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월로부터 시작된 우리: Chapter 101 - Chapter 110

111 Chapters

<101화> 수천 개의 각을 깎던 너 (2)

“뭐래. 그 자부심이라면 나도 있거든. 하여튼 이번 학기도 두고 봐. 내가 빠른 시일 내에 너 제대로 누른다. 요망한 입 다물게 만들어야지.”“에이,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하는 거에 집중하라니까~ 늘 그랬듯 수학 성적으로 날 눌러줘. 난 언제나 짓눌릴 준비가 돼있어.”“수학? 너 중학생 때부터 수학 놔버렸다며. 미안하지만 난 답이 정해진 승부는 안 해.”“우와~ 그럼 더더욱 안 될 텐데. 나 내신이나 모의고사나 국어 과목에서는 전부 다 1등급 받아버릴 건데. 수능도 만점이 목표라는 건데.”뭐지, 저 말끝마다 데로 끝나는 일관성은?해외파인 이를 연인으로 두고 있어서 그런가.토종 한국인인 저도 해외파 못지않은 가치를 증명해내고 싶다는 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그게 아니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시험 기간을 두고 벌이는 대화는 굳이 싶다니까.“글쎄, 성적은 방심하는 사이 떨어지는 거야. 난 그걸 지난 학기에 경험했거든. 그니까 이번 학기에는 네 차례야. 차휘안 너, 아주 위험해.”“아~ 이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저주를 걸어보시겠다? 그렇게 해서 날 이겨보게?”“저주라면 저주지. 잠든 율혜 깰까 소원권 뭐 이런 말은 못하겠는데 내 말을 잘 새겨들어. 차휘안 넌 가까운 시일 내에 아차 싶을 거야.”뭣 같은 저주 경고에 가소롭다는 할리우드 몸짓으로 예린을 또 한 번 도발하는 휘안.이러니 휘안과 예린이 대화를 시작하면 저는 그 대화에 끼어들기보다 지켜보는 쪽이 훨씬 더 흥미롭다는 해외파 연인들이었다.예린 옆에서 고개를 내젓는 재이도, 점점 더 커지는 수군거림에 잠에서 깬 율혜도 말이다.***복슬복슬한 아우터의 지퍼도 꼭꼭 잠그고.새하얀 자수로 마감된 목도리도 칭칭 두르고.손재주가 좋은 휘안답게 여느 틈 사이로 바람 한 점이 들어와 우리 율혜를 춥게 만드는 건 단연코 용납할 수 없는 경우의 수였다.그렇게 꽁꽁 싸맨 율혜의 손을 맞잡고는 금이야 옥이야 그 옆을 지키는 발걸음으로 매 하굣길 율혜를 바래다주었던 정성.다행히 그 정성이 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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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수천 개의 각을 깎던 너 (3)

무릇 이 세상 모든 아기 토끼들은 관심과 사랑을 주고받아야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는 보은의 생명체.아무래도 우리네 아기 토끼란 인간들과는 여간 다른 마음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겉으로 보기에는 각 하나 없는 매끈한 진주일지라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수천 개의 각을 깎아 만든 다이아몬드 같은 마음.그런 의미에서 일주일 내내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휘안은 기특한 존재가 확실했다.리짱에게 독보적인 애정을 받아가는 아기 토끼의 위치를 반납하고 제 스스로 휘안 오빠로서만 지내기로 결심했다니까.따라서 이번 주는 리짱의 차례였다지.매 쉬는 시간 틈틈이 제 자리를 지키며 휘안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독보적인 애정을 표현하기로.아무래도 우리 휘안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리짱과 단 둘이 있는 쪽을 최우선으로 좋아한다니 말이다.“근데 휘안아. 본부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이 왔어. 그건 바로 최고로 귀여운 육식 토끼가 고기까지 잘 구워서 감탄했다는 거야. 다시 말해 휘안이가 이름값을 했다는 거지.”“응. 나는야 고기까지 잘 굽는 귀여운 아기 토끼. 근데 본부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 난 우리 율혜한테만 사진을 보냈던 거 같은데.”“어… 그건 말이야. 리짱이 본부에게도 휘안이 소식을 공유했거든. 사진과 함께 말이야. 그래도 육하원칙으로 따지고 싶은 휘안이일까? 만약 납득이 안 됐다면 말이야.”율혜가 곧 본부고 본부가 곧 율혜일 텐데 육하원칙까지 가봐야 하는 상황일 리가 있나.질문을 던지고 저만을 기다리는 두근거리는 눈빛 반 스푼에 어디 한 번 잘 대답해보지 그래 하는 새치름한 눈빛 반 스푼.휘안은 그 황홀한 조합에 못 이겨 또 한 번 피식 하니 웃고는 고개를 바로 내저었다.“아니~ 육하원칙까지는 안 바라. 주말에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에 놀랐던 거니까. 근데 의외네. 단순히 고기 하나 잘 굽는 재주에 본부가 놀랐다는 건. 율혜가 더 설명해줄래?”“좋아! 리짱이 잘 설명해줄 수 있어. 본부는 사진을 보고 감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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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빛나는 우리만의 속삭임 (1)

