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건설 본사 18층, 경영지원팀 사무실.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규칙적으로 쏟아지는 파티션 안쪽 자리에서, 하은진은 모니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비상한 두뇌와 철두철미한 분석력은 회사의 복잡한 자금 흐름과 현장의 데이터를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었지만, 모니터를 바라보는 은진의 표정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화면에는 남편 지훈이 책임지고 있는 제2공구 현장의 주간 보고서가 떠 있었다.안전사고 발생률 0%, 자재 로스율 최저, 인력 투입 대비 최고 산출량.화면에 나열된 객관적인 숫자들은 지훈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었다.은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쯧쯧, 회장 아들이 저러고 있다니. 꼴이 아주 볼만하더군."그때, 덜 닫힌 소회의실 문틈으로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은진의 마우스 휠을 굴리던 손가락이 차갑게 멈췄다. 회장 도창수의 친척이자 경영진인 도상만 전무를 비롯한 이사들의 조소 섞인 음성이었다. 호시탐탐 흑룡건설의 핵심 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 그들은 소회의실에 모여 노골적으로 지훈을 깎아내리고 있었다."현장에서 인부들이랑 흙먼지 마시고 구르는 게 자랑인가? 경영 수업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막노동이나 하고 있으니...""형님이 다 알아서 길을 터주실 줄 알았는데, 저렇게 현장에만 처박아 두고 방치하시는 걸 보면… 싹수가 노랗지.""차라리 유능한 전문 경영인을 찾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은진의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숫자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훈의 현장이 지난 분기 가장 압도적인 효율을 내고 있었고, 그것은 단순한 땀방울이 아닌 철저한 관리의 결과였다.은진은 이내 꼿꼿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지훈을 비난하는 임원들의 말보다 은진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저들의 조롱 속에 담긴 소름 끼치는 진실이었다.'아버님은 왜 지훈 씨를 보호하지 않으시지?'중후하고 인자한 겉모습 뒤에 잔혹한 포식자의 본성을 숨긴 시아버지, 도창수
최신 업데이트 : 2026-07-05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