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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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네가 눈치 채지 못하게 (3)

다행히 아픈 율혜의 상태를 고려했는지 뭐라 반박도 않고 예린 쪽으로 곧장 따라붙은 재이.율혜는 다른 친구들 틈으로 숨어들어 보건실 쪽으로 느린 발걸음을 이어가기 시작했다.다들 삼삼오오 모여 한참 재미를 보고 있을 때라면 저 홀로 사라지는 건 관심 밖일 테니까.녹색 잎들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 쉼터에 재이의 그림자까지 더해져 효과가 충분했던 저만의 그늘 막.이젠 믿을 거라고는 제가 만든 손 그늘이 전부였으니 한 시라도 빨리 이 땡볕을 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싶었다.“율혜야.”“아...”“나도 율혜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려고.”“근데 난 보건실에 가는 건데...”보건실은 아픈 사람만 가는 거라고 했는데.농구 게임을 잘만 즐긴 휘안이는 어디 다친 데도 아픈 데도 하나 없을 게 확실한데.아픈 건 리짱인데 휘안이는 왜 따라붙지.“음~ 그럼 나도 보건실에 가야겠다. 아픈 데를 정해놔야겠어. 율혜가 좀 정해줄래?”“…보건실에 갈 거라면 손이 아프다고 해. 휘안이는 좀 전까지 농구를 열심히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거짓말이 아닐 거야.”“좋아. 근데 그 말이 거짓말일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짜로 다쳤었거든. 자, 영광의 상처~ 어제 장미 꽃다발 만들다 살짝 찔렸어.”가시에 찔렸다고는 해도 상처 하나 없는데.그저 예쁘장한 손가락을 자랑하는 거 같은데.도대체 어디가 다쳤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군.“그렇구나. 나도 꽃다발 좋아하는데.”“진짜? 그럼 최근에도 받아본 적 있어?”“응. 나는 매년 받고 있어.”꽃다발이야 작년이고 올해고 매 생일을 포함한 각종 기념일마다 꼬박꼬박 받아왔다.리짱은 보통의 친구들이 아니니까.“음... 그럼 누군가 직접 만들어준 거야?”“그러지 않을까. 돈 주고 사오는 거니까. 누군가는 팔아야 해서 열심히 만들었을 테고 누군가는 그게 필요해서 돈 주고 사왔을 테고.”“아하~ 그럼 사온 것만 받아봤겠네? 주는 사람이 직접 만든 건 못 받아봤다는 거고?”그날인 탓에 감수성이 한껏 예민해졌나.휘안이 건넨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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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갈림길에 선 나는 (1)

체육 시간 중간부터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다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서는 뭔가 경직된 표정으로 아슬아슬하게 등장하고.3점 슛도 잘만 넣었으면서 다치기는 뭘 다쳐.지율혜가 보건실에 간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그새 지율혜 꽁무니 따라 미꾸라지마냥 사라진 게 전부일 거면서.“어때? 보건실에서 땡땡이 친 기분은?”“땡땡이? 나 땡땡이 안 쳤는데. 손 아파서 보건실에서 치료 받고 왔어. 역시 장미 가시 하나에만 찔린 게 다행이다 싶었거든.”체육 수업 다음으로 오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칼 같이 이뤄진 종례.다시 말해 지금은 하교만을 앞둔 상황으로 휘안을 붙잡고 추궁하기 최적의 시간이었다.“누가 말이라도 전해놨는지 종례할 때조차 지율혜를 안 찾더라? 걔 아직도 보건실이야?”“응. 아프면 보건실에 가서 푹 쉴 수도 있지. 그러다 종례 떼까지 쭉 있을 수도 있는 거고.”“그래. 뭐 사실 지율혜 걔가 체육 시간부터 시작해서는 담임 수업까지 다 빠지고 종례 다 끝날 때까지 안 나타난 건 관심 밖 이야기야. 근데 넌? 도대체 손 어디를 다쳤다는 건데?”소연이 자신의 손을 휙 낚아채자 낮은 한숨과 함께 제 손을 확 빼버리는 휘안.