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그 남자의 형에게 안기면 : Bab 11 - Bab 20

85 Bab

11화. 아침의 거리

“어젯밤 일, 후회해요?”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하진이 물었다.로비에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고,휴대폰 화면에는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사진이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었다.서우는 하진의 손이 아니라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보았다.“후회하지 않아.”“같은 방에 있었던 것도요?”“네가 돌아온 것도, 네가 먼저 입 맞춘 것도 전부.”대답이 너무 곧아 하진의 심장이 먼저 흔들렸다.“그런데 기자들 앞에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네가 정하지 않은 관계를 내가 먼저 이름 붙일 수는 없으니까.”“당신 마음은 정했잖아요.”“그래.”서우가 마침내 하진을 보았다.“그래서 더 조심하는 거다.”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리자 플래시와 질문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윤하진 씨, 원고를 돌려받는 조건으로 강서우 전무와 동거한 겁니까?”“강태겸 작가와 헤어진 뒤 형에게 접근한 이유가 뭡니까?”서우가 하진보다 반걸음 앞으로 나갔다.하진이 그의 소매를 잡아 옆으로 끌어내렸다.“앞에 서지 마요.”“다칠 수 있어.”“그럼 같이 맞아요.”“무서우면 내 뒤에 숨어.”그가 기자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내 옆도 비워둘게.”하진은 서우의 뒤가 아니라 옆에 섰다.누군가 밀치는 순간 서우의 팔이 허리 가까이 올라왔다가 멈췄다.“잡아도 되나.”“지금은요.”허리를 감싼 팔이 하진을 감추지 않고 중심만 잡아주었다.하진은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그 팔을 밀어내지 않았다.“연인 관계입니까?”하진이 걸음을 멈췄다.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또 하진에게 선택을 돌려주고 있었다.“아직 아닙니다.”플래시가 더 거세졌다.하진은 서우의 팔 위에 손을 얹었다.“하지만 이 사람 옆에 서 있는 건 제 선택입니다.”차에 오르자마자 백이재에게 전화가 왔다.“하진아, 출판사에서 긴급 저작권 심사를 연대.”“언제?”“오전 열 시.”현재 시각은 여덟 시 십이 분이었다.“태겸이 네 원고 출간을 강행하면서 가처분에 대응했어.”“뭘 내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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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훔친 첫 문장

강태겸이 훔친 건 원고만이 아니었다.하진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작까지 그의 것이 아니었다.대형 화면에는 팔 년 전 메일이 열려 있었다.[이 원고를 읽는 사람이 있다면, 윤하진은 이미 죽었습니다.]태겸 측 변호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스스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고 인정한 문장입니다.”“끝까지 읽으세요.”하진이 화면 앞으로 걸어갔다.손은 떨렸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내 이름 없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작가 윤하진은 죽습니다.][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읽었다면, 내일의 나에게 한 문장만 남겨주세요.]회의실이 조용해졌다.편지 아래에는 공개본에 없는 인물의 본명과 삭제한 결말,장면을 고친 날짜가 차례로 적혀 있었다.심사위원이 원본 검증 결과를 확인했다.“발송 시점은 강태겸 작가가 원고를 보유하기 석 달 전입니다.”태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본안 판정 전까지 강태겸 명의의 출간과 유통을 잠정 중지합니다.”하진은 숨을 내쉬지 못했다.이겼다는 감각보다 팔 년 전의 자신이 수십 명 앞에 벗겨졌다는 감각이 먼저 밀려왔다.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가오지 않았다.“하진아.”하진이 고개를 들었다.“지금 네 이름을 불러도 되나.”누구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 허락을 구한 적이 없었다.태겸은 화를 낼 때도, 달랠 때도, 도망치지 못하게 할 때도 하진의 이름을 제 것처럼 사용했다.“불러봐요.”“하진아.”세 글자가 명령이 아니라 돌아볼 자리를 남겨두는 소리로 들렸다.하진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듣고 움츠러들지 않았다.회의실을 나서려는 순간 법무팀 직원이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복원된 서버에 답장 기록이 있습니다.”하진의 걸음이 멈췄다.메일 발송 일곱 분 뒤 익명의 수신자가 답장을 보냈다.[하진아, 네 원고를 읽었다.][내일 아침까지 살아 있어.][살아 있으면 네 이름을 지킬 방법을 찾겠다.]발신자는 강서우였다.하진이 천천히 서우를 돌아보았다.“답장하지 않았다고 했잖아요.”“답장이 도착하지 않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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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카메라가 본 밤

