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월로부터 시작된 우리: Chapter 61 - Chapter 70

111 Chapters

<61화> 평범한 하루의 특별함 (1)

주황빛 하늘을 탕탕 수놓기 바쁜 불꽃놀이.이곳은 마현고 축제의 끝물 현장으로 곳곳에서는 연이은 환호성이 터지는 중이었다.그렇게 귀가 먹먹해진 채 주변을 둘러보는데 감히 생각이라는 게 정리되기도 전 눈앞의 인파부터 해쳐나가게 되는 발걸음이더라.하루 종일 엇비슷한 공간에 있었던 게 분명한데 이제야 말을 걸어보게 생겼으니까.“나예린.”“어?”반갑게 알은체한 것치고는 미묘한 반응.제가 알은체한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다.“아니, 이제 잘 들려. 응. 그쪽으로 갈게.”그래도 뭐라 무안한 기색 티 낼 틈도 없이 금방이고 끊어진 전화에 다행이다 싶었는데 저와 정반대로 돌려 보이는 발걸음.“나예린. 그쪽 아닐걸. 지율혜한테 가는 거면 이쪽이 맞아. 걔 지금 휘안이랑 있으니까.”“율혜? 나 지금 율혜한테 가는 거 아닌데?”“아... 그래? 그럼 뭐 바로 집 가게?”“그건 아닌데… 아니, 그것보다도 우리 종례 다 끝났잖아. 설마 지금 이 시간에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다는 거야?”저희 반 종례는 진작 다 끝났고 따라서 별 볼일이 없으면 제 갈 길 가겠다는 의사.정말 맞는 말만 해서 할 말을 없게 만든다.“…아니. 볼일은 없는 거 같다. 바쁘면 가봐.”“그치? 괜히 긴장했잖아. 그럼 먼저 가볼게.”성소연은 꼴사나운 지율혜가 휘안이 옆에서 하하 호호 떠드는 걸 보고 싶지 않다 하면서도 그 둘의 주변을 떠나지 않던데.그것도 상황이 허락돼야 가능한 거였구나.나랑 나예린은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우연이라도 엮어질 일이라는 게 없다니까.“뭐해, 이도준? 불꽃놀이 다 끝났잖아.”“그러게... 다 끝나버렸네.”“싱겁긴. 난 네가 얼 타는 사이 가방까지 다 챙겨왔어. 자, 받아. 굳이 또 저쪽으로 가볼 필요가 없다는 거야. 아주 고마워 죽겠지?”멍하니 사라져가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저를 현실로 이끌어주는 목소리.도준은 그제야 희미한 웃음 끝을 되찾았다.“그래, 챙겨줘서 고맙다. 성소연 넌 불꽃놀이 잘 봤어? 너 한참 기대했잖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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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평범한 하루의 특별함 (2)

“이도준 네가? 아니, 진짜 의외의 소식이라 너무 당황스럽네... 그래서 그 되게 별로라는 시기 잘 이겨내라고 응원이라도 해달라고?”“좋지. 넌 딱 응원만 해. 나한테 왜 그렇게 별로냐고 이유 같은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뭐야. 내가 뭐 언제는 못 물어볼 거라도 물어봤나. 아무튼… 그래. 어디 한 번 그 되게 별로라는 시기 잘 좀 이겨내 봐. 그리고 혹시나 말이야. 실패했다 해도 자책은 말고. 내가 늘 말하지. 나중에 내 일이 잘 풀리면 너한테 제일 먼저 보답하겠다고. 그거 진짜 빈말 아니었다?”저희 둘이서 시시콜콜하게 주고받은 대화에 빈말이라는 게 포함돼있다면 또 어떤가.불꽃놀이가 끝났어도 여기 한구석에는 못 다 이룬 짝사랑의 주인공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아무도 관심이 없겠지만 적어도 저희 두 사람만큼은 못내 서러운 감정을 기억하게 될 거라는 거, 그게 위로로 탈바꿈되더라니까.***학교 축제가 끝난 뒤 다시금 반복되는 일상.물론 학교 축제의 끝물이 덜 빠졌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떠있는 이도 존재한다.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클릭인지.아무도 찾지 않는 학교 채널이라고 그렇게 무시하기 바빴었는데 시청 채널의 알고리즘 덕이라도 봤는지 호재 아닌 호재를 맞이했다.홍보부 영상의 썸네일을 장악한 두 사람.하지만 어째서인지 태도는 전혀 딴 판이었다.소연은 이제야 어깨 좀 펼 건수를 잡았는지 거의 매 쉬는 시간 휘안에게로 자리했지만 휘안은 여느 때와 똑같이 무덤덤했다니까.“봐봐. 내가 말했지. 나만 따라오면 다 잘 될 거라고. 연극부 회장인 내가 홍보부 회장이랑 협상해서 연극부 분량을 잔뜩 사수한 결과야. 어때? 이대로 어디 캐스팅될 수도 있다니까?”“응. 소연이 네가 열심히 했지. 이번에야말로 소연이 너한테 좋은 기회가 찾아오면 좋겠어.”그래, 휘안이 네가 지율혜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고 내가 뭐 바로 떨어져 나가겠어?막말로 십대 때 하는 연애는 다 한때라잖아.그니까 계속해서 속 좁게 굴 수만은 없지.지금 당장은 목구멍에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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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평범한 하루의 특별함 (3)

