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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회귀한 대군의 후회: Capítulo 181 - Capítulo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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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화] 섬세한 음색(1)

 대군저 안채 마당, 이헌이 직접 흙을 다져 만든 화원 옆으로 작은 정자 하나가 세워졌다.며칠 전부터 가솔들을 물리고 이헌이 직접 목재를 다듬어 지어 올린,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소박하고도 아담한 공간이었다.“…….”오후의 옅은 햇살이 정자의 지붕을 비출 무렵.이헌은 흑색 철릭을 단정하게 갖춰 입고 정자 마루에 앉아 있었다.그의 무릎 위에는 오래된 명주실이 매어진 낡은 가야금 한 대가 놓여 있었다.그는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며, 거칠고 투박한 손끝을 가야금의 열두 줄 위에 올려놓았다.딩- 둥-.깊고 묵직한 선율이 겨울의 찬 공기를 타고 안채 마당으로 조용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그것은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궁중의 아악이 아니었다.투박한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줄을 뜯어낼 때마다, 흡사 누군가의 끊어질 듯한 숨소리처럼 구슬프고도 처절한 가락이 흘러나왔다.‘아가씨의 고립된 세상에…… 아주 작은 위로라도 닿을 수 있다면.’이헌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연주에 몰두했다.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하루 종일 홀로 적막과 싸우고 있을 서연의 핏기 없는 얼굴만이 가득했다.자신이 감히 그녀의 곁에 머물며 온기를 나눌 자격은 없으니, 적어도 이 서툰 음색으로나마 그녀의 얼어붙은 귓가에 작은 평안을 선물하고 싶었다.그 시각, 방 안.“…….”서연은 서안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방 안의 고요함을 깨고 스며들어오는 그 낮고 구슬픈 가야금 소리.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아주 조금 열어둔 창문 틈새로 시선을 향했다.창문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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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화] 서늘한 공백(1)

 다음 날.오후의 햇살이 대군저 안채 마당을 비추었지만, 서연의 창문 너머로 들려오던 그 구슬픈 가야금 소리는 끝내 울리지 않았다.“…….”서연은 방 안 서안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그녀의 핏기 없는 시선이, 굳게 닫힌 창호지 문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적막했다.늘 문지방에서 세 걸음 떨어진 흙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숨소리조차 억누르던 그 육중하고 무거운 사내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아침에 소반을 들여놓은 뒤, '정무가 있어 궐에 다녀오겠다'며 쉰 목소리로 아뢰고 물러난 이후였다.그는 하루 종일 대군저를 비웠다.조선의 절대 권력을 쥔 섭정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오히려 그동안 정무를 내팽개치고 흙구덩이를 뒹굴며 이 처소 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 비정상적인 미친 짓이었을 뿐이다.‘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군.’서연은 억지로 시선을 거두어 다시 서책으로 돌렸다.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까만 먹물로 쓰인 글귀 위를 겉돌기만 할 뿐, 단 한 줄의 문장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사각.서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텅 빈 방 안을 공허하게 울렸다.서연은 다시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아주 조금 열어둔 창문 틈새로 시선을 향했다.그녀의 눈빛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 이헌이 직접 지어놓은 그 작은 정자에 가 닿았다.정자는 텅 비어 있었고, 마당에 일구어진 어린 화원 위로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쓸쓸하게 맴돌고 있었다.“…….”서연은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서책의 모서리를 꾹 눌렀다.가슴 한복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이질감이 피어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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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허락된 그림자(1)

