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월로부터 시작된 우리: Chapter 121 - Chapter 130

189 Chapters

<121화> 갓 구운 빵 마냥 들떠서 (1)

수업 시간이 오 분 정도 남았을 무렵인가.벽에 걸린 대형 시계와 칠판 속 판서를 번갈아보다 제때 울린 종소리에 확신했다.오늘은 뭔가 느낌이란 게 왔다고.물론 결과적으로는 절반만 맞혔다는 거다.우리 반이 빨리 끝나면 뭐하나.남의 반은 빨리 끝내줄 생각이 없다는데.그렇게 옆구리가 시릴 대로 시려오는 대로 남의 반에 속한 한 사람만을 영원히 기다렸다.글쎄, 어느 두 사람은 2년 내내 같은 반으로 배정되어 시도 때도 없이 달달한 분위기라는데.그건 아무래도 저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지.덕분에 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 사람을 보자마자 약간의 심통이 새어나와서는 자리를 옮긴 지금 역시 괜히 막 마음이 쓰인다는 거고.“예린아. 이젠 좀 기분이 나아졌어?”“응... 미안해. 종례 시간이야 담임선생님 재량인 거 아는데 아까는 내가 너무 철없었어. 재이 너 보자마자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몰라.”“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니 너무 다행이네. 예린이가 그렇게 먹고 싶다던 이 집 떡볶이. 대기 줄 없이 바로 들어와서 다행이다. 빈말이 아니라 이 집 조명도 예린이를 알아본다니까.”“기각~ 말에 영혼이 부족해. 하지만 라면 사리가 거의 다 익은 시점이니만큼 좀 봐줄게.”하여튼 입바른 소리는 둘째 치고, 웃는 게 예쁘고 몸까지 딴딴해서 봐주는 줄 알아라.내 소나무 취향만 아니었다면 떡볶이 탈탈 털어먹는 거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거라고.어쨌든 남의 반 복도에 서서 이십 분 가까이 제 시간을 할애하게 만들었는데, 여러모로 표정 관리라는 게 안 되기 충분했다니까.“좋다. 라면 사리 덕 제대로 보네.”“응. 라면 사리도 라면 사리지만 재이 네 다정함 덕분에 별로인 기분은 아까 전에 다 풀렸어. 역시 난 분위기에 휩쓸려간다는 애야.”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마주하니 이번 한 주도 휘뚜루마뚜루 흘려보냈구나 싶다.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같은 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교류라는 게 덜 하고 누군들 새 친구 사귀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그러니 율혜와 휘안 이외에도 친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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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갓 구운 빵 마냥 들떠서 (2)

“재이... 넌 진짜 최고야! 내가 오늘 들은 말 중에 제일 솔깃한 제안인 거 있지. 내 현재 성적으로 가능성 있는 학교들 중에 캠퍼스가 예쁜 곳 위주로 찾아봐야겠어. 어쨌든 한 번 입학하면 최소 4년 내내 다녀야 하는 데잖아.”“좋지. 이번 주는 모의고사 준비해야 하니까 다음 주에 가는 걸로. 주말 하루 통째로 잡고 여기저기 둘러보자. 분명 도움이 될 거야.”날짜에 시간까지 확정지은 주말 캠퍼스 투어 약속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 보이는 예린.늘 그렇듯 떡볶이 국물에 삶은 계란도 잘만 으깨 먹는다는데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하루 종일 한 풀 제대로 꺾인 예린을 떠올리겠냐고.하여튼 누구 못지않게 참 단순하지.시간이 지날수록 최애와 그 팬은 닮아간다?글쎄, 팬 입장에서 나오게 된 명언치고는 그 말이 마냥 희망사항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물론 매너 있는 남자답게 할 말 못 할 말 가려낸다는 재이는 예린 앞에서 래운의 이름을 담지 않기로 했다지만 말이다.***어쩐지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이 완벽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작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는 거야.열두 시 정각에 장문의 메신저를 보내고도 남았을 법한 인물이 하루가 다 끝나갈 때나 되어서야 뒤늦은 축하 인사를 건네 온 상황.분명 그 당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꽃들이 더위를 타기 시작한 시점에서야 해결된 의문이라니.백년 만년 딩크족일 거라던 미래 이모에게 작은 콩알이 하나가 뱃속에 심어진 사건.아무튼 콩알이의 안정기가 지나고서야 유미 씨를 거치지 않고 리짱에게도 직접 그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니 리짱은 감동뿐이었다는 거지.“그래서 미래 이모네 아기는 올해 가을에 태어날 예정이래. 한국에서 살게 된 이후로 처음 만나는 아기 동생이야. 정말이지 너무 기대돼. 아무래도 막둥이라니 말이야.”“헤헤. 아직 성별도 모른다는데 우리 율혜 제대로 들떴네? 벌써부터 막 두근거려?”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존재를 위해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리짱.일본에서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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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갓 구운 빵 마냥 들떠서 (3)

