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지난날의 고통이 다시금 선명하게 되살아나, 이정의 마음을 속절없이 휘감았다.그는 문득 혼례를 올리던 밤을 떠올렸다.촛불이 환히 타오르는 가운데, 조희진은 붉은 혼례복 차림으로 말없이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면사를 걷어 올리자, 그녀의 눈이 드러났다.그 눈에는 새색시다운 수줍음이나 기쁨은 없었다. 그렇다고 서녀의 몸으로 감히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불안이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요한 연못처럼 담담할 뿐이었다.그런 그녀의 담담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었다.그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조희진. 짐이 너를 맞아들인 것은 오직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정비의 지위와 부귀영화는 내려줄 수 있으나, 짐의 연모만큼은 내어줄 수 없다. 허니 부디 명심하라. 본분을 지키고,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지 말거라.”‘당시 그녀는 뭐라고 답했더라?’그녀는 그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흐트러짐 하나 없는 몸가짐으로 예를 올린 뒤, 담담히 입을 열었다. “신첩,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그토록 평온하고, 그토록 분수를 아는 태도였다.그는 차갑게 몰아붙일 말을 이미 수없이 준비해 두었건만, 그녀의 담담한 반응 앞에서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이내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강남 순행길에서 처음 자객의 습격을 받았던 날이었다.자객의 칼끝이 그의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가녀린 한 사람이 눈앞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다.푸욱.칼날이 살을 파고드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숨이 막힐 만큼 섬뜩한 소리였다.뜨거운 피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황급히 돌아보았을 때, 조희진은 이미 그의 품으로 쓰러지고 있었다.어깨에는 조금 전 자신을 노렸던 칼이 그대로 박혀 있었고, 흘러나온 피는 순식간에 그녀의 옷자락을 붉게 물들였다.그녀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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