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조금만 더 눈을 감고 계십시오. 거의 다 왔사옵니다.”“어찌 이리 유난이십니까. 눈앞이 캄캄하여 발을 헛디딜 것 같습니다.”“제가 부인의 손을 이리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제게 온전히 기대어 걸으시면 됩니다. 단 한 걸음도 다치지 않게, 돌부리 하나 채이지 않게 할 것입니다.”한양 도성 한복판, 가장 높게 솟아오른 거대한 누각의 가파른 계단.이헌은 서연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자신의 커다랗고 거친 두 손으로 그녀의 두 눈을 조심스럽게 가린 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서연의 가녀린 등이 온전히 기대어진 상태였다.서연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느릿한 걸음에 작게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붉은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옅고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자신을 이끄는 이헌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혹여나 그녀가 넘어질까 봐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그녀의 등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대군. 궐 밖으로 미복잠행을 나온 것도 모자라, 어찌 이 서늘한 야밤에 도성 한가운데의 누각까지 오르시는 겝니까.”서연이 조심스레 나무 계단을 밟으며 나지막이 물었다.“이 누각은 평소 양반들과 시인묵객들로 밤낮없이 북적이는, 풍류의 중심이라 들었습니다. 혹여나 사람들의 눈에 띄면…….”“걱정하지 마십시오.”이헌이 서연의 귓가에 대고 낮고 은밀하게 속삭였다.그의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에 닿을 때마다 서연의 어깨가 찌릿하게 움찔거렸다.“오늘 밤, 이 누각 전체를 통째로 비워두라 흑위대에게 명했습니다. 이 거대한 건물 안에는, 아니 이 근방 백 보 안에는 개미새
Última atualização : 2026-09-12 Ler mais