“봐봐. 지금의 휘안이는 우유크림빵이라고 할 수 있어. 맨질맨질하고 방긋 솟아오른 볼.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기본 장착된 우유크림이야.”“응. 교장선생님 연설 내내 잘도 졸았을 것으로 추정돼. 지율혜 네 설명을 듣자하니 그림이 바로 그려지거든.”“역시 도준이 너라면 바로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어! 어때? 확실히 모닝빵보다는 달콤한 느낌이지? 반죽에 상처 하나 없는 빵 말이야.”어떻게 하면 먹고 싶은 빵을 나열하다 애정 관계를 논할 수 있는 흐름으로 번질 수 있는지.물론 그 흐름에 대한 고민이란 제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생각해보는 게 맞을 듯하다.조금이라도 맞장구의 템포를 늦췄다가는 잽싸게 날아오를 훅이 예상된다니 말이다.“그러게. 불과 몇 시간 만에 모닝빵에서 우유크림빵이 다 되고 말이야. 휘안이 얘가 원체 잘 안 붓는 살성이기는 해도 관심 있게 지켜보자면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거든.”“그렇다면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억지로 일어난 휘안이는 소금빵이라는 것도 이해해?”“어, 이해하지. 잠을 못 자면 사람은 끝없이 예민해지잖아. 모닝빵은 아침에 일어나서 숨 돌릴 틈이라는 게 있었다는 거고, 소금빵은 그 틈 하나도 없었다는 거니까. 설명 완벽하지?”“우와... 이게 웬일이야. 이렇게까지 말이 잘 통하는 도준이라니. 휘안이랑 다른 반으로 떨어져 지내는 내내 휘안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나봐.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잖아!”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고 본 건데 이제야 뭔가 좀 통하는 거 같다는 확신에 찬 눈빛.제 인내심을 대가로 지율혜네 어머님께서 찍어주신다는 무료 증명사진을 받아내기.그래, 도준은 원하는 바가 분명했던 거다.그러니 아기 토끼 커플과 방학식 하굣길을 함께 하기로 하고, 율혜의 아무 말 대잔치에도 뭐라 제지하지 않았던 거지.물론 휘안이 던지는 아무 말 대잔치라면 그 인내심이 그새 밑바닥에 다다를 테지만 말이다.“그러게. 율혜 말대로 내가 막 아른거렸나봐. 어쩐지 오늘 아침에도 나를 막 엄청 반겼어. 방학식 당일에도 같이 등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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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고요한 마법사의 시끄러운 인사 (1)

