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한 대군의 후회: Chapter 231 - Chapter 240

406 Chapters

[228화] 오래 바라본 사람(1)

 “조금만, 조금만 더 눈을 감고 계십시오. 거의 다 왔사옵니다.”“어찌 이리 유난이십니까. 눈앞이 캄캄하여 발을 헛디딜 것 같습니다.”“제가 부인의 손을 이리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제게 온전히 기대어 걸으시면 됩니다. 단 한 걸음도 다치지 않게, 돌부리 하나 채이지 않게 할 것입니다.”한양 도성 한복판, 가장 높게 솟아오른 거대한 누각의 가파른 계단.이헌은 서연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자신의 커다랗고 거친 두 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조심스럽게 가린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서연의 가녀린 등이 온전히 기대어진 상태였다.서연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느릿한 걸음에 작게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붉은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옅고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자신을 이끄는 이헌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혹여나 그녀가 넘어질까 봐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그녀의 등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대군. 궐 밖으로 미복잠행을 나온 것도 모자라, 어찌 이 서늘한 야밤에 도성 한가운데의 누각까지 오르시는 겝니까.”서연이 조심스레 나무 계단을 밟으며 나지막이 물었다.“이 누각은 평소 양반들과 시인묵객들로 밤낮없이 북적이는, 풍류의 중심이라 들었습니다. 혹여나 사람들의 눈에 띄면…….”“걱정하지 마십시오.”이헌이 서연의 귓가에 대고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에 닿을 때마다 서연의 어깨가 찌릿하게 움찔거렸다.“오늘 밤, 이 누각 전체를 통째로 비워두라 흑위대에게 명했습니다. 이 거대한 건물 안에는, 아니 이 근방 백 보 안에는 개미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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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화] 오래 바라본 사람(2)

 “참으로 신기합니다.”서연이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가볍게 불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무엇이 말씀이십니까.”“제가 지금, 무엇을 신기해하는지 대군께서는 아십니까.”서연은 밤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이헌의 핏발 선, 그러나 자신을 향해 한없이 다정하고 맹목적인 그 깊은 눈동자를 올곧게 마주 보았다.“제가…… 이리 툭 트인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쏟아지는 별을 구경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 말입니다.”“…….”“저는 대군저에 갇혀 들어온 이후로, 단 한 번도 대군께 제가 별을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습니다. 갇혀 지내는 볼모의 신세에, 처지가 구차하여 밤하늘의 낭만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 여겼으니까요.”서연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의문과 놀라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헌데 대군께서는 어찌 아셨습니까. 어찌 그것을 정확히 알고, 저를 기쁘게 해주려 이 높은 누각을 통째로 비워두면서까지 이리 완벽한 자리를 마련하신 겝니까.”서연의 맑고 정곡을 찌르는 물음에, 찻잔을 쥐고 있던 이헌의 굵은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찔거렸다.이헌은 대군저에 들어온 뒤, 서연이 답답한 날이면 안채의 창가에 오래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본 적이 있었다.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별을 올려다볼 때만큼은 그녀의 굳은 어깨가 조금씩 풀리고 숨결이 편안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것은 전생의 기억이나 누구와 닮은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대군저에서 서연을 조용히 바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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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화] 무해한 곰과 풋사과(1)