늘 상 하는 투정 정도야 받아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의도가 다분한 말과 과도한 행동이 가미됐다면 여기서부터는 아니었다.안 그래도 오늘은 갈 길 바빠 죽겠으니까.“내가 알아서 해. 다친 건 나잖아.”“그니까 어디를! 왜 제대로 말을 안 해!”요즘 따라 시도 때도 없이 감정적인 소연.제 아무리 학교 축제 준비로 평소보다도 더 날카로워질 수는 있겠지만 그걸 저에게 이런 식으로 푸는 건 제 쪽에서 사양이었다.“소리치지 말지. 귀 아파. 그리고 소연이 너도 잘 알잖아. 누가 나 함부로 만지고 잡아당기는 거 진짜 싫어한다는 거. 근데 왜 그럴까, 응?”잡아당기고, 낚아채고, 꺾는 느낌.휘안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촉감.소연이라고 그걸 모를 리 있겠는가.잘 알면서 제 마음이 또 앞서버린 탓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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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갈림길에 선 나는 (2)

“에이, 나보다는 예린이 네가 훨씬 더 잘 알지. 난 재원이랑 안지 얼마 안 됐다니까. 솔직히 창체 시간 아니면 따로 볼 일도 없고.”“그래도 아직까지는 박재원이 제일 편하지 않아? 전학 온 학교에 기존에 알던 친구 한 명이라도 있으면 괜히 막 안심일 거 같은데.”“음~ 예린이 말대로 내가 전학 온 첫날에는 그랬는데 그 다음부터는 달라지고 있어. 지금은 재원이가 제일 편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야.”율혜와 예린을 뒤따르는 휘안과 도준.분명 저희끼리도 말을 주고받을 법 한데 그것보다는 저희 앞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싶다는 건지 잘도 침묵을 유지했다.그러다 저도 어디 끼어들 만하다 싶으면 수시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모양새였고.“근데 오늘 보건실에 가서 짝 피구를 못 본 건 너무 아쉬워. 이전 학교에서는 그냥 피구만 했거든. 남녀공학만의 피구도 궁금했는데.”“그래? 그럼 너 이전 학교에서 그냥 피구 실력은 어땠는데? 짝 피구도 그거랑 비슷해.”“뭐지... 내가 잘한다고 말하면 나랑 경쟁할 기세야. 정말이지 나를 라이벌로 생각하나 봐.”예린과 함께 오붓한 대화 중이었던 리짱.근데 이리도 신성한 큐피드로서의 활동을 자꾸만 방해해오는 도준이라면 아주 잘못됐지.율혜는 도준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서라도 저와 예린에게 목적성이 없는 괜한 접근을 해오는 도준을 어렵게 만들어볼까 했다.아무래도 리짱은 저만의 계획이 있다니까.“라이벌은 무슨. 내가 너랑 피구를 어떻게 경쟁해. 엄연히 성별이 다르고 체격이 다른데. 그리고 우리 같은 반이다? 넌 그것부터 익혀.”“아하, 피구로는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거구나. 그렇다면 영어… 아니다! 영어로 경쟁하는 건 공정하지 못해. 내가 잠시 나쁜 마음을 먹었던 거야. 영어로 하면 내가 무조건 이길 테니까.”뜻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한 방 먹은 도준.휘안은 피식 하니 웃음 끝을 흘리며 이 대화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바로 궁금해졌다.제가 알기로 도준의 영어 등급이야 내신도 그렇고 모의고사도 그렇고 1등급에서 2등급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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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갈림길에 선 나는 (3)

