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 남자의 형에게 안기면 : Bab 31 - Bab 40

85 Bab

31화. 017의 방

“나는 열여덟에 집안의 개가 됐다.”복도 끝에 선 서우가 마침내 몸을 돌렸다.하진은 문턱 안쪽에 그대로 있었다.따라오라고 하지 않았으니 가지 않았다.“B-3에서요?”서우가 주머니 속 카드를 꺼냈다.닳은 모서리를 누르는 엄지에 힘이 들어갔다.“거기서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울지 않는 법보다 먼저,누가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배웠지.”“그럼 뭘 중요하게 봤는데요?”“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하진의 눈길이 카드 위 숫자에 머물렀다.“당신이 책임졌어요?”“장남이었으니까.”“태겸이 저지른 일도요?”“그 사람이 뭘 했는데요?”“그만해.”“내 이야기는 끝까지 들으면서 당신 이야기는 여기서 자르려고요?”서우가 한 걸음 돌아왔다.하진은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손잡이를 잡아 문이 닫히지 않게 했다.“그때 태겸은 열다섯이었다.”“당신은 열여덟이었고요.”“나는 버틸 수 있었다.”“누가 그래요?”“그 집 사람들이요, 아니면 아직도 거기 갇혀 있는 열여덟 살 강서우가요?”카드가 서우의 손안에서 휘었다.“태겸이 차를 몰았다. 사람을 다치게 했고,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고 진술했다.”“왜요?”“그놈이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거라고 했으니까.”“당신은 나왔어요?”서우의 고개가 비스듬히 숙어졌다.“몸은.”한 단어가 하진의 가슴을 깊이 긁었다.그는 문턱을 넘었다. 서우가 경고하듯 눈을 들었지만, 한 걸음 앞에서 멈췄다.“지금 안아도 돼요?”“동정이면 싫다.”“동정이면 허락 안 물어요.”서우의 숨이 거칠게 내려앉았다.“어디까지 올 건데.”“당신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그 말을 못 하면.”“내가 계속 물을게요.”하진이 손을 내밀었다.서우는 그 손을 잡는 대신 자신의 셔츠 위로 가져가 심장에 댔다.손바닥 아래에서 맥박이 위태롭게 뛰었다.“여기까지.”“네.”“무서우면 떼.”“그건 내가 정해요.”하진의 손가락이 셔츠를 움켜쥐었다.서우의 팔이 올라왔다가 허공에서 멎었다.하진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그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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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산 사람

“오늘 이 식탁에서 윤하진 씨가 버릴 사람은 하나뿐이에요.”오혜련은 하진 앞에 두 개의 봉투를 놓았다.왼쪽에는 원고 도용 정정 합의서가, 오른쪽에는 B-3 원본 기록이 들어 있었다.“왼쪽을 고르면 당신 이름을 돌려주죠.”“오른쪽은요?”“서우가 동생을 버렸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하진은 봉투보다 서우를 먼저 봤다.서우는 의자 등받이에 손을 얹은 채 하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진은 스스로 의자를 당겨 그의 오른쪽에 앉았다.“둘 다 열어주세요.”오혜련의 입가에서 미소가 지워졌다.“이 집에서는 하나만 고릅니다.”“그래서 다들 망가졌나 보네요.”태겸이 잔을 내려놓았다.“너는 형이 뭘 했는지도 모르잖아.”“당신이 잘라낸 다음 문장부터 들으면 알겠죠.”오혜련이 오른쪽 봉투를 열었다.스피커에서 어린 서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018을 남기겠습니다.태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뒤이어 잘렸던 음성이 이어졌다.—대신 제가 매일 돌아오겠습니다.쇠문이 닫히는 소리 뒤로 누군가 물었다.—그 아이가 평생 널 미워해도?—살아 있으면 됩니다.태겸의 손에서 잔이 미끄러졌다.“이제 왼쪽도 열어주세요.”오혜련이 정정 합의서를 하진 쪽으로 밀었다.“서우와 관계를 끝낸다는 조항에 서명하면 내일 아침 당신 이름으로 기사가 나갑니다.”하진은 마지막 장을 찢어 반으로 접었다.“내 이름은 거래한 적 없어요.”“그럼 계속 도둑맞은 작가로 살겠다는 건가요?”“되찾을 겁니다.”하진은 서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이 사람을 버린 대가로는 안 받아요.”“하진아, 내 쪽을 고르지 마.”“당신을 고른 게 아니에요.”하진이 시선을 돌렸다.“내가 싫어하는 거래를 거절한 거예요.”오혜련이 웃었다.“그러니 더 위험하지.”그녀가 손짓하자 식탁 뒤 벽이 갈라졌다.안쪽 서고에는 낯익은 원고들이 유리장 안에 꽂혀 있었다.태겸의 이름으로 출간된 소설과 버렸다고 믿었던 초고가 꽂혀 있었다.하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저게 왜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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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심장에 둔 사람