본래의 쓸모가 아닌 사물함을 향기롭게 만드는데 부수적인 쓸모를 다한 체육복도 챙겨가야 하고.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저와 한 몸이 된 애착 담요도 바로 챙겨가야 하고.마지막으로 영광에 빛나는 백 점짜리 두 시험지들은 파일 폴더 맨 앞장에 끼어두면 하교할 준비는 다 끝났다.달리 말해 평소보다 빵빵한 가방이어도 제 가방에는 필요한 것들만 들어가 있다는 주장.아무튼 한참을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을 거 같던 시험 기간도 그새 또 끝나버렸다니 이젠 맘 편히 주말을 만끽하면 그만이라는 거다.“아이고~ 이게 아기 토끼야, 아기 거북이야. 매주 돌아온다는 행복한 등딱지치고는 이번 주는 좀 더 남다른데. 뭐가 이렇게 빵빵하지?”“음~ 이건 말이지. 리짱의 실수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야. 이번 주에는 체육복을 갖고 오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리짱의 착각으로 사물함 방향제 역할만 하게 된 체육복이거든.”“그러게. 이번 주 월요일 체육 수업은 체육 수업이 아니었지. 모레부터 시험 기간이라는 이유로 전체 자습이었으니까. 그래서 여기 맨 아래에는 체육복, 그 위에는 애착 담요를 쌓고 평소보다 더 빵빵한 금요일로 만들었구나.”“응. 휘안이 말이 맞아. 덕분에 내 모든 시험지들은 안전하지. 빵빵한 존재들이 쭉 경호해줄 예정이거든. 물론 집에 가서 충분한 보상도 줄 거야. 주말 내내 최고로 뽀송뽀송한 세탁물로서 최고의 대우를 해줄 참이니까.”잘게 휘날리는 잔머리에는 관심도 없다는 둥 가방 끈 소중히 부여잡고 뽀송뽀송한 세탁물의 조건을 나열하는 게 뭐가 이리도 산뜻한지.누가 보면 초겨울 하굣길이 아니라 여름 휴양지 거닐고 있는 발걸음인 줄 알겠다.그만큼 우리 율혜와 함께라면 매 순간이 산뜻하기 그지없어서는 시공간을 가로지르기 최적이라는 소리였다.“알았어. 뽀송뽀송한 세탁물에 진심이라는 우리 율혜. 그나저나 가채점으로 영어랑 일본어 이백 점을 기록한 율혜인데 육성으로 자랑 안 해봐도 괜찮겠어? 메신저 전송만으로 충분해?”“응. 엄마 아빠한테 육성으로 자랑하는 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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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빛나는 우리만의 속삭임 (2)