 칠흑 같은 어둠이 대군저의 안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처마 끝을 때리며 스산한 울음소리를 냈지만, 방 안의 서연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오지 않는다.’삼경(三更)을 훌쩍 넘긴 시각.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 끝에 자조 섞인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결국 그 정도의 얄팍한 인내심이었다. 피를 흘리며 화원을 다지던 우직함도, 이 목숨이 부서져도 좋다며 오열하던 그 처절한 고백도. 권력과 정무라는 현실 앞에서는 그저 하룻밤의 유흥처럼 허무하게 바스라질 얕은 집착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억지로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던 그때였다.저벅, 비틀. 쿵.안채의 마당을 가로질러, 몹시 무겁고 흐트러진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그리고 이내 문지방 근처에서 무언가 거대한 짐승이 무너지듯 쓰러지는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하아…… 커윽.”가파르게 억눌린, 피가 섞인 듯한 거친 숨소리.이헌이었다. 그는 궐에서의 지독한 정무를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기어이 다시 이 처소의 문지방 앞 차가운 흙바닥으로 기어 와 쓰러지듯 꿇어앉은 것이다.“…….”서연의 심장이 벼락을 맞은 듯 크게 요동쳤다.그녀는 방 한가운데 선 채,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이 밤, 이 지독한 추위 속에서 기어코 다시 자신의 감옥으로 돌아온 사내의 기척이 문풍지를 뚫고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내면에 단단하게 쌓여있던 방어기제가 마치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의 차가운 이성은 당장 저 남자를 외면하고 무시하라 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하얀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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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허락된 그림자(2)

 자신의 생사 여부가 저 절대 권력자의 유일한 호흡줄이라는 그 소름 끼치는 고백 앞에, 서연의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그녀는 다치고 부서진 사내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억지로 가슴 속의 거대한 동요를 짓눌렀다.“참으로…… 미련한 사내로군요.”서연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이제 살의도, 증오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순애의 무게 앞에서 짓눌린 자의 깊은 탄식에 가까웠다.“예, 아가씨. 소인은 낭자 앞에서는 오직 미련한 짐승일 뿐입니다.”“내 단잠을 깨웠으니, 더 이상 내 시야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당장 사라지십시오.”서연은 몸을 돌리며 짧게 쏘아붙였다. 그것은 명백한 축객령이었지만, 이전처럼 차갑고 뾰족하게 날이 서 있지는 않았다.“예, 아가씨. 낭자의 명대로 하겠습니다.”이헌은 서연의 그 차가운 타박 속에서도, 그녀가 자신을 마주해 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드르륵, 탁-!서연의 처소 문이 다시금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마당에는 다시금 겨울밤의 매서운 침묵과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이헌은 문이 닫힌 이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흙바닥에 이마를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바보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녀가 자신을 향해 퉁명스럽게 내뱉었던 그 거친 대사들이, 그의 귓가에는 세상 그 어떤 감미로운 가락보다 더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나를 걱정하여…… 무리하지 말라 타박하신 것이다.’이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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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피땀으로 지핀 온기(1)

 겨울의 한복판으로 접어들며, 도성에는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얼어붙고, 툇마루 위로 들이치는 칼바람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 정도로 매서웠다.방 안의 공기마저 서늘하게 식어가는 혹한의 날씨.“뭣들 하는 것이냐!”대군저 안채의 마당에서, 이헌의 벼락같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히익! 자, 자가……!”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해 장작을 나르던 가솔들이 사색이 되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이헌은 그들이 지게에 짊어지고 온 땔감들을 발로 거칠게 걷어차 버렸다.우당탕!마른나무들이 바닥에 나뒹굴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이따위 덜 마른 잡목을 감히 아가씨의 처소 아궁이에 밀어 넣으려 했더냐!”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가 가솔들을 향해 형형하게 번득였다.“나무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매캐한 연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지 않느냐! 낭자의 호흡기가 상하여 기침이라도 하시면, 네놈들의 목을 모조리 쳐 매달 줄 알아라!”“소, 송구하옵니다! 당장 질 좋은 땔감으로 다시……!”“비켜라. 네놈들의 그 거칠고 부주의한 손에 아가씨의 온기를 맡길 수 없다.”이헌은 엎드린 가솔들을 매정하게 밀쳐내며, 마당 한구석에 쌓인 도끼를 집어 들었다.“당장 도성 밖으로 나가, 최고급 참나무만을 베어 이리로 가져오라.”“자, 자가! 어찌 대군의 옥체로 불을 떼는 천한 일을 직접 하시려 하시옵니까!”“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흑위대장이 경악하며 말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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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피땀으로 지핀 온기(2)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이 무식할 정도로 맹목적인 순애보가, 그녀의 내면에 단단하게 세워져 있던 증오의 빙벽을 소리 없이 녹여 내리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자각이었다.서연은 애써 눈을 질끈 감으며,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당겼다.하지만 등 밑에서 올라오는 그 묵직하고 애달픈 온기만큼은 결코 밀어낼 수가 없었다.며칠 뒤, 낮.여전히 혹한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안채 마당에서는 어김없이 이헌의 도끼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쾅! 쾅! 콰직!“…….”서연은 방 안 서안 앞에 앉아 있었지만, 시선은 아주 조금 열어둔 창문 틈새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창문 너머로, 소매를 걷어붙인 채 굵은 참나무 장작을 내리찍고 있는 이헌의 모습이 보였다.그는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흙바닥과 아궁이 앞을 오간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그의 얇은 적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거친 도끼질을 할 때마다 그의 단단한 어깨 근육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그때였다.쾅-!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도끼자루가 참나무의 단단한 옹이에 잘못 박히며 거칠게 튕겨 나갔다.“윽……!”이헌의 입술 사이로 짧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그는 놓칠 뻔한 도끼자루를 반사적으로 꽉 움켜쥐었으나, 그 강한 마찰과 반동을 이기지 못한 손바닥에서 끔찍한 소리가 났다.찌이익-.수일간 거친 도끼질을 반복하며 부풀어 올라 있던 손바닥의 거대한 물집들이, 억센 나무 자루와의 마찰로 인해 한꺼번에 터져버린 것이다.“……아.”창문 틈새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서연의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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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구원의 체온(1)

