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판독 서명은 의사 계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이연희는 세강병원이 보낸 판독 이력 확인서를 읽다가 의자를 밀쳤다. 어제까지 ‘정상 소견에 서명한 의사의 소재를 알 수 없다’던 병원이었다. 그런데 박도율이 원본 전자서명 식별자를 다시 요구하자, 병원은 담당자 이름 대신 계정 등록 정보를 보내 왔다. 종이 맨 아래 직종 칸에는 ‘간호사’라고 적혀 있었다.고미례. 진료지원 간호사.연희가 수술받던 날 태아 계측표에 ‘특이 소견 없음’을 입력한 계정의 명의자였다. 병원이 건네준 요약본에는 의사 서명처럼 표시돼 있었지만, 수정 이력의 사용자 번호를 따라가자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계정이 나왔다. 누가 실제로 키보드를 눌렀는지, 의사의 판단을 옮겨 적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희는 등록 직종이라는 네 글자를 몇 번이나 읽었다. 의사의 판단이라며 수술을 밀어붙일 때는 그렇게 확신에 차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는 의사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니. 자기 아이를 지울 때만 유난히 빠르고 정확했던 병원이었다.“의사라며요. 그 의사 찾을 수 없다며요. 이제는 간호사라고요?”도율은 두 서류를 맞대고 날짜에 표시했다. 병원 회신에 찍힌 접수번호가 달랐다. 첫 회신에서는 ‘판독 담당 퇴직’, 이번에는 ‘계정 소유자 고미례’. 서로 모순되는 답변을 내놓고도 정정 사유 한 줄 없었다.“병원이 실제 판독자와 전산 입력자를 구분하지 않고 회신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 계정으로 의학적 판독 서명이 완료된 경위는 반드시 확인해야 해요.”“그날 제 애는 치명적으로 아프다더니, 아프지 않다고 적힌 원본에는 누가 사인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저 인간들 병원이에요, 이름표 바꿔 다는 가면 가게예요?”연희는 첫 초음파 사진을 꺼냈다. 무겸이 ‘우리 콩알’이라 적어 둔 사진이었다. 수술실 앞에서 살려 달라고 빌었을 때 아무도 보여 주지 않았던 원본 숫자가 이제야 입을 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숫자를 남긴 사람마저 기록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세강병원 기록관리실을 찾자 직
Last Updated : 2026-07-2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