“진짜? 율혜 콩주먹 하나로 전부 다 혼쭐내 주는 세계관이야? 나 벌써부터 두근거리는데~”“흥! 여기 콩주먹 말고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거든. 그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릴 필요는 없어. 리짱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 따라서 신뢰 가능한 여자 친구라는 거지.”글쎄, 콩주먹 말고 어떤 다른 수가 있으려나.어디 전 세계 무서운 언니 오빠들 좀 불러 모아 그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는 왜 휘안이를 괴롭게 만들었는지 압박 수사라도 가할 셈인가.그 전에 우리 율혜 서러움과 억울함이 마구 뒤섞여 대성통곡 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하여튼 제 일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물불 가리지 않고 제일 먼저 덤벼들 거라는 율혜.덕분에 휘안은 또 한 번 다짐할 수 있었다.저만을 특별하게 여겨주는 우리 율혜를 생각해서라도 타인에게 쉽게 밉보이지 않을 것이며 어정쩡한 곁을 내어주지 말아야겠다고.***옹알옹알 말이 트이기 전 아기 리짱의 언어는 제 3국의 언어를 개척했던 편.근데 또 이상하게 그게 다 이해는 되더라.아기 리짱에게 한국어로 말을 걸면 한국어가 가미된 외계어가 들리고, 일본어로 말을 걸면 일본어가 가미된 외계어가 들리더라니까.더구나 영상 자체가 가족의 일상이라더니 얼굴을 모르지만 알음알음 들어왔던 율혜의 주변 인물들도 얕은 수로서 파악이 가능했다.“아, 진짜 너무 귀엽다. 율혜야. 우리 율혜 말도 못하게 한 입 거리인데? 진짜 딱 요만해. 우리 율혜 진짜 딱 요만한 아기 리짱이었어.”“응. 아무래도 휘안이가 보고 있는 영상 속 리짱은 아기 리짱이었기 때문이지. 지금은 진짜 딱 요만하지는 않아. 아주 쑥쑥 크고 있다고.”“그러게. 율혜 말대로 저때에 비하면 쑥쑥 크고 있기는 하지. 근데 어쩌나. 이러나저러나 내 눈에는 한 입 거리인 아기로 보인다는데~”아기 리짱은 예로부터 한 입 거리라는 전설.그건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볼 살의 존재감으로서 증명되는 과정이었다.글쎄, 율혜네 어머님께서도 먼 훗날의 니즈를 예상하셨는지 볼록 하니 튀어나온 아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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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빛나는 우리만의 속삭임 (3)

“음~ 역시나 내 예상대로야.”“뭐가, 뭐가 휘안이 예상대로라는 거지?”“아니, 율혜가 여기 고르곤졸라 피자에 꿀을 듬뿍 찍어 먹었잖아. 덕분에 우리 율혜 입술이 평소보다 더 빛나 보이더라고. 그래서 뽀뽀가 하고 싶었어. 근데 역시나 꿀맛이었던 거야~”“이런, 다짜고짜 꿀맛을 기대했다는 휘안이. 휘안이 예상이 빗나갔으면 어쩌려고 그랬지.”파스스 흩어지는 당당한 웃음소리를 듣자니 저 홀로 억울해서만은 안 되겠다는 눈치.때마침 영상 속 아기 리짱도 자신이 술래가 될 거라며 두 눈을 가리기 시작했으니 현실 속 리짱도 저 먼저 타이밍을 노릴 때가 찾아왔다.“안 되겠어. 리짱은 휘안이에게 올라탄다. 어차피 지금 휘안이 자세는 정면도 아니잖아. 바른 자세에서 멀어졌으니까 더 망가뜨릴래.”리짱에게 당혹스러운 감정을 선사해준 범인의 두 볼을 붙잡고는 폭주 기관차 저리 가라 좀 전의 만행을 배로 갚아줄 의도.율혜는 휘안의 무릎 위로 올라타 눈길이 닿는 맨살 여기저기 진득한 꿀맛을 남기며 제 기세를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좋다. 율혜가 나만 봐주니까.”율혜가 저를 된통 혼내주고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율혜와의 틈을 바로 좁혀 보이는 휘안.좀 전 역시 제 힘 그대로 율혜를 바짝 끌어당겨 약 올릴 수 있었지만 율혜가 애써 잡은 주도권을 바로 뺏고 싶지 않았던 거다.물론 지금에서야 전혀 딴 판이지.이젠 제가 그 주도권을 잡아볼 생각이니까.“난 우리 율혜가 나만 봐주는 게 좋아. 이렇게 율혜랑만 단 둘이 붙어있고 싶어.”“정말이지 리짱이 주최한 달다구리 타임 후에도 만족이 덜 된 게 확실해 보이는 휘안이. 아까 종례하기 직전에도 그랬지만 휘안이는 너무나도 투명한 표정의 주인공이라는 거야.”“응. 평소 그냥저냥 알고 지내던 애들까지 율혜 주변으로 들러붙었잖아. 걔들이야 영어랑 일본어 시험지 정답 좀 맞춰보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하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그래서 걔들 좀 알아들으라고 불편한 티 낸 거니까.”“치잇~ 어쩐지 휘안이 한숨이 끊이지 않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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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판독 결과를 듣자하니 (1)