방학식에는 교복 차림의 증명사진을 찍기.큰 이벤트마냥 날을 정해둔 건 아니지만 오늘로서도 벌써 세 번째 촬영이 이뤄졌다.이건 작년 하복 차림의 휘안이.이건 작년 동복 차림의 휘안이.그리고 이건 올해 하복 차림의 휘안이.아무튼 이렇게 줄지어놓고 보니 리짱의 애정을 토대로 잘 성장 중인 하나뿐인 아기 토끼가 확실해보여.리짱만이 알아보는 성숙함이 보이니 말이야.“율혜야. 이제 곧 맛있는 밥이 나올 때라는데. 율혜한테 중요한 거 있으면 한쪽에 치워둘까?”“응. 물건 관리는 제때 해야 해. 리짱이 어떻게 모은 증명사진인데 말이야. 물론 증명사진 말고 스티커 사진도 소중하지만.”“헤헤. 나 그럼 음식 담을게. 오늘은 전부 다 우리 율혜가 좋아하는 음식들~ 휘안이가 우리 율혜를 위해 앞치마도 입고 요리했지요~”밥이 다 됐다는 휘안의 말에 테이블 위로 나열했던 증명사진이며 스티커 사진이며 각종 추억들을 다시금 지갑 속으로 모셔두는 율혜.이어서는 제 핸드폰으로 휘안의 뒷모습을 찰칵 하니 찍고는 식사할 준비도 바로 끝냈다.휘안이 준비한 오늘의 스페셜 식단이란 데미글라스 오므라이스에 양송이 스프.여담이지만 사진 스튜디오를 나서기 전, 휘안은 율혜가 보는 앞에서 도준에게도 점심을 같이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물론 도준은 칼같이 거절하고 집으로 떠났지.그건 아무래도 정해진 퍼포먼스의 개념으로 휘안은 도준을 또 한 번 붙잡지 않고 율혜만을 제 공간으로 데려갔다니까.“띵동~ 오늘의 점심이 도착했습니다.”“우와~ 어제 점심으로는 무성의한 코다리 카레 튀김이 나왔는데 오늘은 완전 색달라. 어떻게 이런 회오리 모양도 잘해낸 거야?”하얀색 접시를 가득 채운 데미글라스 소스와 그 위 회오리 모양으로 장식된 샛노란 오믈렛.또 하나의 포인트로는 얇게 늘려진 생크림.아무래도 휘안은 율혜가 좋아할 만할 것들로 시선을 사로잡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니 말이다.“율혜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바로 잘해냈지. 율혜, 먹다가 소스 모자라면 오카와리도 좋아.”“얏타~ 그렇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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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고요한 마법사의 시끄러운 인사 (2)

“어… 그러게? 내 몸이 따뜻해서는... 아, 나 오랜만에 말문이 제대로 막혀버렸는데?”“괜찮아. 아주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잘 말하고 있어.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던 건 내 말에 감탄해서 그런 걸 거야. 리짱은 긴장한 휘안이를 이해할 수 있거든.”“우와~ 그걸 또 이해해? 우리 율혜, 말을 왜 이렇게 잘하지? 나 막 정신없이 말려드는데.”“이런, 이런. 오늘도 온전한 정신을 되찾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우선은 맛있는 밥부터 먹어볼까? 식사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그새 또 기력을 차리게 될 거야. 리짱은 그런 휘안이가 예상된다는 거거든.”평소 저 혼자였다면 별 거 아니라 지나쳤을 일들이 율혜의 시선에서는 별 게 다 된다.그 과정은 저로 하여금 사색을 가져다주고 또 다른 율혜의 모습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지루할 틈이란 단 한 개도 없게 만들어주지.물론 율혜가 아닌 다른 이들로서는 안 된다.제 아무리 가까운 이들이 저에게 늘어놓는 재미난 이야기라 할지라도 한 단계 앞서나가는 궁금증은 고사하고 수긍만 더하게 될 뿐이니까.“그럴게. 그니까 밥 다 먹었다고 바로 떠나면 안 되는 거야. 율혜, 나랑 오래오래 놀다 가.”“응. 밥 다 먹고, 보스몬도 잡고. 휘안이 영어 단어 받아쓰기도 봐주고, 학원 갈 준비를 다 마쳤을 때. 리짱은 그때부터야 떠날 수 있지.”“응~ 앞으로 최소 세 시간은 함께해야 해. 율혜 어머님께서 율혜랑 퇴근할 때가 당겨지는 건 예외라지만. 그거 아니고서야 못 벗어나.”몇 없는 제 관심의 축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어 생각지도 못한 틈으로 관심을 겹겹이 늘려주고 제 감정을 바로 헤집는 모든 근원.그건 딱 우리 율혜만이 가능한 일인지라 오늘도 웃음 끝이 잘만 헤퍼진 휘안이었다.***일 년 코스인 캐나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귀국해서야 또 다시 정해진 시간표대로만 움직이는 그저 그런 대학생이 되어보고.막 학기야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등교할 예정이었으니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다.다만 문제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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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고요한 마법사의 시끄러운 인사 (3)