 창문 틈새로 스며들던 끔찍한 핏빛 잔상 앞을, 서연은 거칠게 막아섰다.탁-!창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방 안의 고요한 적막 속으로 무겁게 흩어졌다.“하아…… 하아.”서연은 창틀에 등을 기댄 채, 숨을 헐떡이며 스르륵 주저앉았다.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방금 전까지 도끼자루를 쥐고 있던 그 사내의 처참한 맨손이, 붉은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참나무를 내리찍던 그 미련하고 맹목적인 광기가 머릿속에서 도무지 지워지지를 않았다.‘내가 왜…… 이러는 것이냐.’그녀는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분명 통쾌해야 할 순간이었다.멸문지화 이후 자신을 구해냈으면서도 법과 권력으로 옭아맸던 그 오만한 섭정이, 고작 방구석에 갇힌 계집의 구들장을 데우겠다고 제 손바닥을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있었다.그의 육신이 망가지고 찢어지는 것을 보며, 통쾌하게 비웃고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어야 마땅했다.그런데.왜 이토록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옥죄어온단 말인가.“…….”서연은 꽉 깨물어 피가 맺힌 입술을 달싹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녀의 시선이 방 한구석에 놓인 작은 자개장으로 향했다.홀린 듯이 걸음을 옮긴 서연은, 떨리는 손끝으로 자개장의 서랍을 열었다.그 안에는 상처를 동여맬 때 쓰는 깨끗하고 하얀 무명천과, 궐에서 내어준 최고급 금창약(상처에 바르는 연고)이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서연은 무명천과 연고를 꺼내어 자신의 가슴 품에 꽉 안았다.이성이 끊임없이 경고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저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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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구원의 체온(2)