“그런 말 쉽게 하지 마요. 믿고 싶어지니까.”하진은 태겸이 내민 계약서를 보지 않고 서우를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자신을 작품처럼 샀다는 말보다,서우가 곧장 부정하지 못한 시간이 더 아팠다.“내 원고를 산 이유부터 말해요.”“태겸이 해외 법인에 넘기려 했다.”“그래서 당신이 먼저 가졌고요?”“다른 손에 넘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내 손에도 안 돌려주면서요.”서우의 손이 식탁 위에서 천천히 펴졌다.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겠다는 사람처럼 빈 손바닥만 드러냈다.“지금 돌려주겠다.”오혜련이 손가락으로 계약서의 마지막 장을 밀었다.“그러면 서우의 의결권 삼 퍼센트도 함께 사라져요.”하진의 눈길이 담보 조항에 박혔다.원고 권리와 서우의 후계 지분이 한 줄로 묶여 있었다.“알고 있었어요?”“알고 샀다.”“내 글 때문에 그 자리를 걸었다고요?”“네 글이 아니라 네 이름 때문에.”서우가 만년필을 들었다.“누구도 다시 네 문장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하진의 가슴이 흔들렸다.그래도 손을 뻗지는 않았다.지금 필요한 것은 품이 아니라, 자신을 빼놓고 결정한 남자의 책임이었다.“그 말로 숨긴 일까지 예뻐지지는 않아요.”“안다.”“서명하고도 내가 떠날 수 있어요.”서우의 펜촉이 서명란 위에 내려앉았다.“그래서 돌려주는 거다.”“붙잡고 싶지 않아요?”서우의 눈이 하진에게 닿았다.숨기려던 욕망이 눈동자 안에서 거칠게 흔들렸다.“붙잡고 싶다.”그 고백 뒤로 서우의 손등에 힘줄이 도드라졌다.“하지만 지금 널 붙잡으면, 내 진심까지 협박이 된다.”그는 서명을 끝냈다.마지막 획이 닫히자 오혜련의 표정에서 온기가 걷혔다.“고작 저 사람 하나 때문에 후계권을 버리는군요.”“저 사람 하나가 아니라 윤하진이다.”하진의 심장이 이름을 따라 세게 내려앉았다.용서하지 못한 사람에게 이름만으로 붙잡히는 자신이 분해서, 시선을 계약서로 내렸다.태겸이 계약서를 낚아채려 했다.하진이 먼저 손을 얹었다.“건드리지 마요.”“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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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이름 없는 열쇠

