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월로부터 시작된 우리: Chapter 71 - Chapter 80

111 Chapters

<71화> 적극적인 내공 장착 (2)

“보자, 보자... 미술을 수년간 찍어 먹어본 경력으로 말하자면 이 색이랑 이 색. 두 개 겹쳐서 칠하면 색이 예쁘게 나올 거 같아.”“그렇다면 여기 벚꽃에는 말랑 핑크랑 투명 핑크가 정답이었나 봐. 참고로 이 두 개 모두 리짱이 좋아하는 색이거든.”#FFC0CB에 #FFFFFF를 어느 비율로 몇 스푼 희석했는지에 따라 결정되었을 법한 이름.휘안은 색연필의 컬러 차트를 곁눈질로 확인하며 율혜로부터 들은 색들의 이름을 다시금 되물었다.“말랑 핑크랑 투명 핑크? 설마 얘들 이름? 나 진짜 거짓말 안 치고 생전 처음 들어봤어.”“응. 아무래도 리짱 혼자서 만든 이름이라 휘안이는 처음 들어보는 게 맞아. 여기 컬러 차트에 나온 이름 말고 새로 지은 이름이거든. 그래서 위에 투명한 이름표까지 붙여준 건데?”“참나, 이젠 하다하다 색연필한테도 질투를 해야 하네. 얘들은 율혜한테 감사해야해. 어느 주인이 이렇게 예쁜 이름들까지 지어 주냐고.”아, 혹시나 했는데 제 예상이 맞아떨어졌다.한낱 사물에 대한 마음씀씀이도 넘쳐난다니.휘안은 한껏 뿌듯해하는 율혜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랑 핑크와 투명 핑크를 쥐고 포슬포슬한 색감을 구현해나기 시작했다.그러면 또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니까.“우와~ 휘안이 잘한다. 역시 경력자는 달라. 리짱은 신입 중에서도 너무 신입이었던 거야.”“헤헤. 그럼 나 혼자서 다 색칠해? 율혜가 다 색칠하라면 하고. 아니면 율혜 몫 남겨주고.”“다 색칠해줘, 다! 벚꽃은 휘안이가 다 해. 신입인 리짱은 경력자 휘안이를 구경할게.”“알았어. 그럼 편하게 구경하세요. 휘안이는 율혜 말대로 벚꽃 전체를 물들여볼 테니까요.”비록 올해 벚꽃 축제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온 세상 통틀어 지나쳐온 축제가 그거뿐일까.앞으로 두 달 정도만 더 지나면 한강에서 돗자리를 깔고 단풍 구경 할 저희들을 안다.그러니 서로의 존재를 몰라 숱하게 지나쳐온 순간들이 아쉽기는 해도 앞으로 함께할 날들을 생각하면 속상함보다는 설렘이 앞선다는 거지.“근데 율혜야. 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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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적극적인 내공 장착 (3)

“응. 당근을 못 먹는 휘안이랑 콩을 못 먹는 율혜. 그럼에도 나름의 대체 음식을 찾아내서는 이겨내려고 노력하잖아. 그니까 편식하는 우리 둘이서 예뻐해 주는 시간을 가지는 거지.”“어…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은 벚꽃 색칠은 나중으로 미뤄야겠어. 리짱만의 아기 토끼는 리짱과 함께 중요한 볼일이 있다니까. 물론 반박은 받지 않아. 지금 바로 출발이거든!”“그럼~ 무조건 율혜랑 나만 출발해야지. 자, 말랑 핑크랑 투명 핑크는 여기 잠자코 있으렴. 엄마 아빠는 잠깐 외출 좀 다녀올게.”그래, 미인의 사고방식은 난처함이 기본이다.누가 봐도 얼렁뚱땅한 이론이지만 확신을 갖고 주장하자면 서로 동요되는 건 시간문제.그러니 하루 중 이때만 뽀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둥의 제한이란 적합한 수가 못 되지.그저 오늘도 저희만의 새로운 쿵 짝을 만들러 색다른 추억 좀 쌓아보겠다는 쪽.평일 중, 아기 토끼 커플의 사랑 공식은 학교 이곳저곳을 쏘아 다니며 산책하기라니 말이다.***세 끼 다 먹어도 돌아서면 한참 배고플 나이.집에 가도 먹을 게 있다는 걸 알지만 꼭 이 시간만 됐다 하면 한 번 더 멈칫하게 된다.군것질에 주전부리 하면 이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 하에 편의점으로 눈길이 쏠리더라니까.“휘안아. 컵라면 하나만 먹고 들어갈래?”“도준아. 우리 거의 다 왔어. 오늘도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하루 잘 살았다 싶은 거야.”평소 같으면 제때 저녁을 챙겨먹겠지만 하교 후 학원으로 바로 이동해서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날이면 토스트나 핫바 같이 손에 들고 먹는 간식으로 일시적인 배고픔을 잠재운다.