“하, 고집은... 그럼 주말, 공휴일, 이른 아침, 늦은 저녁 시간대에는 양심껏 행동해라. 그 시간대에는 전혀 돕고 싶지가 않다니까.”“이도준. 그 정도면 안 도와주겠다는 거 아니야? 거창하게 말한 거 치고는 뭐가 되게 없어. 학교에 있을 때만 도와준다는 소리네.”“야. 도와주는 데 의의를 둬, 의의를. 어째 이번에 성적표 나오고 나니까 더 달라졌어. 이번에 성적 좀 올랐다고 기세등등한가봐.”“응, 기세등등하지. 나보다는 아빠가. 내가 말했잖아. 이번에 학교 성적 나오는 거 보고 연기 학원 끊을지 말지 결정한다고 하신 거. 내가 공부하는 척 좀 한 게 통한 눈치 같아.”글쎄, 척이라기에는 자기 방 책상에 앉아 밤을 새워봤다는 후기까지 말해주지 않았나.흰 노트가 새까맣게 되도록 암기 과목의 필기를 옮겨 적는 노력도 몇 번이나 반복했고.“그래. 계속 다닐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네. 어쨌든 보기 좋다. 연극부 말고도 집중할 수 있는 구석을 찾은 거 같아. 요즘 편안해 보여.”“그게 다 이모께서 해주신 말씀 덕분이지. 내 관심을 여기저기 분산시켜두래. 뭐든 하나에만 집중하는 건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하셨거든.”그 이모라 하면 휘안이네 어머님 아니신가.왠지 조언이랍시고 하신 말씀이 잘 들어맞지 않는 거 같은데 괜한 오지랖으로 보이려나.“이도준. 너 지금 휘안이 생각했지?”“어. 너도 휘안이부터 생각했을 거 같은데. 왠지 그 안 좋은 예시, 휘안이 아니야?”“맞아. 휘안이 걘 뜯어 말린다고 말을 들을 애가 아니잖아. 근데 뭐 상관없겠지. 그 특이한 성향을 받쳐줄 배경이라는 게 있으니까. 누구는 그렇지 못해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지만.”여름 방학에 주변 어른들과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애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근데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지.얘라고 뭐 다 아는 이야기를 듣고 싶겠냐고.“아, 참고로 배경이니 현실이니 그런 건 나 혼자 깨달은 거야. 그니까 괜한 오해는 말고.”“……!”“거봐. 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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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판독 결과를 듣자하니 (2)

꽃받침 자세 그대로 얼음이 된 핑크빛 꿀떡.하지만 상대방은 핑크빛 꿀떡을 순식간에 얼게 만든 이도, 바로 녹게 만들 이도 저라는 듯 나란한 시선으로서 신뢰를 더해보였다.“핑크빛 꿀떡님은 누군가와 동일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그 누군가란 새빨간 딸기님! 다시 말해 핑크빛 꿀떡님은 저에게 두 번이나 구조되시고도 매번 모른 척 했다 이거예요.”“……!”“음~ 아무래도 말문이 막히신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저는 핑크빛 꿀떡님을 혼낼 목적으로 진실을 밝힌 게 아닙니다. 핑크빛 꿀떡님은 제가 너무나도 좋은 나머지 여러 차례 위험을 감수하고도 변장해서 나타났다는 뜻이잖아요.”“맞아요... 이래봬도 나름 반성 중이라고요! 저도 거짓말하는 제 자신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그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속이지 않을게요.”“그게… 사실은 저 역시 고백할 게 있었어요! 핑크빛 꿀떡님께만 저의 정체를 말씀드릴게요. 잠시 토끼 귀를 열고 진실을 들어보시겠어요?”이건 뭐 밑도 끝도 없는 전개에 장르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삼류 미만의 상황 극.그래서 저 한낱 변화무쌍한 달다구리 존재 앞에 선 지율혜는 어떤 정체를 숨겼다는 건지.물론 저를 포함해 다수가 훔쳐보고 있는 상황 극의 결말이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얼굴에 철판을 깔고 저 둘에게 다가가서는 방금 한 귓속말의 내용을 묻지 않는 한 말이다.***공식적인 자습 시간에는 독서를 즐기는 편.만화책 표지를 갈아 끼운 채 척을 일삼는 가짜 독서가 아니라 인문학 책 표지 그대로 글 한 줄 한 줄을 음미해나가는 진짜 독서 말이다.그러니 제 책의 내용이 어찌나 흥미로운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내 뒤를 돌아본 율혜였다.“어쩐지 한참이나 조용하다 싶었어. 핑크빛 꿀떡의 입장을 밝히느라 고단했던 모양이야. 다음 종소리가 들려도 깨지 말고 코 자렴~”“그래. 고단할 법도 하지. 듣자하니 또 나 없는 사이에 내 자리에서 열연을 펼치셨다며. 아까는 바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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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판독 결과를 듣자하니 (3)

