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내 아이를 지운 남자가 내 친구와 결혼한다: Kabanata 61 - Kabanata 70

148 Kabanata

제61화. 닮은 서명

[ 연희야. 그 서명, 내 것이 아니야. ]세아의 음성이 끝난 뒤에도 수술동의서는 화면에 남아 있었다.보호자 서명란에는 한세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도율은 문서를 열어 둔 채 원본 보존부터 걸었다.“수정 이력과 생성 정보를 먼저 묶겠습니다.”파일 생성 시각은 수술 당일 오전 9시 43분이었다.출력 시각은 그보다 6분 뒤였다.연희가 수술 설명을 들었다고 기록된 시각보다 47분 빨랐다.“설명도 듣기 전에 동의서가 만들어졌네요.”“누군가 결론부터 작성한 겁니다.”도율이 서명 부분을 확대했다.획의 끝마다 잉크가 작게 뭉쳐 있었다.이름을 보면서 한 글자씩 따라 쓴 사람의 흔적이었다.그는 세아가 결혼식 계약서와 보험금 수령서에 남긴 서명을 불러왔다.세아가 직접 쓴 ‘한’은 첫 획이 길었다.‘세’의 세로선은 멈추지 않고 내려갔고, ‘아’의 마지막 선은 오른쪽 위로 올라갔다.수술동의서의 글씨는 달랐다.첫 획이 짧았고, 세로선 가운데에서 펜이 한 번 멈췄다.마지막 선은 아래로 눌려 있었다.도율이 두 서명을 겹쳤다.같은 이름이었지만 손의 순서는 달랐다.“세아 씨 서명을 그대로 복사한 건 아닙니다.”“그럼 이름만 보고 쓴 거예요?”“다른 사람의 필체로 한세아라는 이름을 쓴 겁니다.”연희는 동의서의 나머지 칸을 살폈다.환자 이름.수술명.보호자 관계.주의사항.문서 전체에서 잉크 번짐과 필압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서명만 나중에 덧붙인 흔적은 아니었다.누군가 빈 동의서의 모든 칸을 한 번에 채웠을 가능성이 컸다.“비교할 글씨가 더 필요합니다.”연희는 휴대전화에 남은 사진을 뒤졌다.정애가 도시락 뚜껑에 붙였던 쪽지.과수원 달력에 표시한 농약 날짜.세아의 학교 비상연락망에 적힌 보호자 이름.병원에서 돌아온 날 약 봉투에 붙어 있던 메모.[ 저녁 먹고 한 알. 속 비우지 말 것. ]도율이 정애의 글씨와 수술동의서를 한 글자씩 대조했다.수술동의서의 ‘이’가 정애의 쪽지 위에 겹쳐졌다.첫 획을 왼쪽으로 짧게 꺾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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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훔친 손글씨

“나, 예전에 세강병원 서류를 대신 써 줬다.”정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전화기 너머에서는 냄비 끓는 소리만 이어졌다.연희는 수술동의서와 어머니의 메모를 나란히 띄웠다.“무슨 서류였어?”“오래된 보험기록.”“왜 엄마가 그걸 써?”“글씨가 흐려서 전산에 못 넣는다고 했다.”정애는 재문이 허리를 다쳐 일을 쉬던 겨울에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찾았다.병원에서 보내온 원본을 보고, 읽기 어려운 칸을 새 종이에 정자로 옮기면 장당 돈을 받았다.보험청구서와 입원확인서가 대부분이었다.“누가 일을 줬어?”“처음에는 동네 부녀회 사람한테 소개받았다.”“병원 사람 이름은?”“봉투에 적힌 이름만 봤다.”도율이 통화 가까이로 몸을 옮겼다.“완성한 서류만 돌려보냈습니까?”“틀린 종이도 같이 보내라고 했다.”“왜요?”“검수할 때 필요하다고 했다.”정애는 한 글자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썼다.잘못 쓴 종이와 밑줄을 맞추려고 연습한 종이까지 병원에서 보낸 회신 봉투에 넣었다.연희는 수술동의서에 남은 획을 바라봤다.어머니가 한 번에 쓴 글씨만 가져간 것이 아니었다.틀렸을 때 멈추는 자리와 다시 쓸 때 달라지는 모양까지 병원에 남아 있었다.“엄마 이름도 썼어?”“원본에 있으면 썼다.”“내 이름은?”정애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몇 번 있었다.”연희의 손이 수술동의서 위에서 멈췄다.“세아 이름도?”“기억 안 난다.”“그때 받은 종이가 남아 있어?”“장롱 아래 회색 가방.”재문이 전화를 넘겨받았다.“지금 꺼내면 되냐?”“뜯기 전에 영상부터 켜.”화면이 연결됐다.재문은 장롱 밑에서 낡은 천가방을 끌어냈다.지퍼 가장자리에는 먹지가 묻어 있었다.안에는 세강병원 로고가 찍힌 봉투와 묶인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정애가 손을 뻗자 재문이 먼저 종이 묶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구기지 마라.”“저걸 왜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못 받은 돈이 있었다.”정애가 회신 명세서를 펼쳤다.마지막 두 달치 작업비에는 미지급 표시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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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가족의 글씨