“율혜야~ 그럼 율혜는 어떤 호빵이 제일 좋아? 율혜 말대로라면 호빵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모락모락 해서 생각이 났다는 거잖아.”“앙꼬! 앙꼬 호빵이 제일 맛있어. 근데 피자 호빵도 좋아해. 피자 호빵은 편의점에서 파는 게 최고야. 아마 휘안이도 먹어보면 좋아할걸?”“그래? 그럼 앞으로 매 겨울마다 호빵을 챙겨 먹어야겠는걸. 어때? 율혜도 동참할 거야?”“치잇~ 그렇다면 이번 겨울에 첫 번째로 먹어야 할 호빵은 앙꼬랑 피자 호빵인 거야. 호락호락… 아니, 모락모락한 걸로! 이왕이면 눈 내리는 날에 더 모락모락 한 걸로 말이야.”호락호락에서 모락모락, 그리고 모락모락한 호빵의 상세 취향까지 알아가는 과정이라.역시나 휘안의 다정함은 율혜의 앞에서 가장 큰 빛을 발하며 계략적인 언행으로도 직결된다.그리고 예린은 이래서 뭐든 끼리끼리 잘 어울리는 거라고 말하는 건가 싶었다지.율혜는 제 걱정이 무색하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를 갖춘 여자 친구로서 제 하나뿐인 남자친구를 잘도 쥐락펴락했으니 말이다.***오후 느지막하니 전화가 걸려와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짜고짜 오늘의 일상을 풀어낸다.오랜만에 등교했는데 짝꿍이 바뀌었다는 거.그래봤자 또 자리에 엎드려 잠만 잤을 래운이라고 확신하는데 이거 참 아주 흔치 않은 타율로 리짱의 구미를 끌어당겼다.글쎄, 래운의 새 짝꿍이 리짱과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전설 속 아이스크림 소녀라니.이름은 몰라도 리짱의 기억 속 걔가 맞았다.“신기해. 지금 찾아보니까 진짜 맞는 거 같아. 리짱은 일본 모델. 리나는 한국 모델. 그렇다면 래운이 네가 빨리 친해지는 일만 남은 거지.”“체리야. 사람은 수단으로 보면 안 된다며. 체리가 그렇게 말해놓고 날 통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겠다고? 난 좀 별로 같은데?”“하지만 난 말이지. 리나라는 친구랑 하루 빨리 친해지고 싶어. 참고로 리나 앞에서는 빠른 나이가 아닐 거야. 자기소개 할 때부터 동갑으로 말할 거거든. 아주 멋진 계획이지.”“음~ 근데 그거 알아? 내가 새 짝꿍이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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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화제와 전설 그쯤 어디 (1)