“사랑한다고 다 괜찮아지는 거 아니야.”이재는 여섯 달 전 작성된 보호 계약 초안을 책상 위로 밀었다.수신인에는 이미 윤하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네가 찾아가기 전부터 저 사람은 네가 올 자리를 만들어뒀어.”하진은 서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내가 올 줄 알았어요?”서우의 붕대 아래로 피가 다시 번지고 있었다.그는 다친 손을 숨기지 않았지만, 하진에게 내밀지도 않았다.“올 가능성을 준비했다.”“왜 하필 당신 집이었는데요?”“태겸이 네 주변 사람을 하나씩 끊고 있었으니까.”“그래서 마지막 출구를 당신 하나로 남겼어요?”서우의 턱선에 힘이 모였다.“내가 만든 출구는 아니다.”“그런데 문 앞에서 기다렸잖아요.”“그래.”“널 끌어오지는 않았지만, 오기를 바랐다.”이재가 헛숨을 삼켰다.하진의 손끝이 계약서 모서리를 구겼다.“그걸 보호라고 불렀고요?”“내 욕심을 섞고도 보호라고 믿었다.”“감시한 자료까지 모아놓고요?”“태겸에게서 빼낸 자료다.”“없애지 않고 읽었잖아요.”서우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가 올라갔다.“네가 어떤 위험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핑계로.”“결국 알고 싶은 만큼 들여다봤네요.”“그래.”두 번째 인정에는 변명할 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서우는 계약 종료 합의서를 꺼냈다.이미 그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네가 끝내자고 하면 바로 끝난다.”“또 먼저 준비했네요.”“이번에는 네 말을 늦게 듣고 싶지 않았다.”하진은 펜을 들었지만 곧장 서명하지 않았다.“내가 나가면 붙잡고 싶어요?”서우의 숨이 한 번 깊게 무너졌다.“가지 마.”이재의 눈이 서우에게 돌아갔다.하진의 손에서도 펜이 멎었다.서우는 그 말을 되돌리지 않았다.“하지만 그 말 때문에 남지는 마.”하진은 계약 종료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오늘은 이재랑 갈게요.”“알았다.”“알았다는 말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마요.”서우의 손가락이 책상 아래에서 천천히 접혔다.“네가 나간 뒤 이 집에서 잠들 자신이 없다.”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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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문패

“윤하진 작업실이라고 써도 돼요?”하진은 황동 문패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38층 복도 끝의 문에는 복제 키 018이 사용됐다는 붉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이재가 경비 호출 버튼에 손가락을 얹었다.“문부터 열지 마.”하진은 서우를 바라봤다.“안에 태겸 씨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너를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내가 확인한다.”“그럴 줄 알았어요.”하진이 열쇠를 리더기에 댔다.“이번 방에서는 내 판단부터 들여보낼게요.”잠금이 풀렸다.서우는 앞을 가로막지 않고 하진과 어깨를 맞춘 채 문턱을 넘었다.불이 켜지는 순간 하진의 걸음이 끊겼다.방은 비어 있지 않았다.낡은 책상과 회색 의자, 금이 간 머그잔,모서리가 닳은 스탠드까지 태겸과 살던 작업실에 있던 물건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벽에는 태겸의 이름으로 출간된 하진의 초판본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책상 한가운데에는 잃어버린 첫 원고가 펼쳐져 있었다.첫 장에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돌아온 걸 환영해, 하진아.〉하진의 손에서 문패가 기울었다.서우가 받치려던 손을 중간에 거두었다.대신 문패가 떨어질 자리에 자신의 손바닥만 펴두었다.하진은 그 위에 문패를 내려놓지 않았다.손가락에 힘을 주어 다시 바로 쥐었다.“저 물건들, 당신이 가져온 거 아니죠?”“아니다.”“이 방 주소를 아는 사람은요?”“나와 본가 법무실뿐이었다.”이재가 책상 아래를 살피다 봉투를 꺼냈다.봉투에는 오늘 날짜로 작성된 임대차 변경 신청서가 들어 있었다.임차인 칸에는 윤하진과 강태겸의 이름이 나란히 인쇄돼 있었다.하진의 서명까지 흉내 내져 있었다.“미친 새끼.”이재가 곧장 서류를 촬영했다.서우는 위조된 서명을 한동안 내려다봤다.눈썹 사이에 깊은 선이 패이고 붕대 감긴 손이 서서히 말렸다.“법무팀에 넘겨.”“먼저 없애야 할 게 있어요.”하진은 벽의 초판본을 한 권씩 뽑아 바닥에 내려놓았다.서우가 다가서려다 하진의 옆선에서 멈췄다.“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지금 부탁할게요.”하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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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문밖의 동생