“누가 내 방문을 찍고 있었죠?”하진의 휴대폰에는 방금 전송된 사진이 떠 있었다.새벽 네 시 십이 분, 닫힌 객실 문 앞에 서우가 앉아 있었다.사진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었다.[저 남자는 널 지킨 게 아니라, 네가 문을 열기만 기다린 거야.]하진이 고개를 들자 복도 천장의 작은 렌즈가 붉게 깜빡였다.“당신이 달았어요?”“복도 보안 카메라는 원래 있었다.”“내 방문을 정면으로 찍게 한 것도요?”“아니다.”“이 집에서 당신 모르게 가능한 일이에요?”“가능하게 만든 책임은 내게 있다.”서우는 벽면 패널을 열어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카메라의 각도는 하진이 펜트하우스에 도착하기 세 시간 전에 변경돼 있었다.그 뒤로 영상은 매분 외부 저장소에 복사되고 있었다.“누가 봤어요?”“아직 추적 중이다.”“당신은요?”“한 번도 열지 않았다.”“믿으라고요?”서우는 관리자 기록을 하진 쪽으로 돌렸다.서우의 계정에는 열람 이력이 없었다.대신 삭제되지 않은 재생 기록 하나가 남아 있었다.하진은 손끝으로 영상을 눌렀다.화면 속 서우는 객실 문 앞에 앉아 있었다.문 안에서 하진이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서우는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가 곧바로 내렸다.“하진아.”녹화된 목소리가 복도에 번졌다.“열어달라고 하면 들어갈게.”서우는 문을 두드리지도, 이름을 다시 부르지도 않았다.그저 문밖에 등을 기대고 아침까지 앉아 있었다.하진은 화면을 빠르게 넘기다 새벽 다섯 시 사십 분에서 멈췄다.서우는 잠든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나자 즉시 눈을 떴다.보호한다는 말보다 그 장면이 더 집요하게 하진을 흔들었다.“왜 안 들어왔어요?”“네가 잠갔으니까.”“안에서 울고 있었는데도요?”“잠근 문은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야.”“팔 년 전에도 그렇게 생각해서 안 왔어요?”“그때는 겁이 나서 돌아섰다.”“지금은요?”“겁나도 여기 있을 생각이다.”“내가 끝까지 문을 안 열어도요?”“그래도 문밖에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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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아직은

