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오전 9시 50분.은진은 본부장실 거울 앞에 서서 검은색 정장 재킷의 단추를 채웠다.그녀의 책상 위 서류 봉투 안에는 지난밤 정리한 서류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도상만 이사와 재무팀 박 부장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붉은색 서류철이었다.똑똑.“본부장님, 도상만 이사님과 박 부장님 오셨습니다.”김 비서의 보고에 차분하게 서랍을 닫았다.붉은 봉투를 손에 들고 집무상 앞 응접용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문이 열리고 도상만 이사와 박 부장이 걸어 들어왔다.도상만의 얼굴에는 다분히 오만하고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결국 버티지 못한 은진이 예산을 빌려달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 본부장, 차 한잔 대접하겠다고 해서 올라왔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는가?”도상만이 상석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다리를 꼬았다.옆에 선 박 부장 역시 서류 가방을 든 채 짐짓 원칙을 고수하는 재무 책임자의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예산 보류 건 때문에 부른 거라면 시간 낭비네. 재무팀의 원칙적인 지적에 대해 회장님께 일러바치지 않고 우리끼리 해결하려는 태도는 가상하지만, 규정은 규정이야.”도상만이 비꼬듯 덧붙였다.은진은 눈 하나 찌푸리지 않고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김 비서가 차를 내려놓고 나가자, 실내에는 기묘한 정적만이 흘렀다.“원칙이라.”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서류 봉투를 테이블 중앙에 살포시 내려놓았다.“박 부장님, 이 원칙부터 먼저 확인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박 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봉투를 바라보았다.도상만이 턱짓으로 지시하자, 박 부장이 얼떨결에 봉투를 집어 들어 안의 서류를 꺼냈다.첫 장을 넘기는 박 부장의 손가락이 순간 미세하게 떨렸다.서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얼굴에서 정돈되어 있던 엄숙함이 빠르게 씻겨 내려갔다.“이, 이게… 무슨…”“S 파트너스, K 글로벌 컨설팅. 지난 3년간 재무팀에서 경영 자문료 명목으로 집행한 수십억 원의 결재 내
Última atualização : 2026-08-01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