물론 휘안은 보이는 것과 달리 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의 취향을 골고루 누리는 이로 의외의 순간에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안다.그러니 오늘 같이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꼭 과일 몇 조각을 집어먹거나 셰이크 한 잔을 타먹는 걸로 적당한 배고픔을 즐긴다 하지.따라서 문제는 휘안이 아닌 도준이었다.도준은 보이는 것 그대로 열여덟 살의 취향만 고집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춘기 남학생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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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성장 과정의 애티튜드 (1)

낯간지럽지만 손잡는 게 익숙해졌다.오히려 잡지 않는 쪽이 허전하다고나 할까.물론 대화의 주제야 그리 거창하지 못하다.이번 여름 방학에는 무얼 할 계획인지.다만 저희의 대화 내용은 여느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오기 힘든 이야기라는 거다.저는 남들 다 가는 여름 피서 계획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고 특수한 상황에 처한 좀 더 색다른 규모의 계획 같은 걸 듣고 싶다니까.“그래서 이번에 캐나다 가면 운전만 할 거라고? 어디 막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딱 동네 운전만 접수할 목적으로?”“응. 연습 면허는 작년에 땄으니까. 이번에 가서 몇 주 더 밀어붙여야지. 감 잃지 않도록.”“아니, 근데 캐나다에서는 만으로 열여덟이 운전대 잡는 게 일반적이야? 뭐 하이틴 드라마 보면 거의 다 잡는 거 같기는 하던데.”어디 어린 나이에 운전대 하나만 잡을까.보기에는 맨날 노느라 정신없는데 너 나 할 거 없이 명문대만 가는 주인공 무리들에 저게 현실이면 꿀 빠는 거 확실하다 싶었는데.“음~ 한국이랑은 다르지만 부모님 소유 차로 등하교 하는 애들도 꽤 있어. 주마다 다르기는 해도 열여덟 아니면 열아홉부터는 핸들 잡을 수 있으니까. 나도 뭐 시간 두고 천천히 따고 싶었지. 근데 이번에 캐나다 갔다 오면 거의 일 년 이상은 못 갈 거 아니야. 아무래도 내년에는 고3 수험생으로서의 신분이 더 중요한지라.”“그러게. 우리가 내년에 고3 수험생이라니. 아, 벌써부터 스트레스~ 진짜 말 같지도 않아.”일반적이지 않아서 한 번 더 묻게 되는 타입.확실히 저는 그런 이들에게 꽂히는 거 같다.언젠가 율혜 역시 제 소나무 취향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일러뒀는데 그건 아마 재이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 거다.라디안 에이든의 친동생이라는 것도.한국 태생이 아닌 본 투 비 캐나다인인 것도.율혜는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 하니까.“그나저나 율혜는 정말 재밌었겠다. 솔직히 말해봐. 네가 나 좋아한다는 거 율혜한테 슬쩍 흘렸지? 그게 아니면 율혜가 전학 온 첫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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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성장 과정의 애티튜드 (2)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서점에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기대감을 높여주던 새 책들의 냄새.물론 그 새 책들의 냄새마저 이겨내고 다시 또 율혜를 감싸준 건 휘안의 포근한 향이었다.그러니 처음 온 공간임에도 긴장이란 없었지.여러모로 조화로운 이곳에서는 정숙을 위해 소곤소곤 귓속말하는 법도 바로 터득해서 작게 감탄할 줄도 아는 율혜였다니까.“얘는… 얘는 아기 토끼들을 관찰하는 시골 아기들을 돌보는 선생님! 어떡하면 좋아. 이 책에서 리짱이 좋아하는 아기 토끼들을 발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다른 동물들은 하나도 없는걸. 이렇게 아기 토끼들만 있는 거야.”“그러게~ 어떻게 딱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사이좋게 그려져 있지? 아기들도 아기 토끼들을 너무 예뻐하는 거 같아. 