푸르른 이파리가 따사로운 햇빛을 머금고 저마다의 그림자를 자랑하기 바쁜 시간대.물론 담벼락에 기대 어느 패션 화보라도 찍듯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남자는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매 순간 아름다울 거예요.더욱이 저 남자는 모든 여자들의 공유재산이 아닌 관계로 리짱만 알은체하기에도 적당해요.보아하니 여자 친구의 SNS를 구경하며 여자 친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거 같거든요.따라서 지금 바로 인기척 좀 내보려고요.“리짱 등장~”“헤헤. 오늘은 어흥이 아니네? 숨죽이고 살금살금 걸어오는 중이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럼 난 또 어떻게 반응할까 고민 중이었어.”“응. 그래도 약간의 반전이 있어서 재밌었지? 휘안이는 놀란 아기 토끼가 아니었으니까.”율혜가 제 머리로 손을 뻗어보이자 그와 동시에 고개를 숙여 배시시 웃어 보이는 휘안.저에게 율혜의 손길이 닿는 쪽이라면 작은 찰나여도 그저 좋아 죽겠다는 입장이었다.“당연하지. 나는 율혜랑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아. 물론 우리 둘만 있는 시간이면 더 좋고.”“어… 그렇다면 둘 말고 셋이나 넷은 별로인 걸까? 학교에서는 우리 둘만 있기 힘들잖아.”율혜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파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절차로 확실한 의사를 표현하기.누가 봐도 친구 사이에서 이루어질 법한 행동은 아니었으니 둘은 연인 사이가 확실했다.“치잇~ 이해했어. 오늘은 별로라기보다 행복한 날이니까. 휘안이가 원하는 대로 휘안이랑 리짱 둘이서만 노는 날이잖아.”“그러게. 양보를 싫어하는 리짱이 막내인 휘안이를 배려해줬어. 그래서 이렇게 주말 데이트가 성사됐고. 내일은 율혜 코 자세요~ 율혜 한참 성장기니까 아침잠 방해 안 할게.”“응. 오늘은 주말 아침잠을 이겨낸 리짱이야. 휘안이와의 데이트가 너무나도 소중했거든.”무남독녀에 유구한 어리광쟁이라는 리짱.그 누구보다 세상의 풍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면서 한 사람에게만큼은 잘도 유연하다.주말 이틀 내내 늘어져라 잠이 자고 싶었을 텐데도 하루 정도는 양보하는 마음씨였다니까.덕분에 전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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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화제와 전설 그쯤 어디 (2)

“여기 남자친구 있고요. 그만 가주시겠어요? 제 여자 친구가 향에 좀 많이 민감해서요.”둥근 이마에 선한 눈매.풍성한 속눈썹에 쭉 뻗은 콧대.보기만 해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입술.그렇게 좀 더 아래로 내려오면 제 할 말 전할 때마다 도드라지는 목울대가 보인다.“그리고 앞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뒤에서 껄떡대시는 건 더 반칙이죠. 여기 보는 사람도 많은데 사과하고 가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맞아. 사과도 안 하고 가면 신고할 거야. 마음대로 리짱 어깨를 만지고 말까지 걸었어. 리짱은 여권이 두 개나 있는 미성년자인데!”“뭐? 마음대로 리짱 어깨를 만져?”“응. 리짱 가만히 있었는데 마음대로 어깨를 만졌어. 그건 초면에 예의가 없는 거잖아.”아, 그새 터치까지 있으셨어?곱게 보내주려 했는데 이러면 말이 달라지지.제 시선에서 정수리가 내려다보이는 불청객.사람들의 날선 눈초리 틈에서 아주 망했다는 표정이니 사과 소리는 무조건 듣고 보내야겠다.“사과하세요. 남의 어깨 마음대로 만진 거.”“미, 미안합니다...”“그리고 미성년자한테 말 같지도 않은 마음 품은 것도 사과하세요. 아저씨 보면 우리 아기 기겁할 거, 제가 막은 겁니다. 아시겠어요?”“죄,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예의 없는 터치를 문제 삼은 당돌함에 한 방.미성년자와 우리 아기라는 단어에서 두 방.덕분에 불청객은 여기서 제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걸 알아챈 거다.그게 아니면 제 사과를 받아들여졌다는 의사가 표명되기도 전 걸음아 나 살려라 저 멀리 사라져버린 게 앞뒤가 안 맞지.뛰는 폼도 영 꼴사나운 게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코미디 한 편 제대로 구경하게 됐다니까.“하... 율혜 놀랐지? 어디 다친 데 없어?”“응. 조금 놀랐는데 휘안이가 바로 나타났어. 그리고 휘안이 덕분에 사과도 받을 수 있었어. 보아하니 목소리부터 못생긴 아저씨였지?”“응. 율혜 뒤돌지 않기를 너무 잘했어. 봤으면 비위부터 상했을 거야. 아, 자리 괜히 비웠어...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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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화제와 전설 그쯤 어디 (3)