“최혜경 이사장의 개인비서였습니다.”도율은 윤서정의 이름이 적힌 조직표와 회신 봉투를 나란히 띄웠다.봉투 오른쪽 아래에는 연필로 쓴 작은 기호가 남아 있었다.[ F-03 ]연희가 물었다.“무슨 표시예요?”“문서관리 번호로 보입니다.”도율은 정애의 작업가방에서 나온 연습지를 확대했다.모서리에도 같은 번호가 찍혀 있었다.[ F-03 ]그는 연희의 수술동의서 원본을 뒤집었다.스캔 과정에서 잘려 보이지 않던 하단 여백을 복구하자 희미한 도장이 나타났다.[ F-03 ]연희는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엄마 글씨가 들어간 문서에 붙은 번호네요.”“하나 더 확인하겠습니다.”도율이 아버지의 농지 담보계약서를 불러왔다.재문은 돈을 빌린 적이 없었지만 계약서에는 그의 인감과 서명이 들어 있었다.문서 뒷면에도 같은 번호가 찍혀 있었다.연희의 호흡이 한 번 끊겼다.도율은 재단이 처음 내밀었던 합의서까지 열었다.연희가 서명하기도 전에 이름이 인쇄돼 있던 문서였다.보증인 칸에는 정애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하단 검수란에는 같은 기호가 남아 있었다.세 문서가 한 화면에 놓였다.어머니의 글씨는 수술동의서에 쓰였다.아버지의 인감과 서명은 농지 담보계약서에 들어갔다.연희의 이름은 합의서에 미리 새겨져 있었다.“우리 셋을 한 묶음으로 보관한 거네요.”도율은 검수번호만 확대했다.“같은 관리번호가 붙어 있습니다.”“내가 엄마를 의심하고, 아빠는 자기 도장을 의심하게 만든 거예요.”연희는 문서를 한 장씩 넘겼다.“우리가 서로 확인하는 동안 원본은 없애고요.”도율은 부정하지 않았다.연희는 정애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재문은 방바닥에 앉아 회색 가방에서 나온 종이를 투명 비닐에 넣고 있었다.정애는 식탁 위에 식은 국을 올려 둔 채 서 있었다.“아빠 장부에도 이 번호가 있어.”재문이 과수원 장부를 펼쳤다.중간에서 몇 장이 뜯겨 있었다.“없어진 줄 알았어?”“오늘 알았다.”“도장이 없어진 건?”“도장은 그대로 있었다.”“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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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잘린 여덟 초