율혜가 봐도 이 장면에 있는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거지?”“응. 그렇다면 이걸로 할래. 다른 장면들로 색칠 공부를 하고 이건 맨 마지막에 칠하는 거야. 차근차근 실력을 쌓고 아기 토끼들을 소중히 대해주겠다는 거지. 이건 내 거야.”하여튼 마음에 들었다 하면 제 품으로 쏙.과연 작은 물건도 소홀히 관리하는 법 없게 제 것이면 진심을 담아 아껴줄 줄 안다.그렇다면 이번에는 율혜의 목적 달성이 아닌 제 목적 달성을 위해 자리 좀 옮겨야겠다고 판단한 휘안이었다.“응. 그 컬러링북은 율혜 거 해. 아무도 안 뺏어. 자, 그럼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볼까?”“저쪽? 설마 휘안이도 사고 싶은 책이 있어?”“음~ 어떤 책을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온 건 아닌데 관심이 가는 책 한 권을 발견했어. 근데 우리 율혜의 도움이 많이도 필요한?”저만을 바라보는 율혜의 어리둥절한 눈빛을 뒤로 하고는 한껏 신이 나 앞장선 발걸음.목적지야 코앞이었고 사고 싶었던 것까지는 아니어도 함께 펼쳐 보고 싶던 책을 발견했다.아마 우리 율혜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할 테지.“전 세계 명작 동화. 그 중에서도 일본어로 써진 백설 공주. 여기 우리 체리 공주님이 이 책을 소리 내서 읽어줬으면 좋겠어.”제 말이면 무조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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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성장 과정의 애티튜드 (3)

“우와~ 그거 설마 휘안이에 대한 마음이야?”“응. 잠깐이지만 휘안이를 의심했던 리짱이야. 따라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백설 공주가 아닌 리짱의 사과라는 거지. 그래서 말인데... 많이 갑작스럽겠지만 리짱의 사과를 받아주겠니?”“좋지. 그 어느 사과보다 예쁘장한 사과 잘 받았어. 그럼 난 앞으로도 우리 율혜만의 아기 토끼로서 탐지 능력을 더 높여 봐도 되겠다. 어때? 그럼 율혜도 마음이 좀 편해졌을까?”“그거야 뭐... 그저 휘안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거지. 아무래도 오늘따라 주변을 관찰하는 실력이 월등히 높아진 휘안이라니까.”핸드폰 카메라를 앞에 두고 피이 하는 바람 소리를 내더니 다시금 잘도 볼록해진 두 볼.덕분에 율혜의 구연동화는 아직 시작도 전이라는데 휘안은 두 눈에서부터 애정을 감추지 못하고 율혜를 꼭 하니 안아주었다.이리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제 여자 친구라면 영상 기록이야 후순위겠지 싶어서 말이다.***앞으로 딱 이틀 후부터는 여름 방학인 상황.따라서 아침 조회 도중 김미영 선생님의 특별 지시 사항을 전해들은 2학년 4반이었다.누구 하나 빼먹지 말고 책상 속을 비워두기.그리고 오늘까지라는 기한으로 추측해보건대 저희 반 모두에게 알아서 잘 깔끔하고 딱 센스 있는 일처리를 바란다는 뜻이 확실했다.그렇다면 누구 하나 무거운 총대를 메고 저희 반의 안전을 지켜야한다는 뜻과도 같았지.그리고 그 누군가라 하면 둘 중 한 명이었고.“자, 다들 담임 말 들었지? 알아서 잘들 비울 테지만 내 경험상 꼭 한 명씩은 말 안 듣는 애가 나오더라고. 그래서 칠판에 공개처형 좀 할까 해. 오후에 불시로 돌아다니는 쪽으로.”교탁 앞에 서 삐뚤어진 세모 마냥 세모난 발언으로 세모난 반장 행세를 하는 도준.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눈이 아닌 입으로만 웃을 바에는 안 웃는 게 낫다.저렇게 세모난 건 영 미덥지 못하다니까.“반장, 잠깐만. 불시보다는 때를 정하는 게 낫지 않아? 차라리 내가 종례 전 마지막 쉬는 시간에 돌아다닐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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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필드를 떠나도 세모 (1)