“그래도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막말로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잖아. 예린이한테 따로 말 걸어본 적도 없으면서.”“우리 한량이 참 많이도 달라졌어. 휘안이 네 입에서 이런 말이 다 나오고. 이것도 지율혜 덕분인가. 그래서 뭐 개과천선이라도 했어?”첫 연애에 너무 퍼주는 것만 같았는데.오지랖도 부려야 할 사람이 부려야 하나보다.휘안은 요즘 들어 그 누구보다 밝아 보였다.일부러라도 갖은 생각을 털어내고 쉽게 쉽게 하루를 보내는 저와는 상반된 모습이 확실했다.“응. 자꾸만 대담해지네. 출세해야지. 누가 봐도 우리 율혜랑 어울리게끔. 번듯한 대학도 가고, 번듯한 자리도 잡고. 아, 내가 벌써 이런 생각을 다 한다~ 도준아. 나 막 기특하지?”어떻게 지율혜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왔다 하면 저리도 헤픈 웃음 끝을 자랑하는지.하지만 바로 또 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누군가 저에게 역할을 부여한 건 아니라지만 어쨌든 전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려고 한다.그게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일 지라도.“기특한데 한 번 더 확인하자. 너 진짜 SNS DM 여럿 받은 거 성소연한테 말 안 할 거야?”“응. 내 SNS로 온 거고, 이미 다 거절했고. 솔직히 나만 입 다물면 묻힐 수 있잖아. 그리고 암만 번듯한 자리가 잡고 싶어도 우선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먼저야. 이런저런 경험을 쌓고 나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싶다 할까.”부모님도 그렇고 율혜도 그렇고 제 사람으로 여긴 이들과는 충분히 대화하고 공유한 내용.물론 도준 역시 휘안의 바운더리 안쪽에 속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그래서 모든 선택은 내가 하겠다는 거야. 상황에 떠밀려서 하는 섣부른 결정이 아니라. 그리고 도준아. 어디 SNS DM이 아니더라고 캐스팅될 방법은 많아. 본인 하기에 달렸지.”작년 한 해, 일본에 계신 율혜 부모님을 대신해 율혜를 물심양면 보살펴주셨다는 분.그 언젠가 그 분을 만나 뵙게 되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율혜와 주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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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다 녹은 아이스크림이라 (1)

모든 이야기는 도입부가 중요한 법.따라서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고 이왕이면 저와 같은 선상에 놓인 또 다른 주인공의 흥미까지 자아내면 제대로 된 성공이겠지.“제가 먼저 반했어요. 율혜가 전학 온 첫날. 월요일 아침, 교무실에서 율혜를 마주쳤는데 처음 본 순간부터 예쁘다고 생각했어요.”“그래? 대략적인 시간이랑 장소는 나왔고... 그럼 우리 율혜를 처음 본 순간, 어디가 얼마나 예뻤는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을까?”한국이 아닌 타국에서도 눈앞의 사건을 신속 정확하게 파악하여 보도하는 것이 본업이었던 만큼 날카로운 시선의 소유자.지금 당장 기자인 은호의 손에 녹음기에 노트북까지 주어졌다면 이 현장은 열띤 기자회견과도 다름없는 풍경이었을 거다.물론 휘안은 미래의 장인어른께 높은 점수를 따놔야 하는 입장이니 이보다 더한 현장에 놓이더라도 저를 내던질 각오를 다했다는 거고.“제 담임선생님이 누구일지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예뻤어요. 처음 온 공간인데도 주눅 들지 않고 질문하는 목소리도 인상적이었고요.”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그날의 회상이라.한국 서류상으로 기재될 두 번째 학교였던 만큼 첫 번째 학교와는 다르게 저 홀로 모든 전학 수속을 마치고 싶다 한 율혜였는데.율혜에게는 문제될 거 없다는 둥 말로서만 알았다 하고 유미에게는 저희 부부끼리 그 뒤를 밟아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는데.역시나 남편은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그날도 유미의 말을 따른 게 다행이지 싶었다.“그래? 그럼 우리 율혜랑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봤다는 건 교실에 들어선 이후라는 거네. 교무실에서는 스쳐지나갔다는 게 전부였고.”“맞아요. 저희 학교 교무실 문이 열 때는 그렇게 무거운데 닫힐 때는 정반대거든요. 율혜가 그 문을 잡아주고 제가 복도로 나간 게 전부여서 스쳐지나갔다 이런 말씀드리기도 뭐하기는 해요. 정말 찰나에 불과했거든요.”칠판 위 시계 초침이 맨 위에서 맨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또 올라가기를 수없이 반복하던 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혹시나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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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다 녹은 아이스크림이라 (2)

