줬어?”묻고 나서어젯밤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게 생각났다.태준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네가 골랐잖아.”또 그 말이었다.나는 결국 웃었다.“그럼 이제 됐네.”“뭐가?”“너도 먹었으니까.”태준이 나를 잠깐 바라봤다.“그래.”짧은 대답이었다.그런데 그걸 듣고 나니아침부터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작은 하나가정말 제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내가 거의 다 먹었고,마지막 하나는 태준이 먹었다.그 정도면 됐다.태준은 비어버린 봉지를 한번 내려다본 뒤근처 쓰레기통으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대로 버렸다.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봤다.아침에 식탁에서 집어 들었던 것.회사까지 가지고 갔다가,다시 집으로 가지고 돌아왔던 것.하루 종일 가방 안에서몇 번이나 생각났던 작은 봉지.이제는 없었다.그런데 아쉽지는 않았다.태준이 돌아왔다.“갈까?”“응.”우리는 나란히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었다.버튼을 누르고
아침에 물을 마시러 식탁 앞을 지나다가작게 접힌 젤리 봉지를 봤다.어젯밤 그대로였다.나는 물컵을 내려놓고봉지 입구를 펼쳤다.안에는 포도맛 젤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가잠시 보고 다시 넣었다.먹으면 금방이었다.그런데 아침부터 단 게 당기지도 않았고,무엇보다 어젯밤 알게 된 말이 생각났다.포도맛은 하나뿐이었다는 것.태준은 그걸 한 번도 먹지 못했다.나는 봉지 입구를 다시 접었다.출근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들었을 때도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현관까지 갔다가 멈췄다.잠깐 뒤돌아봤다.보라색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어젯밤에는내일 먹을지,계속 남겨둘지 정하지 않았었다.지금도 딱히 정한 건 없었다.그런데 그냥 두고 나가기는 싫었다.나는 다시 식탁으로 가젤리 봉지를 집었다.그리고 가방 안쪽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바스락.마지막 하나가 안에서 작게 움직였다.아직 그걸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다만 식탁 위에 두고 나오는 것보다가방 안에 넣어두는 편이 마음이 덜 쓰였다.나는 가방 지퍼를 닫고문을 열고 나왔다.⸻오후 늦게,가방에서 충전기를 찾다가 젤리 봉지가 같이 딸려 나왔다.책상 가장자리에 떨어진 작은 봉지를 보고나는 손을 멈췄다.아침에 넣어둔 뒤로한 번도 꺼내지 않았었다.봉지를 집어 들자안에서 젤리 하나가 아래로 미끄러졌다.정말 하나뿐이라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옆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었고,누군가는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였다.나는 젤리 봉지를 손에 든 채잠깐 의자에 기대앉았다.배가 조금 고팠다.점심을 먹은 지도 꽤 됐다.지금 먹어도 됐다.포장을 열고,하나 꺼내 입에 넣으면 끝이었다.누가 뭐라고 할 일도 아니었다.나는 접어둔 입구를 조금 펼쳤다.보라색 젤리가 보였다.어젯밤 태준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포도맛은 하나뿐이었어.][네가 가져간 게 그거야.]그리고,[네가 골랐잖아.]하나뿐이
오늘 태준에게서 새로 알게 된 건 두 가지였다.포도맛 젤리가 하나뿐이었다는 것.그리고 오후 회의가 길었다는 것.하나는 어제의 일이었고,하나는 오늘의 일이었다.이상하게도 지금 더 오래 남는 건두 번째 쪽이었다.태준이 오늘 뭘 했는지내가 궁금했다는 사실.예전에는 너무 가까워서서로의 하루를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았다.헤어진 뒤에는모르는 게 당연해졌다.그리고 오늘은 처음으로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의 하루를 물었다.알아야 해서가 아니라,그냥 궁금해서.나는 화면을 껐다.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끄러 가다가식탁을 한 번 돌아봤다.작게 접힌 젤리 봉지가 있었다.안에는 포도맛 하나가 남아 있었다.오늘 나눈 말들은젤리처럼 달지는 않았다.회의가 길었다는 말.문구 하나를 끝냈다는 말.잘됐다는 말.좋았다는 말.그리고,그냥 궁금했다는 말.그런데 이상하게그 평범한 말들이 더 오래 남았다.나는 마지막 젤리를 먹지 않았다.내일 아침에도 보일 자리에서봉지는 조용히 그대로 있었다.⸻【서윤의 기억 28】[네가 골랐잖아.]태준의 메시지를 보고 있으니예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퇴근이 늦었던 어느 평일 밤.태준의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난 뒤였다.배가 부르다면서도 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뭐 찾아?”소파에 앉아 있던 태준이 물었다.“단 거.”“아까 배부르다며.”“밥 배랑 디저트 배는 다르잖아.”태준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냉장고 안쪽에 작은 디저트 두 개가 있었다.하나는 초콜릿,하나는 커피 맛.