“형, 문 열어. 내 물건이 거기 있잖아.”태겸의 목소리가 현관 스피커를 타고 거실까지 흘러들었다.보안 화면 속 그는 메모리 카드를 들고 있었고,재킷 단추에서는 작은 붉은 불이 깜빡였다.서우가 먼저 알아봤다.“생중계 중이야.”하진은 화면 한쪽의 접속자 수를 확인했다.십이만 명.태겸은 원고 영상을 공개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하진이 형의 집에서 어떤 얼굴로 서 있는지 세상에 보여주러 온 것이다.“문 열지 마.”하진은 잠금 해제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열어야 저 사람이 자기가 이겼다고 믿어요.”“네가 다칠 수 있어.”“그럼 옆에 있어요.”하진은 서우를 뒤로 세우지 않았다.두 사람의 어깨가 같은 선에 놓인 것을 확인한 뒤 문을 열었다.태겸은 문턱을 넘지 않고 카메라부터 하진에게 향했다.“대답해, 하진아.”그의 시선이 하진의 입술을 훑었다.“너 정말 형이랑 잤어?”실시간 댓글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하진은 서우가 움직이려는 기척을 느끼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제가 대답할게요.”서우는 멈췄다.하진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아니.”태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럼 형 방에는 왜 들어갔는데?”“내가 원해서.”웃음이 태겸의 얼굴에서 사라졌다.“내가 먼저 문을 열었고, 내가 먼저 입 맞췄어.”서우의 손목 아래에서 맥박이 거칠게 뛰었다.그러나 그는 하진의 말을 막지 않았다.“원고를 돌려받으려고?”“아니.”하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당신한테서 빼앗긴 선택을 되찾으려고.”태겸은 메모리 카드를 들어 보였다.“이 영상이 나가면 아무도 그렇게 안 믿어.”“원본도 공개해.”“뭐?”“내가 어디까지 허락했고, 강서우 씨가 어디서 멈췄는지 전부.”카드에는 거래를 증명할 장면이 없었다.하진이 먼저 다가가고, 서우가 매번 허락을 확인하는 장면만 있었다.“못 하겠어?”하진이 물었다.“그럼 잘라 붙였다는 뜻이네.”댓글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태겸이 카메라를 끄려 하자 하진이 그의 손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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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대답 없는 고백

“그 질문에 대답하면, 누가 더 망가질까요?”태겸이 남긴 질문은 현관문이 닫힌 뒤에도 하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너 정말 형이랑 잤어?'하진은 서우의 침실 안에 서 있었지만,조금 전 풀었던 넥타이를 더는 잡지 못했다.“대답하지 않아도 된다.”서우가 먼저 문 쪽으로 물러났다.“말하지 않는 것도 네 선택이야.”“그렇게 말하면 더 비겁해져요.”“누구한테.”“나한테요.”하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처음 맞은 날, 내가 먼저 사과했어요.”서우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멎었다.“태겸 씨가 내 노트북을 던졌고, 원고가 든 외장하드를 밟았어요.”하진은 제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그런데 나는 다친 얼굴보다 원고부터 봤어요.”깨진 외장하드를 주워 들자 태겸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안에 다음 화를 쓰면 복구해주겠다고.하진은 입술이 터진 채 밤새 원고를 썼다.문은 잠겨 있었지만 열어달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태겸이 실망하는 일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아침이 왔을 때 태겸은 외장하드가 처음부터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그런데도 안 나왔어요.”“오히려 버리지 말라고 했어요.”“왜.”“그 사람이 떠나면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없어질 것 같아서.”그 말이 방 안에 떨어지자 하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맞은 일보다 매달린 일이 더 수치스러웠다.태겸이 자신을 가둔 기억보다,스스로 문을 닫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던 기억이 더 끔찍했다.“그래서 대답하면 내가 망가져요.”“무슨 대답을 해도, 또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사람처럼 보이니까.”서우가 천천히 문손잡이에서 손을 뗐다.그러나 다가오지는 않았다.“들어간 건 네 선택이 맞아.”하진의 얼굴이 굳었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요?”“없던 일로 만들지 않겠다.”서우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등의 핏줄은 팽팽하게 솟아 있었다.“네가 돌아갔고, 매달렸고, 원고를 쓴 것도 네가 한 일이야.”“그런데.”“그 선택을 이용해 너를 때리고 가둔 건 강태겸의 죄다.”하진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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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서우의 흉터