 늦가을의 정취가 한양 도성을 붉고 노랗게 물들인 날이었다.선선하고 청명한 바람이 부는 운종가 저잣거리는 아침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과 평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활기차게 북적이고 있었다.“…….”그 시끌벅적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파 한가운데.조선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섭정, 이헌과 그의 유일한 정실부인 서연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두 사람은 수백 명의 호위 무사나 화려한 가마를 모두 뒤로한 채, 철저하게 신분을 숨긴 미복잠행(微服潛行) 중이었다.이헌은 평소 입던 금실로 용이 수놓아진 흑색 예복 대신, 질 좋은 명주로 지어진 수수한 군청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서연 역시 무겁고 화려한 가채나 적의 대신, 참하고 소박한 옥색 치마에 머리를 단정히 땋아 올린 평범한 사대부 여인의 행색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타고난 기품과 수려한 외모는 수수한 옷차림으로도 다 가려지지 않아,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은근히 끌어당기고 있었다.“부인. 너무 길의 끝으로 걷지 마십시오. 거친 수레바퀴와 부딪히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이헌은 한시도 서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그는 덩치 큰 몸을 잔뜩 수그린 채, 행여나 지나가는 거친 장돌뱅이들의 옷깃이 서연에게 1푼이라도 스칠세라 넓은 어깨로 그녀의 주변을 철통같이, 거의 병적으로 방어하며 걷고 있었다.“이리, 제 등 뒤로 바짝 붙으십시오. 앞장서겠습니다.”“대군. 아니, 서방님.”서연이 이헌의 넓은 소맷자락을 살짝 잡아끌며 작고 다정하게 핀잔을 주었다.“이리 사람을 다 밀치고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다니시면 오히려 더 눈에 띕니다. 저는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잘 걷고 있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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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화] 무해한 곰과 풋사과(2)

 그 노골적이고 맹목적인 시선에 서연의 뺨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어딜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십니까. 어서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잣거리의 장신구도 마저 구경하고 싶습니다.”서연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앞장서 걸었다.그녀가 당도한 곳은 나무로 조각한 소박한 장신구와 머리꽂이, 옥가락지 등을 파는 작은 매대였다.“부인. 장신구가 필요하시면 궐의 일류 장인들을 시켜 최고급 옥이나 금으로 된 것을 수백 개라도 당장 대령하겠습니다. 이런 투박하고 거친 물건들은 부인의 고결한 자태에 어울리지 않습니다.”이헌이 매대 위의 조잡한 물건들을 몹시 못마땅한 듯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의 눈에는 오직 최고급의,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것만이 자신의 아내에게 어울린다고 확신했다.“서방님 눈에는 이 장신구들이 그리 보잘것없어 보이십니까?”서연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매대 한편에 놓인 나뭇결이 곱게 살아있는 매화꽃 모양의 낡은 나무 비녀를 집어 들었다.금박도 옥도 없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비녀였다.“저는 이 소박하고 단아한 비녀가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서연이 나무 비녀를 자신의 까만 머리칼에 살짝 대어보며 이헌을 올려다보았다.“서방님께서 제게 장터에서 직접 골라 사주시면, 제게는 그 어떤 화려한 옥비녀나 금비녀보다 훨씬 귀하고 소중한 보물이 될 텐데 말입니다.”“……!!”이헌의 동공이 미친 듯이 팽창했다. 가슴 속 심장이 거세게 요동치며 터질 것 같았다.‘내가 사주면 귀한 보물이 될 텐데.’그 다정하고 맹목적인 한마디에, 조선의 냉혹한 섭정은 완벽하게 이성을 잃어버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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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화] 무해한 곰과 풋사과(3)

 “어떠십니까. 입에 좀 맞으십니까.”“……맛이, 썩 나쁘지 않습니다.”이헌은 사실 음식의 맛 따위는 혀끝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눈앞에서 국밥을 오물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서연의 행복한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도 그의 입안에 덩달아 군침이 돌며 맹렬한 식욕이 솟구치기 시작했다.후루룩, 쩝쩝.조선의 절대 권력자, 편전에서 눈빛 하나로 대신들의 목을 날리며 피바람을 일으키던 그 무자비한 폭군이.지금 낡고 더러운 시장바닥 평상에 쭈그려 앉아, 소매를 거칠게 걷어붙인 채 넓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뚝배기 국밥을 허겁지겁 퍼먹고 있었다.그 덩치 큰 사내가 뜨거운 국물에 혀를 데일까 입을 삐죽 내밀어 후후 불어가며 열중하는 그 모습.“…….”그 소탈하고도 필사적으로 먹어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서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리고 마침내.“푸흡…… 하하핫.”서연의 입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맑고 청아한 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이헌이 국밥을 푹푹 퍼먹다 말고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고개를 홱 들었다.그의 뺨에는 밥알 한 톨이 우스꽝스럽게 척 붙어 있었다.“부, 부인? 어찌 그러십니까. 국물이 너무 짜신 겝니까?”“하하, 아, 아닙니다. 그저…… 너무 재밌어서.”서연은 배를 부여잡고 풋사과처럼 풋풋하고 티 없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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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화] 영원한 안식, 그리고 새로운 약속(1)