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커피 맛을 꺼냈다.“이거 먹어도 돼?”“응.”너무 바로 대답해서나는 별생각 없이 뚜껑을 열었다.작은 숟가락을 들고 소파로 돌아가태준 옆에 앉았다.한입 먹자 생각보다 맛있었다.“이거 맛있다.”“그치.”“너 먹어봤어?”“응.”“이거 자주 먹어?”“가끔.”나는 두어 입을 더 먹다가문득 태준을 봤다.“잠깐.”“왜.”“너 이거 좋아하지?”태준이 나를 봤다.“응.”“초콜릿보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대화는 거기서 끝난 것 같았다.젤리를 하나 더 먹었다.달았다.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마음에 남아 있는 건포도맛보다 태준이 보낸 짧은 말들이었다.네가 골랐잖아.또 사면 돼.그래.전부 별것 없는 말이었다.나는 봉지 안에 손을 넣다가 멈췄다.휴대폰을 다시 집었다.보낼 말이 있어서 든 건 아니었다.그런데 화면을 켜자아까부터 하나 궁금했던 게 떠올랐다.젤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나는 입력창에 문장을 썼다.[오늘은 일 어땠어?]쓰고도 바로 보내지 않았다.태준의 일이 어땠는지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오늘 어디에 있었는지,무슨 일을 했는지,몇 시에 끝났는지.그런 걸 확인할 사이도 아니었다.그런데 궁금했다.이유라고 할 만한 건 그것뿐이었다.나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오늘은 일 어땠어?]젤리 맛을 물었을 때보다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조금 뒤 화면이 켜졌다.[괜찮았어.]곧 한 줄이 더 왔다.[오후 회의가 좀 길었고.]나는 그 문장을 읽었다.태준의 오늘 오후에회의 하나가 있었다.조금 전까지는 몰랐던 일.이제는 알게 된 일.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너는?]나는 식탁에 팔꿈치를 올리고 답장을 썼다.[나도 그냥.]보내려다가 멈추고 한 줄을 더 붙였다.[수정하던 문구 하나 오늘 끝냈어.]답장은 금방 왔다.[잘됐네.]나는 웃었다.[계속 마음에 안 들었거든.][끝났으면 됐지.]짧은 답을 보며오늘 오후 내내 붙들고 있던 문장을 떠올렸다.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니 하루의 한 부분이 되는 기분이었다.나는 다시 물었다.[너 회의는 잘 끝났어?][응.]그리고,[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끝나긴 했어.][그럼 다행이네.]보내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서로 다른 곳에서각자 다른 하루를 보냈다.나는 문구 하나를 붙잡고 있었고,태준은 긴 회의실에 있었을 것이다.아침부터 저녁까지그걸 서로 몰랐다.그리고 지금은 조금 알았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식탁 위의 포도맛 젤리 봉지를 한 번 봤다.어젯밤 태준에게 받아온 것.몇 개 먹고 입구를 대충 접어둔 채그대로 놓여 있었다.가방을 챙기다가 잠깐 손이 갔다.회사에 가져갈까.봉지를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저녁에 돌아와 먹으면 됐다.나는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문을 열기 직전,괜히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식탁 위에 작은 보라색 봉지가 보였다.그대로 두고 나왔다.⸻저녁에 돌아왔을 때도젤리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외투를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손을 씻었다.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간단히 저녁을 먹었다.식탁 한쪽에는 계속 젤리 봉지가 있었다.밥을 먹는 동안에는 건드리지 않았다.그릇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돌아와서야봉지를 가까이 끌어왔다.바스락.작은 소리가 났다.어제 로비에서 태준에게 처음 받았을 때도이런 소리가 났다.열린 택배 상자.여러 색으로 섞여 있던 봉지들.뭐가 제일 맛있냐고 물었을 때태준은 포도라고 했다.그래서 나는 별 고민 없이 포도를 골랐다.봉지에서 젤리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어제와 같은 맛이었다.포도 향이 먼저 나고,조금 뒤 단맛이 퍼졌다.씹으면서 휴대폰을 집었다.메신저를 열자 태준의 이름이 위쪽에 있었다.강태준.어젯밤 마지막 대화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포도맛 맛있네.][다행이네.]그게 끝이었다.나는 화면을 보다가 입력창을 눌렀다.[너는 뭐 먹었어?]보내고 나서 젤리 하나를 더 꺼냈다.정말 별것 아닌 질문이었다.어제 산 젤리 중무슨 맛을 먹었냐는 말.그래서인지 보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답장이 왔다.[레몬.]나는 봉지 안을 내려다봤다.[포도는?]이번에는 답이 조금 늦었다.[포도맛은 하나뿐이었어.]씹고 있던 젤리가 멈췄다.나는 화면을 다시 봤다.[하나뿐이었어?][응.]그리고 한 줄이 더 왔다.[네가 가져간 게 그거야.]나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내려다봤다.보라색 작은 봉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