“당신도 맞고 자랐어요?”서우의 팔이 하진의 등에서 멈췄다.“자랐다는 말은 틀려.”“그럼요?”“이미 다 큰 뒤였으니까.”하진은 서우의 셔츠 자락을 놓지 않았다.“누가 그랬어요?”“그 질문에는 아직 대답하지 않겠다.”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이 돌아왔다. 말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말.하진은 서우를 몰아세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보지 못한 척할 수도 없었다.“다시 보여줘요.”“봤잖아.”“당신이 감추기 전에는 제대로 못 봤어요.”“보고 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당신이 내 상처를 보고도 안 달라졌잖아요.”서우는 한참 뒤에야 등을 돌렸다.셔츠 자락이 올라가자 등허리를 비스듬히 가로지른 흔적이 드러났다.하나가 아니었다. 오래전에 찢어졌다 붙은 자국 아래로 옅은 선들이 겹쳐 있었다.하진이 손을 들자 서우의 등이 굳었다.“만져도 돼요?”“네가 원한다면.”하진은 손바닥 대신 손등부터 가져갔다.가장 옅은 흉터에 살결이 스치자 서우가 숨을 멈췄다.“아파요?”“지금은 아니다.”“그런데 왜 참아요?”“몸은 끝난 일을 늦게 믿으니까.”하진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문이 열려 있어도 나가지 못했던 밤.손이 올라오지 않았는데도 먼저 눈을 감았던 순간.끝난 뒤에도 몸은 계속 그 안에 살았다.“그 집에서는 이걸 뭐라고 했어요?”“교정.”“사람을 이렇게 만들고요?”“싫다고 말하는 습관을 고친다고 했지.”하진의 손이 멎었다.서우는 늘 멈추라는 말을 먼저 가르쳤다.자신은 그 말을 끝까지 빼앗겨본 사람이면서.“그래서 나한테는 자꾸 물어요?”하진은 손을 뒤집어 흉터 위를 온전히 덮었다.이어 이마를 서우의 어깨 뒤에 기댔다.“뭐 하는 거지.”“당신이 나한테 한 거요.”“내가 언제.”“내가 먼저 놓을 때까지 기다렸잖아요.”서우의 손이 침대 가장자리에서 떨어졌다.갈 곳을 찾지 못하던 손가락이 하진의 손등 위로 내려왔다.흉터 위에서 두 사람의 손이 겹쳤다.“내 과거까지 들겠다는 말은 하지 마.”“안 들어요.”“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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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둘만의 조항

“새 계약서를 써요. 이번엔 제 조건도 넣을래요.”서우는 하진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방금 질문의 답을 피하려는 건가.”“반대예요.”하진은 서우의 가슴 위에 얹었던 손을 천천히 거뒀다.“당신이 날 뭐로 보는지, 말보다 오래 남는 데 적으려고요.”두 사람은 서재로 옮겼다.서우의 휴대전화에는 기사 차단과 보안 영상 회수를 재촉하는 연락이 쌓였지만,그는 화면을 뒤집어 놓았다.하진은 빈 종이 앞에 앉았다.태겸과 살던 집에도 규칙은 많았다.전화를 세 번 울리게 하지 말 것.원고는 가장 먼저 보여줄 것.허락 없이 밖에서 자지 말 것.그 규칙들은 늘 하진의 자리를 줄였다.하진은 첫 줄을 눌러 썼다.― 윤하진의 거취는 윤하진만 결정한다.“회장이 나가라고 해도요?”“여기서 너를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다.”하진은 두 번째 조항을 적었다.― 보호를 이유로 윤하진에게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전부 알면 네가 더 다칠 수도 있다.”“모르면 덜 다쳐요?”서우가 대답하지 못했다.하진은 서우의 소매 끝을 잡아 한 번 접었다.감춰져 있던 손목이 드러났다.“당신은 자꾸 내가 못 볼 곳에서 대신 다치려고 해요.”하진의 손가락이 접힌 소매를 눌렀다.“그건 보호가 아니라 배제예요.”서우는 두 번째 조항 옆에 서명했다.하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강태겸이었다.― 형이 종이에 네 이름 몇 줄 써주면 진짜 네 사람이 되는 줄 알아?하진은 통화를 끊지 않았다.“아니.”태겸의 숨이 수화기 너머에서 멎었다.“내가 내 이름을 쓰는 거야.”하진은 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스피커를 켰다.― 너는 또 누군가한테 매달리고 있는 거야.“그래서 세 번째 조항도 네가 들어.”하진은 펜을 움직였다.― 강서우는 윤하진의 의사에 반해 대신 복수하거나 용서하지 않는다.태겸이 웃었다.― 형이 그걸 지킬 것 같아?서우가 종이를 끌어와 문장 아래에 한 줄을 더했다.― 단, 윤하진을 다시 해치는 행위는 그의 허락 없이도 즉시 막는다.“강태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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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엘리베이터 정전