율혜와 도준의 영어 성적 내기 그 다음 주제.율혜는 어디선가 주워들었다는 체리라는 인물에 대해 물어왔고 예린과 도준은 서로 앞다퉈 체리의 존재를 일러주기 시작했다.물론 휘안 역시 제 자신이 체리의 가장 큰 팬이자 SNS 펜팔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숨기려는 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다만 율혜가 저와 체리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따라서 율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내 평소와 같은 설레발은 삼갔다는 거지.그게 도준의 눈에는 잘만 보였고 말이다.“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것보다도 있지... 율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큰일이야. 전에 나 보고 아기 토끼라고 했잖아. 그래서 쭉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아기 토끼는 율혜 본인 아닌가 싶어. 어쩜 볼 때마다 아기 같아, 응?”그래, 제가 또 괜한 걱정을 했지.저는 갑작스러운 영어 성적 내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데 녀석은 제 가슴에 사랑의 불기둥이 솟구쳐 안달복달 못하겠다니까.“됐고. 둘이 보건실 가서 뭐 했어? 지율혜 따라간 거, 아니 보건실 데려다준 거까지는 오케이. 근데 뭘 하다가 늦게 돌아왔냐고.”“그냥~ 내가 장미 가시에 손을 다쳤다고 했잖아. 율혜한테 그 이야기도 들려주고 보건실 가서 치료 좀 받았어. 그게 공식적인 이유야.”“얼씨구? 그럼 비공식적인 이유는?”장미 가시 하나에 찔렸다고 추정되는 손가락에 얇은 반창고가 감겨져 있기는 하다.그게 보건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거겠지.근데 누가 그 치료를 삼십 분 넘게끔 받을까.이게 암만 속일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나한테까지 눈 뜨고 거짓말 할 일이냐고.“보건 쌤한테 치료 받고 나도 율혜 따라 침대에서 쉬다 가겠다고 했지. 그 다음에는 커튼을 치고 각자 침대에 누워서는 율혜가 잠들 때까지 손 꼭 잡고 대화를 나눴어.”“손, 손을 잡아? 그것도 침대에 누워서? 아니, 각자 누웠다고는 해도 남녀면 유별한 것을!”남녀면 유별하다는 도준의 큰 호통에도 전혀 아랑곳 않고 율혜에게 집에 가서 푹 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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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1)

학교 수업에 진심이라는 율혜는 저 앞의 칠판 보랴 선생님의 판서를 받아 적으랴 이리저리 돌아가는 고갯짓을 자랑하는 편.물론 그렇다고 매 순간 여유 없는 수업 시간만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한글은 또박또박 꾹꾹 잘만 눌러 쓰면서 영어 시간만 되면 확연히 휘날리는 필기체.일본어 시간은 딱히 받아 적을 게 없어 티가 잘 안 난다지만 영어 시간만 됐다 하면 그 누구보다 이른 여유를 되찾는 학생이었다.“율혜야. 율혜는 글씨체가 여러 개인가 봐.”“응. 영어는 이렇게 써야지 정답이야. 근데 휘안이는 천천히 써도 돼. 이건 따라 하고 싶다고 아무나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그러게. 난 어떻게 흉내도 못 내겠어. 율혜 다른 수업 시간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인데 영어 시간에는 전혀 딴 판이야.”“그래도 휘안이한테는 엄청 이득일걸? 지금도 봐. 이렇게 빨리 쓰고 휘안이가 다 쓸 때까지 휘안이를 기다려주는 중이었잖아.”속닥속닥 맨 뒷줄의 짝꿍으로서 꼭 붙어 떠들다가도 영어 선생님이 뒤만 돌아봤다 하면 펜촉으로 아무 문장 하나를 잡아 밑줄 긋는 척.그러다가도 아닌 건 아니라 말하는 율혜였다.“이런, 왜 휘안이 마음대로 밑줄을 긋지. 이건 중요한 단어도 아닌데 빨강색이 돼버렸잖아.”“아닐 걸~ 이거 엄청 중요해, 율혜야.”그럴 리가. 이건 별표 표시 하나 없는걸.유인물 핵심 단어 리스트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 왜 휘안이 마음대로 중요하다고 말하지.“꼭 외워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야. 율혜는 똑똑하니까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블루밍… 아! 휘안이가 꽃집 아들이라서?”“응. 발음도 예쁘고 뜻도 예쁘다? 이게 꽃을 피운다는 뜻이잖아. 스스로 피어나기도 하고. 그래서 좋아. 율혜도 좋아해줬으면 좋겠어.”그렇다고 리짱에게도 꽃을 피워낼 것까지야.이거 아주 리짱 교과서에 꽃 그림 하나 바로 못 그려냈다면 제대로 큰일 났을 거라고.“휘안아. 휘안이는 미술을 오래 배웠다고 했지? 그래서 예쁜 꽃도 그릴 줄 아는 거고.”“응. 중학생 때부터 쭉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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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2)