아주 오랜만에 예린과 단 둘뿐인 하굣길.예린은 도준이 저희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핑크빛 꿀떡과 달나라 토끼에 관한 상세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그 때문에 지금과 같은 하굣길에 남은 보충을 하기로 했고, 앞으로는 오늘의 저녁 메뉴라는 새로운 주제로 넘어갈 차례라니까.“율혜야. 그래서 넌 이제 어디로 간다고? 지금이야말로 갈피를 잡아야 할 때인 거 같아. 집이야, 사진 스튜디오야? 어딘지 딱 말해봐.”“어, 그건 말이지. 이제 막 결정이 된 참이야. 유미 씨와 마트에서 만나기로 합의를 봤거든.”“아~ 어머님과 마트 데이트를 즐기기로 한 모양이구나. 그것 참 잘됐네. 어쨌든 삼시세끼 카레와 함께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거니까.”“응. 아마도 오늘의 저녁 메뉴는 크림 스튜가 될 거 같아. 올리브 오일에 치킨이랑 야채를 알맞게 굽는 게 시작이지. 마지막으로 생크림도 한 바퀴도 예쁘게 둘러주면 완성이라는 거야.”어쩐지 중간 과정이 많이도 생략된 레시피.하지만 문제는 율혜가 아닌 예린에게 있었다.어젯밤에도 카레, 오늘 아침에도 카레.심지어 점심 급식에서까지 카레가 나왔다니 이젠 카레란 카레에는 치가 떨린다고나 할까.이쯤 되면 현재 저희 집에 남겨진 카레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확인할 법도 한데 괜한 오기가 발동했지.글쎄, 아무도 시키지는 않았지만 저 스스로 제 운을 시험해볼 작정이라며 오늘의 저녁 메뉴에 대한 힌트조차 묻지 않기로 했다니까.“근데 말이야. 예린이는 카레에 초콜릿을 넣어봤어? 안 넣어봤으면 한 번 넣어보는 게 어때? 더 맛있어질 게 분명하거든.”“초콜릿? 다크 초콜릿 말하는 거야? 예전에 어디에서 본 거 같기는 해. 카레에 초콜릿을 넣으면 풍미가 짙어진다, 그런 내용.”“음~ 다크 초콜릿도 좋지. 근데 개인적으로는 밀크 초콜릿이 더 좋아. 아무래도 난 평균보다 더 부드럽고 더 달달한 맛을 좋아해서 말이야.”“그래? 이왕 도전을 할 거라면 밀크 초콜릿을 넣어보라는 거지? 알겠어. 카레가 남아 있으면 꼭 넣어볼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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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유난도 관심이라는 거야 (1)