 장터에서의 달콤하고 소란스러웠던 미복잠행을 마치고 대군저로 무사히 돌아온 밤.낮 동안 백성들의 활기로 가득했던 도성의 시끄러운 소음은 잦아들고, 안채에는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고요하고 아스라하게 내려앉아 있었다.“…….”외출복을 벗고 편안한 하얀 침의로 갈아입은 이헌은, 방 한가운데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그의 입가에는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바보 같은 미소가 깊게, 그리고 실없이 걸려 있었다.‘참으로 꿈만 같은 하루였다.’자신의 팔짱을 스스럼없이 끼고 엿을 달콤하게 베어 물던 서연.초라한 평상에서 국밥을 허겁지겁 퍼먹는 자신을 보며 풋사과처럼 청아하고 맑게 웃어주던 그 눈부신 얼굴.차태경으로 살던 현대와 이헌으로 살아온 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너무도 평범하고 완벽한 부부로서의 소박한 일상이었다.“무엇을 그리 허공을 보며 실실 웃고 계십니까.”그때, 방 한편에서 옥빗으로 머리를 단정히 빗고 있던 서연이 나지막이 물었다.“아, 부인. 그저…… 오늘 장터에서의 시간이 참으로 꿈결 같아, 자꾸만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그리도 좋으셨습니까.”“예. 제 평생 가장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손을 꽉 잡고 인파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했습니다. 궐의 어좌 따위는 억만금을 주어도 이 기억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이헌이 서연을 향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려 큰 몸을 일으켰다.“서방님. 잠시 이리 와 제 앞에 앉아 보시지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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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화] 영원한 안식, 그리고 새로운 약속(2)

 “난초…… 입니까.”“예. 맞습니다. 삐뚤빼뚤하지만 난초를 수놓았습니다.”서연이 이헌의 거친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다정하고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난초가 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영원한 안식’이라는 뜻입니다.”이헌의 거대한 어깨가 벼락을 맞은 듯 크게 튀어 올랐다.그의 요동치는 동공이 서연의 깊고 고요한 눈동자를 향했다.“영원한…… 안식.”“예. 영원한 안식.”서연의 목소리는 서늘한 밤공기보다 차분하고, 활활 타오르는 화로의 불꽃보다 따스했다.“며칠 전 밤, 당신이 그 끔찍한 악몽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발작했을 때. 제가 당신의 과거를 모두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평생을 얼마나 지독한 죗값과 후회 속에서 피 흘리며 살아왔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부인…….”“매일 밤 눈을 감는 것조차 두려워, 지옥불에 타들어 가는 고통을 홀로 참아내던 당신에게. 이제는 그만 편안한 밤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서연은 이헌의 손에 쥐여진 푸른 향낭을 그의 넓은 가슴, 심장이 쿵쿵 뛰는 왼쪽 가슴 부근으로 천천히 끌어당겨 주었다.“이제 밤마다 그 끔찍한 과거의 망령에 쫓겨 악몽에 시달리지 마십시오.”“…….”“그 죄를 제가 끝내거나 덮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밤마다 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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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화]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1)

