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실무 협의가 끝난 직후, 서한준은 흑룡건설 로비를 빠져나와 대기 중이던 전용 세단 뒷좌석에 올랐다.차 문이 닫히며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자마자, 콘솔 위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이 조용히 점멸했다.발신인은 클레이튼 캐피털 아시아 총괄 본부장이자, 여의도 4선 중진 의원의 비선 자금을 총괄하는 강 전무였다.서한준은 넥타이를 살짝 늦추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서 변호사.”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하지만 그 나지막한 음성 아래에는 수십 년간 정재계의 어두운 돈줄을 쥐고 흔들어 온 자 특유의 조용한 살의가 깔려 있었다.“오전 회의 결과 보고서, 방금 받아보았습니다.”“예, 전무님.”“하은진 부사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모양이군요. 케이맨 제도 페이퍼 컴퍼니와 차명 계좌의 꼬리를 밟았다고 들었습니다.”“예상보다 방어선이 견고합니다. 하은진 부사장은 단순한 명목상 대리인이 아닙니다. 도창수의 전결권을 손에 쥐고 금융과 법률의 빈틈을 알고 있었습니다.”서한준의 차분한 설명에 강 전무는 낮게 헛기침을 삼켰다.“서 변호사. 우리가 대형 로펌에 천문학적인 자문료를 지불하고, 자네를 아시아 총괄 대표라는 자리에 앉혀둔 이유를 잊지 않았겠지요.”짧은 침묵 뒤, 강 전무의 목소리가 귓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의원님께서는 지리멸렬한 법리 논쟁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늙은 호랑이가 쓰러졌으면 그 둥지를 비우는 것이 순리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어린 과부의 사정 따위를 헤아려줄 여유는 우리에게 없습니다.”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송곳처럼 서한준의 자존심과 입지를 겨누고 있었다.“서 변호사의 유능함은 잘 압니다만, 판을 정리하지 못하는 칼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지요. 율천의 최연소 파트너라는 타이틀도, 우리가 깔아둔 판 위에서나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강 전무는 서두르지 않는 어조로, 그러나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서한준의 목줄을 죄어왔다.“다음 회의에서는 단기 유동성 카드를 꺼내십시오. 알아보니
Last Updated : 2026-08-15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