“화는 살아 있는 사람이 내는 거다.”재문의 말은 통화가 끝난 뒤에도 연희의 귀에 남았다.도율은 F-03이 찍힌 문서들을 각각 다른 증거봉투에 넣었다.정애의 연습지.재문의 농지 장부.연희의 수술동의서와 합의서.같은 번호로 묶였지만, 같은 책임으로 섞이지 않게 분리했다.그날 밤, 냉동창고에서 확보한 서버가 독립 디지털포렌식 분석실로 옮겨졌다.운반 상자에는 인계 시각과 봉인번호가 적혀 있었다.인우는 입구에서 카메라를 들었다가 연희를 바라봤다.“복구 과정 촬영해도 됩니까?”“장비와 작업자의 손만 찍어요.”“사람 얼굴이 잡히면 끄겠습니다.”복구팀은 저장장치의 상태를 촬영한 뒤 해시값을 기록했다.원본에는 쓰기 방지 장치를 연결했다.이후 작업은 전체 복제본에서만 진행됐다.첫 번째 장치가 열리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검은 화면 위로 폴더 하나가 나타났다.[ 제3수술실 ]연희가 수술받았던 방이었다.도율이 날짜를 확인했다.연희의 수술일과 같았다.파일은 백 개가 넘었다.모든 영상에는 연희의 환자번호가 붙어 있었다.도율은 첫 번째 파일을 열기 전 연희를 바라봤다.“중간에 멈출 수 있습니다.”“멈추면 기록도 멈춰요?”“아닙니다.”“그럼 열어 주세요.”수술실 천장이 화면에 나타났다.흰 조명 아래로 의료진의 어깨와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한 사람이 기구를 건넸다.화면 밖에서 누군가 다가왔다.영상은 정확히 여덟 초 만에 끊겼다.두 번째 파일도 여덟 초였다.세 번째도 같았다.어떤 영상에는 빈 침대가 있었고, 다음 영상에는 갑자기 사람의 팔이 나타났다.문이 열리기 전 장면과 닫힌 뒤 장면만 남은 파일도 있었다.도율이 전체 길이를 계산했다.수술기록에는 두 시간 십칠 분이 적혀 있었다.복구된 영상은 열두 분도 되지 않았다.연희는 파일 목록을 위에서부터 읽었다.“삭제한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요.”누락 구간은 스무 초이기도 했고, 오 분이 넘기도 했다.남겨진 영상만 모두 여덟 초였다.“사고로 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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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내 비명이 아니야

여자의 비명이 끝난 뒤에도 분석실 안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도율이 재생 화면을 멈췄다.“연희 씨 목소리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연희는 솟아오른 파형을 바라봤다.“내 목소리면 기억이 나야 해요?”“기억과 음성은 별개입니다.”도율은 수술 전날 연희가 남긴 통화 녹음과 결혼식 생중계 음성을 비교 자료로 묶었다.복구된 음성은 원본 해시값과 함께 공인 음성감정기관에 전송했다.복구기사는 비명 아래 깔린 소리를 따로 분리했다.산소포화도 경고음.수술대의 모터 소리.바퀴가 바닥 이음새를 넘는 소리.그가 병원 장비 목록을 불러왔다.“이 경고음은 제3수술실 장비가 아닙니다.”제3수술실의 마취기는 두 음을 반복했다.비명 뒤에서 들린 것은 짧은 세 음이었다.같은 층 제4수술실에 설치된 구형 장비의 경고 방식이었다.연희는 파일명을 확인했다.모든 영상에는 제3수술실과 자신의 환자번호가 적혀 있었다.“옆방 소리가 왜 내 영상에 들어가죠?”복구기사가 원본 구조를 다시 열었다.영상 장치번호는 제3수술실이었다.음성 장치번호는 제4수술실이었다.도율이 두 번호를 나란히 띄웠다.“제3수술실 영상에 제4수술실 음성이 결합돼 있습니다.”“실수로 섞였을 수도 있어요?”“편집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의도적으로 붙였는지는 더 확인해야 합니다.”연희는 비명이 발생한 시각을 적었다.오전 10시 18분 42초.자신의 수술기록에는 마취 유지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도율이 제4수술실의 같은 시간대 기록을 찾았다.수술 한 건이 등록돼 있었다.환자 이름과 수술명은 지워졌고 사고번호만 남았다.[ OR4-1018-C ]사고 발생 시각은 오전 10시 18분 39초였다.비명이 시작되기 3초 전이었다.첫 장에는 환자 활력징후 급변이라고 적혀 있었다.두 번째 장은 삭제돼 있었다.마지막 장에는 한 문장만 남았다.[ 환자 이송 완료. ]어디로 옮겼는지는 없었다.“내 영상에서 잘린 시간을 이 사람 기록으로 채운 거네요.”“두 수술의 자료가 섞였을 가능성이 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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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선택한 피해자