“아, 당연하지~ 때가 어느 때인데 그래.”“맞아. 다들 모르는 관계도 아니고. 보니까 부원 구성도 학년도 골고루 섞어서 배치했네.”“진짜 쟤는 몸이 몇 개래. 반장에, 홍보부 회장 역할까지. 하여튼 박재원은 아무나 못해.”질문을 하는 건지, 아부를 떠는 건지.보아하니 이쯤에서 안녕을 하자는 뜻이다.물론 저 역시 그 뜻에 동의하는 바였고.“칭찬 고마워. 근데 나도 몸 한 개고 너희도 몸 한 개야. 그니까 각자들 자리에서 잘하는 걸로. 문은 내가 닫고 나갈게. 그만들 나가봐.”모이는 데 십 분. 나가는 데 십 초.물론 단 한 명만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앉아있었기에 재이는 그제야 올 것이 찾아 왔구나 하고 확신했다.“박재원… 나예린. 근데 여기에 지율혜?”연극부 쪽으로 배정된 취재 명단.소연은 그 명단 중 하나가 불만인 눈치였다.“왜 우리 연극부에만 2학년이 셋일까? 박재원. 이건 좀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어?”“아, 그거? 숫자 다시 한 번 세 봐. 1학년 인원이 2학년보다 적어. 그래서 임의 조정한 거고. 오히려 연극부한테는 잘 된 일 아니야?”“잘된 일은 무슨. 차라리 2학년 지율혜 빼고 다른 1학년 두 명 더 데려와줘. 그편이 더 잘 된 일일 테니까. 지율혜 얜 영 믿음이 안 가.”팔짱까지 낀 채 한껏 날선 말투의 소연.하지만 그 상대는 재이였고 다시 말해 그의 눈에는 소연이 너무나도 어설퍼보였다는 거다.함부로 구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니까.“글쎄다. 제비뽑기의 결과를 탓하는 거면 뭐라고 해야 할까. 성소연. 넌 왜 4반인데?”“그건 또 뭔… 야! 너야말로 말 돌리지 마! 난 지금 연극부 회장으로서 따지는 중이니까.”“그래. 1반도 있고, 2반도 있고, 3반도 있고. 근데 넌 하필 4반이잖아? 그거랑 같은 논리야.”“뭐래! 그냥 좀 바꿔! 그놈의 제비뽑기고 뭐고 취재는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잖아. 창체 시간까지 시간 한참 남았으니까 재조정하라고.”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네가 경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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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3)

“생각해봐. 우선 체력적으로 무리가 올 게 커. 다들 잘 알겠지만 이번 대본의 남녀 주연의 씬 수는 조연들보다 월등히 많은 양이거든.”“그럼 대본을 수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녀 주연이 힘든 거랑 전체 배역 선정에 있어 학년 구분을 두지 말자는 게 무슨 상관일까 싶어.”“아...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야. 근데 시간이 촉박해. 곧 있으면 시험 기간이잖아. 시험 끝나면 몇 주안에 무대에 서는 거고.”아, 학교 축제보다 중요한 건 학교 내신이다?연극부 회장인 저로서는 전혀 공감이 안 가는 내용이지만 다른 부원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니 주현의 의견이 맞는 거 같다는 눈치였다.“그래서 남자 주인공 둘, 여자 주인공 둘. 총 네 명을 주연 배우로 내세울까 해. 그럼 적어도 작년처럼 노 쇼는 없겠지. 더블 캐스팅이잖아.”메인 작가 입으로 작년의 노 쇼까지 담게 되니 더욱 더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무리들.이때 계속해서 아무 말 않고 소연과 주현의 대화를 지켜보던 휘안이 천천히 입을 떼보였다.“그럼 소연이는? 작년 선배들이 소연이를 메인 배우로 추천한 건 어떻게 되는 건데?”마현고 연극부 동아리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자신들만의 고유 관행이 존재했다.