얼씨구, 감히 저보다 서열이 한참 높은 제 누나를 상대로 말 한 마디 안 지려 하다니.하지만 상대는 예민함으로 뭉친 고3이다.그러니 괜한 혼란을 야기하는 태도보다는 맞장구를 치는 각설이의 태도가 정답이겠지.허무맹랑한 반격이 아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덫을 놓는 작전으로다가 말이다.“하하~ 우리 휘안이가 누나 진가를 제대로 알아봐주네. 요즘 한참 감수성 폭발할 때지? 실기도 준비해야 하고. 수능도 준비해야 하고. 이맘때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때잖아.”공감으로 시작해서 공감으로 끝나는 대화 방식이란 다음 단계를 위한 떡밥 회수 장치.물론 제 근사한 덫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니 한 템포 더 미루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그래도 아예 못할 건 아니던데? 그냥 다 떠나서 나한테는 율혜가 있잖아. 날 지켜봐줘서 그런지 할만 해. 난 멋있어 보이고 싶으니까.”“어머, 얘가 또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네. 안 되겠어. 너희 둘 다 입시만 끝나봐. 내가 하루 날 잡아서 풀코스로 잘만 놀아줄 테니까.”“진짜? 그럼 그날은 누나가 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엄마 아빠 카드 말고 누나 카드로만~”“에휴, 율혜 걔도 알아야 할 텐데... 휘안이 네가 율혜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두 눈에서부터 광이 막 도는 거 말이야. 율혜도 알기는 해?”아무렴 율혜의 이야기에 더욱 샐쭉이는 입매.결국 소안 스스로 한 템포 의도를 늦췄던 건 기약 없는 때까지 늦춘 거나 다름없게 되었다.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대화의 방향성이란 율혜의 율혜에 의한 것들로만 가고 있다니까.“그거야 다 알고도 남지. 율혜는 나뿐만이 아니라 세상 온갖 것들 관찰하는 걸 좋아해. 그니까 내 표정 하나 맞추는 건 일도 아니야.”“그래. 그니까 전에 방 탈출 카페 갔을 때도 큰 활약을 펼쳤던 거지. 어쩜 그렇게 눈썰미가 좋아? 스태프들도 막 놀랐잖아. 한 시간도 안 채우고 탈출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었다고.”“응. 평균 탈출 시간대보다 빨리 탈출해서 놀란 것도 맞지만 다른 의미로도 놀랐을 거야. 율혜가 워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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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 재고 따질만한 여유인가 (1)

평일만 됐다 하면 어머님 껌딱지로서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한 자리를 지킨다는 율혜.휘안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오늘도 역시 나 홀로 레이스로서 걸음을 재촉했다.한 시라도 빨리 지하철에 올라타 목적지까지 경보하듯 달려야 제 니즈가 충족될 거라니까.그렇게 1층 꽃집에 잘난 제 얼굴 들이밀고 연기 학원에서 돌아왔음을 알리면 우리 오민주 여사께서는 막내아들 바로 내보내는 손짓.그리고 그 손짓에 화답하듯 당장이고 옆집으로 달려가 계단도 두 칸씩 훌쩍 건너뛰면 율혜가 짠하고 반겨줄 것이었다.“휘안이 도착… 뭐야? 아직도 있었어?”“휘안이다! 오늘도 성실하게 연기 학원에 다녀온 휘안이가 의젓하게도 제때 귀가했어. 모두들 휘안이를 향해 칭찬의 박수 파치파치~”듣기 좋은 칭찬의 박수 파치파치여도 어물쩍 넘어가는 질투란 쉽게 존재할 수 없는 법.휘안은 저에게 제일 큰 박수를 보내오는 주인공에게 다가가 축 늘어뜨린 입꼬리로서 한껏 쳐진 제 기분을 속삭였다.“응... 오늘도 해야 할 일 최선을 다하고 우리 율혜에게만 환영받고 싶었어. 근데 손님들이 이 시간까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네. 쟤들은 왜 이렇게 율혜 곁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눈치가 너무 없는 거 같아.”“에구구, 슬라임 손님들이 다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에서 벗어나 크게 속상하고 만 휘안이야.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정이 있었다는 거야. 휘안아. 이들의 사정을 한 번 들어볼래?”“뭐,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율혜가 말해주는 거라면 다르지. 비밀 이야기라면 듣고 싶어.”휘안이 항시 원하는 건 율혜의 옆자리.하지만 제 시야에 예상에도 없던 두 사람이 들어선 순간 저에게 집중되어야 할 율혜의 관심이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안 거다.그러니 비밀 이야기를 무기로 저희 둘이서만 대화를 주고받을 거라 대대적인 선포를 다했지.“좋았어. 그렇다면 짧게 상황을 설명해볼게. 예린이는 슬라임을 받으러 왔고, 재이는 그런 예린이를 따라왔어. 그리고 이 둘은 곧 있으면 영화관에 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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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재고 따질만한 여유인가 (2)