“초대받지 못한 건 너야, 태겸아.”서우의 말이 떨어지자 태겸이 문패에서 손을 뗐다.손가락 끝에는 황동 가루가 묻어 있었다.하진은 그 흔적을 닦지 않았다.누가 자기 이름에 손댔는지 남겨두고 싶었다.태겸이 10년 전 공간 사용 계약서를 펼쳤다.“형 서명까지 있는데 내가 왜 초대받아야 해?”이재가 곧장 촬영 화면을 켰다.하진은 서류를 받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넘겼다.사용 개시 조건에는 B-3 퇴소와 동시에 본가의 보호 권한을 포기할 것이 적혀 있었다.“당신은 본가에서 나온 적 없네요.”태겸의 콧숨이 거칠게 샜다.“내가 못 나온 이유를 형한테 물어봐.”하진은 서우를 보지 않았다.“그건 두 사람 과거고, 여기는 내 작업실이에요.”그는 계약서를 태겸의 가슴에 돌려놓았다.“과거에 약속받은 방이 필요하면 강서우 씨한테 따져요.내 이름이 붙은 문을 밀고 들어오지는 말고.”“형이 준 방에 형이 산 원고를 들고 들어온 주제에 네 것이라고?”하진의 손이 문패 아래 출입 패널로 향했다.등록자는 윤하진 한 명뿐이었다.“내가 계약했고, 내가 이름을 썼고, 내가 들어올 사람을 정해요.”그는 서우 쪽으로 손을 뻗지 않았다.대신 문턱 안쪽에 반걸음의 자리를 비웠다.서우는 그 뜻을 알아보고 하진의 옆에 섰다.“내가 부른 사람은 이쪽이에요.”태겸의 입술이 비스듬히 일그러졌다.“결국 형을 택했다는 소리잖아.”“당신을 거절한 것과 저 사람을 선택한 건 다른 일이에요.”“뭐가 달라?”“당신은 내가 싫다고 해도 자기 자리를 주장하고.”하진은 서우의 붕대 감긴 손 가까이에 손등을 놓았다.서우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기울어 그의 마디에 닿았다.“이 사람은 내가 자리를 내줄 때까지 기다려요.”태겸이 그 접촉을 내려다봤다.분노보다 먼저 상실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하진은 그것을 위로하지 않았다.태겸이 상처받았던 시간과 자신을 상처 입힌 선택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형이 기다린다고?”태겸은 계약서 안쪽에서 사진을 꺼냈다.비 오는 밤, 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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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빼앗은 적 없는 사랑

“나는 빼앗긴 적도, 빼앗긴 물건도 아니야.”하진의 목소리가 셔터음을 잘랐다.기자들은 38층 복도를 가득 메운 채 태겸이 든 계약서와 새 문패를 번갈아 찍었다.누군가는 생중계 화면에 ‘형제의 연인 쟁탈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하진은 그 문구가 보이도록 기자의 휴대폰을 손끝으로 돌려 세웠다.“먼저 이것부터 고치세요.”“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연인도 쟁탈전도 아니에요. 당사자인 내 말은 한 줄도 없잖아요.”“강서우 대표가 동생의 공간과 연인을 함께 빼앗았다는 주장에 동의하십니까?”하진은 문패가 보이도록 몸을 옆으로 비켰다.황동판 위에는 윤하진 작업실이라는 이름이 선명했다.“이 방은 내가 계약했고, 이름도 내가 썼어요.”하진은 태겸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나는 누구한테서 누구에게로 넘어온 적 없고.”태겸이 계약서를 구겨 쥐었다.“형이 네 원고를 사고, 네가 올 집까지 미리 준비했는데도?”“그건 강서우 씨가 나한테 책임져야 할 일이에요.”하진의 시선이 서우에게 향했다.서우는 문턱 안쪽에 선 채 손 하나 내밀지 않았다.다가오고 싶은 마음만 붕대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내 권리를 숨겼고, 내가 알 시기를 대신 정했어요.”카메라가 일제히 서우를 향했다.“그래서 아직 용서하지 않았습니다.”서우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변명은 나오지 않았다.한 기자가 곧장 파고들었다.“그렇다면 관계를 끝낼 의향도 있으십니까?”하진의 입안이 바싹 말랐다.어제까지는 자신도 답을 알지 못했던 질문이었다.서우의 손이 몸 옆에서 조금 내려갔다.하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가로막지 않겠다는 움직임이었다.“그런데도 형 옆에 서겠다고?”“용서와 선택은 다른 일이니까.”“이 사람은 적어도 내가 내준 자리보다 먼저 들어오지 않아요.”플래시가 맞잡은 손 위로 쏟아졌다.“두 분이 연인이라는 뜻입니까?”하진의 심장이 손바닥까지 세게 뛰었다.“오늘 여기 선 이유는 보호 계약 때문이 아니에요.”하진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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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후회 예고