율혜는 예린이 저를 믿어준 그대로 요주의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상 속 서랍을 깨끗하게 비워내기로 했다.그래야 온전히 홀가분한 기분으로서 매 쉬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판단이기도 했고.그러니 지금도 봐라.이렇게 다정하기만 한 아기 토끼 커플이었지.“휘안아. 휘안이도 알다시피 우리 점심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 따라서 계획을 변경하려 해. 여기 중에 한 친구만 붙이고 다른 친구는 다음 쉬는 시간에 붙이는 거지. 어때? 좀 안타깝기는 해도 휘안이도 동의해줄 수 있을까?”“응. 그렇게 하자. 그럼 난 이 친구. 혹시나 싶어 둘러봤지만 역시 얘만 한 게 없어. 한여름 감기는 율혜도 나도 다 피해가자는 의미야.”“좋아! 그렇다면 휘안이 손 가만히. 휘안이가 협조해준다면 내가 예쁘게 붙여줄 수 있거든.”네잎클로버 우산 아래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아기 토끼가 한여름 감기를 이겨낼 수 있다는 둥의 상징성을 지녔을 리가.남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우리 율혜가 좋아하고 저 또한 그런 율혜를 보고 웃는다면 이 또한 격조 높은 대화라는 거다.그러니 제 손등 위로 하도 귀여워 죽겠는 아기 토끼 한 마리가 달라붙어도 그저 율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 바른 소리뿐이기 바빴지.“근데 율혜야. 율혜는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잘해? 거의 판박이 스티커의 신인데. 오랜만에 붙인다는 실력 치고는 전혀 녹슬지 않아 보여.”“치잇~ 그거야 원래 내 거였으니까 잘하지. 내가 주인이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해. 할 줄도 모르는데 해주겠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되니까.”“아~ 그래서 우리 율혜는 지킬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거구나. 천방지축 얼렁뚱땅 굴러가는 휘안이 옆에서도 제 페이스를 잃지 않고.”“당연하지. 우린 여러 계약을 맺었는걸. 레벨 업도 하고 보스몬도 잡았고. 그니까 우리 둘 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면 아주 괜찮다는 거야.”누구 하나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면 오 하는 추임새와 함께 동그란 입 모양을 자랑하고.누구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면 마주한 방향 그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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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필드를 떠나도 세모 (2)

“진짜? 도준이가 예린이한테 너 못마땅하다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나 없을 때 그랬어?”“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어. 다만 리짱은 그렇게 느껴졌다는 거야. 아침에도 봐. 예린이 의견은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일을 해결하려고 했잖아. 지금도 예린이가 없는데 예린이를 요주의 인물인 것처럼 의심했는걸.”그래, 우리 율혜가 괜히 그랬을 리 없지.부끄럽게도 제 시야가 편협했던 게 맞다.저도 같이 보았고 같이 들었지만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도준의 행동을 정당화했던 상황.이제야말로 잘잘못을 가를 때가 온 거다.***한 쪽만 잘도 예뻐져서 눈길이 쏠리는 손등.물론 그게 누구로부터 탄생된 작품인지는 다들 알만 하기에 별 말 더해오지를 않더라.사실 눈치 없는 누군가 남자 애가 손등에는 그게 뭐니 하는 비꼼에도 휘안의 해맑은 대답 한 번이면 상황 종료겠지만.아무튼 지금은 걸스 토크에 빠진 율혜를 확인하고 도준과 함께 복도로 나온 휘안이었다.지금이라면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갈 만해서.“도준아. 책상 속 확인하는 일은 다 끝난 거 맞지? 더 둘러볼 거 없는지 그거 묻는 거야.”“응. 아침에 말한 공개처형이 제대로 먹힌 거 같은데? 웬일로 누구 하나 빼먹지 않고 다 비워놨어. 오늘에서 반장 노릇 참 쉽더라.”“음... 다행이네. 도준이 네 덕분에 종례 때 큰 소리 안 나오고 집에 일찍 갈 수 있다는 거잖아. 근데 말이야. 너 다 보였던 건 알지?”“내가? 내가 뭐가 다 보였는데?”