“율혜야~ 우리 율혜는 우유 푸딩 슬라임을 만들어서는 나한테도 하나 선물해줬잖아. 그럼 이번에는 황치즈 마카롱 슬라임도 만들어주면 안 돼? 율혜가 즐겨먹는 간식 시리즈로다가.”“간식 시리즈?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다! 황치즈 마카롱은 말이지. 단짠단짠한 맛이야. 근데 슬라임이라 먹을 수는 없으니까 맛 대신 향으로 승부하는 거지. 그리고 소리는 새하얀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득뽀득한 소리가 좋겠어.”“좋다. 그럼 손님들 자리 이동할 때 우리도 밖으로 나가볼까? 때마침 우리 집 냉장고에 황치즈 마카롱이 있거든. 누나가 나랑 율혜 먹으라고 여러 맛으로 잔뜩 사온 거 있지.”“진짜? 소안 언니라면 그냥 디저트 가게가 아니라 아주 맛있는 디저트 가게에서 사왔을 거야. 리짱이 예상이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방학에는 아침 겸 점심 개념으로 첫 끼.세 식구 모두 모여 먹는 저녁으로 두 끼.이런 관계로 방학 중 율혜의 간식 시간이란 딱히 규정되어 있지 않아 날마다 크게 끌리는 음식이 없는 한 넘어가도 그만인 개념이었다.그리고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휘안은 간식 시간을 핑계 삼아 율혜와 함께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유난히도 좋아했다.“그러자. 우리 집 가서 맛있는 마카롱도 먹고, 재밌는 보드게임도 하자. 그리고 오늘 시연했던 대본 연기도 보여줄게. 학원 수강생들 제외하면 우리 율혜가 첫 번째 관객인 거야.”“좋아! 근데 말이야. 휘안이는 영어 학원 숙제를 다 끝낸 게 맞을까? 나한테 모의고사 하나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영어 학원에 가는 건 내일이니까 확인 차 물어보는 거야.”매일같이 달라지는 율혜의 현재 위치와 식사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는 편이라는 휘안.그에 반해 율혜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휘안의 굵직한 스케줄을 통째로 외우고 사진 스튜디오 체류 시간도 그에 맞춰 결정하는 편이었다.그러니 안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율혜는 엊그제 휘안이 지나가듯이 말한 학원 숙제 하나 정도는 쉽게 잊지 못했던 거지.더욱이 휘안이 영어 학원에 가는 시간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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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재고 따질만한 여유인가 (3)