그 관행이라 함은 2학년 선배들이 1학년 후배들의 성과를 평가해 각 팀별로 메인 직책을 넘겨주는 것.올해 배우팀에서는 소연이, 현장팀에서는 도준이, 작가팀에서는 주현이 각 팀의 리더로 자리하게 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덕분이었다.더 나아가 소연이 연극부 동아리의 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배우팀 리더 자리를 발판 삼아 회장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거였고.“아, 휘안아...”차마 제 입으로 메인 배우 자리에 대한 정당성을 따져 묻기가 참 뭐했는데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혀 준 휘안이 너무나도 고마웠다.“어, 그건...”아니나 다를까 그새 할 말을 잃은 주현.그도 그럴 것이 주현 역시 연극부의 고유 관행 덕을 톡톡히 본 올해의 메인 작가였다.따라서 저를 메인 배우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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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미묘한 변화의 시작 (1)

이곳은 달콤 살벌한 취재 현장.취재 첫날인 오늘, 모든 동아리 회장들은 저희에게 배정된 홍보부원들에게 동아리의 부원 구성과 학교 축제와 관한 동아리 활동 계획을 간략하게라도 소개하기로 했다.각 동아리 회장의 안내에 따라 홍보부의 취재 방향이나 취재 비중 역시 동아리별로 상이할 수 있다는 걸 사전에 일러뒀다니까.그렇게 연극부를 취재하러 온 세 사람 역시 연극부 회장인 소연의 주도 하에 연극부의 정보를 전해 듣게 되었다니 지금은 맨 뒤로 빠져 배우팀, 현장팀, 작가팀 이렇게 셋으로 나뉜 팀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열중이었다.“근데 아까 맨 처음에 우리한테 설명할 때는 각 팀별로 모일 거라고 하지 않았어?”“그러게. 보아하니 배우팀이랑 작가팀 사이에 정리가 덜 된 안건이 있는 거 같아. 현장팀은 문제랄 게 없이 저희들만 화기애애해 보이고.”“주현이 말로는 작년이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색다른 대본을 작성 중에 있다던데. 이미 엔딩도 정해놨고 오타 검수만 남았다고 했어.”“그럼 캐스팅이 문제겠는데? 이 시점에서 배우팀에게만 문제가 될 거라면 그게 다잖아.”학교 소식이라면 꽤 밝은 편이라는 예린과 사리분별력 하나만큼은 꽤 타고났다는 재이.하지만 우리의 율혜는 휘안과 지니, 지니와 휘안의 상관관계를 다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더 트인 시각을 지녔다는 거다.“근데 난 있지. 왠지 한 쪽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 배우팀만 상황이 나쁜 게 아니니까.”방금 전까지 연극부의 세 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저희와 정반대인 율혜의 의견에 도통 감을 못 잡았다는 얼굴들로 어디 그 깊은 고견을 바로 말해보라는 뉘앙스였다.“아, 배우팀과 작가팀을 따로 나눠서 볼 게 아니라는 말이었어. 재원이 말대로 캐스팅이 문제라면 작가팀 입장에서도 문제일 거잖아.”표정들이 다 따로 노는 와중에도 서로에게 질렸다는 걸 숨길 수 없는 이들도 존재한다.가령 배우팀 리더 소연과 작가팀 리더 주현.그리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사이를 융화하는데 앞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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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미묘한 변화의 시작 (2)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세 사람 모두 복도 쪽으로 다급히 나서는 걸 보았으니 당연히 홍보부 일이겠거니 싶었다.근데 이거 참 볼수록 가관이네.복도 한 구석에서 악수를 하는 두 사람과 그런 둘을 뿌듯하게도 바로 담는 한 사람.분명 저 없는 사이 율혜가 또 별난 일을 벌였고 저 두 사람은 바로 끌려간 거다.그럼 저 역시 율혜 뒤로 바짝 달라붙어 그 별난 일의 정황을 바로 물어볼 수밖에.“율혜야. 홍보부에 뭐 기념할 일이라도 있어? 