“태겸이 뭘 갖고 있는지 말해야 해.”이재가 작업실 블라인드를 내리고 노트북을 책상 위로 돌렸다.공개 예약까지 17분이 남아 있었다.화면에는 회수하지 못한 파일 두 개가 떠 있었다.〈YH_PRIVATE_12〉〈그 남자의 형에게 안기면_최종본〉하진의 손끝이 두 번째 제목에서 멎었다.“저 제목, 내가 쓴 적 없어요.”이재가 파일 속성을 열었다.초안 작성자는 윤하진이었다.최종 편집자에는 강태겸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삭제된 음성 기록과 메모를 이어 붙여 만든 원고는 17장이나 됐다.마지막 장에는 하진이 쓰지 않은 결말까지 붙어 있었다.〈윤하진은 원고를 돌려받는 대가로 강서우의 침대에 들어갔다.〉하진은 문장을 끝까지 읽은 뒤 노트북 화면을 서우 쪽으로 돌렸다.“저게 공개되면 당신은요?”“네 선택을 산 사람이 되겠지.”“부정부터 안 하네요.”“지금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네 이름이다.”“또 그렇게 혼자 빠지지 마요.”하진은 화면을 다시 자기 앞으로 당겼다.“내 이름에 당신을 더럽혀 놓고 도망가게 두지 않을 거예요.”서우가 화면 가까이 다가오다 하진의 의자 뒤에서 걸음을 접었다.“내용은 네가 내 집에 들어온 첫날 삭제한 음성 기록이다.”“당신은 들었어요?”“첫 문장만.”서우의 붕대 아래로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왜 끝까지 안 들었는데요?”“내 이름 뒤에 네가 감춘 마음이 있었으니까.”하진은 재생 버튼을 눌렀다.종이가 스치는 소리 뒤로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 남자의 형은 위험한 사람이었다.—그런데 나는 잠긴 방 안에서 그 사람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하진의 목덜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태겸에게서 달아난 첫날, 잠들지 못해 읽었다가 지운 문장이었다.—보호받고 싶어서 온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야 강서우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있으니까.하진은 빈 의자를 발끝으로 밀어 자신의 옆에 놓았다.“거기 서 있으면 내가 혼자 들킨 것 같아요.”서우가 의자에 앉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원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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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처음 쓴 장면