잠깐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가느다란 속눈썹 파르르 떨며 멍하니 로딩을 거쳐야 하는 율혜.그 모습은 학교에서 많이 봐왔다.그러니 저와 한 침대에 누워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다,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어, 자고 일어났을 때의 표정 또한 바로 그려지지.지금도 봐라.무언가 제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싶으면 남에게 쉽사리 내어주지 않겠다는 율혜인데.아쉬운 건 오늘은 이런 저런 일과로 낮잠 시간대를 놓쳤다는 거, 딱 그거 하나였다.“그치. 오늘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코 하는 수밖에 없어. 리짱은 유미 씨와 퇴근할 때가 가까워졌고, 휘안이는 오늘 할 일들이 남았고. 따라서 같이 코 하는 건 다음 기회라는 거지.”“알았어. 그럼 다음부터는 율혜랑 코 하고 싶은 시간대도 생각해둘게. 두 시에 누워서 세 시에 잠들고 다섯 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는 계획으로. 어때? 그럼 지금보다는 완벽하지?”“응. 그렇다면 미리 약속하고 낮잠을 자기로 한 날에는 이 옷도 챙겨와야겠네? 이건 커플 티셔츠라 낮잠 잘 때 필수라는 거잖아.”“그럼~ 율혜랑 나랑 커플 티셔츠를 입고 낮잠에 들면 얼마나 평화롭겠어. 게다가 자고 일어나면 더 통통해진 애교살도 볼 수 있을걸. 율혜만큼은 꾹 하고 눌러봐도 좋아. 율혜는 내 여자 친구잖아. 그니까 날 다 허락할게.”아마도 오늘 당장 율혜의 옆에서 낮잠이 들었다면 다섯 시보다는 이르게 일어나서 곤히 잠든 율혜를 두 눈에 담아두기 바빴을 거다.그러다 제 인기척에 율혜가 뒤척이기 시작하면 저 역시 이제 막 깨어났다는 듯 실눈으로 율혜와의 거리를 재봤을 테지.물론 겨우내 잠에서 깬 율혜가 멍 하니 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와 한 뼘 이상 멀어질 태세라면 입술 도장으로 간격을 좁혀봤을 테고.아, 방금 한 생각은 한낱 상상보다 한 폭의 그림으로 분류해야 올바른 카테고리가 되려나.한때 입시 미술을 겪어봤던 만큼 무지렁이 비전공자보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편.근데 이런 복잡한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율혜는 제가 다 보는 앞에서 애교살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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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천하무적은 낙엽을 밟아 (1)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의미 있는 개학.그 개학을 기념해 전국의 수험생들 앞으로 실물이 없는 여섯 장의 카드가 주어졌다.투자란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학교의 대강의실 창문 하나 정도야 기꺼이 바꿔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써 합당한 결과를 기다리는 행위.투기란 자신이 목표로 하는 학교에 출입 금지를 당할 위험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창문에 조명에 기둥까지 살림살이를 싹 다 바꿔주고 제대로 된 한 탕 노려보겠다는 행위.그래서 더 머리가 아픈 거다.여섯 장의 카드를 소신껏 활용해야 한다는 건 익히 들어왔지만, 현실에 안주할지 더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할지는 각자의 몫이라니까.솔직히 아닌 척 해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제 경쟁자의 동향을 살피고 있지 않던가.“도준아. 너 이렇게까지 생각이 많은 애였어? 미래의 건축학도께서 이리도 맥을 못 짚어서 어떡해. 나랑 율혜는 진작 다 털어버렸는데.”“후... 그만큼 재수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휘안아. 이건 웃음으로 소비될 게 아니야. 재수 하면 시간이며 돈이며 다 날아가는 거라고.”“에이, 내가 또 언제 막 웃었다고 그래~ 다만 몇 날 며칠도 아니고 수개월을 고민해서 정한 건데 지금 더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냐는 거지. 건축학과로 마음 다 굳힌 지 오래잖아.”“휘안아. 마음만 굳히면 뭐해. 건축학과라고 다 똑같은 건축학과가 아니야. 난 평생 갈 네임 밸류를 따지는 거야. 대학 간판은 무시 못해.”아기 토끼 커플에게 백스텝이란 없는 법.율혜와 휘안은 첫날의 동향만 바로 살피고 이틀째가 되어서는 제 몫의 카드를 털어 넣는 방식으로 대학별 수시 원서 접수를 끝마쳤다.그러니 휘안의 입장에서야 원서 접수 마지막 날까지 눈치 싸움에 참전해 괜한 스트레스를 받겠다는 도준이 안타까워 보인 거다.대학 간판 획득과 관련해 상향, 소신, 안정의 조합 고민이 중요한 과정이라는 건 인정.근데 여러 번 고민해본들 제 경우의 수가 그대로라면 그건 최선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인 고집일 뿐이라는 거지.“아, 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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