많이도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반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학급의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솔선수범하여 봉사하는 캐릭터.도준은 제 자신을 그렇게 속이고 반 아이들 여럿 돌보는 학급임원 행세를 하기로 한 거다.근데 뭐가 다 보였다는 휘안의 말에 흠칫 놀라서는 뒷걸음질 치기를 간신히 참아냈다.“뭐긴 뭐야. 네가 예린이한테 유치하게 군 거 말이야. 아니, 오늘 내일 하면 여름 방학인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 다른 계획이라도 있어? 골키퍼 있어도 상관없다 뭐 그런 계획?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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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필드를 떠나도 세모 (3)

민들레가 핀 담벼락.천사 날개가 그려진 벽화.장미 넝쿨로 도배된 뱀파이어 성벽.최근 일주일 사이, 온갖 벽이란 벽들에 관심을 보였을 뿐인데 SNS 피드에서도 사람보다는 무생물의 비율이 확 늘어났다.물론 이 와중에도 유료 구독해놓은 여름 한정판 아기 토끼 굿즈 소식은 상단에 바로 알람이 되어서는 꽤나 만족스러운 상황.글쎄, 이번 콘셉트는 전 세계 랜드 마크의 여러 벽을 타며 발자국을 남기는 아기 토끼라 하는데 이걸 어떻게 안 사고 배기겠냐고.유료 구독자인 리짱인 만큼 온라인 예약 추첨에서 크게 탈락할 일은 없겠지만 아기 토끼 전문가로서 오프라인 팝업도 가봐야지.리짱은 도쿄에서 할 것들이 아주 많다니까.“뭘까~ 우리 율혜 다시 또 깊은 생각에 잠긴 거 같은데. 얼음은 한참 전에 문 걸로 굴리고 있고. 사진 공모전 주제 선정 때문에 그래?”“응. 휘안이 말대로 이번 사진 공모전에는 어떤 주제로 참가하면 좋을까 생각 중이었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벽이 최고인 거 같아.”“그러게. 요 근래 벽이란 벽 사진은 전부 다 접수했잖아. 벽화로 유명한 마을인가? 거기도 가보기로 했고. 난 이번 공모전에서 율혜만큼 벽에 진심인 사진작가가 또 있을까 싶어.”“그렇다면 다행이야. 리짱도 웬만하면 주제가 겹치고 싶지 않거든. 아, 그리고 공모전 수상 결과가 나올 때쯤에는 해야 할 일도 생각했어. 이번에는 말이야. 여름 한정판 굿즈인 아기 토끼 친구들을 구해올 거거든. 가면을 쓰고 전 세계 담벼락을 넘나드는 아기 토끼 친구들!”둘만의 하굣길, 요즘 빠진 낙은 요거트 맛이 나는 달달한 얼음 아이스크림 한 통 들고서 너 한 번 나 한 번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다만 한여름의 햇볕은 따사롭고 입 안은 차가운 관계로 저작 운동에 있어서도 오류가 날 수 있다니 서로를 잘 지켜봐야만 했다.“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근데 율혜야. 우리 율혜는 수상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귀국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일정 다 저장해놨는데?”“어… 그렇다면 벽을 타는 토끼 친구들을 먼저 구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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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선전포고 또한 퍼포먼스 (1)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시간이 아닙니다.오늘 하루도 여럿 눈치 살피기 바빴던 저.이제야말로 셔터를 내리겠다는 뜻입니다.물론 제 DM은 맞팔 분들께만 열려있고 반박은 DM을 통해서만 받으니 따로 볼일이 있으신 분들은 알아서 연구라도 하시라고요.전 달리 받아줄 마음이 없으니 말이에요.“후... 오늘도 쉽지 않았어.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지금 이 시점부터는 셔터를 내리고 퇴근 좀 해보겠다는데. 안 그래, 율혜야?”“응! 지금 이 시점부터는 우리 친구들 모두 부반장 예린이를 보내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휘안이도 나처럼 잘 알아들은 거 확실하지?”“그럼~ 우리 친구들에 해당하는 휘안이는 한 번에 잘 알아들었어. 