위험관리실 상무의 이름은 윤가림이었다.도율은 특별채용 문서와 제4수술실 사고번호를 같은 화면에 띄웠다.사고 전 가림에게는 세강과 연결된 경력이 없었다.사고가 난 지 여덟 달 뒤 특별채용됐고, 입사 뒤 한 번도 위험관리실을 떠나지 않았다.의료사고 대응.피해자 합의.기록 보존 여부 검토.연희는 마지막 항목을 오래 바라봤다.“자기 사고기록은 사라졌는데, 지금은 남의 기록을 남길지 정하네요.”특별채용 문서의 복리후생란에는 치료비 전액 지원과 재활 연장이 적혀 있었다.그 아래 비밀유지 조항만 굵은 글씨였다.가림에게 공식 면담을 요청하면 자료를 정리할 시간이 생겼다.예고 없이 찾아가면 답을 얻기 어려웠다.도율이 선택지를 설명했다.“공식 요청은 증언으로 남기기 쉽습니다. 오늘 찾아가면 반응만 확인할 가능성이 큽니다.”연희는 사고보고서의 비어 있는 두 번째 장을 접었다.“오늘은 반응부터 볼게요.”세강의료재단 본관 열한 층은 기자회견장이 있던 아래층보다 조용했다.위험관리실 앞 방문기기에 윤가림의 이름을 입력하자 붉은 문장이 떴다.[ 외부 면담 제한 ]안쪽 문이 열렸다.회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직원 둘과 함께 나왔다.사진보다 마른 얼굴이었다.목 아래에는 화장으로 가리지 못한 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가림은 연희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예약이 없네요.”연희가 사고번호를 내밀었다.“이 번호로 신청하면 받아 줘요?”가림의 시선이 종이 위에서 한 번 멎었다.“십 분만 드리죠.”회의실에 들어간 가림은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뒤집어 놓았다.“무엇을 확인하러 왔습니까?”“내 기록 안에서 당신 목소리를 찾았어요.”연희가 복구된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기계음 뒤로 문을 세 번 치는 소리가 났다.여자가 숨을 들이켰고, 비명이 짧게 터졌다.가림의 손이 목의 흉터를 눌렀다.연희가 재생을 멈췄다.“당신 목소리죠?”가림은 탁자 가장자리의 녹음기를 먼저 확인했다.“그 파일에는 제 목소리가 들어 있습니다.”“제4수술실에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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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반지 모임

“그 반지, 어디서 받았어요?”가림은 주먹 안에 반지를 감춘 채 문고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받은 게 아닙니다.”“그럼요?”“지급된 거예요.”회의실 밖에서 다시 노크가 울렸다.가림은 직원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문을 닫았다. 십 분이 끝났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그녀는 목걸이에서 은반지를 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세 줄의 얕은 홈 안쪽에 작은 검수표식이 찍혀 있었다. 이름도 날짜도 아니었다.도율이 반지를 촬영하려 하자 가림이 손으로 가렸다.“내가 줬다고 기록하지 마세요.”“사실과 다른 약속은 못 합니다.”“그럼 자료가 있다는 것만 쓰세요.”연희가 반지를 바라봤다.“당신 이름을 숨기겠다고는 못 해요. 오늘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그대로 남길게요.”가림은 한동안 연희를 보다가 손을 치웠다.“여성 회복지원 프로그램에서 준 겁니다.”“사고 피해자 모임이에요?”“병원은 그렇게 불렀어요.”치료비가 필요한 여자.가족의 의료기록을 약점으로 잡힌 여자.병원과 재단 관계자의 비밀을 알고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여자.세강은 그들을 상담과 치료라는 이름으로 한곳에 모았다.연희가 물었다.“책임자는 누구였어요?”“승인은 이사장실에서 내려왔습니다.”“최혜경이 직접 왔고요?”가림은 답하지 않았다.대신 지갑 안쪽에서 낡은 출입카드 한 장을 꺼냈다.[ 여성 회복지원실 ]카드 뒷면에는 반지와 같은 세 줄의 홈이 새겨져 있었다.“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어요. 회복지원, 보호상담, 가족안정 프로그램.”“없어진 적은요?”“없습니다.”도율이 카드번호와 세아의 과거 출입기록을 대조했다.세아는 정식 진료가 없는 날에도 매달 같은 시간 지하 교육실에 들어갔다.출입 목적은 모두 달랐다.감정 안정 훈련.보호 진술 작성.사생활 노출 예방.상호 신원 보호.연희가 항목을 하나씩 읽었다.“감정 안정은 울지 말라는 뜻이었어요?”가림의 손이 목의 흉터로 향했다.“울면 판단 능력이 없다고 기록됐습니다.”“보호 진술은요?”“사고를 말할 때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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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네 이름으로