“강서우는 위험한 남자였다. 그래서 나는 살았다.”하진은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첫 문장을 읽었다.화면 한쪽에는 태겸이 먼저 등록한 도용 원고가,다른 쪽에는 하진의 빈 문서가 떠 있었다.접속자는 4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그다음도 읽을 거야?”이재가 물었다.“오늘 안 읽으면 또 누가 내 결말을 대신 쓸 테니까.”하진은 노트북을 덮고 원고지와 만년필을 꺼냈다.“온라인 문서는 건드릴 수 있어도 이건 못 훔쳐.”서우는 카메라 밖에 서 있었다.하진이 시선을 들자 그가 반걸음 가까워졌다.“종이를 잡아줘요.”서우의 붕대 감긴 손이 원고지 아래로 들어갔다.상처가 눌리지 않도록 손끝으로 모서리만 받쳤다.하진은 그 위에 2번째 문장을 적었다.〈그는 나를 갖고 싶어 했지만, 내가 고르지 않은 방식으로는 가지지 않았다.〉“이 문장, 틀렸어요?”“내가 말하면 네 문장이 흐려진다.”“틀렸으면 지울게요.”서우의 시선이 글자에서 하진에게 옮겨왔다.“지우지 마.”하진은 다음 줄을 비워둔 채 물었다.“왜요?”“내가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이니까.”카메라 밖에 있던 기자들이 술렁였다.하진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나는 그 남자의 형에게 도망친 것이 아니다.〉〈살아남은 뒤에도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을 내가 다시 고른 것이다.〉서우의 손가락이 원고지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렸다.“지금 내 옆에 있는 이유를 말해요.”서우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숨이 하진의 손등 가까이 내려앉았다.“네가 부른 자리라서.”“보호 계약 때문이 아니고요?”“계약은 끝났다.”“내 원고 때문도 아니고요?”“원고가 없어도 널 원한다.”하진의 펜 끝에 잉크가 뭉쳤다.그는 번진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그럼 내가 어떤 결말을 써도 읽을 거예요?”“내가 버려지는 결말이어도.”“그런 말로 먼저 벌받지 마요.”하진은 원고지를 받치던 서우의 손 위에 만년필을 내려놓았다.“지금은 당신 차례예요. 나한테 뭘 원하는지 말해요.”서우의 손등 위로 붕대의 붉은 자국이 조금 더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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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이름의 값

“벗어나지 마요. 대신 결말은 내가 쓸게요.”하진이 서우의 셔츠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이재의 노트북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발신자는 정문익 기자였다.“태겸이 넘긴 저장 장치에서 긴 영상이 복구됐대. 공개된 건 47초고, 이건 9분 18초야.”정문익은 편집본만 확인하고 기사를 낸 책임을 후속 보도에 명시하겠다고 적었다.복구 업체의 확인서와 파일 식별값도 첨부돼 있었다.하진은 카메라를 대기 화면으로 바꿨다.“먼저 봐요. 이번에는 남이 자른 장면으로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영상 속 태겸이 원고를 회의실 탁자에 올렸다.“공모전에서 떨어진 원고예요. 쓴 사람은 연락이 안 됩니다.”서우가 첫 장을 펼쳤다.“네가 쓴 문장이 아니군.”태겸은 부정하지 않았다.“형이 출간하면 진짜 쓴 놈이 기어 나오겠죠.”잠시 뒤, 이미 공개된 목소리가 이어졌다.“출간해. 저자명은 강태겸으로.”영상은 끝나지 않았다.서우가 계약서 여백에 조건을 적었다.원저작자 확인 전 인세 지급 금지.2차 계약 금지.원저작자 확인 즉시 출간 중단 및 저자명 정정.“초판만 승인한다. 저자가 나타나면 네 이름부터 내린다.”“안 나타나면요?”“내가 찾는다.”화면이 멈췄다.이재가 최종 계약본과 대조했다.서우가 적은 3개 조항은 모두 삭제돼 있었다.수정에는 차유경 명의 계정이 사용됐고, 같은 날 태겸의 해외 판권 검토가 시작됐다.그러나 계정 기록만으로 실제 수정자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하진이 물었다.“그럼 당신은 누명을 쓴 거예요?”“아니.”서우가 대답했다.“훔친 원고라는 걸 알면서도 세상에 내보냈어.태겸을 잡겠다는 이유로 이름도 모르는 작가의 문장을 미끼로 썼다.”“나를 찾으려고 그랬다는 말은 하지 마요.”“그때 내가 찾으려던 건 네가 아니라 태겸의 약점이었어.”변명보다 정확한 말이 더 깊이 박혔다.하진은 조금 전 자신이 쓴 원고지를 뒤집었다.그는 내가 고르지 않은 방식으로는 가지지 않았다.문장은 가려졌지만 지워지지는 않았다.“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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