 서연은 마루 끝에서 그 비참한 몰골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자신이 다가갈까 봐 겁에 질려 손을 숨기는 사내.세상의 모든 권력을 쥐고도, 고작 자신의 혐오 어린 시선 하나가 두려워 피 흘리는 상처를 등 뒤로 욱여넣고 있는 저 맹목적인 바보.서연은 치마폭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그리고 그녀는 하얀 버선발로 마루를 내려와, 발목까지 쌓인 차가운 눈밭을 밟으며 아주 천천히 이헌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뽀드득, 뽀득.눈을 밟는 서연의 발소리가, 적막한 마당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아, 아가씨…… 오지 마십시오.”이헌의 목소리에 처절한 오열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서연이 다가올수록 그는 등에 닿은 장작더미 속으로 파고들 듯 몸을 웅크렸다.“제발…… 더럽습니다. 아가씨의 고결한 시야를 상하게 할 불결한 피입니다. 제발 오지 마시…….”스윽.이헌의 애원 섞인 흐느낌은 끝을 맺지 못했다.눈앞까지 다가온 서연이, 웅크린 이헌의 허리춤 너머로 자신의 하얀 두 팔을 뻗어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집어넣은 것이다.“……!”이헌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몸을 굳혔다.등 뒤로 숨겨두었던 그의 피투성이 양손 위로, 서연의 가녀리고 따뜻한 두 손이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그녀는 말없이 그의 거칠고 커다란 손목을 붙잡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겼다.“아…… 안 됩…….”이헌이 덜덜 떨며 저항하려 했으나, 감히 그녀의 손길을 뿌리칠 힘을 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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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무명천의 맹세(1)

 눈 덮인 안채의 마당 한가운데.매서운 삭풍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사정없이 흔들어댔지만, 그 공간만큼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기묘하고도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이헌은 숨을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사람처럼 완벽하게 굳어 있었다.등 뒤로 숨겼던 자신의 피투성이 양손.그 흉측한 고깃덩어리 위로 서연의 하얗고 부드러운 두 손이 포개어져 있었다.그녀가 챙겨 나온 깨끗한 하얀 무명천이 찢어진 살점 위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단하게 감싸기 시작했다.서연의 고개가 살짝 숙여진 탓에, 이헌의 시야에는 오직 눈보라에 흩날리는 그녀의 까만 정수리와, 상처를 감싸 쥐며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하얀 손끝만이 가득 차 있었다.‘아가씨가…… 내 상처를.’이헌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팽창했다.자신이 흘린 피를 불결하게 여길 것이라 생각했다.과거의 공포를 떠올리며 역겨움에 몸서리를 칠 것이라 여겼다.하지만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오히려 그 끔찍한 핏자국이 자신의 하얀 치맛자락에 묻어나는 것조차 괘념치 않고, 가장 연약하고 다정한 손길로 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흐으…… 윽…….”이헌의 핏발 선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그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짓씹으며 새어 나오는 오열을 간신히 억눌렀다.행여나 자신이 내는 짐승 같은 흐느낌이 이 성스러운 의식을 방해할까 두려웠다.자신의 손바닥에 닿은 서연의 체온은, 그가 살아생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이고 눈부신 자비(慈悲) 그 자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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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일상의 스며듦(1)

 눈보라가 쳤던 그날 밤 이후, 이헌의 행동은 기괴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대감, 어찌하여 그 더러운 천 조각을 풀지 않으시는 것이옵니까.”어전회의가 끝난 궐내의 편전.이조판서가 이헌의 핏발 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조선의 율법과 정무를 주무르는 섭정 대군의 손.평소라면 최고급 비단으로 감싸여 있어야 할 그 고귀한 손에, 며칠째 피와 진물이 엉겨 붙어 누렇게 변색된 허름한 무명천이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다.“어의를 부르시어 속히 새 붕대로 갈아입으시고 금창약을 덧바르셔야 상처가 덧나지 않사옵니다.”“시끄럽다.”이헌은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하며, 상소문 더미 위로 자신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모아 쥐었다.“이 천 조각에는…… 이 세상 그 어떤 명약보다 귀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그의 핏발 선 눈동자가 허름한 무명천 위로 떨어졌다.그리고는 대신들이 지켜보는 앞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그 더럽고 누추한 천 조각을 마치 천하의 어보(御寶)라도 되는 양 소중하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함부로 풀라 마라. 내 목이 달아나기 전까지는, 이 붕대는 내 몸에서 1푼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대신들은 기악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피에 굶주린 짐승 같던 폭군이, 고작 피 묻은 무명천 하나를 뺨에 문지르며 세상을 다 가진 왕처럼 황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그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광경 앞에, 편전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맴돌았다.그 시각, 대군저의 안채 마당.정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헌은 어김없이 서연의 처소 앞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그는 궐에서 돌아오자마자 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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