[ 규칙 1. 서로의 이름으로 병원에 들어간다. ]연희는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왜 이름을 바꿨어요?”가림은 수첩을 덮지 않았다.“한 사람 기록에 모든 사실이 모이지 않게 하려고요.”“보호를 위해서?”“병원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도율이 다음 장을 넘겼다.[ 접수명과 실제 방문자는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 ][ 처방은 접수명으로 수령한다. ][ 질문받을 경우 서로를 보호자로 진술한다. ]연희의 손가락이 마지막 문장 위에서 멈췄다.“이름을 나눠 가지면 위험도 나눠진다고 했어요?”“처음에는 그렇게 믿었습니다.”“위험이 아니라 책임을 흩어 놓은 거네요.”가림은 대답하지 않았다.도율이 냉동창고 서버에서 회복지원 프로그램 코드를 검색했다.같은 날 생성된 기록들이 묶여 나왔다.진료실에 들어간 여자의 이름과 처방전을 받은 이름이 달랐다. 보호자 서명에는 또 다른 사람의 필체가 붙어 있었다.환자와 처방, 보호자 서명이 세 사람에게 나뉘어 있었다.한 사람의 기록만 확인하면 나머지 두 기록이 그 진술을 부정하는 구조였다.연희가 화면을 바라봤다.“피해자가 셋인데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됐네요.”가림은 반지를 손바닥 안에서 굴렸다.“한 사람은 자기가 진료받지 않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약을 먹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서명한 사람은 현장에 없었다고 하고요.”“누가 자기 이름으로 뭘 했는지도 몰랐겠네요.”“묻는 것부터 규칙 위반이었습니다.”연희는 수첩 첫 장을 다시 내려다봤다.서로를 지키겠다는 약속 아래 서로를 확인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가 숨어 있었다.도율이 연희의 수술일을 입력했다.오전 8시 47분.한세아의 이름으로 산부인과 접수가 이뤄졌다.오전 9시 18분.같은 이름으로 진정제가 처방됐다.오전 9시 43분.보호자 한세아의 서명이 수술동의서에 적혔다. 글씨는 정애의 필체 표본과 여러 특징이 같았다.오전 10시 02분.한세아의 이름이 인쇄된 손목띠가 제3수술실로 들어갔다.착용 확인 사진 속 손목에는 연희가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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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콩이를 훔쳤다