“불 꺼졌다고 가까워지는 건 반칙이죠.”“먼저 내 쪽으로 들어온 건 너다.”엘리베이터가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멎었다.하진의 몸이 앞으로 쏠리자 서우의 팔이 허리를 받아냈다.붙잡는 힘은 단단했지만 한쪽은 열려 있었다.하진이 원하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남겨둔 틈이었다.“내가 멈추라고 할 때만 멈추랬잖아요.”“지금은 네가 놀란 건지, 나를 원하는 건지 구분해야 한다.”“둘 다면요?”곧 비상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아무 응답도 없었다.천장 안쪽에서 금속이 울릴 때마다 하진의 손이 서우의 재킷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꺼진 불과 잠긴 문이 오래전의 방을 끌고 왔다.열어달라는 말조차 태겸을 화나게 할까 봐 삼켰던 밤이었다.“하진아.”서우의 팔이 즉시 풀렸다.“내 오른손은 비상 버튼 위에 있다.”하진은 가쁜 숨을 삼켰다.“왼손은 네 목덜미에서 한 뼘 떨어져 있다.”보이지 않는 손의 위치부터 알려주는 남자였다.“가져와도 돼요?”“네가 직접.”하진은 허공을 더듬어 서우의 손등을 찾았다.그 손을 제 목덜미에 가져다 대자 손바닥의 열이 떨림을 덮었다.“한 뼘은 너무 멀어요.”“지금도 네 선택인가.”“무서워도 선택은 할 수 있어요.”서우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아래를 감쌌다.당기지 않고, 하진이 기대어 올 자리를 만들었다.하진은 이마를 서우의 어깨에 눌렀다.재킷 아래에서 뛰는 심장이 자신의 것만큼 거칠었다.“당신도 무서워요?”“그래.”“정전이요?”“네 허락을 내 욕심대로 번역할까 봐.”하진은 느슨해진 넥타이를 찾아 손가락에 감았다.“그럼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들어요.”“말해.”“목덜미는 허락했어요.”하진은 서우의 다른 손을 제 등 가운데에 올렸다.“여기도요.”손바닥이 어깨뼈 사이를 감싸자 굳어 있던 허리가 천천히 풀렸다.“그리고 지금은 놓지 마요.”서우의 팔이 하진을 완전히 끌어안았다.보호를 위한 자세가 아니라, 원해서 품는 힘이었다.등을 누르는 손과 목덜미를 받친 손 사이에서 하진의 숨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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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기사 한 줄