율혜도 예린이한테 질척댈 마음 같은 건 하나도 없잖아. 단지 예린이랑 하굣길이 겹쳐서 같이 나온 것뿐이잖아.”“당연하지. 예린이에게 질척댈 마음 같은 건 하나도 없어. 학교를 빠져 나가는 길은 정문 아니면 후문인데 이렇게 우리 셋 모두 정문을 선택해서는 가는 길이 겹쳤다는 거지.”학교 정문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비공식적인 퇴근을 선언하니 조금은 후련해진 마음.남들이 보기에도 우리 친구들의 협조 아래 이 세상 모든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난 걸로 보일 테지만 예린만은 시기상조인 입장이었다.그게 아니면 저를 못 떠나는 율혜와 율혜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제가 말이 안 됐다니까.“좋아. 그래서 나한테 질척대지 않겠다는 우리 친구들은 무슨 계획이실까? 좀 이르기는 해도 저녁때니까 햄버거 집부터 가는 거야?”“응. 율혜랑 밀크셰이크에 감자튀김도 찍어 먹기로 했어. 각자 어떤 햄버거 먹을지는 아직 미정이기는 한데 율혜는 무조건 더블 치즈로 변경할 거래. 방학식도 딱 하루 남아서 그런지 치즈가 당기는 날이라니까.”“어, 근데 좀 더 솔직해지자면 치즈가 당기지 않았던 날은 거의 없었던 거 같아. 아마 어제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면 책상 속을 비우느라 힘들었다는 이유로 더블 치즈를 주장했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저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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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선전포고 또한 퍼포먼스 (2)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미안, 미안. 애들이랑 인사하다 늦었어. 근데 말투 뭐지? 설마 나 많이 기다렸어요, 이렇게 시위라도 하게? 그래도 뭐 줄 건 없는데?”학교 정문을 나서 골목길을 두 번 꺾은 어느 한구석에서 저와 만나기로 한 재이 재원 팍.솔직히 율혜에게만이라도 저 역시 하교 후 데이트 약속이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이렇게 복잡한 동선을 택했다는 건데 한여름 땡볕에 괜한 서늘함을 느꼈다는 거지.“시위라니. 내가 감히 시위할 생각을 어떻게 해. 그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되게 묘해. 예린이 네가 불청객을 달고 왔거든. 근데 골목길 꺾기 한참 전부터 달고 온 거 같은데 말이야.”“내가? 내가 불청객을 달고 왔다고? 아니, 애들 햄버거 집으로 잘만 보내놨는데 이건 또 뭔 날벼락이래. 설마 뒤돌아서 다시 온 건...”햄버거 메뉴까지는 몰라도 사이드 메뉴는 확실히 정했다는 그 둘이 가던 길 거꾸로 돌아와 제 뒤를 밟는 장난을 칠 확률이라.그러기에는 더블 치즈 선택지를 듣고는 두 눈 초롱초롱 빛내던 율혜가 너무 아른거리는데.예린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뒤를 돌아봤고 이내 별 거 아닌 상황임을 직감했다.“아, 뭐야~ 난 또 누구라고. 이도준이잖아. 차휘안 데이트 간다고 쟤 혼자서 집 가나보네. 하여튼 불청객이라는 단어는 왜 말해가지고. 재원이 너 때문에 나 방금 되게 철렁했잖아.”“글쎄?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쟤 시선이 올곧아. 봐봐. 점점 더 다가올걸. 저 눈빛은 예린이한테 볼일이 있다는 눈빛이야.”어떻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 호랑이가 이도준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줄은 전혀 예상에도 없었다.저와 족히 한 블록 이상은 떨어져 있던 걸 확인했는데 정말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라니까.아니, 근데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이게 웬 평온한 하굣길의 날벼락이냐고.***다행인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비범하게 말을 걸어온 상황에 비해 별 일은 아니었다.오히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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