 “당신을 깊이 연모합니다, 서방님.”등 뒤에서 들려온 서연의 목소리는 너무도 분명했다.바람 소리도, 풀벌레 우는 소리도 결코 아니었다. 오직 자신 한 사람만을 향해 쏟아낸, 숨 막힐 듯이 온전하고 맹목적인 사랑의 고백.“…….”이헌의 거대한 어깨가, 아니 온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그는 자신의 심장 부근에 푸른 향낭을 꽉 쥔 채, 숨을 쉬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고 허공만 멍하게 응시했다.마치 자신이 지독한 외로움에 미쳐 마침내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닌지,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등 뒤의 온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대군……? 아니, 서방님.”자신의 품 안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미동조차 없는 이헌을 보며, 서연이 걱정스러운 듯 그의 넓은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제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으셨습니까.”“아…… 아아…….”이헌의 찢어진 입술 사이로, 짐승의 앓는 소리 같은 억눌린 탄식이 새어 나왔다.그는 덜덜 떨리는 두꺼운 두 손으로, 자신의 굵은 허리를 감싸고 있는 서연의 하얀 팔을 아주 조심스럽게, 깨질세라 풀어내었다.그리고는 삐걱거리는 몸을 아주 천천히, 금방이라도 깨어질 신기루를 대하듯 극도로 조심스럽게 돌려 서연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이헌의 핏발 선 두 눈에는, 폭포수 같은 뜨거운 눈물이 이미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턱선을 타고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방금…….”이헌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져 쇳소리를 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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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화]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2)

 그리고 제발 저를 침상에 내려주십시오. 참으로 어지러워 토할 지경입니다.”“아, 예! 예! 당장 모시겠습니다. 옥체가 상하시면 아니 되지요.”이헌은 헐레벌떡 넓은 침상 쪽으로 다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부서지기 쉬운 신성한 보물을 내려놓듯 서연을 푹신한 요 위에 아주 조심스럽고 애틋하게 눕혔다.“대군도 이리 와 제 곁에 누우십시오. 밤이 꽤 깊었습니다.”서연이 따뜻한 이불을 덮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권했다.이헌은 그 가벼운 손짓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벅차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황급히 호박 등불의 불을 입으로 불어 끄고 서연의 곁에 조심스럽게 몸을 뉘었다.“…….”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요한 침소.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그 어떤 서늘한 한기나 무거운 긴장감, 끔찍한 공포도 존재하지 않았다.오직 서로의 뜨거운 체온과, 얽혀 드는 따뜻하고 달콤한 숨결만이 이불 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이헌은 옆으로 돌아누워, 자신의 굵고 넓은 팔을 뻗어 서연의 어깨를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서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제 자리인 양 그의 넓은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의 단단한 가슴에 자신의 귀를 바짝 가져다 대었다.쿵, 쿵, 쿵, 쿵.이헌의 거대한 흉곽 안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는, 폭발적인 심장 박동.그 거칠고 벅찬 소리가 서연의 귓가를 쉴 새 없이 꽉 채웠다.“서방님의 심장 소리가 참으로 큽니다. 마치 전쟁터의 둥둥거리는 북소리 같습니다.”서연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비비적거리며 장난스럽게, 그리고 나른하게 속삭였다.“부인께서 제 품에 이리 온전히 들어와 계시는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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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화] 균열의 씨앗(1)

 서늘한 늦가을의 밤이 부드럽게 물러가고, 창호지 문틈으로 은은한 푸른 새벽빛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대군저 안채의 침소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평온한, 완벽한 침묵에 고스란히 잠겨 있었다.“……응.”넓고 푹신한 침상 위. 서연이 작은 뒤척임과 함께 천천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시야를 꽉 채우고 있는 듬직하고 거대한 사내의 가슴팍과 흑색 침의였다.“…….”서연은 숨을 죽인 채, 자신을 빈틈없이 감싸 안고 있는 단단한 두 팔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꼈다.지난밤.그녀의 온전한 고백과 수용으로, 두 사람 사이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지독한 두려움과 불신의 장벽은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그 폐허 위에서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품어 안은 채 처음으로 맞이하는 완벽한 아침이었다.‘참으로…… 따뜻하다. 거짓말처럼 평온하구나.’그녀의 생애에서 이토록 완벽한 평온과 안도감을 느껴본 적이 과연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대역죄인의 여식으로 몰려 사형장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참형을 기다려야 했던 끔찍한 공포도, 볼모로 끌려와 짐승 같은 사내의 폭압에 떨어야 했던 서늘한 절망과 수치심도.지금 자신을 빈틈없이 꽉 안고 있는 이 다정하고 무거운 온기 앞에서는, 마치 아주 먼 옛날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득하게만 느껴졌다.서연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이헌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그는 서연의 머리맡에 엎드린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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