“강서우 대표의 새 남자, 정체는?”기사는 정문을 백 미터 앞둔 차 안에서 새로고침될 때마다 제목을 바꿨다.처음에는 비밀 동거인이었다.다음에는 동생의 전 연인이었다.마지막에는 한 줄만 남았다.― 강서우 대표 측, 윤하진 씨와의 사적 관계 전면 부인.하진은 화면을 두 번 눌렀다.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이거 당신이 낸 거예요?”“아니.”서우의 대답과 동시에 조명운에게 전화가 왔다.― 회장실에서 대표님 명의로 배포했습니다.“내 명의로?”― 언론사는 본인 확인까지 마쳤다고 보도 중입니다.서우가 통화를 끊자 또 다른 속보가 떠올랐다.― 윤 씨는 강태겸 전무와의 분쟁으로 임시 보호받았을 뿐, 강서우 대표와는 무관한 인물.무관한 인물.하진은 그 네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숨을 곳이 필요해 찾아온 사람.계약이 끝나면 사라질 사람.누구에게도 선택받지 않았다고 정리하면 가장 처리하기 쉬운 사람.“정정시켜요.”“이미 지시했다.”“얼마나 걸려요?”“최소 십 분.”정문 앞 방송 차량의 조명이 차창을 훑었다.십 분이면 저 한 줄이 하진의 이름보다 멀리 갈 시간이었다.서우의 휴대전화로 회장실 문서가 도착했다.공식 입장을 유지하면 긴급 직무 정지안이 철회된다는 조건이었다.반박하면 서우가 사적 감정으로 회사 보안을유용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장도 붙어 있었다.“나를 모른다고 하면 당신 자리는 지킬 수 있네요.”“그 선택지는 없다.”“당신은 늘 너무 빨리 버려요.”“뭘.”“당신이 가진 것들.”하진은 화면을 서우에게 돌려줬다.“그래서 받는 사람은 겁나요.”“내 자리는 네 책임이 아니다.”“세상은 그렇게 안 쓸 텐데요.”“세상이 쓴다고 사실이 되진 않는다.”“방금 한 줄도 벌써 사실처럼 읽히잖아요.”서우의 손이 움직이다 하진의 손 앞에서 멎었다.하진은 기다리지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서우의 손가락이 그 위로 내려왔다.엄지가 손바닥 한가운데를 누르자 흩어지던 감각이 한곳으로 모였다.“나를 살리려고 저 문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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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입맞춤의 증거

“불타는 건 익숙해.”서우가 잠금장치를 풀었다.차문이 열리자 섬광과 고함이 동시에 밀려들었다.“강서우 대표님, 윤하진 씨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입장이 사실입니까?”“윤하진 씨가 보호를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습니까?”서우는 먼저 내리지 않았다.하진의 옆구리에 얹은 손도 거두지 않았다.“밖에서도 이대로 있어도 되나.”“내가 놓으라고 할 때까지요.”서우가 차에서 내려 손을 내밀었다.하진은 손바닥을 잡는 대신 손가락 사이로 제 손을 밀어 넣었다.맞물린 손이 차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셔터음이 폭발했다.서우는 하진을 등 뒤로 숨기지 않았다.기자들이 한 걸음 밀려오자 하진의 어깨 뒤에 손을 받쳐 설 자리만 지켰다.“방금 배포된 입장문은 내가 승인하지 않았다.”“그럼 두 분은 교제 중입니까?”“동생의 연인을 빼앗았다는 의혹을 인정하는 겁니까?”서우가 입을 열기 전에 하진이 맞잡은 손을 당겼다.서우의 몸이 하진 쪽으로 돌아섰다.“내 이야기는 내가 할게요.”“그래.”하진은 카메라를 바라봤다.수십 개의 렌즈 사이에 태겸의 눈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저는 강태겸 씨와 끝난 사이입니다.”“언제 헤어졌습니까?”“끝난 건 오래전입니다.”하진은 서우의 손등에 엄지를 댔다.자신보다 빠른 맥박이 피부 아래에서 뛰고 있었다.“그 집에서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을 뿐이에요.”기자들의 고함이 잠시 잦아들었다.“저는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옮겨간 물건이 아닙니다.”“그렇다면 강서우 대표와는 무슨 관계입니까?”서우는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하진이 고를 이름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직 이름은 없어요.”주변에서 비웃음과 질문이 한꺼번에 터졌다.“이름도 없는 관계 때문에 공개석상에 나온 겁니까?”“확실한 건 있으니까요.”하진은 맞잡았던 손을 놓았다.서우의 손도 즉시 떨어졌다.허락이 끝났다고 이해한 반응이었다.하진은 그 손목을 다시 붙잡아 자신의 허리 뒤로 가져갔다.“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서우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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