왜 갑자기 저 둘을 찍어주고 있는 거야?”“아~ 홍보부가 아니라 예린이랑 재원이의 발전된 사이를 기념하는 거야. 나랑 같은 편이 되려고 둘부터 다 같은 편이 됐거든. 그게 너무 기특해서 이렇게 증거를 남기려고.”그래, 어떤 사유로 저 둘과 율혜가 같은 편이 됐는지는 몰라도 율혜는 너무 즐거워 보인다.제가 속한 연극부를 취재하러 와서는 볼일이 다 끝나자마자 다른 이들을 취재하는 율혜라.휘안은 제 키를 바로 숙여 율혜가 바라보는 카메라 화면 속 두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근데 있지. 이 정도면 종신 계약 아니야? 성 떼고 이름만 부르는 호칭 변화에 뭘 이런 사진 증거까지 남겨. 원래 계약 같은 건 함부로 맺는 거 아니잖아. 이거 왠지 대단히 잘못 됐는데...”“예린아. 그 잘못된 느낌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느꼈어야해. 율혜 봐. 쟤 지금 신났어. 그니까 빨리 벗어나고 싶으면 저 사진작가님 말씀 따라 포즈부터 잘 취하는 게 먼저야.”제 피사체들이 뭐라 떠들든 한결같은 태도.다행히 얼마 못 가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건졌다는 율혜는 제 피사체들에게 여러 작품들 좀 보고 가라는 자신 있는 손짓이었다.근데 이걸 어쩐담.여럿 시선에 한없이 약하다는 두 피사체들은 율혜가 찍은 사진은 나중에 보겠다며 우선은 제 반으로 돌아가는 게 먼저라는데.덕분에 율혜 옆에는 휘안만 남았다는 거다.“우와~ 하나같이 전부 다 훌륭한데. 근데 율혜야. 원래 율혜랑 같은 편 하려면 이렇게 사진으로 증거까지 남겨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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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미묘한 변화의 시작 (3)

어떻게 말귀를 좀 알아들은 것 같다가도 행동하는 걸 보면 달라진 게 하나 없다.그저 휘안의 앞에서만 온갖 척을 다할 뿐 제 앞에서는 온갖 성질 다 드러내는 푼수.물론 밀어낼 때 밀어내더라도 한 번은 그 성질을 받아주고 밀어내는 저였지만 말이다.“이도준. 네가 보기에는 어때?”“그렇게 주어 목적어 딱 잘라서 물어보는데 뭐가 어때. 정리해서 알아듣게끔 다시 말해.”“아, 왜 저래. 모든 걸 영어 문법에 대입해서 말하지 말라니까. 하여튼 요즘 영어만 주구장창 파더니 주어 목적어 이런 타령이나 하지.”“그래. 안타깝지만 내가 좀 타령할 일이 있어. 영어 시험으로 성적 내기했거든. 그니까 뭘 어떡해. 내기하기로 한 이상 지지는 말아야지.”어쩌다보니 저와 율혜는 이번 시험에서 영어 성적 내기를 하게 되었고 저희 중 우승자는 휘안에게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게 된 상황.하지만 아직 영어 시험은 보기도 전이고 우승자도 달리 정해진 게 아니라니 소연에게 이런 사사로운 에피소드까지 전할 건 없었다.안 그래도 율혜에게 괜한 질투심 내비치지 말고 휘안의 친구로서 노선 똑바로 정하라는 제 말에 밤잠 못 이뤘다는 소연이었다니까.“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이해가 안 가. 그냥 늘 보는 시험인데 성적 내기 그딴 걸 왜 해.”“누가 너 보고 이해해 달래. 시답잖은 소리 할 거면 네 자리로 돌아가. 방해하지나 말고. 나 오늘 이거 말고도 해야 할 거 엄청 많아.”매 쉬는 시간마다 뒤를 돌아 휘안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퍼붓던 소연은 어느 순간부터는 우연이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도준의 자리만을 부쩍 찾아왔다.그러니 도준이야 그 의도가 훤히 드러나는 소연의 변화가 반가울 리 없었다는 거지.보나마나 율혜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거나 저에게도 동조해달라는 게 뻔했으니 말이다.“아니, 지율혜 쟤 있잖아...”“쟤 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니까. 휘안이한테 밉보이기 싫다면서 또 왜 그러냐.”“내가 쭉 관찰했거든. 근데 애가 좀 모자란 애 같아. 존재 자체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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