꿀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아마도 율혜의 속담 활용 능력을 따져보자면 떡 앞에 꿀을 붙이는 레벨 정도가 맞을 거다.그러니 더더욱 박수 받아야 마땅하지.율혜는 한 평생 일본 엘리트 코스만을 밟다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지는 이제 막 일 년 반을 넘긴 열여섯 소녀라니까.“그래도 평소 생각해온 게 있으니까 이렇게 바로 말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고대 시가나 비문학 지문 볼 때면 눈앞이 막 핑핑 돈다며. 그게 율혜 너한테는 제2외국어 개념이라니까.”“응. 아무래도 리짱은 담임선생님 과목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거거든... 안 되겠어! 오늘은 핑크빛 꿀떡에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 날이야. 우리 모두 다 가까이에서 친하게 지내야만 하는 과목이 한 가지씩은 꼭 있기 때문이야.”“그러게. 나도 율혜 너랑 뜻을 같이 해야겠어. 목메지 않게 마실 것도 사고. 괜히 막 떡 먹다 사례 걸리면 그게 진짜로 죽을 맛이거든.”“좋았어. 그렇다면 유미 씨랑 마트도 들르고 떡집도 들르는 거야! 웬만하면 그냥 꿀떡 말고 핑크빛 꿀떡만을 수집할 목적으로 말이야.”하루 웬 종일까지는 아니지만 오후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핑크빛 꿀떡의 열연.덕분에 예린 또한 새로운 결심이 가능했단다.율혜와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어서는 밀크 초콜릿과 핑크빛 꿀떡을 들고 귀가해보기로.만약 제 운이 빗나갔다 한들 제 손에 들린 이상한 조합들로나마 잘도 달달한 저녁 시간이 되겠지 싶었다니 말이다.***일관된 리듬으로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는 걸 보면 생각 없이 내리기만 건 아닐 듯한데.그래도 그렇지.제 시야에서 두 눈이 빠져라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때때로 눈 건강을 위해 스팀 안대를 끼고 자면 뭐 하나, 평소 행실이 저 모양 저 꼴인데.“나 끝.”“……!”“할 거 다 했다고. 이제 너랑 놀 수 있어.”초시계를 앞에 두고 수학 킬러 문항을 푼 건 제 쪽인데 표정만 보면 녀석이 다 푼 거 같다.유리창에 비친 표정이 어찌나 어리벙벙해 보이는지 이쯤에서 말 걸기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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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유난도 관심이라는 거야 (2)

“아무튼 래운아.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는 마. 율혜가 휘안이를 많이도 아껴. 그건 휘안이도 마찬가지지. 래운이 너도 보자마자 알 수 있을 거야. 그래서 그 둘이 만나는 거구나 하고.”“몰라. 그 둘이 가깝게 지낸다는 사실부터 마음에 안 들어. 차휘안 걔가 그렇게까지 아기 토끼 상 그 자체라고? 글쎄, 그건 모르는 거지. 내가 본 사진이 다 보정했던 걸 수도 있잖아.”휘안과의 사자대면 약속을 잡기 한참 전부터 휘안의 눈코입이 나온 사진 한 장이라도 보여 달라고 온갖 떼를 다 쓰던 녀석.의외로 래운의 주장은 근거가 타당했다.상대방은 저를 실제로 보기도 전 사진이며 영상이며 모든 정보를 접했을 텐데 저는 그 생김새 하나 모른다는 게 불합리하다는 쪽.그렇게 율혜는 휘안에게도 동의를 구한 뒤, 제 선에서 휘안의 얼굴을 공개하게 되었다니까.“글쎄. 아무 것도 안 믿는다는 애치고는 엄청 관심 있게 구경했다던데. 율혜는 그 모습이 인상 깊었나봐. 그렇게까지 조용할 줄 몰랐대.”“뭘 엄청 관심 있게 구경해. 상황 상 저장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체리가 자기 핸드폰으로만 보여줬다니까. 차휘안 초상권 엄청 소중하다고 전송 같은 거 안 된댔어.”제 핸드폰에 휘안의 사진을 저장할 수는 없었지만 제 머릿속에는 저장했다는 래운.다만 아직은 실물을 접하기 전이라니 녀석이 웬만큼 생겼다는 건 진실로라도 입에 발린 소리로라도 내뱉지 않겠다는 입장인 거다.“응. 율혜가 잘 행동한 거 같아. 솔직히 너도 다행이지. 네가 휘안이 사진 갖고 있으면 뭐해. 아마 수시로 확인하다 밤만 지새웠을 텐데.”“아, 몰라~ 그래서 차휘안 걔는 알기는 알까? 내가 걔 때문에 이렇게 심란하다는 거 말이야.”어떻게 제 마음 한 번 바로 읽어줬다고 바닥에 드러눕는 동시에 이리저리 앓는 소리.그러다 뒹굴뒹굴 굴러 침대 프레임 가까이로 다가가는데 그건 또 못 참겠지 싶어 한 소리 크게 나간 방주인이었다.“야! 너 또 침대로 올라가기만 해. 난 외출복 입고 침대 위로 안 올라간다고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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