“재원아.”“응?”“우리 내년에 몇 살이지?”결국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다 이렇게 단 둘이 마주하게 된 때, 바로 묻기로 했던 거지.왠지 이 아이는 기본 신상부터가 저와 같은 일반적인 부류는 아니겠다는 확신이 섰다니까.“난 스물. 넌 열아홉.”“진짜? 너 진짜 일 년 꿇었던 거야? 그래서 올해 열아홉이고 내년에 스물이다 이거야?”아니, 왜 별 거 아니라는 듯 웃기만 바쁘지?지금 제 속은 요란법석을 떨게 만들어 놓고.“후... 알겠어. 네가 말한 나이가 만 나이가 아니라는 거 잘 알겠어. 넌 정말… 나이가 많았던 거야. 그럼 재원아. 너 여권은 무슨 색이니? 색깔 하나만 답할 생각은 말고.”“파랑색. 속지 언어는 영어랑 프랑스어.”“너, 너 진짜 외국인이었어? 검은 머리 외국인? 내가 그렇게 환호하던 검머외?”“응. 예린이 네 최애라는 라디안 래운이처럼.”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되물음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여전히 여유로운 자기소개.솔직히 재이 입장에서야 한국 국적이 말소될 예정이었으니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아, 근데 걘 미들 네임이 없잖아. 난 미들 네임이 있어. 라디안 에이든처럼.”“미쳤다! 아니, 찢었다! 그래서 뭐가 뭔데?”“미들 네임 재원. 풀 네임 재이 재원 팍. 국적은 캐나다. 한국 국적은 곧 말소 예정. 어때? 이 정도면 나에 대해 좀 안 거 같아?”뭐가 이렇게 서슴없이 다가오는지 여기서 더 나아갔다가는 진짜 말도 안 될 거라는 걸 안다.하지만 극도의 도파민에 절여져 버린 뇌는 제 주인의 단속과 검열을 바로 또 벗어난다지.그러니 이렇게 입부터 나불거린다는 거고.“좋아. 그럼 내가 네 나이, 이름, 국적까지 전부 다 알아낸 거다? 그럼 말이지. 여기서 하나 더 찔러볼 건데 네가 들어도 영 아니다 싶으면 그냥 웃어넘겨줘. 헛소리구나 하고.”“응~ 뭐든 찔러봐. 다 대답해줄게.”“너 설마… 라디안 에이든과 관계가 있는 캐나다인이니?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이웃사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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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다 녹은 아이스크림이라 (3)