[ 태명: 콩이 ]연희는 다른 여자의 임신상담 기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환자 이름도 생년월일도 달랐다.진료 날짜는 연희가 무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전이었다.그러나 기록 생성 시각은 콩이라는 이름을 처음 적은 날보다 사흘 뒤였다.연희는 그날을 기억했다.퇴근 뒤 혼자 국수를 끓이다 냄비 옆에 떨어진 콩 한 알을 보았다.아직 배가 불러오지도 않았고, 누구에게도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밤이었다.연희는 일기장 첫 줄에 이름을 썼다.[ 콩이야, 오늘부터 너는 콩이야. ]“이 이름은 병원에 말한 적 없어요.”도율이 기록의 연결 파일을 열었다.태명 아래에 홍보자료 코드가 붙어 있었다.검색 결과 여러 개의 문서가 나타났다.[ 개인사연_원본03 ][ 산모캠페인_초안 ][ 첫 번째 봄_문구검토 ]도율이 첫 번째 파일을 열었다.스캔된 종이의 모서리가 화면에 나타났다.연희가 사용하던 일기장이었다.첫 장에는 콩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그 아래 자신이 쓴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늘은 물만 삼켰다. 그래도 네가 안에서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캠페인 초안에도 같은 표현이 있었다.[ 물만 삼킨 하루에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버팁니다. ]최종 수정본에서만 ‘삼켰다’가 ‘마셨다’로 바뀌어 있었다.우연히 같은 태명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세아가 표시해 둔 세 문장이 광고 초안에서도 같은 순서로 배열돼 있었다.콩이.심장소리.기다림.도율이 파일의 업로드 정보를 확인했다.공용 홍보계정 아래 개인 인증기록이 남아 있었다.[ 인증 사용자: HAN_SEA ]연희는 업로드 날짜를 바라봤다.스캔 당일 세아는 연희의 집에서 자고 갔다.욕실에 다녀온 뒤 일기장이 원래 자리보다 한 칸 아래 꽂혀 있던 것도 기억났다.하지만 그 기억만으로 세아가 가져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확인되는 것은 스캔 날짜와 업로드 계정이었다.세아는 그날 연희의 일기를 파일로 만들어 재단 서버에 올렸다.도율이 문구 검토 기록을 열었다.세아의 의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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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오늘이 예정일

난임센터 개관식 초대장에 적힌 날짜는 콩이의 출산 예정일과 같았다.연희는 초대장을 반으로 접어 가방에 넣었다.행사장 입구에는 흰 아기 양말과 콩 모양 장식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직원들은 방문객의 옷깃에 연두색 배지를 달아 줬다.[ 첫 번째 봄 ][ 모든 기다림을 존중합니다. ]연희는 배지를 받지 않았다.무대 정면에는 방송 카메라 세 대가 설치돼 있었다.지역 방송국뿐 아니라 세강의료재단 공식 채널도 개관식을 생중계하고 있었다.출입구 옆 화면에 표시된 시청자 수가 계속 올라갔다.도율이 행사장 구조를 확인했다.“기자석은 무대 오른쪽입니다. 생중계 화면은 중앙 전광판과 그대로 연결돼 있어요.”연희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흰 아기 양말과 초음파 사진이 차례로 나타났다.그 위에 익숙한 문장이 떠올랐다.[ 물만 마신 하루에도 아이는 엄마와 함께 자랍니다. ]연희의 일기에는 ‘마신’이 아니라 ‘삼킨’이라고 적혀 있었다.물을 넘길 수 없어 입만 적셨던 날이었다.병원은 그 하루를 보기 좋은 문장으로 바꿔 놓았다.전광판 앞에 서 있던 여자가 배에 손을 얹었다.“나도 물도 못 넘긴 날이 있었는데.”옆에 있던 남자가 여자의 가방을 대신 들었다.“당신만 그런 거 아니래.”여자는 화면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웃었다.연희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훔친 문장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말로 혼자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도율이 물었다.“광고 송출을 중단시킬까요?”“아니요.”연희는 일기 사본을 가방 안에 넣었다.“저 문장으로 버틴 사람까지 지우지는 않을 거예요.”다음 화면에 콩 모양의 작은 빛이 떠올랐다.[ 네 심장소리를 들으면 오늘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연희가 실제로 썼던 문장이었다.다만 ‘콩이야’라는 부름만 사라져 있었다.아이의 이름을 떼어 낸 문장은 누구에게나 팔 수 있는 위로가 됐다.행사 진행자가 단상에 올랐다.“오늘 세강은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모든 분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시작합니다.”박수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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