왜 그런 날 있지 않던가.저도 뭐 딱히 기분 좋을 이유라는 건 없지만 저보다 더 기분이 안 좋은 이를 보고서는 제 기분의 정도를 따지기 않기로 마음먹은 날.소연에게는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이도준~ 내가 네 거부터 빼놨다. 감동이지?”“고맙다. 안 그래도 출출하던 참이었는데.”“그래~ 내 거 챙기기도 전에 이도준 네 거부터 챙겼어. 그니까 먹고 기분 좀 풀어. 너 요즘 그 되게 별로라는 시기라서 막 짜증이 샘솟을 거 아니야. 내가 아니면 누가 알아줘.”편의점에서 바로 집어든 크림빵.도준은 별 목적성 없이 주변 이들에게 까칠한 말투로 일등인 것과는 달리 달달한 디저트를 좋아하는 반전 있는 캐릭터였다.본인 말로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데 먹는 걸 보면 괜한 부정이라는 거지.근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통하지 않더라.건네받기만 할 뿐 뜯을 기미가 안 보이니까.“근데 아까 그 이야기는 뭐야? 나예린이 뭐?”“아, 별 거 아니었어. 그냥 여자 애들끼리 농담한 거야. 예린이도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요즘 여기저기에서 커플 소식이 들려오잖아. 그래서 우리 반 부반장도 뭐 없냐 했던 거지.”다른 동아리와는 다르게 학교 축제가 끝난 후에야 더 바쁘게 지냈던 홍보부 동아리.그래서 최근까지도 저희 반 돌보기보다 홍보부 일에 몰두하던 예린에게 저희 반 아이들도 잘 챙겨달라는 농담이 나왔단다.예린이야 그저 알았다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기는데 일부 여자 애들이 혹시 홍보부에 뭐 꿀 발라놓은 거 아니냐고 했다지.가량 정체 모를 예린의 남자친구라든가.“그래서 누구래? 나예린 남자친구 말이야.”“모르지. 진짜 없어서 그랬는지, 비밀이어서 말 안 했던 건지는 몰라도 흐지부지됐으니까. 바로 또 요즘 아이돌 이야기로 넘어갔거든.”나예린의 소나무 취향에 해당되는 남자라.솔직히 저희 학교에 그 까다로운 조건을 다 통과한 또래 남학생은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근데 왜 지금에서야 저런 말이 나올 걸까.나예린에 대한 마음을 어느 정도는 잘 매듭지었다고 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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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적극적인 내공 장착 (1)

같은 반인 커플은 온종일 붙어 다닌다지만 다른 반인 커플은 어떤 하루를 보내나요?이건 뭐 누구를 붙잡고 물어볼 것도 없다.그 당사자란 바로 저 자신이었으니까.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면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더니 예린은 요즘 들어 그 말을 실로 체감 중이었다.“마셔~ 예린이 너 주려고 좀 전에 뽑아왔어.”“어? 이거 아침에도 품절이었는데?”“응. 내가 위층 가서 뽑아온 거야. 고3은 음료 자판기 구성이 달라지지를 않았더라고.”“아, 진짜? 난 위층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요즘 우리 층은 이거 전멸이었잖아.”여느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저희 학교 음료 자판기도 고 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는 물론이고 커피, 탄산음료와 같은 버튼은 찾아볼 수 없다.그러니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손꼽히는 선호도 일위란 늘 상 이온음료였고 옥수수수염 차와 같은 액체 음료는 늘 후순위로 밀려났지.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학교 음료 자판기 내 옥수수수염 차 버튼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의미로서 품절이었던 거고.“근데 어떻게 고3 있는 데까지 가볼 생각을 다했대. 생각했어도 위층까지 올라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을 텐데. 시원해서 더 좋다~”“예린이 바로 마시게? 잠깐만… 자, 여기.”제 손에 들린 옥수수수염 차를 당장이라도 마셔야겠다는 의사에 다시금 뻗어오는 손길.어디서 배워왔는지는 몰라도 입가가 닿을 부분을 잘도 피해서 뚜껑을 바로 따준다.“고마워. 근데 너 다른 여자 애들한테도 이렇게 다 따주는 거 아니지? 뭐 학습된 매너라면 할 말은 없다만… 아니지. 그래도 안 돼. 난 좀 그런 건 딱딱 지켜줬으면 좋겠어.”“그럼~ 예린이 너한테만 이렇게 따주지. 캔 뚜껑 잘 못 따잖아. 그래서 평소에는 팩에 든 바나나우유 같은 것만 즐겨 마시는 거고.”“어… 맞는 거 같아. 나 학교 바깥에서는 캔 음료 자체를 잘 안 마셨네. 그걸 지금 알았어.”“응.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그니까 앞으로 캔 음료 마실 일 있으면 내 옆에서만 마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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